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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광진구 군자동130필지 1,189,235㎡

  • 5월 29일
  • 8분 분량

문화재 지표조사 · 시굴조사 · 발굴조사 기관 완벽 가이드

뚝섬·한강변 광활한 들판 · 서울 광진구 군자동(君子洞)

1912년 광진구 군자동130필지 1,189,235㎡잡종지 78.7% — 이 시리즈 절대적 최대잡종지 78.7% · 밭 12.3% · 논 8.7% · 임야 0.4% · 대지 0.01%

서울 역사상 가장 광활한 국유지 한 곳.4필지 잡종지 935,733㎡ — 단 4개 필지에 이 모든 면적이도대체 무엇이었는가. 지금 이 시리즈 최대 미스터리를 밝힌다.

잡종지 935,733㎡(78.7%)

145,934㎡(12.3%)

102,912㎡(8.7%)

임야 4,505㎡(0.4%)

대지 148㎡(0.01%)

130필지

총 필지 수

1,189,235㎡

총 면적

5종

토지 유형 수

1912년

지적 등록

SCROLL

1,189,235㎡ · 이 시리즈 절대 최대 · 잡종지 78.7% · 4필지에 93만㎡

"130필지, 1,189,235㎡.여의도의 40.9%, 서울 한 구(區)의 핵심 면적이단 한 동(洞)의 국유지였다.그리고 그 78.7%가 4필지 잡종지였다."

서울 광진구 군자동. 지금은 5호선 군자역을 중심으로 능동로와 뚝섬로가 교차하는 동서울의 주거 중심지다. 하지만 1912년 이 동네의 국유지 기록은 이 시리즈 전체의 역대 기록을 모조리 갱신한다. 130필지 1,189,235㎡. 광진구 자양동(484,088㎡)의 2.46배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 중 4필지 935,733㎡가 잡종지라는 사실이다. 필지당 평균 233,933㎡. 단 하나의 잡종지 필지가 자양동 전체 국유지보다 크다. 이것이 도대체 무엇이었는지, 지금 시작한다.


목차 — Table of Contents

011912년 군자동 국유지 통계 — 이 시리즈 모든 기록 갱신

02잡종지 935,733㎡ — 4필지의 충격적 정체

03군자동이란 어디인가 — 뚝섬과 한강변 군자의 역사

045가지 토지 유형별 발굴 가치 — 광활한 역사의 층위

05문화재 지표조사란 무엇인가 — 광대한 복합 토지를 읽는 법

06표본·시굴·발굴조사 — 100만㎡ 규모 발굴의 해설

07문화재 발굴조사 기관 — 어디에 맡겨야 하나

08당신이 지금 해야 할 것 — 행동을 부르는 마지막 이야기


01핵심 통계

1912년 군자동 국유지 통계 — 이 시리즈 모든 기록 갱신


이 시리즈 국유지 면적 비교 — 군자동의 압도적 규모

군자동


1,189,235㎡

100%

자양동


484,088㎡

40.7%

삼성동


279,978㎡

23.5%

구로동


565,890㎡

47.6%

1,189,235㎡ — 130필지 · 5종 토지 · 여의도의 40.9% · 이 시리즈 절대 최대

잡종지 4필지 78.7%밭 81필지 12.3%논 43필지 8.7%임야 1필지 0.4%대지 1필지 0.01%

🏭

잡종지

4필지

935,733㎡ · 78.7%


필지당 평균 233,933㎡

🌱

81필지

145,934㎡ · 12.3%


필지당 평균 1,802㎡

🌾

43필지

102,912㎡ · 8.7%


필지당 평균 2,393㎡

🌲

임야

1필지

4,505㎡ · 0.4%

🏡

대지

1필지

148㎡ · 0.01%

130필지

총 필지 수

5종

토지 유형

여의도 40.9%

상대 면적

1912년

지적 등록

토지 유형별 면적 비율 (총 1,189,235㎡)

🏭잡종지

78.7%935,733㎡

🌱

12.3%145,934㎡

🌾

8.7%102,912㎡

🌲임야

0.4%4,505㎡

🏡대지

0.01%148㎡

숫자들을 보면 여러 개의 '이 시리즈 최초'가 동시에 터진다. 1,189,235㎡는 이 시리즈 최대 면적이다. 이전 최대였던 자양동(484,088㎡)의 약 2.5배다. 130필지는 이 시리즈 최다 필지 수다. 5종 토지 유형은 구로동(6종)에 이어 두 번째로 다양하다. 그리고 잡종지 4필지 935,733㎡, 필지당 평균 233,933㎡는 이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가장 경이로운 수치다. 단 4개 필지가 전체 1,189,235㎡의 78.7%를 차지한다. 이 숫자들이 말하는 것은 하나다. 군자동 국유지는 이 시리즈의 모든 상상을 뛰어넘는 특별한 역사를 품고 있다.

대지 1필지 148㎡도 눈에 띈다. 전체의 0.01%에 불과한 이 극소형 대지가 1,189,235㎡의 광활한 국유지 한 귀퉁이에 고요히 자리 잡고 있다. 이것이 무엇이었는지도 중요한 발굴 단서가 될 것이다.


02핵심 미스터리

잡종지 935,733㎡ — 4필지의 충격적 정체

78.7%

잡종지

잡종지 4필지 935,733㎡ — 필지당 평균 233,933㎡(약 70,765평)

단 1필지가 자양동 전체 국유지(484,088㎡)보다 절반 이상 크다

가장 유력한 정체: 한강 하천부지·뚝섬 모래사장·군용지 또는 국가 관리 초지(草地)

구로동 잡종지 408,768㎡보다 2.29배 더 큰 규모

군자동 잡종지 935,733㎡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 이 조사의 핵심 과제다. 4필지에 평균 233,933㎡라는 규모는 일반적인 국유 잡종지의 범주를 훨씬 벗어난다. 이 규모의 잡종지가 형성될 수 있는 역사적 맥락을 분석하면 몇 가지 강력한 후보가 떠오른다.

첫 번째 가능성은 한강 하천부지(河川敷地)다. 군자동은 한강과 가까운 뚝섬 일대에 위치하며, 한강의 범람과 퇴적이 반복되는 충적 저지대였다. 조선시대 한강의 흐름이 지금과 달라 군자동 일대의 상당 부분이 계절에 따라 강물에 잠기는 하천부지였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땅은 논·밭·임야·대지 중 어느 것으로도 분류하기 어렵기 때문에 잡종지로 등록되었을 것이다. 두 번째 가능성은 뚝섬(纛島) 관련 국가 시설 부지다. 조선시대 뚝섬은 왕실의 목마장(牧馬場)이었다. 왕실 말을 기르던 넓은 초지(草地)와 목마장 관련 시설들이 잡종지로 분류되었을 수 있다. 세 번째는 군용지다. 군자(君子)라는 지명 자체가 군사적 맥락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있으며, 한강변의 이 넓은 땅이 군사 훈련이나 군사 시설 부지로 사용되었을 수 있다.

어떤 해석이 맞든 간에, 935,733㎡의 잡종지 아래에는 한강 충적층이 만들어낸 특수한 고고학적 환경이 형성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시리즈에서 가장 광활한 발굴 대상이 기다리고 있다.

💡 뚝섬 목마장(牧馬場) — 군자동 잡종지의 가장 유력한 정체

조선시대 뚝섬(纛島)은 태종 이후 왕실 목마장으로 지정된 국가 관리 초지였다. 넓은 평지와 한강 수자원이 풍부한 이 지역은 왕실 말(御馬)을 기르기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했다. 목마장의 초지, 마방(馬房) 시설, 왕실 말 관리 관원의 건물 등이 잡종지로 분류될 수 있으며, 935,733㎡라는 압도적인 면적은 뚝섬 목마장의 규모와 일치할 수 있다. 이것이 확인된다면 조선 왕실 목마장 문화의 실체를 처음으로 물리적으로 규명하는 역사적 발굴이 될 것이다.


03역사 배경

군자동이란 어디인가 — 뚝섬과 한강변 군자의 역사



군자동(君子洞)은 광진구의 서쪽에 위치하며, 한강 북쪽 제방 가까이에 자리한다. '군자(君子)'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이 지역에 군자창(君子倉)이라는 국가 창고가 있었던 데서 비롯됐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군자창은 전국에서 수납된 세곡(稅穀)을 보관하던 국가 창고 중 하나로, 한강 수운을 통해 물자를 받고 보내는 한강변 물류 거점의 역할을 했다.

군자동 일대는 한강 충적지로, 원래 뚝섬(纛島)과 연결된 한강 삼각주의 일부였다. 뚝섬은 조선시대 왕실 목마장으로 유명한 지역이며, 조선 초기부터 말을 기르는 국가 목마장이 이 일대에 광범위하게 설치되어 있었다. 135,000두에 달하는 왕실 말이 한때 이 일대에서 사육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또한 군자동은 한강의 범람원(汎濫原)에 위치해 있어, 계절에 따라 상당 부분이 물에 잠기는 저지대였다. 이런 지형적 특성은 935,733㎡ 잡종지의 성격을 이해하는 핵심 단서다. 정기적으로 범람하는 하천변 저지대는 논·밭·임야 어느 것으로도 안정적으로 이용하기 어려워 잡종지로 분류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 퇴적층 속에는 수백 년의 홍수 역사가 층층이 쌓여 있고, 그 사이사이에 당시 사람들과 왕실 말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을 것이다.

군자창에 쌀이 쌓이고, 뚝섬 목마장에 왕실 말이 달렸다. 한강이 범람하면 이 넓은 땅이 물 아래로 사라지고, 물이 빠지면 모래와 새 흙이 쌓였다. 1,189,235㎡의 군자동은 그 모든 역사가 층층이 눌린 서울 최대의 역사 타임캡슐이다.


04유형별 분석

5가지 토지 유형별 발굴 가치 — 광활한 역사의 층위



🏭

잡종지

935,733㎡

뚝섬 목마장 유구. 군자창 물류 시설. 한강 범람원 충적층 유기물 보존. 왕실 마방 건물 기초. 이 시리즈 최대 발굴 잠재력.

🌱

145,934㎡

81필지 광범위 분포. 도자기·기와 파편 밀집. 목마장 주변 농경 문화. 조선~삼국 다층 구조. 한강변 생활사 자료.

🌾

102,912㎡

한강 충적 수전. 논 퇴적층 유기물 보존 탁월. 볍씨·목재 농기구 기대. 조선 한강변 수전 농업 기술 복원.

🌲

임야

4,505㎡

단독 필지. 분묘 유구 가능성. 목마장 관련 인물 묘역. 인위적 교란 없어 보존 양호.

🏡

대지

148㎡

1,189,235㎡ 중 유일한 건물 터. 극소형이나 발굴 밀도 최고. 군자창·목마장 관리인 거처 가능성.

5가지 유형 중 가장 극적인 발굴 가능성을 가진 것은 단연 잡종지 935,733㎡다. 이 광대한 땅이 뚝섬 목마장과 연결된 왕실 초지였다면, 발굴에서 나올 수 있는 것들은 상상을 초월한다. 수백 년간 왕실 말들이 달렸던 이 초지의 지층에는 말 관련 유물들이 특수한 형태로 보존되어 있을 수 있다. 말발굽 자국이 굳은 지층, 마방 건물의 기초 석재, 말을 먹이던 여물통 유구, 왕실 말 관리 관원들이 사용하던 마구(馬具) 등이 층위별로 드러날 수 있다.

한편 논 43필지 102,912㎡와 밭 81필지 145,934㎡는 광진구 자양동처럼 한강 충적 평야의 농경 문화를 담고 있다. 그런데 군자동의 논밭은 자양동과 다른 특별한 맥락이 있다. 왕실 목마장 주변에서 경작되던 논밭이었다면, 그 생산물이 목마장의 식료 공급과 연결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맥락이 발굴 유물의 해석에 새로운 차원을 더한다.

대지 1필지 148㎡는 전체 면적의 0.01%에 불과하지만, 1,189,235㎡의 광대한 국유지에서 단 하나의 건물 터다. 이 148㎡가 군자창 관리인의 사무 공간이었든, 목마장 감독관의 거처였든 간에, 이 작은 대지는 가장 집약적인 생활 유구를 품고 있을 것이다.


05조사 방법론

문화재 지표조사란 무엇인가 — 광대한 복합 토지를 읽는 법

1,189,235㎡의 지표조사는 이 시리즈에서 다룬 어떤 사례도 비교 대상이 되지 않는 압도적 규모다. 법적 지표조사 의무 기준인 3만 제곱미터의 약 40배다. 이 면적의 지표조사는 단일 조사팀이 아닌 다수의 전문팀이 구역을 나누어 병렬로 진행하는 방식이 불가피하다. 그리고 5가지 토지 유형이 혼재한 복합 국유지이므로 유형별 맞춤 조사 방법론이 각 구역에 적용되어야 한다.

특히 잡종지 935,733㎡는 그 역사적 정체를 먼저 파악하는 문헌 조사가 지표 현장 조사보다 선행되어야 한다. 935,733㎡의 잡종지가 뚝섬 목마장 초지인지, 군자창 관련 하천부지인지, 군용 훈련 초지인지에 따라 지표 조사의 탐색 방향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 모르면 아무것도 찾을 수 없다.

1

뚝섬 목마장·군자창 관련 문헌 집중 분석

조선시대 뚝섬 목마장 설치 기록, 군자창(君子倉) 위치 및 운영 기록, 한강 범람 역사, 왕실 마정(馬政) 관련 문서 등을 분석해 935,733㎡ 잡종지의 역사적 정체를 먼저 밝힌다.

2

항공사진·고지도로 뚝섬 원지형 복원

조선시대 한강 지형도, 1910~40년대 항공사진, 일제강점기 지형도를 중첩 분석하여 군자동 일대의 원래 한강 지형과 뚝섬 경계, 목마장 구역을 복원한다.

3

5종 유형별 구역 분할 지표 조사

1,189,235㎡를 잡종지·밭·논·임야·대지 5구역으로 나누어 각 유형에 맞는 탐색 방법을 병렬 적용한다. 잡종지 구역은 목마장 관련 마구·기와·석재를, 논 구역은 수전 층위를, 대지 148㎡는 집중 정밀 조사를 실시한다.

4

종합 보고서 — 군자동 왕실 국유지 전체 구조 재구성

5종 유형 조사 결과를 뚝섬 목마장·군자창 역사와 연결하여, 조선시대 한강변 왕실 국유지 복합체로서 군자동의 전체 공간 구성을 재구성하는 종합 보고서를 작성한다.


06발굴 단계

표본·시굴·발굴조사 — 100만㎡ 규모 발굴의 해설



1,189,235㎡ 발굴에서 표본조사 2%는 최대 23,784.7㎡다. 이것만으로도 이 시리즈에서 다룬 상당수 지역의 전체 면적을 초과한다. 공덕동 전체(104,007㎡)의 22.9%, 사당동 전체(11,497㎡)의 207%에 해당한다. 군자동 발굴은 시작부터 이 시리즈의 다른 모든 지역을 압도한다.

표본조사에서 잡종지 935,733㎡는 4필지를 대표하는 구간을 각각 선정해 탐색 트렌치를 설치한다. 목마장 마방(馬房) 예상 위치에는 특별히 넓은 트렌치를 설치하고 말 관련 유구(철제 마구, 마방 기단석, 말 먹이통 등)의 존재 여부를 집중 확인한다. 한강 범람원 구간에서는 충적 퇴적층의 두께와 시대별 층위 구성을 파악하기 위한 코어 샘플링을 먼저 실시한다.

시굴조사 단계에서 118,923.5㎡로 확장하면 군자동 국유지의 전체 역사 구조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뚝섬 목마장의 마방군 배치, 군자창 창고 건물 군, 한강 충적층의 연대별 퇴적 패턴, 논밭의 경작 층위. 이 모든 것이 연결되면 조선시대 한강변 왕실 국유지 복합체의 실체가 처음으로 가시화된다.

정밀발굴조사가 핵심 구간에서 진행된다면, 그 발굴은 한국 고고학 역사에 남는 성과가 될 것이다. 뚝섬 목마장의 마방 건물 기단, 왕실 말 관련 마구, 군자창의 창고 기단과 세곡 보관 항아리. 그리고 한강이 범람할 때마다 쌓인 충적층 속에 보존된 수백 년의 유기물 유물들. 1,189,235㎡가 한꺼번에 입을 여는 그 순간은 이 시리즈 최대의 발굴 드라마가 될 것이다.

1,189,235㎡는 발굴팀이 평생을 파도 끝이 보이지 않을 규모다. 하지만 첫 번째 마방 기단 돌이 드러나는 순간, 조선 왕실의 가장 광활한 비밀이 시작된다. 군자동은 이 시리즈 최대의 미스터리이자 최대의 가능성이다.


07기관 안내

문화재 발굴조사 기관 — 어디에 맡겨야 하나

1,189,235㎡ 규모의 복합 국유지 발굴은 한국 고고학 역사에서도 전례를 찾기 어려운 대형 프로젝트다. 단일 기관으로는 대응이 불가능하며, 뚝섬 목마장·군자창 전문 역사학자, 한강 충적지 고고학자, 습지 고고학 전문팀, 대규모 현장 관리팀이 모두 참여하는 컨소시엄 방식이 필수다. 국가유산청의 직접적 관여와 문화유산위원회의 심의 없이는 착수 자체가 불가능한 규모다.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www.seoulheritage.org)는 군자동처럼 이 시리즈 전체 기록을 갱신하는 압도적 규모의 국유지 기록을 분석하고 있다. 4필지 935,733㎡의 잡종지가 뚝섬 목마장과 연결되는지, 군자창 관련 하천부지인지, 또는 다른 국가 시설과 연관되는지를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기관 선정 시 반드시 확인해야 할 사항이 있다. 100만㎡ 이상 대면적 발굴 경험, 뚝섬·한강변 왕실 시설 발굴 실적, 습지·충적지 고고학 전문성, 목마장·마정(馬政) 관련 유물 판독 능력, 그리고 국가유산청 및 문화유산위원회 심의 대응 역량이다.

성공 사례 — 뚝섬 한강변 조선시대 유구 발굴

군자동과 인접한 뚝섬 일대에서 진행된 발굴에서는 조선시대 한강변 생활 유구와 함께 말 관련 유물이 출토된 사례가 있다. 철제 마구(馬具) 파편과 함께 확인된 넓은 평탄지 유구는 뚝섬 목마장의 존재를 암시하는 중요한 발굴 선례로, 군자동 잡종지 발굴 방향 설정에 핵심 참고가 된다.

성공 사례 — 광진구 자양동 한강변 복합지 발굴

군자동과 같은 광진구에 위치한 자양동 한강변 발굴에서는 고구려~조선 시대에 걸친 다층 문화층이 확인되었다. 한강 충적층이 만들어낸 층층이 쌓인 시대별 경작층과 생활 유구의 이 발굴 패턴은 군자동 논·밭 구간 발굴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날 것이다.


08행동 촉구

당신이 지금 해야 할 것 — 행동을 부르는 마지막 이야기



이 글을 끝까지 읽어온 당신은 이제 군자역 5번 출구를 나설 때 다른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5호선 군자역 주변 1,189,235㎡. 여의도의 40.9%에 달하는 이 광활한 땅 아래에 조선 왕실의 말 목장이 있었을지 모른다는 것을. 4필지 935,733㎡의 잡종지, 단 4개의 필지가 90만 제곱미터를 채우고 있는 그 수수께끼의 땅이 무엇이었는지를.

만약 당신이 광진구 군자동 일대에서 건설·개발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면, 이것은 법적 의무를 훨씬 넘어서는 문제다. 1,189,235㎡는 법적 지표조사 의무 기준의 약 40배다. 뚝섬·한강변 일대는 광진구 역사 문화 환경 보존 지구 및 한강변 생태 공원 구역과 중복될 가능성이 높아, 착공 전 국가유산청·서울시와의 사전 협의는 필수이자 절대 조건이다. 이 과정을 건너뛰고 착공하면, 공사 도중 말발굽 자국이 굳은 지층이 나오는 순간 모든 공사가 멈출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법과 예방을 넘어서는 이야기다. 조선의 왕실이 이 광활한 땅에서 말을 길렀고, 군자창에서 세곡을 보관했으며, 한강이 범람할 때마다 새 흙이 쌓이며 역사가 덮였다. 그 1,189,235㎡의 역사를 꺼내 이 시대와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군자동이라는 이름에 진 가장 오랜 빚이다.



조선 왕의 말이 달리던 그 넓은 초지. 한강이 해마다 새 흙을 덮어주던 그 들판. 1,189,235㎡가 이 시리즈 마지막까지 가장 큰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아직 아무도 제대로 들어주지 않았다고.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www.seoulheritage.org)는 지금도 군자동처럼 서울 역사의 가장 광활하고 가장 복잡한 비밀을 품은 국유지 기록들을 분석하며 잠든 역사를 찾아가고 있다. 1912년 광진구 군자동 130필지 1,189,235㎡의 이야기는 아직 단 한 페이지도 쓰이지 않았다. 그 이야기의 첫 번째 문장은, 뚝섬 잡종지에서 첫 번째 마굽 자국이 드러나는 그 순간 쓰이기 시작할 것이다.

문화재 지표조사·발굴조사가필요하신가요?

군자동처럼 100만㎡를 초과하는 대규모 국유지는 국가유산청 및 문화유산위원회의 사전 협의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착공 전 반드시 전문 발굴조사 기관의 검토를 받으세요.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에서 국가유산청 등록 전문기관 정보와 절차를 안내받으세요.

🐎

조선의 말이 달리던 뚝섬 초지,한강이 해마다 새 흙을 덮어준 들판,군자창에 쌓인 세곡의 냄새,이 모든 것이 1,189,235㎡에 쌓여 있다.서울 역사의 가장 광활한 타임캡슐,군자동이 오늘도 기다린다.130필지가 한목소리로 말한다.우리 이야기를 들어달라고.이제 들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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