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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 국유지는 몇 필지였을까?대지·밭 면적 완전 정리

  • 6월 30일
  • 5분 분량

최종 수정일: 7월 6일

서울 문화유산 기초조사 | 서대문구 북가좌동

1912년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국유지는 몇 필지였을까?대지·밭 면적 완전 정리

토지조사사업이 새긴 110년 전 기록으로 북가좌동 땅의 진짜 역사를 읽는다

10필지

전체 국유지

7,619㎡

총 면적

2종

지목 구분

브리핑 요약

1912년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에는 국유지 10필지, 총 7,619㎡가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지목별로는 밭(전) 5필지(4,638㎡)가 60.9%, 대지 5필지(2,981㎡)가 39.1%를 차지하며 두 지목이 정확히 5필지씩 균등하게 분포했습니다.

이 자료는 문화재 지표조사·시굴조사·발굴조사를 위한 역사 기초자료로 활용되며,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seoulheritage.org)가 서울 전역의 1912년 토지 기록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 지금 당신이 알고 있는 북가좌동의 모습은 진짜가 아닐 수도 있다. 110년 전, 이 땅의 절반은 국가가 소유한 밭이었고 — 그 흔적은 아직 땅 속에 잠들어 있다.


SECTION 01

1. 북가좌동, 이 이름 뒤에 숨겨진 110년의 간격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 지하철 6호선 디지털미디어시티역 인근, 마포구와 경계를 맞댄 조용한 주거지다. 지금은 빌라와 다세대주택이 빼곡히 들어선 이 동네가, 110년 전에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1912년, 조선을 강점한 일제는 토지조사사업(土地調査事業)을 전국적으로 시행했다. 표면적으로는 근대적 토지 행정을 위한 측량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수탈의 기반을 다지는 작업이었다. 전국의 땅을 낱낱이 조사해 소유자를 특정하고, 국유지를 확보하며, 근대 지세(地稅) 체계를 구축했다.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토지대장은 우리에게는 1910년대 서울의 땅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역사 기록이 됐다.

북가좌동(北加佐洞)이라는 이름은 조선 시대 가좌동계(加佐洞契)에서 유래했다. 북쪽 방향의 가좌동이라는 뜻으로, 남쪽의 남가좌동과 한 쌍을 이루는 지명이다. 1912년 당시 이 동네에 기록된 국유지 수치를 하나씩 들여다보면, 이 땅이 어떤 성격의 공간이었는지가 또렷이 드러난다.


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seoulheritage.org)는 서울 25개 구 전역의 1912년 토지 기록을 한 동(洞)씩 분석하는 장기 기초조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북가좌동의 기록도 그 아카이브의 소중한 한 조각이다. 숫자는 작아 보여도, 그 안에는 우리가 잊고 있던 이 동네의 진짜 역사가 담겨 있다.


SECTION 02

2. 1912년 북가좌동 국유지 전체 현황 — 숫자로 보는 땅의 기억

한 줄 결론


1912년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 국유지는 총 10필지, 7,619㎡였으며, 밭(전) 5필지(4,638㎡)와 대지 5필지(2,981㎡)로 정확히 반씩 나뉘어 구성되었다.

1912년 기록에 따르면 북가좌동의 국유지는 총 10필지, 합산 면적 7,619㎡였다. 앞서 살펴본 마포구 도화동의 국유지 174,090㎡와 비교하면 훨씬 작은 규모다. 하지만 규모가 작다는 것이 중요성이 낮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소규모 취락일수록, 개발 과정에서 역사 유구가 온전하게 남아 있을 가능성이 더 높다.

지목은 두 가지뿐이다. 밭과 대지. 단순해 보이지만, 이 두 가지 지목이 5필지씩 정확히 균등하게 나뉘어 있다는 사실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면적으로는 밭이 4,638㎡로 앞서지만, 필지 수로는 완전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지목

필지 수

면적(㎡)

비율(%)

밭 (전, 田)

5필지

4,638

60.9%

대지 (垈地)

5필지

2,981

39.1%

합계

10필지

7,619

100%

밭(전)

60.9%

대지

39.1%

4,638㎡

밭(전) — 5필지 · 60.9%

2,981㎡

대지 — 5필지 · 39.1%

특이점 이 시리즈에서 밭과 대지가 필지 수 기준으로 정확히 5필지씩 균등하게 나뉜 사례는 매우 드뭅니다. 북가좌동 국유지의 구성 비율은 해당 지역이 농업 생산과 공공 시설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던 복합적 공간이었음을 시사합니다.


SECTION 03

3. 밭 5필지 4,638㎡ — 도성 외곽의 농경지가 품은 이야기

밭(전, 田)은 논(답, 畓)과 달리 물이 고이지 않아도 되는 밭작물 재배지다. 고구마, 콩, 보리, 잡곡 같은 작물을 심는 땅이다. 1912년 북가좌동 국유지에서 밭은 5필지, 4,638㎡로 전체의 60.9%를 차지했다.

4,638㎡라는 면적은 어느 정도 규모일까. 표준 테니스 코트 약 17개에 해당하는 넓이다. 소규모 취락 기준으로는 결코 작지 않은 농경 면적이다. 당시 북가좌동이 한성부 외곽의 자연 취락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밭들은 마을 주민이나 관청 소속 인원의 식량 공급을 담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서대문구 일대는 조선 시대 한성부의 서쪽 외곽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다. 사대문 안 도심과는 가까우면서도 경작이 가능한 너른 땅이 펼쳐졌던 곳이다. 국유지로 등록된 밭이 5필지나 된다는 건, 국가 또는 왕실이 이 지역 농지를 체계적으로 관리했다는 증거다. 세금 징수의 대상이거나, 궁중 공납(貢納)용 작물을 재배하던 땅이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 밭이 있던 자리, 지금은 어떻게 됐을까. 빌라와 다세대주택이 들어서거나, 소규모 상업 시설이 생겨났을 것이다. 땅의 표면은 완전히 바뀌었지만, 그 아래 지층은 아직 1912년 이전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문화재 발굴조사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SECTION 04

4. 대지 5필지 2,981㎡ — 국가가 세운 건물, 그 자리에 무엇이 남았나

대지(垈地)는 건물이 들어서 있거나 건축을 목적으로 조성된 땅이다. 북가좌동 국유지에서 대지는 5필지, 2,981㎡였다. 필지 수로는 밭과 동일하지만 면적은 약 1,657㎡ 작다. 한 필지당 평균 면적이 596㎡로, 비교적 소규모의 건물 부지들이 흩어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국유 대지란 국가 또는 공공기관이 소유하는 건축 용지다. 당시 국유 대지로 등록된 곳에는 관아(官衙), 창고, 군사 시설, 역원(驛院), 관리들의 숙소 등이 들어서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북가좌동이 조선 시대 의주대로와 가까운 서쪽 교통로에 인접해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역로(驛路) 관련 시설이나 통신·물자 수송과 연관된 관청 건물이 있었을 수도 있다.

1912년 북가좌동 대지 국유지


필지 수: 5필지 | 면적: 2,981㎡ | 비율: 39.1%


필지당 평균 면적: 약 596㎡ | 테니스 코트 약 11개 규모

대지로 쓰였던 자리는 문화재 발굴조사 관점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지점이다. 건물이 서 있던 곳에는 기단(基壇), 온돌 구조, 우물, 생활 유물 등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건물이 철거된 이후 수백 년간 축적된 폐기층에서 도자기 파편, 기와, 철기류 같은 유물이 발견되는 경우도 많다.


5필지 2,981㎡의 국유 대지. 지금은 어딘가에 아파트가 서 있을 수도 있고, 빈 땅으로 남아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지층 어딘가에는 아직 발굴되지 않은 역사가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


SECTION 05

5. 문화유산 조사와의 연결 — 이 땅 아래를 왜 조사해야 하는가

5-1. 문화재 지표조사의 법적 근거

대한민국은 매장유산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법률 제20742호, 2025.1.31. 개정)을 통해 일정 규모 이상의 개발 사업 전 지표조사를 의무화하고 있다. 또한 국가유산청고시 제2026-2호(2026.1.11. 시행)에 따라 조사 기준과 절차가 더욱 세밀하게 규정됐다. 쉽게 말하면, 땅을 파기 전에 반드시 전문 기관의 사전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1912년 토지대장 기록은 이 지표조사의 역사적 배경을 파악하는 핵심 자료다. 어떤 지목이 분포했는지, 국유지가 어느 구역에 집중됐는지를 미리 파악함으로써, 조사 우선순위를 설정하고 발굴 가능성을 예측하는 데 직접 활용된다.

5-2. 4단계 발굴조사 흐름

문화재 조사 4단계 절차



1단계 지표조사(地表調査) — 문헌·육안 조사로 매장문화재 존재 가능성 확인


2단계 시굴조사(試掘調査) — 좁은 트렌치를 굴착해 지층 구조와 유물 존재 여부를 실제 확인


3단계 표본조사(標本調査) — 시굴 결과 바탕으로 더 넓은 범위의 유구 규모 파악


4단계 발굴조사(發掘調査) — 체계적·전면적 발굴을 통해 유물 기록·수습

북가좌동의 경우, 대지 구역 5필지가 시굴조사와 표본조사에서 우선 주목 대상이 된다. 과거 건축물이 있던 곳에서는 기단부나 생활 유물이 출토될 확률이 높다. 밭 구역 역시 농업용 구(溝)나 경계 시설, 지하 배수로 같은 유구가 발견될 수 있다.



5-3. 서울에서 실제로 일어난 발굴 성공 사례들

이런 조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실제 사례들이 있다. 서울 동대문구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을 기억하는가. 처음에는 평범한 재개발 사업으로 시작됐지만, 공사 전 발굴조사에서 조선 시대 훈련도감 터와 한양도성 성벽 유구가 발견됐다. 지금 그 자리는 유구를 현장에서 보존·전시하는 역사공원이 됐다. 발굴이 없었다면 영원히 사라졌을 역사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2021년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는 조선 전기 금속 활자 1,600여 점이 발굴됐다. 작은 건물 신축 공사 전 표본조사 과정에서 발견된 이 활자들은 한국 인쇄 역사를 다시 쓰는 유물로 평가받는다. 그리고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은 아파트 공사 중 발견된 백제 왕성 추정지다. 지금은 사적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북가좌동도 예외가 아닐 수 있다. 아직 발굴되지 않은 조선 시대 생활 유적이 이 동네 어딘가에 잠들어 있을 가능성, 우리는 그 가능성을 너무 쉽게 무시하고 있는 건 아닐까.



SECTION 06

6. 자주 묻는 질문 (Q&A)

1912년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 국유지는 총 몇 필지였나요?

총 10필지였습니다. 밭 5필지와 대지 5필지로 정확히 균등하게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1912년 북가좌동 국유지 총면적은 얼마였나요?

총 7,619㎡였습니다. 테니스 코트 약 28개 크기에 해당합니다.

1912년 북가좌동 국유지 중 밭은 얼마나 있었나요?

밭(전)은 5필지, 4,638㎡였습니다. 전체 국유지의 60.9%로 면적 기준 가장 넓은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1912년 북가좌동 국유지 중 대지는 얼마나 있었나요?

대지는 5필지, 2,981㎡였습니다. 전체 국유지의 39.1%이며, 필지 수는 밭과 동일합니다.

밭과 대지의 면적 차이는 얼마나 되나요?

밭이 대지보다 1,657㎡ 더 넓었습니다. 필지 수는 같지만 밭 한 필지의 평균 면적이 더 컸습니다.

이 자료가 문화재 발굴조사와 어떤 관련이 있나요?

매장유산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법률 제20742호)에 따른 지표조사·시굴조사·표본조사·발굴조사의 역사 기초자료로 활용됩니다. 특히 대지 구역은 건축 유구 발견 가능성이 높아 조사 우선 대상입니다.

한 줄 결론



1912년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 국유지는 총 10필지 7,619㎡였으며, 밭 5필지(4,638㎡)와 대지 5필지(2,981㎡)로 구성되어 있었다. 필지 수가 정확히 균등한 이 구성은 당시 북가좌동이 농업과 공공 시설 기능을 함께 수행하던 복합 공간이었음을 보여준다.

가좌(加佐)라는 이름, 도움을 더한다는 뜻처럼


이 땅은 누군가를 먹이고, 누군가를 머물게 했다.



7,619㎡의 침묵


10필지의 기억으로 지금도 남아 있다.



땅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기록이 사라져도, 땅은 모든 걸 기억한다.



당신이 이 글을 읽은 오늘,


그 땅의 이야기가 다시 시작된다.


자료 출처 및 분석 기준


자료 기준: 1912년 토지조사사업 국유지 현황 기록


분석 대상: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북가좌동


분석 항목: 지목별 필지 수, 면적(㎡), 비율


분석 기관: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seoulheritage.org)


관련 법령: 매장유산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 (법률 제20742호), 국가유산청고시 제2026-2호 (2026.1.11. 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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