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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마포구 공덕동19필지 104,007㎡

  • 7시간 전
  • 8분 분량

문화재 지표조사 · 시굴조사 · 발굴조사 기관 완벽 가이드

한강 포구 마을 · 서울 마포구 공덕동(孔德洞)

1912년 마포구 공덕동19필지 104,007㎡대지 60.8% — 포구 마을의 거대한 삶의 터전대지 60.8% · 밭 36.9% · 임야 2.3% · 필지당 평균 10,532㎡

한강이 서해로 나아가는 마포 포구 언덕, 공덕(孔德).6필지 63,190㎡의 거대 대지가 담은 조선의 생활 터전이104,007㎡의 땅속에 켜켜이 쌓여 있다.

대지 63,190㎡ (60.8%)

38,406㎡ (36.9%)

임야 2,409㎡ (2.3%)

19필지

총 필지 수

104,007㎡

총 면적

10,532㎡

필지당 평균

1912년

지적 등록

SCROLL

대지 60.8% · 필지당 평균 10,532㎡ · 마포 포구 최대 규모

"한강 포구 마을 공덕동, 6필지 63,190㎡가 대지였다.필지당 평균 10,532㎡ — 약 3,186평의 거대한 생활 터전.이 땅은 단순한 마을이 아니었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 지금은 공덕역 오거리와 마포대로가 교차하는 서울 서북권의 핵심 교통 요지다. 하지만 1912년 이 마을의 국유지 기록은 충격적이다. 19필지 104,007㎡ 중 60.8%인 63,190㎡가 대지였다. 그것도 6필지에 불과한데 63,190㎡이니, 필지당 평균 10,532㎡, 약 3,186평에 달한다. 이 규모의 대지가 한강 포구 마을에 국유지로 등록되어 있었다는 것. 공덕(孔德)이라는 이름과 함께, 지금부터 그 비밀을 파헤친다.


목차 — Table of Contents

01 1912년 공덕동 국유지 통계 — 대지 60.8%의 충격적 구성

02 공덕(孔德)이란 무엇인가 — 마포 포구 언덕의 이름

03 공덕동이란 어디인가 — 한강 포구와 조선의 물류 중심지

04 대지·밭·임야 각각의 발굴 가치 — 포구 마을의 세 층위

05 문화재 지표조사란 무엇인가 — 포구 마을 터를 읽는 법

06 표본·시굴·발굴조사 — 단계별 완전 해설

07 문화재 발굴조사 기관 — 어디에 맡겨야 하나

08 당신이 지금 해야 할 것 — 행동을 부르는 마지막 이야기


01핵심 통계

1912년 공덕동 국유지 통계 — 대지 60.8%의 충격적 구성


le.

104,007㎡ — 19필지 · 대지·밭·임야 3종 · 한강 포구 마을

대지 6필지 60.8%밭 12필지 36.9%임야 1필지 2.3%

🏘️

대지 (垈地)

6필지

63,190㎡ · 60.8%


필지당 평균 10,532㎡

🌾

밭 (田)

12필지

38,406㎡ · 36.9%


필지당 평균 3,200㎡

🌲

임야 (林野)

1필지

2,409㎡ · 2.3%


단독 필지

19필지

총 필지

10,532㎡

필지당 평균

60.8%

대지 비율

≈3,186평

대지 필지 평균

60.8%

대지

대지 6필지 × 평균 10,532㎡ = 63,190㎡

12필지 × 평균 3,200㎡ = 38,406㎡

임야 1필지 = 2,409㎡

대지 1필지 = 약 3,186평 (여의도 아파트 단지 규모)

토지 유형별 면적 비율 (총 104,007㎡)

🏘️대지

60.8%63,190㎡

🌾

36.9%38,406㎡

🌲임야

2.3%2,409㎡

타 지역 대지 비율 비교 — 공덕동의 압도적 대지 규모

공덕동


대지 60.8%

60.8%

경운동


대지 100%

100%

후암동


대지 17.1%

17.1%

공덕동


밭 36.9%

36.9%

이 통계에서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대지의 규모다. 6필지 63,190㎡, 필지당 평균 10,532㎡. 이것은 이 시리즈에서 등장한 대지 필지 중 단연 최대 규모다. 경운동이 100% 대지였지만 필지당 1,506㎡, 상봉동이 100% 대지였지만 필지당 471.8㎡였던 것에 비해, 공덕동 대지의 필지당 10,532㎡는 압도적이다. 이 규모의 대지가 개인 소유가 아닌 국유지로 등록되어 있었다는 것은 이 땅이 어떤 국가 기관이나 왕실과 직결된 거대 시설 부지였음을 강하게 암시한다.

12필지 38,406㎡의 밭도 흥미롭다. 필지수로는 12개로 가장 많지만 면적은 대지의 60.8%에 불과하다. 이것은 밭 필지들이 대지 필지들보다 훨씬 작은 규모임을 의미한다. 대형 국유 시설 부지(대지) 주변을 채소밭(밭)이 둘러싸고 있는 배치였을 가능성이 있다. 마포구 공덕동 국유지의 진짜 이야기는 이 거대한 대지가 무엇이었는지를 밝히는 데서 시작된다.


02이름의 역사

공덕(孔德)이란 무엇인가 — 마포 포구 언덕의 이름

공덕(孔德)이라는 지명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가장 유력한 것은 이 일대에 공덕(功德, 선행을 쌓는 덕)을 베풀던 불교 사찰이나 관련 시설이 있었다는 것이다. 또는 공씨(孔氏) 성을 가진 인물이 이 지역과 관련이 있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어떤 기원을 따르든, '공덕(孔德)'이라는 이름이 마포 한강 포구 언덕에 붙여진 것은 이 땅이 예로부터 사람들에게 특별한 공간으로 인식되었음을 보여준다.

마포(麻浦)는 조선시대 한강의 대표적인 포구 중 하나였다. 삼개(三介), 마포라고도 불린 이 포구는 한양과 서해를 연결하는 수운(水運)의 핵심 거점이었다. 전국에서 세곡(稅穀, 세금으로 거둬들인 곡식)이 이 포구를 통해 한양으로 들어왔고, 새우젓·소금·젓갈 등 서해 산물이 마포 포구에서 유통되었다. 이런 활발한 물류 중심지의 언덕에 공덕동이 자리 잡았다.

이 맥락에서 공덕동 국유지 대지 6필지 63,190㎡를 다시 보면 새로운 해석이 가능해진다. 마포 포구의 물류를 관리하던 국가 기관의 건물 부지, 세곡을 보관하던 국가 창고 부지, 혹은 포구 운영을 위한 관청 건물 터. 이런 시설들이 들어설 만한 규모의 국유 대지가 6필지 63,190㎡라는 거대한 규모로 남아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조선시대 마포 포구 물류 창고의 실체가 이 땅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을 수 있다.

마포 포구에는 늘 배가 닿았다. 서해의 소금과 젓갈, 충청도의 쌀, 경기도의 채소. 그 모든 것이 이 언덕을 거쳐 한양으로 들어갔다. 공덕동 대지 63,190㎡는 그 거대한 물류의 심장부가 있던 자리다.


03역사 배경

공덕동이란 어디인가 — 한강 포구와 조선의 물류 중심지



공덕동(孔德洞)은 마포구 동쪽에 위치하며, 한강과 다소 거리를 두고 있지만 마포 포구의 배후 언덕지에 해당한다. 지금은 공덕역을 중심으로 고층 오피스빌딩과 주거 단지가 밀집한 서울 서북권의 핵심 도심이지만, 조선시대에는 마포 포구를 지원하는 다양한 국가 시설과 민간 취락이 공존하는 복합 공간이었다.

조선시대 마포 일대의 국가 시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경창(京倉)이었다. 경창은 전국에서 수납된 세곡(稅穀)을 한양으로 운반해 보관하는 국가 창고다. 마포 포구 인근에는 여러 경창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이 창고들의 관리를 위한 관아 건물과 부속 시설들이 대규모로 조성되었다. 6필지 63,190㎡의 거대 대지가 국유지로 등록된 배경에는 바로 이 경창 관련 시설들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마포 일대는 조선시대 역원(驛院) 체계와도 연결되어 있었다. 한양에서 서쪽으로 나가는 주요 도로가 마포를 통과했으며, 이 도로변에는 여행자를 위한 원(院) 시설과 말을 교체하는 역(驛) 시설이 있었다. 이런 복합적인 국가 인프라의 흔적이 공덕동 국유지 104,007㎡ 안에 겹겹이 쌓여 있을 것이다.

1912년 당시 공덕동은 경기도 경성부 공덕리였다. 일제강점기 초기에도 이 지역은 한강 수운과 연결된 중요한 물류 거점으로 기능하고 있었으며, 그 역사적 연속성 속에서 63,190㎡의 대형 국유 대지가 유지되었을 것이다.


04유형별 분석

대지·밭·임야 각각의 발굴 가치 — 포구 마을의 세 층위



🏘️

대지 — 60.8%

63,190㎡

경창(京倉)·관아 건물 기단 잔존 가능. 마포 포구 물류 시설 유구. 조선시대 대형 창고 기초. 도자기·기와 파편 밀집. 필지당 3,186평의 압도적 규모.

🌾

밭 — 36.9%

38,406㎡

포구 마을 생활 농경지. 채소·잡곡 생산 경작층. 조선~근대 생활 유물 풍부. 역원·창고 관리인 생활 흔적. 12필지 광범위한 분포.

🌲

임야 — 2.3%

2,409㎡

단독 1필지 소형 산림. 마을 공동 사용 야산. 분묘 유구 가능성. 포구 마을 배산 역할. 인위적 교란 없어 보존 상태 양호.

세 유형 중 단연 가장 중요한 것은 대지 6필지 63,190㎡다. 이 시리즈에서 대지가 등장한 지역은 여러 곳이지만, 공덕동처럼 대규모 포구 물류 인프라와 연결된 국유 대지는 처음이다. 경창(京倉), 즉 조선시대 국가 곡물 창고의 기초 구조물이 이 대지 아래에 잠들어 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조선시대 경창의 창고 건물은 기단을 높이 쌓고 대형 석재를 사용하는 특징이 있어, 지하 보존 상태가 상대적으로 양호하다. 이 건물 기단이 발굴된다면, 조선시대 한양 물류 시스템의 핵심 인프라를 처음으로 물리적으로 확인하는 역사적 성과가 될 것이다.

12필지 38,406㎡의 밭은 공덕동 국유지의 생활사를 담고 있다. 대형 국유 시설 주변에는 그 시설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사람들의 생활 공간이 함께 형성된다. 밭에서 출토되는 생활 유물들은 이 사람들이 누구였는지, 어떤 신분이었는지, 어떤 일상을 살았는지를 보여줄 것이다. 또한 마포 포구를 오가는 상인들과 여행자들의 흔적도 이 밭 어딘가에 남아 있을 수 있다.

💡 공덕동 발굴의 핵심 포인트 — 경창(京倉) 건물 기초 탐색

조선시대 경창(京倉)은 한양의 세곡 관리를 위한 핵심 국가 인프라였다. 마포 포구 인근 공덕동에 6필지 63,190㎡의 국유 대지가 존재했다는 것은, 이 일대가 경창 관련 대형 국가 시설 부지였을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한다. 경창 건물의 기단 석재, 창고 배수 시설, 곡물 보관용 대형 항아리의 매장, 관리 관원의 건물 유구 등이 이 대지 아래에서 복합적으로 출토될 수 있다. 이것이 확인된다면 조선시대 한양 물류 시스템의 실체를 처음으로 규명하는 획기적인 발굴이 된다.


05조사 방법론

문화재 지표조사란 무엇인가 — 포구 마을 터를 읽는 법

104,007㎡의 지표조사는 대지·밭·임야 세 유형의 특성을 각각 반영한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대지 63,190㎡는 경창이나 관아 같은 대형 국가 시설 부지로서의 역사적 맥락을 전제하고 접근해야 한다. 일반 주거 대지 발굴과는 다른 규모와 방법론이 요구된다.

104,007㎡는 법적 지표조사 의무 기준인 3만 제곱미터를 약 3.5배 초과하는 면적이다. 국가유산청과의 협의와 문화유산위원회 심의가 필요한 규모다. 마포구 일대는 한강 수계와 연결된 역사 문화 환경 보존 지구 지정 여부를 먼저 확인해야 하며, 특히 마포 포구 관련 국가 지정 문화유산이 인접해 있는지도 사전에 파악해야 한다.

1

마포 경창·관아 관련 문헌 집중 분석

조선시대 마포 경창 위치 기록, 한양 도성 서쪽 포구 관련 관아 문서, 세곡 수납 관련 기록 등을 분석해 공덕동 대지 6필지의 역사적 용도를 파악한다. 이것이 대지 구간 발굴의 핵심 방향을 결정한다.

2

한강 포구 수계 분석 및 하역 시설 위치 추정

마포 포구에서 공덕동 언덕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도로망과 수운 하역 시설의 배치를 고지도와 항공사진으로 분석한다. 경창 입지와 포구 하역 동선의 관계가 핵심 분석 주제다.

3

대지 구간 격자 지표 조사 — 경창 건물 흔적 집중 탐색

6필지 63,190㎡의 대지 구간을 체계적으로 격자 조사하여 기와 파편, 석재 분포, 건물 기단 흔적을 기록한다. 대형 석재 집중 구간이 경창 건물 기단의 위치를 지시하는 핵심 단서다.

4

종합 보고서 — 마포 포구 물류 인프라 재구성

대지·밭·임야 조사 결과를 마포 포구 물류 역사와 연결하여, 조선시대 한강 수운 물류 거점으로서 공덕동의 전체 공간 구성을 재구성하는 종합 보고서를 작성한다.


06발굴 단계

표본·시굴·발굴조사 — 단계별 완전 해설



104,007㎡의 발굴에서 표본조사의 2% 이내는 최대 2,080㎡다. 이것만으로도 경운동 전체 면적(13,557㎡)의 15.3%, 사당동 전체 면적(11,497㎡)의 18.1%에 해당하는 규모다. 공덕동 발굴은 시작부터 이 시리즈의 다른 어떤 지역보다 큰 규모로 진행된다.

표본조사에서 가장 전략적인 선택은 대지 구간의 핵심 지점에 경창 건물 탐색 트렌치를 설치하는 것이다. 문헌 조사에서 파악된 경창 예상 위치에 3~4개의 탐색 트렌치를 설치하고, 대형 기단 석재나 창고 관련 구조물의 잔존 여부를 확인한다. 동시에 밭 구간에서는 지표 유물의 분포 밀도를 격자 방식으로 기록해 발굴 우선 구간을 선별한다.

시굴조사 단계에서 10,400.7㎡로 확장하면 공덕동 국유지의 전체 역사 구조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경창 건물군의 배치가 윤곽을 잡고, 밭 구간의 생활 유구가 연속해서 확인되며, 임야의 봉분 흔적이 파악된다. 이 세 구간이 어떻게 연결되어 하나의 공간 체계를 이루었는지가 조선시대 마포 포구 물류 거점 공덕동의 진짜 모습이다.

정밀발굴조사에서 경창 건물 기단이 온전히 드러나는 순간이 가장 극적인 발견이 될 것이다. 수백 년간 한양의 쌀과 소금을 보관했던 그 창고의 돌기단, 창고 바닥에 깔린 전돌, 대형 창고 항아리의 잔편, 그리고 창고를 관리하던 관원들의 인장(印章)이나 문서 관련 유물이 출토된다면, 그것은 조선 물류 역사의 가장 생생한 물질적 증거가 될 것이다.

마포 포구에 배가 닿고, 짐꾼들이 쌀가마를 지고 언덕을 올랐다. 그 언덕 위 창고에 한양의 1년 치 쌀이 쌓였다. 공덕동 63,190㎡의 대지가 그 창고들의 자리였다면, 그 아래 이 시리즈에서 가장 웅장한 발굴이 기다리고 있다.


07기관 안내

문화재 발굴조사 기관 — 어디에 맡겨야 하나

공덕동처럼 조선시대 국가 물류 인프라(경창·관아)와 연결된 대규모 국유 대지 발굴은 특수한 전문성이 필요하다. 일반 주거 대지 발굴과 달리 경창 건물의 구조적 특성을 이해하고, 조선시대 물류 시설의 유구를 정확히 식별할 수 있는 기관이어야 한다. 104,007㎡라는 대면적 발굴을 수행하기 위한 충분한 인력과 장비도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한다.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www.seoulheritage.org)는 공덕동처럼 한강 포구 물류 거점과 연결된 대규모 국유 대지 기록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필지당 10,532㎡의 대형 대지 6개가 국유지로 등록된 것은 서울 국유지 데이터베이스에서도 매우 드문 사례로, 이 땅의 역사적 성격을 규명하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기관 선정 시 반드시 확인해야 할 사항이 있다. 조선시대 경창·관아 관련 대형 건물 발굴 경험, 한강 포구 물류 유적 조사 실적, 104,007㎡ 규모의 대면적 발굴 수행 능력, 그리고 마포구 역사 문화 환경 보존 지구 대응 역량이 핵심이다.

성공 사례 — 서울 용산 조선시대 군창(軍倉) 발굴

용산 일대에서 진행된 조선시대 국가 창고(軍倉) 발굴에서는 대형 기단 석재, 전돌 바닥, 창고 보관용 대형 옹기류가 복합적으로 출토되었다. 마포 포구 경창과 유사한 기능과 규모의 이 발굴 사례는 공덕동 대지 발굴에서 기대할 수 있는 성과와 조사 방법론의 좋은 선례다.

성공 사례 — 마포구 아현동 조선~근대 생활 유구 발굴

공덕동과 인접한 아현동 발굴에서는 조선~일제강점기에 걸친 생활 유구와 함께 마포 포구와 연결된 물류 관련 유물이 다수 출토되었다. 같은 마포구 권역의 이 사례는 공덕동 밭 구간 발굴에서 기대할 수 있는 유물의 성격을 가늠하는 직접적인 참고가 된다.


08행동 촉구

당신이 지금 해야 할 것 — 행동을 부르는 마지막 이야기



이 글을 끝까지 읽어온 당신은 이제 공덕역 오거리를 다르게 볼 것이다. 2호선·5호선·6호선·경의중앙선이 만나는 그 바쁜 환승역 아래에, 조선시대 마포 포구의 쌀 창고가 있었을지 모른다는 것을. 6필지 63,190㎡의 거대 국유 대지, 필지당 3,186평의 땅 아래에 경창의 돌기단이 잠들어 있을 가능성을.

만약 당신이 마포구 공덕동 인근에서 건설·개발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면, 지금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104,007㎡는 법적 지표조사 의무 기준의 3.5배를 초과하는 면적이다. 착공 전 국가유산청과의 사전 협의는 법적 의무다. 마포구는 한강 수계와의 역사적 연관성으로 인해 역사 문화 환경 보존 지구와 겹칠 가능성이 있으므로, 사전 확인이 필수다.

그리고 이것은 법을 넘어서는 이야기다. 조선의 한양을 먹여 살렸던 마포 포구의 쌀 창고, 그 창고를 관리하던 사람들의 땀, 배에서 내린 쌀가마를 지고 공덕동 언덕을 오르던 짐꾼들의 발걸음. 그 모든 것이 104,007㎡의 땅 아래 기다리고 있다. 그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우리가 이 땅에 진 역사적 책임이다.

공덕역 1번 출구를 나서면, 지하 1미터 아래에 조선이 있다. 돌로 쌓은 창고 기단, 쌀 냄새가 배인 토기, 포구 일꾼들이 흘린 동전 한 닢. 104,007㎡의 공덕동이 그것을 기억하고 있다. 우리가 들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www.seoulheritage.org)는 지금도 공덕동처럼 한강 포구와 조선 물류 역사가 연결된 서울 각 지역의 국유지 기록들을 분석하며 잠든 역사를 찾아가고 있다. 1912년 마포구 공덕동 104,007㎡의 이야기는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 그 이야기는 대지 구간에서 첫 번째 경창 기단 돌이 모습을 드러내는 그 순간, 비로소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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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덕동처럼 한강 포구와 연결된 대형 국유 대지는 조선시대 물류 인프라 유구가 잠들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착공 전 반드시 전문 발굴조사 기관의 사전 검토를 받으세요.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에서 국가유산청 등록 전문기관 정보와 절차를 안내받으세요.

마포 포구에 배가 닿던 그 날,한양의 쌀이 공덕동 언덕 창고에 쌓였다.그 창고는 사라졌지만그 창고가 딛고 선 돌기단은 남았다.그 창고를 관리하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남았다.104,007㎡의 공덕동이조선의 물류를 기억한다.그 기억을 꺼낼 시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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