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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광진구 군자동130필지 1,189,235㎡
문화재 지표조사 · 시굴조사 · 발굴조사 기관 완벽 가이드 뚝섬·한강변 광활한 들판 · 서울 광진구 군자동(君子洞) 1912년 광진구 군자동130필지 1,189,235㎡잡종지 78.7% — 이 시리즈 절대적 최대잡종지 78.7% · 밭 12.3% · 논 8.7% · 임야 0.4% · 대지 0.01% 서울 역사상 가장 광활한 국유지 한 곳.4필지 잡종지 935,733㎡ — 단 4개 필지에 이 모든 면적이도대체 무엇이었는가. 지금 이 시리즈 최대 미스터리를 밝힌다. 잡종지 935,733㎡(78.7%) 밭 145,934㎡(12.3%) 논 102,912㎡(8.7%) 임야 4,505㎡(0.4%) 대지 148㎡(0.01%) 130필지 총 필지 수 1,189,235㎡ 총 면적 5종 토지 유형 수 1912년 지적 등록 SCROLL 1,189,235㎡ · 이 시리즈 절대 최대 · 잡종지 78.7% · 4필지에 93만㎡ "130필지, 1,189,235㎡.여의도의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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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마포구 공덕동19필지 104,007㎡
문화재 지표조사 · 시굴조사 · 발굴조사 기관 완벽 가이드 한강 포구 마을 · 서울 마포구 공덕동(孔德洞) 1912년 마포구 공덕동19필지 104,007㎡대지 60.8% — 포구 마을의 거대한 삶의 터전대지 60.8% · 밭 36.9% · 임야 2.3% · 필지당 평균 10,532㎡ 한강이 서해로 나아가는 마포 포구 언덕, 공덕(孔德).6필지 63,190㎡의 거대 대지가 담은 조선의 생활 터전이104,007㎡의 땅속에 켜켜이 쌓여 있다. 대지 63,190㎡ (60.8%) 밭 38,406㎡ (36.9%) 임야 2,409㎡ (2.3%) 19필지 총 필지 수 104,007㎡ 총 면적 10,532㎡ 필지당 평균 1912년 지적 등록 SCROLL 대지 60.8% · 필지당 평균 10,532㎡ · 마포 포구 최대 규모 "한강 포구 마을 공덕동, 6필지 63,190㎡가 대지였다.필지당 평균 10,532㎡ — 약 3,186평의 거대한 생활 터전.이 땅은 단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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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강서구 과해동7필지 23,500㎡ — 전부 논하늘이 비추던 그 수전의 비밀
문화재 지표조사 · 시굴조사 · 발굴조사 기관 완벽 가이드 한강 하류 수전지대 · 서울 강서구 과해동 1912년 강서구 과해동7필지 23,500㎡ — 전부 논하늘이 비추던 그 수전의 비밀 논물에 하늘이 담기고, 벼 이삭이 바람에 흔들리던 그 들판.7필지 어느 하나도 밭이 아니었다. 오직 물과 벼뿐이었다.그 논 아래 무엇이 잠들어 있는가. 100% 전부 논 7필지 전부 논(畓) 총 23,500㎡ 필지당 평균 3,357㎡ 임야·밭·대지 0필지 7필지 총 필지 수 23,500㎡ 총 면적 3,357㎡ 필지당 평균 1912년 지적 등록 SCROLL 논(畓) 100% · 7필지 전부 · 예외 없음 "7필지, 단 한 평도 밭이 아니다.23,500㎡ 전부가 논 — 한강 하류 최대 순수 수전지대의 비밀." 서울 강서구 과해동. 지금은 김포공항과 가까운 서울 서쪽 끝자락에 자리한 이 동네에, 1912년 국유지로 등록된 7필지 23,500㎡가 있었다. 그런데 이 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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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강동구 둔촌동26필지 62,486㎡논·임야·밭이 품은 600년의 비밀
문화재 지표조사 · 시굴조사 · 발굴조사 기관 완벽 가이드 둔촌 이집(遁村 李集) 선생의 고장 · 강동구 둔촌동 1912년 강동구 둔촌동26필지 62,486㎡논·임야·밭이 품은 600년의 비밀 고려 말 대학자 둔촌 이집이 은거했던 바로 그 땅.논이 흐르고 숲이 우거지고 밭이 펼쳐졌던 이 고장에지금 우리가 아직 모르는 역사가 잠들어 있다. 논 35,742㎡ (57.2%) 밭 24,152㎡ (38.6%) 임야 2,591㎡ (4.2%) 26필지 총 필지 수 62,486㎡ 총 면적 2,403.3㎡ 필지당 평균 1912년 지적 등록 SCROLL 둔촌 이집(遁村 李集, 1327~1387) · 고려 말 대학자 "고려 말 나라가 망해가던 시절,한 선비가 이 땅에 숨어들어 둔촌(遁村)이라 불렀다.그 이름이 600년을 넘어 지금도 살아있다." 서울 강동구 둔촌동. 지금은 대규모 재건축으로 주목받는 이 동네의 이름은, 고려 말 대학자 둔촌 이집 선생이 이곳에 은거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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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강남구 삼성동 국유지 기초조사
문화재 지표조사 · 시굴조사 · 발굴조사 기관 완벽 가이드 1912년 강남구 삼성동 국유지 기초조사 279,978㎡ — 코엑스 아래논밭으로 가득했던 강남의 진짜 얼굴64필지 · 논 · 대지 · 밭 · 1912년 지적 등록 지금 대한민국 최고 부동산 강남구 삼성동.1912년, 이 땅은 논과 밭과 마을이 공존하던 광활한 농경지였다.그 땅 아래 무엇이 잠들어 있는지, 지금 처음으로 밝힌다. 밭 186,595㎡ (66.6%) 논 77,749㎡ (27.8%) 대지 15,633㎡ (5.6%) 64필지 총 필지 수 279,978㎡ 총 면적 4,374.7㎡ 필지당 평균 1912년 지적 등록 SCROLL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싼 땅 강남구 삼성동,1912년에는 논과 밭이 27만9천㎡를 뒤덮고 있었다.그 농경지 아래 무엇이 잠들어 있는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현대차 GBC 부지, 봉은사가 공존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상업·문화 중심지. 그런데 이 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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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중랑구 상봉동12필지 5,662㎡전부 대지 — 중랑천변 마을의 기억
문화재 지표조사 · 시굴조사 · 발굴조사 기관 완벽 가이드 1912년 중랑구 상봉동12필지 5,662㎡전부 대지 — 중랑천변 마을의 기억 서울 동북쪽 끝자락, 중랑천이 흐르는 그 마을에조선의 삶터가 통째로 잠들어 있다.12필지 전부 대지 — 이 사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12총 필지 수 5,662㎡총 면적 100%전부 대지 471.8㎡필지당 평균 면적 약 142.7평 — 마을 단위 대형 필지 SCROLL "중랑천변 마을, 12필지 5,662㎡.단 한 평도 임야도, 밭도 아닌 — 오직 사람이 살던 터였다." 서울시 중랑구 상봉동. 지금은 지하철 7호선과 경의중앙선이 교차하는 교통 요지이자 상봉터미널이 들어선 이 동네에, 1912년 국유지로 등록된 대지 12필지 5,662㎡가 있었다. 임야도 밭도 없다. 전부 집이 서 있던 땅이었다. 그것도 필지당 평균 471.8㎡, 약 143평의 넓직한 터였다. 이 큼직한 대지들이 국유지로 등록되어 있었다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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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용산구 후암동 국유지 4,528㎡,그 땅이 품은 100년의 비밀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문화재 지표조사발굴조사 기관용산구 후암동 문화재 지표조사 · 발굴조사 · 문화유산 기관 완벽 가이드 1912년 용산구 후암동 국유지 4,528㎡,그 땅이 품은 100년의 비밀 당신이 매일 지나치는 그 땅 아래, 100년 전 역사가 잠들어 있다면?문화재 시굴·표본·지표조사의 모든 것을 지금 밝힌다. 4필지총 필지 수 4,528㎡총 면적 82.9%밭 비율 1912년지적 등록 연도 SCROLL "당신이 매일 지나치는 그 땅 아래,100년 전 역사가 잠들어 있다면?" 서울 용산구 후암동. 지금은 카페와 빌라가 빼곡한 이 동네에, 1912년 일제강점기 당시 국유지로 등록된 땅 4,528㎡가 있었다. 그 땅은 지금 무엇을 품고 있을까. 문화재 발굴조사 기관들은 왜 이 작은 땅 하나하나에 주목하는 걸까. 끝까지 읽으면, 당신의 도시 보는 눈이 달라질 것이다. 목차 — Table of Contents 011912년 후암동 국유지 통계 — 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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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과 논과 밭이 한 땅에.영등포구 신길동 5필지, 작지만 완전한 역사
1912년 서울 영등포구 기초조사 · 문화유산 발굴 숲과 논과 밭이 한 땅에.신길동 5필지, 작지만 완전한 역사 임야 69.8% · 논 20% · 밭 5.8% · 대지 4.4% — 단 5필지 안에 4개 지목이 모두 담긴 1912년 영등포구 신길동 국유지의 완전 분석 #문화재발굴#문화재지표조사#시굴조사#영등포구#신길동역사#1912년토지조사 단 5필지다. 그런데 그 안에 산이 있고, 논이 있고, 밭이 있고, 건물 터가 있다. 1912년 영등포구 신길동의 국유지 14,750㎡는 규모는 작지만, 4개 지목이 하나도 빠짐없이 담긴 당시 이 지역 생활 공간의 축소판이다. 숫자가 작아도 이야기는 크다. 지금 그 이야기를 시작한다. 5 총 필지 수 14,750 총 면적 (㎡) 4 지목 종류 2,950 필지당 평균 (㎡) 목 차 01신길동, 새 길이 열리던 땅 025필지 14,750㎡ — 지목별 완전 분석 03임야 2필지 10,297㎡ — 산이 이 자리에 있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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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일제강점기 토지조사부 기록 — 영등포구 신길동 국유지 4개 지목 완전 분석 및 문화재 기초조사
1912년 서울 영등포구 기초조사 | 문화유산 발굴 숲과 논과 밭이 한 땅에. 신길동 국유지 5필지의 균형 잡힌 비밀 임야 69.8% · 논 20% · 밭 5.8% · 대지 4.4% — 4개 지목이 빚어낸 1912년의 풍경 1912년 일제강점기 토지조사부 기록 — 영등포구 신길동 국유지 4개 지목 완전 분석 및 문화재 기초조사 단 5필지다. 하지만 그 안에 산이 있고, 논이 있고, 밭이 있고, 건물 터가 있다. 1912년 영등포구 신길동 국유지는 소규모지만 4개 지목이 빠짐없이 담긴, 당시 이 지역 생활 공간의 축소판이다. 숫자가 작아도 이야기는 크다. 그 이야기를 지금 시작한다. 5 총 필지 수 14,750 총 면적 (㎡) 4 지목 종류 2,950 필지당 평균 (㎡) 목차 01신길동, 새 길이 열리던 땅 025필지 14,750㎡ — 지목별 완전 분석 03임야 2필지 10,297㎡ — 산이 이 자리에 있던 이유 04논·밭·대지 — 세 지목이 말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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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일제강점기 토지조사부 기록 — 양천구 신정동 국유지 5개 지목 완전 분석 및 문화재 기초조사
1912년 서울 양천구 기초조사 | 문화유산 발굴 서울에서 가장 큰 국유 잡종지. 신정동 453,327㎡의 충격 1필지 393,271㎡ — 여의도 면적의 13%가 단 한 필지로 기록됐다 1912년 일제강점기 토지조사부 기록 — 양천구 신정동 국유지 5개 지목 완전 분석 및 문화재 기초조사 읽고 또 읽어도 눈을 의심하게 되는 숫자가 있다. 잡종지 1필지 393,271㎡. 단 한 필지다. 그 넓이가 약 11만 9천 평, 여의도 전체 면적의 약 13%에 해당한다. 1912년 신정동의 이 거대한 국유 잡종지는 무엇이었을까. 그 답을 찾는 과정이 곧 문화재 지표조사의 시작이다. 31 총 필지 수 453,327 총 면적 (㎡) 5 지목 종류 86.7% 잡종지 면적 비율 목차 01 신정동, 한강 옆의 광활한 땅 02 31필지 453,327㎡ — 지목별 완전 분석 03 393,271㎡ 잡종지 — 서울 최대 단일 국유 잡종지의 정체 04 수도용지·논·밭·대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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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일제강점기 토지조사부 기록 — 양천구 신월동 지목별 완전 분석 및 문화재 기초조사
1912년 서울 양천구 기초조사 | 문화유산 발굴 논과 물과 땅이 만나는 곳. 신월동 국유지 25필지 78,631㎡의 비밀 1912년 일제강점기 토지조사부 기록 — 양천구 신월동 지목별 완전 분석 및 문화재 기초조사 이 땅에 수도용지(水道用地)가 있었다. 1912년, 상수도 인프라가 막 서울에 뿌리를 내리던 그 시절에. 신월동 국유지 25필지 78,631㎡는 논과 밭, 잡종지, 그리고 수도용지가 뒤섞인 복합 공간이었다. 이 특이한 조합이 무엇을 말하는지, 기록이 열어주는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자. 25 총 필지 수 78,631 총 면적 (㎡) 4 지목 종류 3,145 필지당 평균 (㎡) 목차 01신월동, 새로운 물이 흐르던 땅 0225필지 78,631㎡ — 지목별 완전 분석 03수도용지 5필지 — 이 기록이 가장 특별한 이유 04논·밭·잡종지 — 농업 경관의 흔적 05문화재 지표조사·시굴조사 기초 전략 06신월동 기록이 열어줄 가능성 01 신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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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일제강점기 토지조사부 기록 — 송파구 마천동 국유 임야 단독 필지 완전 분석
1912년 서울 송파구 기초조사 | 문화유산 발굴 산이 기억하는 것들. 마천동 임야 4,231㎡가 숨긴 역사 1912년 일제강점기 토지조사부 기록 — 송파구 마천동 국유 임야 단독 필지 완전 분석 지도 위의 작은 점 하나. 단 1필지 4,231㎡, 오직 임야 하나만이 마천동의 국유지로 기록됐다. 그런데 그 숲이 어디에 있었는지, 왜 국유였는지를 추적하면 이 땅 아래 잠든 역사가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문화재 지표조사는 바로 이 한 줄의 기록에서 시작된다. 1 총 필지 수 4,231 총 면적 (㎡) 100% 전 지목 임야 1,281 약 평(坪) 환산 목차 01 마천동, 산과 강 사이의 땅 02 1필지 4,231㎡ — 국유 임야 데이터 분석 03 임야 단독 국유지가 의미하는 것 04 인근 지역과의 비교 분석 05 임야 지목의 문화재 지표조사·시굴조사 전략 06 마천동 임야가 앞으로 열어줄 가능성 01 마천동, 산과 강 사이의 땅 송파구 마천동(馬川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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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일제강점기 토지조사부 기록 — 성북구 석관동 국유 대지 완전 분석
1912년 서울 성북구 기초조사 | 문화유산 발굴 단 2필지, 하지만 그 안에 석관동 1,676㎡가 품은 역사 1912년 일제강점기 토지조사부 기록 — 성북구 석관동 국유 대지 완전 분석 숫자가 작다고 역사가 작은 건 아니다. 단 2필지 1,676㎡. 서울 성북구 석관동의 1912년 국유지 전부다. 그런데 이 작은 기록 하나가 문화재 지표조사의 결정적 단서가 될 수 있다. 무엇이 있었는지, 왜 국유였는지 — 그 질문이 땅속으로 향하는 첫 번째 문을 연다. 2 총 필지 수 1,676 총 면적 (㎡) 100% 전 지목 대지 838 필지당 평균 ㎡ 목차 01석관동, 어떤 땅이었나 022필지 1,676㎡ — 데이터로 보는 국유 대지 03전 지목이 대지 — 이 기록이 말하는 것 04인근 지역과의 비교 — 석관동이 특별한 이유 05문화재 지표조사·시굴조사 기초 분석 06이 기록이 앞으로 열어줄 가능성 01 석관동, 어떤 땅이었나 성북구 석관동(石串洞).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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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서울 성동구 기초조사 | 문화유산 발굴
1912년 서울 성동구 기초조사 | 문화유산 발굴 이 땅 아래 무엇이 잠들어 있을까. 상왕십리 국유지 688필지의 비밀 1912년 일제강점기 토지조사부 기록 — 213,600㎡ 국유지의 지목별 완전 분석 지금 서울 성동구 상왕십리 어딘가, 당신이 걷는 그 길 아래에 110년 전 국유지 기록이 존재한다. 건물이 들어서기 전, 사람이 살기 전, 이 땅은 대지였고 밭이었고 임야였고 묘지였다. 문화재 지표조사는 바로 이 기록에서 시작된다. 과거를 알아야 땅속을 읽을 수 있다. 688 총 필지 수 213,600 총 면적(㎡) 4 지목 종류 1912 조사 기준 연도 목차 01 1912년, 상왕십리 땅이 기록된 날 02 688필지 213,600㎡ — 지목별 완전 분석 03 대지 630필지 — 이 넓은 땅에 무슨 건물이 있었나 04 분묘지·임야·밭 — 잊혀진 생활의 흔적들 05 문화재 지표조사·시굴조사는 왜 이 기록에서 시작하나 06 상왕십리 발굴조사의 가능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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