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일제강점기 토지조사부 기록 — 양천구 신월동 지목별 완전 분석 및 문화재 기초조사
- 5월 29일
- 5분 분량
1912년 서울 양천구 기초조사 | 문화유산 발굴
논과 물과 땅이 만나는 곳.
신월동 국유지 25필지 78,631㎡의 비밀
1912년 일제강점기 토지조사부 기록 — 양천구 신월동 지목별 완전 분석 및 문화재 기초조사
이 땅에 수도용지(水道用地)가 있었다. 1912년, 상수도 인프라가 막 서울에 뿌리를 내리던 그 시절에. 신월동 국유지 25필지 78,631㎡는 논과 밭, 잡종지, 그리고 수도용지가 뒤섞인 복합 공간이었다. 이 특이한 조합이 무엇을 말하는지, 기록이 열어주는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자.
25
총 필지 수
78,631
총 면적 (㎡)
4
지목 종류
3,145
필지당 평균 (㎡)
목차
01신월동, 새로운 물이 흐르던 땅
0225필지 78,631㎡ — 지목별 완전 분석
03수도용지 5필지 — 이 기록이 가장 특별한 이유
04논·밭·잡종지 — 농업 경관의 흔적
05문화재 지표조사·시굴조사 기초 전략
06신월동 기록이 열어줄 가능성

01
신월동, 새로운 물이 흐르던 땅
양천구 신월동(新月洞). 이름에 '새(新)'와 '달(月)'이 들어간다. 새로운 달처럼 떠오르는 땅이라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지형적으로는 한강이 크게 굽어 흐르는 하류 평야 지대에 자리한 저지대 마을이었다. 1912년 이 지역은 지금의 번화한 도심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논이 넓게 펼쳐지고, 밭이 이어지며, 한강에서 끌어온 물이 도랑을 따라 흐르던 농업 지대였다.
그런데 이 평범해 보이는 농촌 지대에 이례적인 기록이 남아 있다. 바로 수도용지(水道用地) 5필지 10,452㎡다. 1912년이면 일제가 한반도 전역에 근대 상수도 시설을 본격적으로 구축하기 시작하던 시기다. 신월동의 수도용지 기록은 당시 이 지역이 서울 외곽 수도 인프라 구축의 거점 중 하나였을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한다.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seoulheritage.org)가 양천구 전체 지역 1912년 토지조사부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확인한 신월동의 국유지는 25필지, 78,631㎡다. 논·밭·수도용지·잡종지라는 네 가지 지목이 서로 다른 비율로 섞인 이 복합 구성은 당시 신월동이 단순한 농촌이 아닌, 근대 도시 기반시설이 농업 지대 위에 겹쳐지던 전환기적 공간이었음을 말해준다.
물길을 바꾸는 자가 도시를 바꾼다. 1912년 신월동의 수도용지는 서울의 물 역사가 시작된 곳 중 하나일 수 있다.
—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연구 노트 (seoulheritage.org)
02
25필지 78,631㎡ — 지목별 완전 분석
전체 25필지 78,631㎡를 지목별로 분해하면, 신월동의 1912년 국유지 성격이 입체적으로 드러난다. 면적 기준으로 가장 큰 비중은 논이며, 뒤를 이어 잡종지, 밭, 수도용지 순서다. 하지만 필지 수 기준으로는 논이 압도적으로 많다.
1912년 양천구 신월동 국유지 — 지목별 상세
논
12 필지
40,066 ㎡
면적 비율 50.9%
잡종지
1 필지
12,277 ㎡
면적 비율 15.6%
밭
7 필지
15,834 ㎡
면적 비율 20.1%
수도용지
5 필지
10,452 ㎡
면적 비율 13.3%
지목별 면적 비율 (총 78,631㎡ 기준)
논 50.9%밭 20.1%잡종지 15.6%수도용지 13.3%
논
40,066㎡ · 50.9%
12필지
밭
15,834㎡
7필지 · 20.1%
잡종지
12,277㎡
1필지 · 15.6%
수도용지
10,452㎡
5필지 · 13.3%
지목별 필지당 평균 면적
잡종지
12,277㎡/필
1필지
수도용지
2,090㎡/필
5필지
밭
2,262㎡/필
7필지
논
3,339㎡/필
12필지
주목할 것은 잡종지다. 단 1필지인데 면적이 12,277㎡에 달한다. 필지당 면적으로만 보면 다른 지목을 압도한다. 이처럼 단일 필지로 구획된 대형 잡종지는 특정 공공 목적의 복합 시설 부지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지점이 문화재 기초조사에서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구역이다.

03
수도용지 5필지 — 이 기록이 가장 특별한 이유
이번 신월동 기록에서 가장 눈에 띄는 지목은 단연 수도용지(水道用地)다. 다른 지역 국유지 기록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이 지목이 신월동에는 5필지 10,452㎡나 존재한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수도용지는 상수도 또는 하수도 관련 시설이 들어선 토지를 말한다. 1908년 서울에는 뚝도(纛島) 수원지를 기반으로 한 근대 상수도 시스템이 처음 가동되기 시작했다. 한강의 물을 정수해 파이프로 보내는 이 시스템은 이후 수년에 걸쳐 서울 전역으로 관망이 확장됐다. 신월동의 수도용지 기록은 이 상수도 관망 확장 과정에서 생긴 배수지, 펌프장, 관로 부지 등의 흔적일 가능성이 높다.
문화재 발굴조사 관점에서 수도용지는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근대 산업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1912년 당시의 벽돌 구조 펌프실, 콘크리트 배수지 기초, 주철 관로 흔적 같은 근대기 구조물이 지표 아래 남아 있을 수 있다. 이는 조선시대 유물과는 다른 차원의 근대 문화유산이다.
특히 5필지가 어느 구역에 집중 분포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지표조사의 첫 번째 과제다. 필지들이 연속해 있는지, 아니면 산발적으로 분포하는지에 따라 당시 수도 시설의 규모와 성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1908년 뚝도 수원지에서 출발한 서울 상수도 시스템은 1912년을 전후해 서울 외곽 지역으로 빠르게 확장됐다. 양천구 일대는 한강 하류와 인접해 수도 시설 입지로 적합했다. 신월동의 수도용지 10,452㎡는 이 확장 과정의 직접적인 흔적일 가능성이 크다.

04
논·밭·잡종지 — 농업 경관의 흔적
면적의 절반을 차지하는 논 40,066㎡는 신월동이 1912년 전형적인 한강 하류 농업 지대였음을 보여준다. 12필지에 걸쳐 고르게 분포한 논은 필지당 평균 3,339㎡ 규모로, 소규모 자작농 단위가 아닌 국가 또는 왕실이 관리하던 광작(廣作) 형태의 경작지였을 가능성이 있다. 조선시대 국유 논은 대개 역둔토(驛屯土) 또는 궁방전(宮房田) 성격으로 운영됐으며, 소작농이 경작하고 수확물의 일정 비율을 세금으로 납부하는 방식이었다.
밭 7필지 15,834㎡는 논보다 필지당 규모가 작다. 이는 밭 경작이 더 세분화되어 다양한 작물이 소규모로 재배됐음을 암시한다. 논 인근의 약간 높은 지대에 밭이 형성되는 것이 한강 하류 지역 농업의 전형적인 패턴인데, 신월동 역시 그 패턴을 따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잡종지(雜種地) 1필지 12,277㎡는 이 중 가장 수수께끼 같은 지목이다. 잡종지란 특정 용도로 분류하기 어려운 혼합 용도의 토지를 가리키는 지목이었다. 단 1필지로 12,277㎡에 달한다는 것, 즉 필지당 면적이 전 지목 중 압도적으로 크다는 것은 이 구역이 여러 기능이 혼재하는 복합 시설 부지였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군사 주둔지, 시장 부지, 관청 창고 구역, 혹은 근대 공공시설의 전신이었을 가능성 모두가 열려 있다.
잡종지 12,277㎡는 신월동 전체 국유지의 15.6%에 해당한다. 이 단일 필지가 어디에 위치하고 무슨 용도였는지를 추적하는 것이 이 지역 문화재 지표조사의 핵심 과제 중 하나다. 고지도와 위성 지형 데이터를 교차 분석하는 방식이 효과적이다.
성공 사례 — 잡종지 추적으로 드러난 근대 창고 유구
서울 영등포구 일대 조사에서 1912년 토지조사부의 대형 잡종지 필지를 추적한 결과, 일제강점기 초기 군수품 창고로 사용된 목조 건물 기초가 확인됐다. 잡종지 단일 대형 필지는 복합 목적 시설의 흔적을 품고 있는 경우가 많아, 문화재 지표조사에서 우선 확인 대상으로 분류된다.

05
문화재 지표조사·시굴조사 기초 전략
신월동 국유지 25필지 78,631㎡를 대상으로 한 문화재 지표조사는, 지목의 다양성과 수도용지라는 특수 지목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다른 지역보다 복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지표조사 1단계에서는 네 가지 지목의 공간 분포를 확인하는 작업이 핵심이다. 논 12필지가 연속 블록으로 모여 있는지, 수도용지 5필지가 특정 방향으로 선형 배치되어 있는지(관로 부지 가능성), 잡종지 1필지가 어느 구역에 위치하는지를 1912년 지적도와 현재 도면을 대조해 파악해야 한다.
시굴조사 구역 선정에서는 수도용지와 잡종지 구역에 우선 순위를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수도용지는 근대 산업유산 확인을, 잡종지는 복합 시설 유구 확인을 목적으로 한다. 논과 밭 구역은 조선시대 농업 관련 유물(농기구, 수리(水利) 시설 유구 등) 확인을 목적으로 하되, 지층의 퇴적 양상에 따라 더 이른 시대의 문화층이 아래에 존재할 가능성도 열어두어야 한다.
표본조사는 시굴 결과에 따라 각 지목별로 차별화된 조사 방식을 적용한다. 수도용지에서 근대 구조물 흔적이 나타날 경우 건물 기초 범위 확인에 집중하고, 논 구역에서 도기류나 청자 파편이 출토될 경우 문화층 하강 깊이를 트렌치 연장으로 추적해야 한다.
78,631㎡의 5% 시굴 기준 면적은 약 3,932㎡다. 이를 지목별 면적 비율에 비례 배분하면 논 구역 약 2,003㎡, 밭 구역 약 790㎡, 수도용지 구역 약 523㎡, 잡종지 구역 약 614㎡의 시굴 면적이 산출된다.
논과 같은 수전(水田) 지목 토지의 시굴조사는 지하수 영향으로 굴착 심도에 제약이 따르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배수 장치를 설치하거나 건기(乾期) 시즌에 조사를 집중하는 방식으로 조사 품질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06
신월동 기록이 열어줄 가능성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단의 작업 중 신월동 기록이 주목받는 이유는 분명하다. 네 가지 지목이 혼재하는 복합 구성, 다른 지역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수도용지의 존재, 그리고 12,277㎡에 달하는 단일 대형 잡종지 필지 — 이 세 가지가 겹쳐 신월동을 문화재 발굴 가능성이 높은 지역으로 만든다.
다른 지역과 비교하면 그 특수성이 더욱 두드러진다. 성동구 상왕십리는 688필지로 규모가 크지만 수도용지가 없었다. 성북구 석관동은 대지 단 2필지였다. 송파구 마천동은 임야 1필지뿐이었다. 반면 신월동은 25필지에 걸쳐 네 가지 지목이 고루 분포하면서, 농업과 근대 인프라가 공존했던 전환기 공간의 모습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 기록은 앞으로 신월동에서 개발 공사가 이뤄질 경우 문화재 지표조사 계획 수립의 기초 자료가 된다. 수도용지 구역에서는 근대 산업유산 확인 절차가, 잡종지와 논 구역에서는 조선시대 또는 그 이전 시대 문화층 존재 여부 확인이 조사 계획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1912년 신월동의 어느 관리가 적어 내려간 숫자들이 오늘 이 글이 됐다. 논 12필지, 수도용지 5필지, 밭 7필지, 잡종지 1필지. 그 안에는 벼를 심고 물을 긷고 땅을 가꿨던 사람들의 하루하루가 담겨 있다. 기록은 숫자로 시작하지만, 그 끝은 언제나 사람의 이야기다.
성동구 상왕십리
688필지
213,600㎡ · 4지목
성북구 석관동
2필지
1,676㎡ · 대지
송파구 마천동
1필지
4,231㎡ · 임야
양천구 신월동
25필지
78,631㎡ · 수도용지 포함

논 12필지에 벼가 자라고, 5필지의 땅에는 새로운 물이 흘렀다. 1912년 신월동은 과거와 미래가 동시에 살아 있던 공간이었다. 수백 년 된 농업의 흔적과 막 시작된 근대 인프라가 같은 땅 위에 공존하던 그 순간의 기록이, 지금 우리 앞에 남아 있다. 이 25필지의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준 당신 덕분에, 신월동 사람들의 그 하루가 오늘 다시 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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