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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역조사


1912년 노원구 3,805필지 10,771,036㎡논 61.7% 시리즈 최고 면적, 창덕궁 1필지, 내시 묘 100기가 잠든 초안산
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 · 1912 토지조사부 시리즈 서울특별시 노원구 전역 · 문화재 기초조사 데이터 1912년 노원구 3,805필지 10,771,036㎡논 61.7% 시리즈 최고 면적, 창덕궁 1필지, 내시 묘 100기가 잠든 초안산 마들평야에서 농요가 울리고, 태릉에서 왕비가 잠들고, 초안산에서 내시들이 겨울을 보내던 땅. 1912년 노원구 전체 면적의 61.7%가 논이었다. 이 숫자는 이 시리즈 전체 최고 기록이다. 3,805총 필지 61.7%논 면적 비율(최고) 1창덕궁 소유 필지 1,000+초안산 분묘 기수 8성씨 종류 1912년 노원구는 논이 전체 면적의 61.7%였다. 이 시리즈 전체에서 가장 높은 논 면적 비율이다. 강북구(52.1%)가 이 시리즈 최고 논 비율이라고 했지만, 노원구는 그보다 더 높다. 3,805필지 10,771,036㎡ 중 1,623필지 6,640,905㎡가 논이다. 면적 기준으로 61.7%다. 지금 상계동, 중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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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강남구 6,483필지 18,130,432㎡테헤란로 아래 밭 3,384필지, 이씨 1,969필지, 석씨 175필지의 강남 이야기
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 · 1912 토지조사부 시리즈 서울특별시 강남구 전역 · 문화재 기초조사 데이터 1912년 강남구 6,483필지 18,130,432㎡테헤란로 아래 밭 3,384필지, 이씨 1,969필지, 석씨 175필지의 강남 이야기 지금 강남의 고층빌딩과 아파트 아래, 112년 전엔 이씨 가문의 밭이 펼쳐져 있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선정릉 주변엔 석씨 집성촌이 있었고, 봉은사를 품은 국유지 686필지가 이 모든 땅을 감싸고 있었다. 6,483총 필지 3,384밭(시리즈 최다) 1,969이씨(시리즈 최다) 686국유지 필지 11성씨 종류 지금 강남의 가장 비싼 땅이 1912년엔 이씨 집안의 밭이었다. 6,483필지 18,130,432㎡. 이 시리즈에서 송파구(20,480,029㎡) 다음으로 넓은 면적이다. 그 넓은 강남 땅의 48.0%가 밭이었고, 그 밭의 상당수가 이씨 가문의 소유였다. 이씨 1,969필지. 이것도 이 시리즈 단일 성씨 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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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강북구 2,335필지 5,163,573㎡논 52.1% 시리즈 최고, 일본인 137필지, 미아리가 공동묘지로 지정된 해
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 · 1912 토지조사부 시리즈 서울특별시 강북구 전역 · 문화재 기초조사 데이터 1912년 강북구 2,335필지 5,163,573㎡논 52.1% 시리즈 최고, 일본인 137필지, 미아리가 공동묘지로 지정된 해 전체 면적의 절반이 논이었던 이 땅에 1912년 일본인이 137필지를 장악했다. 같은 해 일제는 미아리 오패산 일대를 공동묘지로 지정했다. 북한산 의병들의 숨소리가 아직 가시지 않은 그 해의 기록이다. 2,335총 필지 852논(52.1% 최고) 137일본인 소유 9창덕궁 소유 4사사지(사찰 부지) 1912년, 강북구 논의 면적이 전체 면적의 절반을 넘었다. 그리고 그 해 일제는 이 논 옆 오패산 일대를 공동묘지로 지정했다. 2,335필지 중 852필지가 논이다. 전체 필지의 36.5%, 면적 기준으로는 2,688,124㎡로 전체의 52.1%를 차지한다. 시리즈 전체에서 논 면적 비율 최고다. 마포(논 26.2%), 송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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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광진구 3,195필지 9,901,674㎡국유지 35.3%, 창덕궁 30필지, 고구려 보루의 땅
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 · 1912 토지조사부 시리즈 서울특별시 광진구 전역 · 문화재 기초조사 데이터 1912년 광진구 3,195필지 9,901,674㎡국유지 35.3%, 창덕궁 30필지, 고구려 보루의 땅 아차산에 고구려 군사들이 진을 치고, 한강변에서 조선 왕실이 말을 키우던 땅. 1912년 이 땅의 35.3%가 국유지였고, 창덕궁이 30필지를 직접 소유하고 있었다. 순명황후의 무덤이 있던 능동(陵洞)도 이 땅 위에 있었다. 3,195총 필지 1,129국유지(35.3%) 30창덕궁 소유 필지 2,390,506잡종지 면적(㎡) 18고구려 보루 수 광진구 잡종지 22필지의 면적이 2,390,506㎡라는 숫자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는가. 잡종지 22필지. 필지 수는 적다. 그런데 면적이 무려 2,390,506㎡다. 밭 1,743필지의 면적(3,756,740㎡)의 63.6%에 해당하는 넓이가 고작 22필지에 압축되어 있다. 1필지 평균 108,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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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서대문구 4,458필지 5,471,303㎡6개국 외국인 토지, 창덕궁 4필지, 독립문의 땅이 품은 근대사
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 · 1912 토지조사부 시리즈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전역 · 문화재 기초조사 데이터 1912년 서대문구 4,458필지 5,471,303㎡6개국 외국인 토지, 창덕궁 4필지, 독립문의 땅이 품은 근대사 미국인 20필지, 프랑스인 21필지, 러시아인 2필지, 중국인 2필지, 덴마크인 1필지, 창덕궁 소유 4필지. 1912년 서대문구는 근대 한국사의 모든 충돌이 토지 위에 새겨진 땅이었다. 4,458총 필지 2,308대지 6외국인 소유 국적 4창덕궁 소유 필지 21프랑스인 최다 1912년 서대문구의 땅에는 미국인, 프랑스인, 러시아인, 중국인, 덴마크인, 그리고 창덕궁이 동시에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4,458필지. 이 시리즈에서 가장 다층적인 소유 구조를 가진 지역이다. 조선인의 땅, 국유지, 동척의 수탈지가 공존하는 것은 다른 구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서대문구는 여기에 6개국 외국인 토지와 창덕궁 소유 4필지가 더해진다.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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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마포구 7,985필지 9,957,450㎡이씨 1,134필지, 중국인 8필지, 19개 성씨의 상업도시
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 · 1912 토지조사부 시리즈 서울특별시 마포구 전역 · 문화재 기초조사 데이터 1912년 마포구 7,985필지 9,957,450㎡이씨 1,134필지, 중국인 8필지, 19개 성씨의 상업도시 조선 최대 상업항 마포나루. 소금과 새우젓이 오가고, 경강상인이 천하를 호령하던 이 땅에 1912년 중국인이 8필지, 프랑스인이 1필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마포는 한국 역사상 가장 국제적인 동네 중 하나였다. 7,985총 필지 4,464대지(최다) 19성씨 종류 139분묘지 필지 4국적 토지 소유 1912년 마포나루에 중국 상인이 8필지의 땅을 가지고 있었다. 이 한 줄의 기록이 마포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 7,985필지. 이 시리즈에서 가장 많은 필지 수다. 그런데 그 중 4,464필지가 대지다. 전체의 55.9%가 사람이 사는 집터라는 뜻이다. 영등포(443필지), 송파(640필지), 성동구(2,699필지)와 비교하면 마포구의 대지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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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성동구 5,419필지 9,965,502㎡서울 최다 대지 2,699필지, 뚝도수원지 78,869㎡, 국유지 1,503필지의 비밀
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 · 1912 토지조사부 시리즈 서울특별시 성동구 전역 · 문화재 기초조사 데이터 1912년 성동구 5,419필지 9,965,502㎡서울 최다 대지 2,699필지, 뚝도수원지 78,869㎡, 국유지 1,503필지의 비밀 삼국이 서로 빼앗으려 했던 한강 요충지, 조선의 살곶이목장, 대한제국의 첫 수돗물. 그리고 1912년 국유지 1,503필지는 이 모든 역사가 땅 위에 새겨진 흔적이다. 5,419총 필지 9.97M총 면적(㎡) 2,699대지(서울 최다) 1,503국유지 필지 137분묘지 필지 1912년 성동구의 국유지가 1,503필지라는 숫자는, 이 땅이 얼마나 오래 국가의 품 안에 있었는지를 말해준다. 5,419필지 가운데 1,503필지가 국유지. 전체의 27.7%다. 서울 어느 구와 비교해도 이례적으로 높은 비율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성동구가 가진 특별한 역사에 있다. 이곳은 고구려·백제·신라가 서로 차지하려 한강 유역을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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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송파구 5,534필지 20,480,029㎡백제 왕도 위에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쌓은 393필지
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 · 1912 토지조사부 시리즈 서울특별시 송파구 전역 · 문화재 기초조사 데이터 1912년 송파구 5,534필지 20,480,029㎡백제 왕도 위에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쌓은 393필지 2,000년 전 백제 왕이 살던 땅. 1912년엔 김씨 1,019필지와 이씨 850필지의 밭이었고, 동양척식주식회사가 393필지를 틀어쥐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 땅 아래에서 역사는 기다리고 있다. 5,534총 필지 20.5M총 면적(㎡) 393동척 소유 필지 50분묘지 필지 2,000+년 백제 역사 풍납토성 성벽 바로 옆 밭이 1912년 동양척식주식회사 소유였다면, 그 땅 아래에는 무엇이 있을까. 1912년, 조선 전역의 땅이 토지조사사업의 측량 기계 앞에 놓였다. 송파구는 그 기록에서 가장 풍부한 역사 서사를 가진 지역 중 하나로 남겨졌다. 총 5,534필지에 걸쳐 20,480,029㎡. 지금의 롯데월드타워, 올림픽공원, 석촌호수가 들어선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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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영등포구 3,671필지 17,374,891㎡한강이 키운 농경지, 그리고 철도가 바꾼 운명
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 · 1912 토지조사부 시리즈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전역 · 문화재 기초조사 데이터 1912년 영등포구 3,671필지 17,374,891㎡한강이 키운 농경지, 그리고 철도가 바꾼 운명 7천 년 전 신석기인이 살았고, 조선시대엔 한강변 나루터였으며, 1912년엔 서울 면적 최상위의 거대 농경 지대였다. 그 땅 아래에 아직 꺼내지 못한 역사가 있다. 3,671총 필지 17.4M총 면적(㎡) 10지목 유형 298일본인 소유 필지 7,000+년 전 첫 거주 지금 영등포역 앞 그 땅, 112년 전엔 이씨 집안의 논이었다. 1912년, 한반도 전역의 땅이 일제의 측량 기계 앞에 놓였다. 영등포는 그 조사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가진 서울 지역 중 하나로 기록됐다. 총 3,671필지에 걸쳐 17,374,891㎡. 지금의 여의도 면적 기준으로 환산하면 여의도 57개를 합친 크기다. 그런데 이 방대한 땅의 88%가 논과 밭이었다. 지금 타임스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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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성북구 성북동 국유지 6필지 25,421㎡한양도성 자락에 숨겨진 땅의 이야기
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 · 1912 토지조사부 시리즈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 국유지 기초조사 1912년 성북동 국유지 6필지 25,421㎡한양도성 자락에 숨겨진 땅의 이야기 선잠단, 성락원, 간송미술관이 자리한 이 땅. 112년 전 이곳은 국가가 직접 관리하던 밭과 산림의 땅이었다. 그 기록이 지금 발굴조사의 단서가 된다. 6총 필지 수 25,421총 면적(㎡) 3지목 유형 1912토지조사사업 연도 밭 한 뙈기가 남긴 기록이 110년 뒤 발굴조사의 나침반이 된다. 1912년, 일제는 조선의 땅을 한 뼘도 빠짐없이 측량했다. 이름하여 토지조사사업. 이 과정에서 성북동의 국유지 6필지가 공식 기록으로 남았다. 총면적 25,421㎡. 지금의 축구장 세 개 반을 합친 크기다. 당시 이 땅들은 대지 1필지, 임야 2필지, 그리고 밭 3필지로 나뉘어 있었다. 그런데 이 단순해 보이는 지목(地目) 분류가 고고학자들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정보다. 어떤 땅에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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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산이 내려다본 그 땅,1912년 도봉구의 잊혀진 기록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 지표조사 · 시굴조사 도봉산이 내려다본 그 땅,1912년 도봉구의 잊혀진 기록 도봉구 전체 2,435필지 · 7,095,298㎡ — 논이 밭보다 넓고, 공유지가 국유지보다 많았던 서울의 이례적 공간 문화재 지표조사문화재 발굴조사시굴조사표본조사1912년 도봉구서울 문화유산토지 기록 도봉구에서 공유지가 국유지의 5배가 넘었다. 도대체 이 땅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지금의 도봉구는 도봉산과 수락산이 감싸는 서울 북쪽 끝 동네다. 그런데 1912년 이 땅의 기록을 들여다보면 범상치 않은 숫자들이 눈에 들어온다. 국유지는 단 10필지에 불과한데 공유지는 54필지나 된다. 논이 전체 면적의 56%를 넘는다. 연못이 세 개나 있다. 그리고 하나의 철도 필지가 106,850㎡라는 어마어마한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조사는 이 낯선 숫자들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꺼내는 작업이다. 목차 11912년 도봉구의 전체 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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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자락의 그 땅,1912년 은평구의 숨겨진 기록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 지표조사 · 시굴조사 북한산 자락의 그 땅,1912년 은평구의 숨겨진 기록 은평구 전체 4,238필지 · 9,308,319㎡ — 논과 철도와 동양척식주식회사가 공존한 곳 문화재 지표조사문화재 발굴조사시굴조사표본조사1912년 은평구서울 문화유산동양척식주식회사 은평구 땅 355필지가 단 4년 만에 수탈 기관의 손으로 넘어갔다. 지금의 은평구는 북한산과 맞닿은 서울 북서쪽의 조용한 주거지다. 하지만 110년 전, 이 땅에는 충격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일제의 수탈 기관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은평구 전체 필지의 8.4%에 달하는 355필지를 이미 장악하고 있었다. 그 땅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조사는 이 아픈 기억을 땅속에서 꺼내는 작업이다. 지금부터 1912년 은평구의 진짜 얼굴을 함께 들여다보자. 목차 11912년 은평구의 전체 규모 — 북한산 아래 펼쳐진 농촌 2논과 밭 — 은평구를 지탱한 농경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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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이 굽이치던 그 땅,1912년 강동구의 숨겨진 기록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 지표조사 · 시굴조사 한강이 굽이치던 그 땅,1912년 강동구의 숨겨진 기록 강동구 전체 4,821필지 · 16,053,906㎡ — 논밭과 무덤과 프랑스인이 공존한 땅 문화재 지표조사문화재 발굴조사시굴조사표본조사1912년 강동구서울 문화유산토지 기록 강동구에 프랑스인이 땅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 알고 있었나요? 지금의 강동구는 현대식 아파트와 지하철 노선으로 가득 찬 서울 동쪽의 핵심 거주지다. 그런데 110년 전, 이 땅에는 이씨 문중의 광대한 논이 펼쳐져 있었고, 프랑스인이 4필지의 땅을 쥐고 있었으며, 34곳의 무덤이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조사는 이 잊혀진 기억을 땅속에서 꺼내는 작업이다. 지금부터 1912년 강동구의 진짜 얼굴을 함께 들여다보자. 목차 11912년 강동구의 전체 규모 — 한강변 농촌의 실체 2논과 밭 — 강동구를 먹여 살린 광활한 농경지 3집과 산과 무덤 — 삶과 죽음이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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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서울 전체 123,251필지 · 277,227,048㎡의 숨겨진 진실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 지표조사 · 시굴조사 지금 당신이 사는 이 서울,110년 전엔 어떤 모습이었을까? 1912년 서울 전체 123,251필지 · 277,227,048㎡의 숨겨진 진실 문화재 지표조사문화재 발굴조사시굴조사표본조사1912년 서울토지 기록서울 문화유산 지금 당장 서울 지도를 열어보라. 그 화면 속 땅 한 조각 한 조각, 110년 전엔 전부 다른 이름의 주인이 있었다. 당신이 매일 출근하는 그 골목,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시는 그 자리, 지하철을 기다리는 그 플랫폼 아래 — 거기엔 논물이 흘렀고, 조상의 무덤이 있었으며, 열강의 외국인들이 땅 문서를 쥐고 있었다. 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조사는 그 잊혀진 기억을 꺼내는 작업이다. 지금부터 1912년 서울의 진짜 모습을 함께 들여다보자. 목차 11912년 서울의 전체 규모 — 어마어마한 그 숫자들 2논과 밭, 그리고 도시 — 농촌이었던 서울 3무덤과 사찰과 철도 — 죽음과 신앙과 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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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강서구 전체 6,533필지 · 28,878,761㎡의 숨겨진 기록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 지표조사 당신이 밟고 있는 이 땅,110년 전엔 누구의 것이었을까? 1912년 강서구 전체 6,533필지 · 28,878,761㎡의 숨겨진 기록 문화재 지표조사문화재 발굴조사시굴조사서울 강서구역사 기록 지금 강서구에 살고 있다면, 이 글을 반드시 읽어야 한다. 당신이 매일 걷는 그 골목, 그 논두렁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서기 110년 전 — 그곳엔 누군가의 삶이 있었다. 그 땅은 누구의 것이었고, 얼마나 넓었으며,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조사를 통해 밝혀지는 1912년 강서구의 실체, 지금부터 함께 파헤쳐 보자. 목차 1110년 전 강서구, 그 땅의 크기와 구성 2논과 밭 — 강서구를 먹여 살린 농경지의 비밀 3무덤, 사사지, 임야 — 죽은 자들의 땅 4성씨별 토지 소유 현황 — 누가 강서구를 쥐고 있었나 5국유지·법인·일본인 소유지 — 식민지의 흔적 6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조사가 왜 중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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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대문구 문화재 지표조사·시굴조사·발굴조사를 위한 기초 분석 — 1912년 토지조사부 기반, 3,053필지 635만㎡의 충격
문화재 발굴조사지표조사시굴조사서울 동대문구1912년 토지조사창덕궁 27필지척식회사 452필지분묘지 158필지 척식회사 452필지 vs 창덕궁 27필지 —1912년 동대문구, 수탈과 왕실이 맞붙은 땅 서울 동대문구 문화재 지표조사·시굴조사·발굴조사를 위한 기초 분석 — 1912년 토지조사부 기반, 3,053필지 635만㎡의 충격 ▲ 1912년 동대문구에는 158필지 305,429㎡의 분묘지가 있었다. 이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많은 분묘 필지 수다. 구릉마다 선조들의 묘가 자리하고 있었다 동양척식주식회사가 452필지를 손에 쥐고, 창덕궁이 27필지를 지키고 있었다. 수탈 기관과 왕실이 같은 동네에서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동대문구. 지금은 동대문 디자인플라자(DDP)와 청량리 역세권, 경희대·한국외대가 자리한 서울 동북쪽 도시 지역이다. 하지만 113년 전 이 땅의 기록에는 이 시리즈 전체에서 가장 강렬한 대립 구도가 새겨져 있다. 동양척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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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로구 문화재 지표조사·시굴조사·발굴조사를 위한 기초 분석 — 1912년 토지조사부 기반, 3,095필지 1,142만㎡의 기록
문화재 발굴조사지표조사시굴조사서울 구로구1912년 토지조사연못 22필지배씨·문씨 집성촌경인선 철도용지 연못이 22개 흩어진 땅,배씨와 문씨가 지킨 1912년 구로구의 숨겨진 얼굴 서울 구로구 문화재 지표조사·시굴조사·발굴조사를 위한 기초 분석 — 1912년 토지조사부 기반, 3,095필지 1,142만㎡의 기록 ▲ 1912년 구로구에는 22필지 49,044㎡의 연못이 흩어져 있었다. 이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많은 연못 필지 수다. 논과 연못이 공존하는 특별한 수경 농촌 지대였다 구로구에 연못이 22개 있었다. 이 시리즈 10편을 통틀어 가장 많은 연못이 한 곳에 모여 있었다. 구로구. 지금은 구로디지털단지와 G밸리, 경부고속도로 시작점으로 유명한 서울 서남부 산업 도시다. 하지만 113년 전 이 땅의 기록에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22필지 49,044㎡의 연못. 이 시리즈에서 연못(지소) 데이터를 비교하면 구로구가 압도적 1위다. 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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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문화재 지표조사·시굴조사·발굴조사를 위한 기초 분석 — 1912년 토지조사부 기반, 5,428필지 1,642만㎡의 비밀
문화재 발굴조사지표조사시굴조사서울 서초구1912년 토지조사프랑스인 37필지홍씨 집성촌한강 최대 논농사 프랑스인이 37필지를 소유하고,논이 1만 6천 평을 덮은 땅 —1912년 서초구의 충격적 기록 서울 서초구 문화재 지표조사·시굴조사·발굴조사를 위한 기초 분석 — 1912년 토지조사부 기반, 5,428필지 1,642만㎡의 비밀 ▲ 1912년 서초구는 논 2,146필지 7,550,367㎡, 밭 2,470필지 6,528,316㎡의 광대한 농경 지대였다. 이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가장 넓은 논밭 면적이다 프랑스인이 37필지. 종로구(10필지), 용산구(5필지), 성북구(4필지)를 모두 합쳐도 서초구 혼자를 못 당한다. 서초구. 지금은 대법원, 예술의전당, 반포·잠원·서래마을이 자리한 서울 남서부의 고급 주거·문화 지대다. 그러나 113년 전 이 땅의 기록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 5,428필지, 16,429,068㎡. 이 시리즈에서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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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개포동 국유지 문화재 지표조사·시굴조사·발굴조사를 위한 기초 분석 — 1912년 토지조사부 기반, 28필지 69,620㎡의 기록
문화재 발굴조사지표조사시굴조사강남구 개포동국유지 논·밭·산1912년 토지조사한강 충적 농경지 강남 아파트 숲 아래,1912년 국가가 소유한 논·밭·산 28필지의 진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국유지 문화재 지표조사·시굴조사·발굴조사를 위한 기초 분석 — 1912년 토지조사부 기반, 28필지 69,620㎡의 기록 ▲ 1912년 개포동 국유지의 절반 이상(77.3%)이 논이었다. 지금의 개포 래미안·포레스트 아파트 단지 아래, 국가가 직접 소유한 53,788㎡의 논이 펼쳐져 있었다 강남 8학군의 심장, 개포동. 그 땅의 77%는 1912년 국가 소유 논이었다. 개포동. 지금은 강남 최고가 아파트 단지들이 밀집한 대한민국 부동산의 상징적 공간이다. 개포 래미안 포레스트, 개포 자이, 디에이치 아너힐스. 평당 수억 원을 호가하는 이 땅의 113년 전 주인은 누구였을까. 답은 놀랍도록 단순하다. 국가였다. 28필지 69,620㎡의 국유지 중 14필지 53,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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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구 문화재 지표조사·시굴조사·발굴조사를 위한 기초 분석 — 1912년 토지조사부 기반, 3,023필지의 충격적 기록
문화재 발굴조사지표조사시굴조사서울 성북구1912년 토지조사창덕궁 소유지손씨 집성촌프랑스 선교 창덕궁이 성북구 땅을 직접 소유했다 —1912년 성북구, 왕실과 민중과 이방인의 땅 서울 성북구 문화재 지표조사·시굴조사·발굴조사를 위한 기초 분석 — 1912년 토지조사부 기반, 3,023필지의 충격적 기록 ▲ 창덕궁은 성북구 95필지를 직접 소유하고 있었다. 왕실의 손길이 궁궐 담장 너머 성북 땅까지 뻗어 있었던 것이다 1912년 성북구 땅의 일부는 '창덕궁' 명의였다. 왕조가 무너진 지 2년이 지난 뒤에도. 이 시리즈 일곱 편을 통틀어 가장 충격적인 한 줄이 여기 있다. 1912년 성북구에 창덕궁 소유의 토지가 95필지. 1910년 경술국치로 조선왕조가 공식적으로 끝나고, 고종과 순종이 '이왕가(李王家)'로 격하된 지 2년이 지났는데도 창덕궁 명의의 토지가 성북구 한 복판에 여전히 살아있었다. 그것도 95필지나. 그리고 손씨(孫氏)가 4위 성씨로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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