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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종로구 종로2가, 서울 한복판에 숨겨진 공원과 토지의 비밀

  • 2025년 12월 26일
  • 5분 분량

최종 수정일: 4월 30일

문화재 발굴 · 종로구 역사

지금 종로2가 그 자리에, 한때 거대한 공원이 있었어— 1912년 토지조사로 읽는 문화재 지표조사의 숨겨진 단서들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 문화재발굴, 지표조사, 종로2가, 종로구 역사

종로2가 얘기 하면 뭐가 떠올라?


교보문고? 영풍문고? 오가는 직장인들?


근데 113년 전 그 자리엔 나무가 있었어.

공원이었어. 면적이 11,018제곱미터. 전체 종로2가 넓이의 3분의 1에 가까운 거대한 녹지가 거기 있었어. 지금은 상상도 안 되는 풍경이지. 그리고 그 공원 주변으로 101필지의 집들이 촘촘히 이어졌어. 화교 상인이 있었고, 일본인도 있었고, 조선의 김씨와 이씨 가문이 있었어. 이 이야기를 끝까지 읽으면, 다음에 종로2가를 걸을 때 발걸음이 달라질 거야. 확실히.

목차

  • 1장. 한 장의 지도에서 시작된 이야기

  • 2장. 1912년 종로2가의 전체 토지 규모

  • 3장. 도심 한가운데 존재했던 거대한 공원

  • 4장. 101필지의 집과 사람들의 삶

  • 5장. 국유지와 법인 소유 토지가 말해주는 시대의 구조

  • 6장. 성씨로 읽는 종로2가의 토지 권력

  • 7장. 일본인과 중국인 소유 토지가 남긴 흔적

  • 8장. 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조사가 필요한 이유

  • 9장. 오늘날 종로2가에 주는 메시지



1한 장의 지도에서 시작된 이야기

1912년의 종로2가를 처음 마주하면 누구나 잠깐 멈추게 돼. 지금은 빌딩과 간판, 차량으로 가득 찬 이곳에 한때 거대한 공원이 있었고, 그 옆으로 사람들의 집과 삶이 촘촘하게 이어져 있었기 때문이야. 숫자를 나열하는 기록이 아니라, 100여 년 전 종로 한복판에서 실제로 숨 쉬던 공간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여정이야.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seoulheritage.org)가 서울 전역 25개 구의 지역별 토지 기록을 체계적으로 분석하면서, 종로구 지역조사도 꾸준히 쌓아가고 있어. 이 데이터는 단순한 역사 정리를 넘어서, 어느 블록이 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조사의 우선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실질적인 기준이 돼. 종로2가는 그 안에서도 구조가 가장 입체적인 케이스 중 하나야.

계속 읽다 보면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종로2가가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할 거야.


21912년 종로2가의 전체 토지 규모

1912년 종로구 종로2가는 총 102필지, 면적은 33,114제곱미터였어. 숫자만 보면 단순해 보여. 그런데 안을 들여다보면 구조가 굉장히 독특해. 도심 상업지라는 이미지와 달리, 이 102필지 안에는 공원, 집터, 국유지, 법인 소유지, 그리고 외국인 소유 토지까지 다층적인 성격이 공존하고 있었거든.

102

총 필지 수

33,114㎡

총 면적

101

대지 필지

11,018㎡

공원 면적

4

국유지 필지

5

중국인 소유 필지

특히 이 중 상당한 면적을 차지한 한 필지가 모든 이야기의 흐름을 바꿔놓아. 그게 바로 다음 장에서 다룰 공원부지야. 이 공원 하나가 종로2가의 성격을 단순한 주거 상업지가 아닌, 훨씬 복잡한 도시 계획의 산물로 만들어줘.

대지

22,095㎡

공원

11,018㎡

국유지

4필지

외국인 소유

6필지


3도심 한가운데 존재했던 거대한 공원

1912년 종로2가에는 공원부지가 존재했어. 1필지, 면적 11,018제곱미터. 전체 종로2가 면적의 33퍼센트에 가까운 규모야.

1912년 종로2가 공원부지

11,018㎡

전체 면적(33,114㎡)의 약 33% · 단 1필지

지금의 종로를 떠올리면 상상이 잘 안 돼. 빽빽한 빌딩 숲 사이에 축구장 하나 반 크기의 공원이 있었다는 게 말이야. 하지만 당시 일제는 도시 위생, 주민 통제, 그리고 식민지 도시의 근대적 이미지를 위해 계획적으로 공원을 배치했어. 이 공원은 단순한 쉼터가 아니라, 통치 권력이 공간에 개입한 흔적이야.

문화재 지표조사 관점에서 공원 터는 항상 특별한 주목 대상이야. 공원으로 지정된 땅은 그 아래를 건드리지 않은 채 보존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반대로 말하면, 그 아래에는 공원이 조성되기 이전 시대의 흔적이 훨씬 두껍게 쌓여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야. 발굴 트렌치를 팠을 때 조선 후기 생활층이 고스란히 나오는 경우가 이런 공원 터에서 자주 확인돼.

공원 11,018제곱미터. 이 땅은 오랫동안 건드려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아. 그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아직 아무도 완전히 알지 못해. 문화재 지표조사가 가장 먼저 시작되어야 할 이유가 바로 이 숫자야.



4101필지의 집과 사람들의 삶

공원을 제외한 나머지는 대부분 집이었어. 101필지, 22,095제곱미터의 대지. 공원 하나가 전체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해도, 나머지 3분의 2는 사람이 살고 장사하던 땅이었어. 그 밀도가 얼마나 촘촘했을지 상상이 돼?

상점과 주거가 섞이고, 골목마다 생업과 일상이 공존했어. 아침에 문을 열면 바로 앞에 이웃집 담이 보이는 그런 구조였을 거야. 이런 고밀도 주거 상업 혼합 지역은 문화재 발굴 조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대상이야. 집터에는 반드시 흔적이 남거든. 우물, 배수로, 온돌 기단석, 쓰다 버린 도자기와 생활 유물들이 층층이 쌓여 있어.

실제로 서울 도심 발굴 성공 사례를 보면, 이런 옛 대지 구조가 밀집된 곳에서 결정적인 유구가 나오는 비율이 매우 높아. 종로2가의 101필지는 그런 의미에서 아직 발굴되지 않은 거대한 이야기 창고야.



5국유지와 법인 소유 토지가 말해주는 시대의 구조

종로2가에는 국유지가 4필지 있었어. 국유지는 단순히 국가 소유라는 의미가 아니야. 권력이 직접 개입한 공간이야. 관청이나 기반시설, 혹은 향후 개발을 염두에 둔 전략적 토지였을 가능성이 커. 국유지가 어디 있는지가 확인되면, 그 주변의 개발 방향이 어떻게 결정됐는지도 자연스럽게 추론할 수 있어.

법인 소유 토지도 2필지 있었어. 이건 이 시기에 이미 개인 중심의 토지 구조에서 조직과 자본 중심 구조로 넘어가고 있었다는 증거야. 회사나 단체가 땅을 소유하기 시작했다는 건, 부동산이 단순한 생활 공간에서 투자 자산으로 성격이 바뀌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해. 1912년의 종로2가가 단순한 옛 동네가 아닌, 근대 자본이 침투하기 시작한 공간이었음을 보여주는 단서야.

국유지 4필지, 법인 소유 2필지. 이 6필지는 발굴조사 과정에서도 특별히 주목해야 해. 층위가 복잡하게 나오는 경우가 많고, 구조물의 재사용이나 개축 흔적이 확인될 가능성이 높거든.


6성씨로 읽는 종로2가의 토지 권력

1912년 종로2가에서 가장 눈에 띄는 성씨 데이터는 김씨와 이씨야. 각각 16필지씩 소유하고 있었어. 단순한 우연이 아니야. 조선 후기부터 이어진 도심 핵심 지역의 토지 소유 구조가 1912년에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증거야.

한 가문이 인접한 여러 필지를 나눠 소유하면서 임대하거나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패턴은 조선 후기 도시 상류층의 일반적인 전략이었어. 김씨 16필지, 이씨 16필지가 각각 어디에 몰려 있었는지 지도 위에 올려놓으면, 그 가문이 종로2가에서 어느 구역을 장악하고 있었는지가 명확하게 보여.

문화재 지표조사 보고서에서 성씨별 토지 분포는 중요한 분석 요소야. 동일 가문 소유지에서는 비슷한 건축 양식과 생활 유물이 반복적으로 나오는 경향이 있어. 그 패턴을 파악하면 발굴 단계에서 어느 구역에 집중해야 하는지 예측할 수 있거든.


7일본인과 중국인 소유 토지가 남긴 흔적

종로2가에는 일본인 소유 토지가 1필지, 중국인 소유 토지가 5필지 있었어. 합치면 6필지로, 전체의 약 5.9퍼센트야.

특히 중국인 소유 토지가 상대적으로 많다는 점이 흥미로워. 종로는 예로부터 상업과 교류의 중심지였고, 조선 후기부터 화교 상인들이 자리 잡아 온 긴 역사가 있어. 1912년에도 그 상권이 유지되고 있었다는 뜻이야. 이건 충무로와 달리 종로2가가 일본인보다 중국인의 상업적 존재감이 더 강하게 남아 있던 공간이었음을 보여줘.

중국인 소유 5필지. 이 땅에서는 발굴 시 조선식 유물과 다른 문화권의 흔적이 함께 나올 수 있어. 중국제 도자기, 화폐, 생활용품. 종로가 단순한 조선의 거리가 아니라 국제 교역의 공간이었음을 입증하는 증거들이 땅속에 기다리고 있을 수 있어.

그래서 종로 일대는 지금도 문화재 발굴 기관들이 가장 민감하게 보는 지역 중 하나야. 단일 문화층이 아니라 여러 문화권이 겹친 복합층이 나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야. 한 트렌치에서 조선식 기단, 중국식 도자기, 근대 건축 자재가 동시에 나오는 순간, 그건 단순한 유물이 아니라 도시의 교차점을 발굴한 거야.



8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조사가 필요한 이유

종로2가는 단순한 상업지가 아니야. 공원, 주거지, 국유지, 외국인 소유 토지가 겹겹이 쌓인 입체적인 역사 공간이야.

이런 곳에서 개발이나 건축을 계획한다면, 문화재 지표조사는 선택이 아니라 출발점이야. 사업 면적 3만 제곱미터 이상이면 법적 의무이기도 하고, 그보다 먼저 이 땅이 가진 이야기를 미리 읽어야 개발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리스크를 줄일 수 있어. 지표조사 결과를 국가유산청에 보고하고, 심의를 거쳐 필요한 조치가 결정돼. 시굴조사에서 유구가 확인되면 정밀발굴조사로 이어지고, 그 결과에 따라 사적이나 국보급 유물이 탄생할 수도 있어.

공원 11,018제곱미터, 대지 101필지, 화교 상권 흔적 5필지. 이 세 가지가 겹치는 종로2가는 발굴 성과가 나올 가능성이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지역이야.



9오늘날 종로2가에 주는 메시지

우리가 매일 지나치는 종로2가는 사실 100년의 시간이 겹쳐진 공간이야. 발밑에는 공원이 있었고, 집이 있었고, 화교 상인의 가게가 있었고, 조선의 김씨 가문 집이 있었어.

이 사실을 아는 순간, 도시가 그냥 소비되는 공간이 아니라 기억을 품은 장소로 느껴지기 시작해. 문화재 발굴은 과거를 파헤치는 일이 아니야. 지금의 도시를 더 깊이 이해하는 일이야. 우리가 서 있는 이 땅이 어떤 시간을 거쳐 여기까지 왔는지를 알게 될 때, 도시는 비로소 사람다운 얼굴을 갖게 돼.

지금 당장 종로2가에서 개발을 계획하고 있다면, 문화재 발굴 기관에 먼저 문의해봐. 법적 리스크를 줄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하고, 그 땅이 가진 이야기를 처음으로 세상에 꺼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니까.



끝까지 읽어줘서 진심으로 고마워.

다음에 종로2가를 걸을 때는 잠깐만 속도를 늦춰봐.

그 자리에 한때 나무가 있었고, 바람이 있었고,

이름 모를 누군가가 그 공원 벤치에 앉아 있었어.

그 기억을 기억하는 사람이 하나씩 늘어날수록,

이 도시는 조금 더 따뜻해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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