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일제강점기 토지조사부 기록 — 송파구 마천동 국유 임야 단독 필지 완전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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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서울 송파구 기초조사 | 문화유산 발굴
산이 기억하는 것들.
마천동 임야 4,231㎡가 숨긴 역사
1912년 일제강점기 토지조사부 기록 — 송파구 마천동 국유 임야 단독 필지 완전 분석
지도 위의 작은 점 하나. 단 1필지 4,231㎡, 오직 임야 하나만이 마천동의 국유지로 기록됐다. 그런데 그 숲이 어디에 있었는지, 왜 국유였는지를 추적하면 이 땅 아래 잠든 역사가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문화재 지표조사는 바로 이 한 줄의 기록에서 시작된다.
1
총 필지 수
4,231
총 면적 (㎡)
100%
전 지목 임야
1,281
약 평(坪) 환산
목차
01 마천동, 산과 강 사이의 땅
02 1필지 4,231㎡ — 국유 임야 데이터 분석
03 임야 단독 국유지가 의미하는 것
04 인근 지역과의 비교 분석
05 임야 지목의 문화재 지표조사·시굴조사 전략
06 마천동 임야가 앞으로 열어줄 가능성

01
마천동, 산과 강 사이의 땅
송파구 마천동(馬川洞). 이름에 '말(馬)'과 '내(川)'가 들어간다. 말이 달리던 냇가, 혹은 말을 기르던 냇물 근처의 땅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조선시대 이 일대는 한양 동남쪽 외곽의 산지와 한강 사이에 끼인 지대였다. 지금은 서울의 주거 밀집 지역이지만, 1912년만 해도 이 땅의 상당 부분은 숲이었다.
마천동 인근은 역사적으로 굵직한 흔적이 많은 곳이다. 남한산성(南漢山城)의 서쪽 자락이 이 지역에 걸쳐 있으며, 조선 인조가 1636년 병자호란 당시 청군을 피해 피신한 바로 그 산성의 기슭이다. 또한 인근에는 백제 시대 유물이 다수 출토된 지역이 분포해 있어, 마천동 일대는 고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역사 지층이 켜켜이 쌓인 땅이기도 하다.
1912년 이 지역의 국유지 기록이 임야 단 1필지라는 것은, 당시 마천동이 대부분 사유지 또는 민간 경작지로 이루어진 마을이었음을 뜻한다. 그러나 그 단 하나의 국유 임야가 어디에 어떤 이유로 있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문화재 기초조사의 핵심 과제가 된다.
숲은 가장 오래된 기억을 품고 있다. 벌채되지 않은 산림 아래에는 수백 년의 흔적이 고스란히 잠들어 있다.
—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현장 노트 (seoulheritage.org)
02
1필지 4,231㎡ — 국유 임야 데이터 분석
1912년 서울시 송파구 마천동 국유지는 임야 1필지, 면적 4,231㎡가 전부다. 4,231㎡는 약 1,281평이다. 단일 필지로는 상당히 큰 규모의 산림 지목이다. 지목이 오직 임야 하나뿐이고, 대지도 밭도 분묘지도 없다는 것이 이 기록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1912년 송파구 마천동 국유지 — 지목별 상세
임야 (林野)
전체 국유지의 100% — 유일한 지목
1
필지 수
4,231
면적 (㎡)
약 1,281
평 환산
마천동 국유지 지목 구성 — 면적 기준
임야
4,231㎡ — 전체 100%
1필지
대지
기록 없음
밭
기록 없음
분묘지
기록 없음
4,231㎡는 농구 코트 약 38개를 합친 면적이다. 또는 표준 축구장 절반에 가까운 크기다. 이 넓은 산림 구역이 단 한 필지로 묶여 국유로 관리됐다는 사실은, 이 임야가 자연적으로 형성된 방치된 숲이 아니라 특정 목적을 위해 구획되고 관리된 산림이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03
임야 단독 국유지가 의미하는 것
마천동 국유 임야 1필지가 어떤 성격의 토지였는지를 파악하려면, 당시 국유 임야가 형성되는 경로를 먼저 살펴야 한다. 일제강점기 초기 토지조사 사업에서 국유 임야로 분류된 토지는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째, 조선 왕실 소유의 봉산(封山)이다. 봉산은 왕실에서 특정 목적을 위해 벌채와 개간을 금지한 지정 산림이다. 왕릉 조성용 목재 확보, 궁궐 건축 자재 비축, 또는 풍수지리적 보호 목적으로 지정된 경우가 많았다. 마천동 인근 남한산성 지역은 조선 후기 군사 요충지였던 만큼, 봉산으로 지정된 산림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크다.
둘째, 역둔토(驛屯土) 성격의 관유지다. 조선시대 역(驛)이나 군사 주둔지에 딸린 산림으로, 땔감과 건축 자재를 공급하는 역할을 했다. 마천동이 위치한 남한산성 서쪽 일대는 조선 후기 군사 활동이 빈번했던 지역이어서, 군사 목적의 관유 임야가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셋째, 능역(陵域) 또는 원역(園域) 소속 산림이다. 인근에 왕릉이나 원이 위치한 경우, 그 경계 구역의 산림은 엄격하게 관리됐다. 송파구 일대에는 조선시대 능원 관련 기록이 남아 있으며, 마천동 임야가 그 관련 구역이었을 가능성도 검토해야 한다.
임야 지목 토지는 문화재 발굴조사에서 특별히 주목받는다. 개발 압력이 적었던 산림 지역은 지표 아래 고대 문화층이 비교적 잘 보존되는 경향이 있다. 특히 봉산이나 능역 인근 임야는 인위적 훼손이 적어, 수백 년 전 지표면이 거의 원형에 가깝게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04
인근 지역과의 비교 분석
마천동의 국유 임야 기록을 다른 서울 지역 1912년 국유지 데이터와 나란히 놓으면, 이 단 한 필지의 성격이 더욱 선명해진다.
성동구 상왕십리
688 필지
213,600㎡ · 4개 지목
성북구 석관동
2 필지
1,676㎡ · 대지 단일
송파구 마천동
1 필지
4,231㎡ · 임야 단일
지역별 국유 임야 면적 비교
마천동
4,231㎡
1필지
상왕십리
36,324㎡
4필지
석관동
임야 없음
상왕십리의 임야 36,324㎡와 비교하면 마천동 4,231㎡는 규모가 작다. 하지만 상왕십리 임야는 4필지로 나뉘어 있는 반면, 마천동은 1필지로 구획됐다는 차이가 있다. 단일 필지로 묶였다는 것은 이 산림이 행정적으로 하나의 단위, 즉 특정 기능을 가진 독립된 공간으로 관리됐음을 의미한다.
또한 석관동은 임야 기록이 전혀 없는 반면 마천동은 임야만 있다는 대비도 흥미롭다. 이는 석관동이 도성 인근 반도시화 지역이었던 것과 달리, 마천동은 1912년 시점에도 산림 성격이 강하게 유지되던 자연 지형 지역이었음을 뒷받침한다.

05
임야 지목의 문화재 지표조사·시굴조사 전략
임야 지목 토지의 문화재 조사는 대지나 밭과는 접근 방식이 다르다. 산림 지역은 표면이 식생으로 덮여 있어 지표 관찰이 어렵고, 경사면에 따른 퇴적 양상도 복잡하다. 그러나 그만큼 개발에 의한 훼손이 적어 원형 보존도가 높다는 장점이 있다.
지표조사 단계에서는 먼저 해당 임야의 식생 분포, 지형 경사도, 지표면 노출 유물 여부를 확인한다. 특히 4,231㎡ 규모의 단일 임야라면 경사면과 평탄지를 구분해 각기 다른 조사 전략을 세워야 한다. 평탄지는 건물지 유구가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고, 경사면은 도기류나 기와류 같은 유물이 흘러내려 집적될 수 있는 구역이다.
시굴조사(試掘調査) 단계에서는 일반적으로 격자형 트렌치 배치가 권장된다. 4,231㎡를 기준으로 하면 5% 조사 면적은 약 212㎡다. 이를 폭 1~2m 트렌치로 배분할 때, 지형에 따라 주능선과 사면부를 교차 배치하는 방식이 효과적이다.
표본조사(標本調査)는 시굴 결과 유구나 유물이 확인된 구역에 집중 투입된다. 임야 지목에서 자주 발견되는 유형은 봉수대 석축, 산성 관련 시설, 벌채 금지 구역 내의 관리 초소 건물지 등이다. 이 중 하나라도 확인된다면 정식 발굴조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마천동은 남한산성 산줄기와의 지리적 연속성을 감안할 때, 조선시대 군사 관련 시설이나 봉수 네트워크와 연결된 구조물이 지표 아래 잠들어 있을 가능성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지표조사 과정에서 이 연관성을 조선시대 고지도와 군사지리지 문헌을 통해 교차 검증하는 것이 중요하다.
임야 지목 토지의 문화재 지표조사는 「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 및 국가유산청 고시에 따라 지표면 조사와 함께 문헌조사를 병행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1912년 토지조사부는 이 문헌조사의 핵심 1차 자료로 활용된다.

06
마천동 임야가 앞으로 열어줄 가능성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seoulheritage.org)가 1912년 송파구 마천동 국유지 기록을 정리한 것은, 이 단 한 줄의 임야 기록이 향후 개발 사업 시 문화재 지표조사의 근거 자료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은 아무런 공사가 없어도, 이 데이터는 미래의 조사를 위해 먼저 쌓아두어야 하는 기초 정보다.
마천동 일대는 이미 문화재 발굴의 실적이 있는 지역이다. 송파구는 서울에서 백제 유적이 가장 집중적으로 분포한 지역으로 손꼽힌다.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이 마천동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이 일대 지하에는 백제 시대부터 이어진 문화층이 넓게 형성되어 있다. 마천동의 임야 국유지 역시 그 문화층의 연장선 위에 있을 수 있다.
성공 사례도 있다. 송파구 내 거여동에서는 1912년 임야 기록을 단서로 지표조사를 실시한 결과, 조선시대 분묘와 함께 그보다 훨씬 이른 시대의 토기 파편이 발견된 사례가 있다. 기록 한 줄이 2,000년의 시간을 꺼낸 것이다.
마천동 임야 4,231㎡는 지금도 그 가능성을 품고 있다. 1912년 누군가의 손으로 기록된 이 숫자가, 언젠가 이 땅속에서 새로운 역사를 꺼내는 첫 번째 열쇠가 될 수 있다. 역사는 언제나 작은 기록에서 시작된다.
성공 사례 — 송파구 거여동 임야 기록과 2,000년의 발견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단이 1912년 토지조사부에서 확인한 송파구 거여동 국유 임야 기록을 추적해 지표조사를 실시한 결과, 조선시대 분묘 유구와 함께 그 이전 시대의 토기 파편이 다수 출토됐다. 1912년 기록 한 줄이 2천 년 역사층을 여는 단서가 됐다. 마천동 임야도 같은 가능성을 품고 있다.

단 1필지, 4,231㎡의 임야. 마천동의 국유지 기록은 딱 그것뿐이다. 하지만 그 숲이 왜 국유였는지, 누가 그 땅을 지켰는지, 그 나무 아래 무엇이 잠들어 있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오늘 이 기록을 읽어준 당신이, 그 질문을 함께 품게 됐다. 언젠가 그 숲 아래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 그날을, 이 기록은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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