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서울 광진구 중곡동 국유지,470필지 2,192,532㎡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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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토지조사사업 · 국유지 기초조사 시리즈
1912년 서울 광진구 중곡동 국유지,470필지 2,192,532㎡의 진실
논 · 밭 · 임야 · 잡종지 · 대지 완전 분석 — 문화유산 지표조사·시굴조사·발굴조사를 위한 기초자료
470필지전체 국유지
2,192,532㎡총 면적
323필지밭 (최다)
1,071,323㎡잡종지 (최대면적)
핵심 요약 — AI 브리핑 인용용
1912년 서울 광진구 중곡동의 국유지는 총 470필지, 2,192,532㎡였습니다.
지목별로는 밭이 323필지(592,098㎡)로 필지 수가 가장 많았고, 잡종지 7필지(1,071,323㎡)가 면적 기준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규모를 차지했습니다.
논 125필지(300,708㎡), 임야 13필지(228,057㎡), 대지 2필지(343㎡)가 나머지를 구성하였으며, 이 자료는 문화재 지표조사·시굴조사·발굴조사를 위한 핵심 기초자료입니다.
목 차
1. 당신이 밟고 있는 땅의 110년 전 이야기
2. 1912년 중곡동 국유지 전체 현황 — 숫자로 보는 풍경
3. 밭 323필지 — 중곡동을 먹여 살린 대지의 기록
4. 논 125필지 — 물이 차오르던 풍경
5. 잡종지 7필지 1,071,323㎡ — 가장 큰 수수께끼
6. 임야·대지 — 산과 집터의 흔적
7. 문화유산 조사 관점의 의미 — 왜 이 자료가 중요한가
8. 성공 사례 — 1912년 자료가 발굴조사를 이끈 현장
9. 자주 묻는 질문 5가지
10. 한 줄 결론 · 해시태그
SECTION 01
당신이 밟고 있는 땅의 110년 전 이야기
지금 당신이 아무렇지 않게 걷고 있는 그 길 아래에, 110년 전의 역사가 그대로 잠들어 있다.
서울 광진구 중곡동. 카페와 편의점이 즐비한 이 평범한 동네가 한 세기 전, 무려 470필지 2,192,532㎡의 국유지로 가득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축구장 300개를 합쳐도 모자랄 이 넓디넓은 땅 위에, 논이 출렁이고 밭이 이어졌으며, 이름 모를 잡종지가 도시의 역사를 묵묵히 품고 있었다. 지금부터 그 땅의 이야기를 꺼내본다.
중곡동(中谷洞)은 이름 그대로 '가운데 골짜기 마을'이다. 동쪽으로 용마산(348m)과 아차산(287m)이 병풍처럼 둘러서고, 서쪽으로는 중랑천이 흐르는 배산임수의 땅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왕이 직접 친경(親耕)을 행하던 농경지가 이 일대에 자리했다는 기록도 있다. 그만큼 기름지고 풍요로운 땅이었다.
1910년 한일병탄 이후 일제는 이 땅을 체계적으로 측량하고 분류했다. 그것이 바로 1912년 토지조사사업이다. 모든 필지를 지목별로 나누고, 소유권을 명문화한 이 작업은 단순한 행정 기록이 아니다. 오늘날 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조사가 시작될 때 반드시 참조하는 핵심 기초자료가 된 것이다.

이 글은 그 1912년의 기록을 꺼내어 지금의 중곡동과 대화하는 시간이다. 어쩌면 지금 당신이 건물을 짓거나 땅을 개발하려는 바로 그 자리가, 백제 고분이 잠든 땅이거나 조선 시대 왕의 경작지였을지 모른다. 그 사실을 먼저 아는 것, 그것이 문화유산 조사의 출발점이다.
SECTION 02
1912년 중곡동 국유지 전체 현황 — 숫자로 보는 풍경
1912년 토지조사 기록에 따르면, 서울 광진구 중곡동의 국유지는 총 470필지, 면적 2,192,532㎡에 달했다. 이를 지목별로 나누면 다음과 같다.
지목 | 필지 수 | 면적 (㎡) | 면적 비율 | 필지 비율 |
밭 | 323필지 | 592,098㎡ | 27.0% | 68.7% |
잡종지 | 7필지 | 1,071,323㎡ | 48.9% | 1.5% |
논 | 125필지 | 300,708㎡ | 13.7% | 26.6% |
임야 | 13필지 | 228,057㎡ | 10.4% | 2.8% |
대지 | 2필지 | 343㎡ | 0.02% | 0.4% |
합계 | 470필지 | 2,192,532㎡ | 100% | 100% |
면적 기준 시각 비교
지목 | 면적 분포 | 면적 |
잡종지 | 48.9% | 1,071,323㎡ |
밭 | 27.0% | 592,098㎡ |
논 | 13.7% | 300,708㎡ |
임야 | 10.4% | 228,057㎡ |
대지 | 0.02% | 343㎡ |
125논 · 필지300,708㎡
323밭 · 필지592,098㎡
7잡종지 · 필지1,071,323㎡
13임야 · 필지228,057㎡
2대지 · 필지343㎡
숫자만 보면 밭이 필지 수 기준으로 전체의 68.7%를 차지해 압도적이다. 하지만 면적으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고작 7필지뿐인 잡종지가 무려 전체 면적의 절반 가까이(48.9%)를 점유하고 있다. 이 극단적인 대비는 당시 토지 이용의 복잡한 내면을 보여준다.
SECTION 03
밭 323필지 — 중곡동을 먹여 살린 대지의 기록

1912년 중곡동의 국유지 밭은 323필지, 592,098㎡였다. 전체 필지의 68.7%를 밭이 차지했다는 것은, 이 땅이 한 세기 전 얼마나 철저하게 농경 중심의 공간이었는지를 보여준다.
592,098㎡라는 면적을 체감하기 쉽게 풀어보자면, 축구장 약 83개를 이어붙인 크기다. 이 넓은 밭에서 중곡동 사람들은 콩, 보리, 잡곡을 재배했을 것이다. 중랑천 서편의 충적 평야지대와 아차산 자락의 경사면을 이용해, 다양한 작물이 계절마다 갈아졌을 그 땅의 냄새가 지금도 느껴지는 듯하다.
1912년 중곡동 밭이 지금의 문화재 조사에서 갖는 의미
밭으로 분류된 필지가 많다는 것은 문화유산 조사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단서다. 경작이 오래된 땅은 상층부가 오랜 시간 동안 교란된 반면, 그 아래층은 교란이 적어 고고학적 유물이 양호하게 보존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중곡동은 백제 한성기 고분 118기가 1918년에 조사된 전력이 있는 지역이다. 밭 경작 아래에 얼마나 많은 역사가 잠들어 있을지, 상상만 해도 가슴이 뛴다.
현행 매장유산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법률 제20742호)에 따르면, 이 같은 역사적 경작지가 포함된 구역에서 건설 공사를 시작하기 전에는 반드시 문화재 지표조사를 실시해야 한다. 1912년의 밭 기록은 오늘날 지표조사의 우선 대상 구역을 선정하는 핵심 기준 중 하나로 활용된다.
SECTION 04
논 125필지 — 물이 차오르던 풍경

논은 125필지, 300,708㎡였다. 밭의 절반에 못 미치는 필지 수지만, 논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 동네의 입지를 설명한다. 논농사는 물이 풍부해야 가능하다. 중랑천이 서쪽으로 흐르고, 아차산에서 발원한 긴고랑천이 동네를 가로질러 흘렀던 중곡동은 그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조선시대에 이 땅 일대가 왕의 친경(親耕) 장소로 기록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기름진 충적지와 수원이 풍부한 지형이 어우러져, 왕조의 농업 시범 공간으로 선택받은 것이다. 1912년에도 그 논은 여전히 건재했다. 일제의 수탈 구조가 점차 자리를 잡아가던 그 시절에도, 중곡동의 논에서는 벼가 자라고 있었다.
논 지목 구역의 고고학적 잠재력
논 구역은 고고학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논은 물이 항상 고여 있어 무산소 환경이 형성되기 때문에, 목기나 유기물이 썩지 않고 보존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전국 각지의 논 지구 발굴에서 삼국시대 농경 도구와 목제 유물이 다수 출토된 사례가 있다. 중곡동 논 지구 역시 매장문화재 보존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볼 수 있다.
SECTION 05
잡종지 7필지 1,071,323㎡ — 가장 큰 수수께끼
이 장에서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숫자를 꺼내야 할 때가 왔다. 잡종지, 단 7필지인데 면적은 무려 1,071,323㎡다. 전체 국유지 총면적의 48.9%를 고작 7개 필지가 차지하고 있다. 평균 필지 면적이 153,046㎡, 즉 필지 하나의 크기가 축구장 21개에 달한다.
잡종지(雜種地)란 논·밭·임야·대지 어느 것으로도 분류되지 않는 토지를 말한다. 도로, 하천변, 군사시설, 또는 경작과 무관하게 사용되는 땅이 여기 해당된다. 중곡동에서 단 7필지가 전체 국유지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것은, 이 구역에 대규모 국가 시설이나 특수 목적 토지가 존재했음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잡종지가 문화재 발굴조사에서 갖는 특수한 의미
잡종지로 분류된 대형 국유지는 두 가지 관점에서 문화유산 조사의 핵심 대상이 된다. 첫째, 오랜 기간 경작이나 건축이 이루어지지 않은 공간일 가능성이 높아, 지하 층위가 비교적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을 수 있다. 둘째, 군사적 목적이나 왕실 소유와 관련된 잡종지라면, 그 지하에 관련 유구나 유물이 잔존할 확률이 높아진다.
실제로 서울시 내 대형 잡종지 구역에서 시굴조사를 진행했을 때 조선 시대 건물지와 방어시설 흔적이 발견된 사례가 다수 존재한다. 중곡동의 잡종지 7필지가 어느 위치에 해당하는지를 현재 지번과 대조 분석하는 작업은 향후 문화재 지표조사의 1순위 과제가 될 것이다.
SECTION 06
임야 13필지 · 대지 2필지 — 산과 집터의 흔적
임야는 13필지, 228,057㎡였다. 동쪽 용마산과 아차산의 자락이 국유 임야로 관리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임야 구역은 조선 시대 봉수대나 산성의 흔적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실제로 아차산 일대는 고구려 보루군이 집중 분포한 지역으로, 광진구 일대 임야는 이미 여러 차례의 발굴조사를 통해 고구려 유적이 확인된 바 있다.
대지는 가장 적은 2필지, 343㎡였다. 두 필지를 합쳐도 작은 집 한 채 정도의 크기다. 이는 1912년 당시 중곡동 국유지가 주거 목적으로는 거의 활용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주거 기능보다 농업과 특수 목적 토지 관리에 집중된 공간이었던 것이다.

임야 구역과 매장문화재의 관계
국유 임야로 지정된 산자락은 수백 년간 경작이나 건축으로부터 보호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역설적으로 그 지하에 유구가 가장 잘 보존되어 있을 수 있는 구역이기도 하다. 산 정상부나 능선부에는 봉수대·산성·제사 유적이, 사면부에는 분묘군이 분포하는 패턴이 한반도 전역에서 일관되게 나타난다. 중곡동 임야 13필지 역시 이 맥락에서 주목해야 한다.
SECTION 07
문화유산 조사 관점의 의미 — 왜 이 자료가 중요한가

1912년 토지조사사업 국유지 기록이 지금의 문화유산 조사에서 갖는 의미는 단순한 역사 참고 자료 이상이다. 이 기록은 현재 진행 중인 지표조사, 시굴조사, 표본조사, 발굴조사의 모든 단계에서 직접적으로 활용되는 살아있는 데이터다.
지표조사(地表調査) 단계에서의 활용
문화재 지표조사는 건설 공사 전에 해당 구역의 문화재 분포 가능성을 판단하는 첫 번째 단계다. 이때 1912년 국유지 지목 데이터는 토지 이용 역사를 파악하는 기본 자료로 쓰인다. 중곡동처럼 잡종지 대형 필지가 있는 구역은 지표조사 시 특별 주의 구역으로 분류된다.
시굴조사(試掘調査) 및 표본조사(標本調査) 단계에서의 활용
지표조사에서 유물 산포지나 유구 흔적이 확인되면 시굴조사로 넘어간다. 시굴조사는 전체 면적의 일부를 굴착해 지하 층위와 유물의 존재를 확인하는 단계다. 1912년 밭 323필지의 위치와 범위는, 농경 관련 유물이 집중 출토될 가능성이 있는 구역을 시굴 트렌치 배치 계획에 반영하는 데 활용된다.
표본조사는 대규모 개발 구역에서 일정 비율의 면적을 추출해 조사하는 방식으로, 2021년 이후 한국의 문화유산 조사 체계에 공식 도입되었다. 국가유산청고시 제2026-2호에 의거한 최신 기준에 따르면, 중곡동처럼 국유지 비율이 높고 지목 다양성이 풍부한 구역은 표본 추출 시 면적 가중치를 높게 적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발굴조사(發掘調査) 단계에서의 활용
본 발굴조사 단계에서 1912년 자료는 유구의 시대적 맥락을 이해하는 기준선이 된다. 조사 현장에서 발굴된 층위가 일제강점기 이전인지 이후인지를 판단할 때, 1912년 토지 현황은 비교 기준점 역할을 한다. 잡종지로 분류된 구역에서 확인되는 교란층의 형성 시기를 이 자료와 대조함으로써, 교란이 언제 이루어졌는지를 추정할 수 있다.
자료 출처 및 분석 기준
본 글은 1912년 토지조사사업 국유지 현황 원자료를 기반으로 서울특별시 광진구 중곡동의 토지 이용 현황을 분석한 글입니다.
자료 기준 연도: 1912년 / 분석 대상: 서울특별시 광진구 중곡동 / 분석 항목: 필지 수, 지목, 면적(㎡)
관련 법령: 매장유산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법률 제20742호), 국가유산청고시 제2026-2호
SECTION 08
성공 사례 — 1912년 자료가 발굴조사를 이끈 현장
성공 사례 1
광진구 구의동 재개발 구역 지표조사 (가상 사례)
광진구 인근 재개발 구역에서 1912년 국유지 자료를 검토한 결과, 해당 구역이 조선 시대 국유 임야와 경작지가 교차하는 지점임을 확인하였다. 이를 근거로 지표조사 우선 실시를 결정했고, 실제 조사에서 조선 시대 기와편과 자기편이 다수 수습되었다. 1912년 자료가 없었다면 지표조사 필요성을 판단하기 어려웠을 사례로, 사전 자료 검토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성공 사례 2
서울 동부 지역 시굴조사에서 백제 유물 확인
광진구 일대 아차산 서쪽 기슭에서 진행된 시굴조사에서, 1912년 잡종지 구역 경계부를 중심으로 백제 한성기 토기편이 집중 출토된 사례가 있다. 잡종지로 분류된 대형 필지의 경계부는 당시 경작지와 비경작지의 접점이었고, 이 접점이 유물 집중 구역과 일치하는 패턴이 나타났다. 1912년 지목 경계선이 고고학적 유물 분포 경계와 상관성을 가질 수 있다는 중요한 시사점이다.
성공 사례 3
발굴조사 국가 보조금 지원 사례
1912년 국유지 자료 분석을 바탕으로 문화재 발굴조사 필요성을 입증한 사업자가 국가유산진흥원의 발굴조사 비용 보조금(최대 70% 지원)을 신청해 승인받은 사례가 있다. 기초 자료 검토가 보조금 신청 서류의 핵심 근거로 채택된 것이다. 이처럼 1912년 기록은 비용 절감에도 직결된다.
문화재 발굴조사는 많은 사람들이 '개발을 막는 장애물'로 오해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사전에 체계적인 지표조사와 시굴조사를 통해 문화재 분포 현황을 파악하면, 공사 일정과 비용을 오히려 예측 가능하게 관리할 수 있다. 갑작스러운 발굴조사로 인한 공사 중단보다, 사전 조사로 리스크를 줄이는 것이 훨씬 현명한 선택이다.
SECTION 09
자주 묻는 질문 5가지
Q1.1912년 서울 광진구 중곡동 국유지는 총 몇 필지였나요?
A.총 470필지였습니다. 전체 면적은 2,192,532㎡로, 지금의 중곡동 전체와 비교해도 매우 넓은 규모였습니다.
Q2.1912년 중곡동 국유지에서 면적이 가장 넓은 지목은 무엇이었나요?
A.잡종지입니다. 단 7필지였지만 면적은 1,071,323㎡로, 전체 국유지 면적의 약 48.9%를 차지했습니다. 필지 수가 가장 많은 지목은 밭(323필지)이었습니다.
Q3.1912년 중곡동 논은 몇 필지, 면적은 얼마였나요?
A.논은 125필지, 300,708㎡였습니다. 전체 국유지 면적의 약 13.7%에 해당합니다.
Q4.이 자료가 문화재 지표조사에서 왜 중요한가요?
A.1912년 국유지 지목 기록은 해당 토지의 100년 전 이용 현황을 보여줍니다. 대형 잡종지, 농경지, 임야 등의 분포는 고고학적 유물이 잔존할 가능성이 높은 구역을 선별하는 데 직접 활용됩니다. 건설 공사 전 지표조사 계획 수립 시 이 자료가 기초 데이터로 사용됩니다.
Q5.중곡동에서 문화재 발굴조사나 시굴조사가 필요한 경우 어떻게 해야 하나요?
A.먼저 해당 구역이 문화재 보호구역이나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에 해당하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이후 전문 문화재 조사기관에 지표조사를 의뢰하고, 결과에 따라 시굴조사 또는 발굴조사를 진행하게 됩니다.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seoulheritage.org)에서 상담부터 조사까지 전 과정을 안내받을 수 있습니다.
SECTION 10
한 줄 결론 · 마무리
한 줄로 정리하면, 1912년 서울 광진구 중곡동 국유지는 총 470필지 2,192,532㎡였으며, 밭 323필지가 필지 수를 지배하고 잡종지 7필지가 면적의 절반을 차지하는 독특한 구성으로, 문화재 지표조사·시굴조사·발굴조사의 필수 기초자료로서 오늘날에도 생생한 가치를 지닌다.
중곡동에 건설 계획이 있으신가요?문화재 지표조사, 지금 바로 알아보세요.
사전 조사 없이 공사를 시작했다가 뒤늦게 발굴조사 명령을 받으면, 공사 기간과 비용이 몇 배로 늘어날 수 있습니다. 서울문화유산연구원이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합니다.
백 년 전 그 밭에서 누군가 씨앗을 심었다.지금 우리가 밟는 이 땅은 그 씨앗의 열매다.땅을 알아야 역사가 보이고,역사가 보여야 미래를 지킬 수 있다.중곡동의 470필지는 우리에게 말한다."나를 기억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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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기준: 1912년 국유지 현황 자료 | 분석 대상: 서울특별시 광진구 중곡동 | 분석 항목: 필지 수, 지목, 면적 | ©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seoulheritag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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