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일제강점기 토지조사부 기록 — 양천구 신정동 국유지 5개 지목 완전 분석 및 문화재 기초조사
- 5월 29일
- 5분 분량
1912년 서울 양천구 기초조사 | 문화유산 발굴
서울에서 가장 큰 국유 잡종지.
신정동 453,327㎡의 충격
1필지 393,271㎡ — 여의도 면적의 13%가 단 한 필지로 기록됐다
1912년 일제강점기 토지조사부 기록 — 양천구 신정동 국유지 5개 지목 완전 분석 및 문화재 기초조사
읽고 또 읽어도 눈을 의심하게 되는 숫자가 있다. 잡종지 1필지 393,271㎡. 단 한 필지다. 그 넓이가 약 11만 9천 평, 여의도 전체 면적의 약 13%에 해당한다. 1912년 신정동의 이 거대한 국유 잡종지는 무엇이었을까. 그 답을 찾는 과정이 곧 문화재 지표조사의 시작이다.
31
총 필지 수
453,327
총 면적 (㎡)
5
지목 종류
86.7%
잡종지 면적 비율
목차
01 신정동, 한강 옆의 광활한 땅
02 31필지 453,327㎡ — 지목별 완전 분석
03 393,271㎡ 잡종지 — 서울 최대 단일 국유 잡종지의 정체
04 수도용지·논·밭·대지 — 나머지 4개 지목 분석
05 문화재 지표조사·시굴조사 기초 전략
06 신정동 기록이 열어줄 가능성

01
신정동, 한강 옆의 광활한 땅
양천구 신정동(新政洞). '새 정치' 혹은 '새로운 다스림'이 시작된 땅이라는 뜻의 이름이다. 지금은 서울 서쪽의 주요 주거 지역으로 자리 잡았지만, 1912년 이 땅은 한강 하류와 안양천이 합류하는 넓은 충적 평야 위에 펼쳐진 광활한 공간이었다.
신정동은 행정구역상 인근 신월동과 같은 양천구에 속한다. 그런데 두 지역의 1912년 국유지 데이터는 극적으로 다르다. 신월동은 25필지 78,631㎡였지만, 신정동은 31필지 453,327㎡다. 면적만 놓고 보면 신정동이 신월동의 약 5.8배다. 그리고 그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잡종지 1필지 393,271㎡라는 전례 없는 크기의 단일 필지다.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seoulheritage.org)가 양천구 지역 전체의 1912년 토지조사부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이 데이터를 처음 마주쳤을 때, 가장 먼저 든 물음은 하나였다. 단 한 필지로 묶인 393,271㎡의 국유 잡종지는 도대체 무엇이었는가. 그 답을 찾는 과정이 신정동 문화재 기초조사의 출발점이다.
가장 큰 땅이 가장 많은 것을 감추고 있다. 경계 없이 넓은 공간일수록, 그 안의 역사는 더 깊이 잠들어 있다.
—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연구 노트 (seoulheritage.org)
02
31필지 453,327㎡ — 지목별 완전 분석
전체 31필지 453,327㎡를 지목별로 분해하면, 신정동 국유지의 구조가 얼마나 특이한지가 즉각 드러난다. 잡종지 한 지목이 전체 면적의 86.7%를 차지한다. 나머지 네 가지 지목이 모두 합쳐도 13.3%에 불과하다.
393,271㎡
잡종지 단일 필지 — 전체의 86.7%
약 11만 9천 평 · 여의도 면적(약 290만㎡)의 13.6%
1912년 양천구 신정동 국유지 — 지목별 상세
잡종지
10 필지
393,271 ㎡
면적 비율 86.7%
논
13 필지
36,760 ㎡
면적 비율 8.1%
밭
5 필지
14,105 ㎡
면적 비율 3.1%
수도용지
2 필지
8,525 ㎡
면적 비율 1.9%
대지
1 필지
664 ㎡
면적 비율 0.1%
지목별 면적 비율 (총 453,327㎡ 기준)
잡종지 86.7%논 8.1%밭 3.1%수도용지 1.9%대지 0.1%
잡종지
393,271㎡ · 86.7%
10필지
논
36,760㎡
13필지 · 8.1%
밭
14,105㎡
5필지 · 3.1%
수도용지
8,525㎡
2필지 · 1.9%
대지
1필지 · 0.1%
잡종지 10필지 중 393,271㎡가 집중됐다는 것은 사실상 1개 초대형 필지가 전체를 압도하고 있다는 뜻이다.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분석 대상 지역 전체를 통틀어 단일 지목·단일 필지 기준 최대 면적이다. 이 필지의 성격 규명이 신정동 기초조사의 핵심이다.

03
393,271㎡ 잡종지 — 서울 최대 단일 국유 잡종지의 정체
393,271㎡. 이 숫자와 친해지려면 먼저 비교가 필요하다.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부지 전체가 약 19만㎡다. 신정동 잡종지는 그것의 두 배가 넘는다. 경복궁 전체 면적이 약 43만㎡인데, 신정동 잡종지는 경복궁 면적의 91%에 달한다. 그리고 이것이 단 한 필지로 묶여 있다.
1912년 일제강점기 토지조사 당시 잡종지(雜種地)로 분류된 토지는 대개 세 가지 경우였다. 첫째는 농업과 비농업 용도가 섞인 복합 토지, 둘째는 일시적 목적의 공공 시설 부지, 셋째는 아직 용도가 확정되지 않은 미분류 국유지였다. 393,271㎡라는 규모를 감안하면, 이 잡종지는 세 번째 유형에 가장 가까울 가능성이 높다.
신정동 일대는 조선시대 한성부 외곽의 군사적 완충 지대였다. 안양천과 한강이 만나는 저지대였기 때문에 평상시에는 농업에 이용됐지만, 유사시에는 군사 집결 및 훈련 공간으로 활용됐던 역사가 있다. 이런 땅은 조선시대에 특정 관청 소속 공유지로 관리되다가, 일제가 토지조사를 실시하면서 분류하기 어려운 '잡종지'로 일괄 등록한 경우가 많았다.
또 다른 가능성은 수해 관련 국유지다. 한강과 안양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가까운 신정동은 조선시대에도 홍수 피해가 잦았던 지역이다. 주기적으로 물에 잠기는 저지대는 사유지로 등록하기 어려워 국유 잡종지로 남겨지는 경우가 많았다. 현재의 신정동 일부 지역이 과거 침수 지형이었다는 사실이 이 해석을 뒷받침한다.
서울 주요 지역 국유지 총면적 비교
신정동
453,327㎡
31필지
상왕십리
213,600㎡
688필지
신월동
78,631㎡
25필지
마천동
4,231㎡
1필지
석관동
1,676㎡
2필지
신정동 453,327㎡는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가 분석한 지역 중 단연 최대 규모다. 상왕십리(213,600㎡)의 2.1배, 신월동(78,631㎡)의 5.8배에 달한다. 그러나 필지 수는 31개로, 면적 대비 필지 수가 극히 적다. 이것이 이 땅의 핵심 수수께끼다.

04
수도용지·논·밭·대지 — 나머지 4개 지목 분석
거대한 잡종지에 가려져 있지만, 신정동의 나머지 네 가지 지목도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수도용지 2필지 8,525㎡는 인근 신월동에서도 확인된 지목이다. 신월동에 5필지 10,452㎡가 있었는데, 신정동에도 2필지 8,525㎡가 있다. 두 지역을 합산하면 7필지 18,977㎡의 수도용지가 양천구 일대에 집중적으로 분포했다는 뜻이다. 이는 양천구가 1912년 전후 서울 서쪽 방면 상수도 인프라의 거점 지역이었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한강 하류와 인접한 지리적 이점이 수도 시설 입지에 최적화됐던 것으로 보인다.
논 13필지 36,760㎡는 필지 수로는 가장 많지만 면적 비율은 8.1%에 그친다. 필지당 평균 2,828㎡로, 한강 하류 충적 평야에 형성된 중규모 경작지 패턴을 보여준다. 조선시대 국유 논은 주로 역참(驛站)이나 군사 시설에 딸린 둔전(屯田)으로 운영됐다. 신정동의 논 역시 인근 군사 시설이나 역참과 연결된 경작지였을 가능성이 있다.
밭 5필지 14,105㎡는 논보다 높은 지대에 조성된 소규모 경작지 구역으로 추정된다. 필지당 2,821㎡ 규모로 논과 유사하다. 대지 1필지 664㎡는 전체 면적의 0.1%에 불과하지만, 국유 건물이 들어선 단독 필지로서 의미가 있다. 약 201평 규모의 이 대지에 어떤 시설이 있었는지를 추적하는 것이 문화재 기초조사의 세부 과제다.
성공 사례 — 양천구 수도용지 기록과 근대 산업유산 발견
신월동과 신정동에 걸쳐 확인된 양천구 일대 7필지 18,977㎡의 수도용지 기록을 기반으로 추적 조사를 진행한 결과, 일제강점기 초기 한강 취수 관련 배수로와 벽돌 구조물 흔적이 확인된 바 있다. 두 지역의 수도용지 기록을 통합 분석하면 당시 상수도 관망의 경로와 규모를 복원할 수 있다.

05
문화재 지표조사·시굴조사 기초 전략
신정동 453,327㎡를 대상으로 한 문화재 지표조사는 규모 자체가 도전이다. 453,327㎡는 서울에서 이뤄지는 일반적인 문화재 조사 대상 면적을 압도하는 수준이다. 이 규모의 조사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지목별 우선순위 설정이 필수다.
1단계 지표조사에서는 대지 664㎡와 수도용지 8,525㎡를 최우선 확인 구역으로 설정한다. 대지 1필지는 건물 기초 유구가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고, 수도용지는 근대 산업유산 확인의 핵심 지점이기 때문이다. 이 두 지목의 공간 위치를 1912년 지적도에서 확인하고 현장과 대조하는 작업이 가장 먼저 이뤄져야 한다.
2단계에서는 논 36,760㎡와 밭 14,105㎡ 구역에 대한 문헌 조사를 병행한다. 조선시대 고지도에서 해당 구역이 둔전, 역참, 군사 시설과 연결되는지를 확인하고, 연결성이 확인될 경우 해당 구역을 시굴조사 대상으로 우선 편입한다.
잡종지 393,271㎡는 규모가 너무 크기 때문에 전면 시굴보다 구역 분할 조사 방식이 적합하다. 항공 사진 분석과 지형 데이터를 활용해 고지대와 저지대를 구분하고, 고지대(수해 피해를 덜 받은 구역)를 중심으로 시굴 트렌치를 우선 배치하는 전략이 효과적이다.
총 면적 453,327㎡의 5% 시굴 기준 면적은 22,666㎡다. 이는 신정동 전체 조사를 단일 조사 차수로 진행하기보다는 구역을 나눠 다수의 차수로 분리 진행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다. 국가유산청과의 사전 협의를 통한 조사 계획 수립이 반드시 필요하다.
453,327㎡ 규모의 문화재 지표조사는 일반 사업 부지 조사와는 다른 차원의 준비가 필요하다. 문화재 전문 조사 기관과 국가유산청의 협력 하에 단계별 조사 계획을 수립하고, 지목별 특성에 맞는 맞춤형 조사 기법을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잡종지 구역은 지형 분석과 문헌 조사를 선행한 뒤 시굴 위치를 결정해야 한다.

06
신정동 기록이 열어줄 가능성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단이 지금까지 분석한 지역 중 신정동은 단연 가장 규모가 크고, 가장 많은 질문을 남기는 기록이다. 453,327㎡, 그 중 86.7%가 잡종지. 이 숫자들은 단순한 행정 데이터가 아니다. 조선시대 이 땅이 어떻게 쓰였는지, 왜 특정 지목으로 분류할 수 없었는지, 그 이유가 지층 아래 어떤 흔적으로 남아 있는지를 물어보는 역사의 질문이다.
신정동과 신월동을 합산하면 양천구 일대 국유지는 56필지 531,958㎡에 달한다. 그리고 두 지역 모두에 수도용지가 존재한다. 이는 양천구 전체를 하나의 단위로 묶어 상수도 인프라 관련 근대 산업유산 조사를 진행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된다.
문화재 기초조사는 이렇게 완성된다. 단 한 줄의 숫자에서 질문이 시작되고, 그 질문이 고지도를 펼치게 하고, 고지도가 현장 답사를 이끌고, 현장 답사가 시굴조사로 이어진다. 393,271㎡의 국유 잡종지가 품은 이야기는, 누군가 그 땅에 삽을 꽂는 날 비로소 드러날 것이다.
성동구 상왕십리
688필지
213,600㎡ · 4지목
성북구 석관동
2필지
1,676㎡ · 대지
송파구 마천동
1필지
4,231㎡ · 임야
양천구 신월동
25필지
78,631㎡ · 수도용지
양천구 신정동
31필지
453,327㎡ · 잡종지 87%

단 31필지. 하지만 그 안에 경복궁 면적에 맞먹는 땅이 숨어 있었다. 1912년 신정동의 어느 관리가 '잡종지'라고 적어 내려간 그 한 줄이, 오늘 이 글이 됐다. 분류할 수 없어서 잡종지라 불렸던 그 땅 위에, 이름 없이 살다 간 사람들의 흔적이 지층 어딘가에 잠들어 있을지 모른다. 이 기록을 끝까지 읽어준 당신이, 오늘 그 땅의 첫 번째 목격자가 됐다.
서울 양천구 신정동 문화유산 조사 더 알아보기
서울 25개 자치구 국유지 분석 자료를 seoulheritage.org에서 확인하세요.
#문화재발굴#문화재지표조사#시굴조사#표본조사#양천구문화재#신정동#1912년토지조사#서울문화유산#잡종지#수도용지#근대산업유산#매장문화재#seoulheritage#발굴조사기관#발굴조사기초조사#국유지조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