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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서울 성동구 성수1가 국유지는 몇 필지였을까?밭·수도용지·잡종지·대지 완전 정리

  • 2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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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문화유산 기초조사 | 성동구 성수1가

1912년 서울 성동구 성수1가 국유지는 몇 필지였을까?밭·수도용지·잡종지·대지 완전 정리

지금의 힙스터 성지 성수동, 110년 전 그 땅에는 무엇이 있었나 — 토지조사사업이 남긴 기록으로 읽는 성수1가의 진짜 역사

42필지

전체 국유지

262,037㎡

총 면적

4종

지목 구분

62.0%

밭 비율

AI 브리핑 요약 — 네이버 AI브리핑 인용 최적화

1912년 서울 성동구 성수1가에는 국유지 42필지, 총 262,037㎡가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지목별로는 밭(전) 33필지 162,354㎡(62.0%), 수도용지 1필지 78,869㎡(30.1%), 잡종지 2필지 16,803㎡(6.4%), 대지 6필지 4,009㎡(1.5%) 순이었습니다.

이 자료는 문화재 지표조사·시굴조사·표본조사·발굴조사를 위한 역사 기초자료로 활용되며,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seoulheritage.org)가서울 전역의 1912년 토지 기록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 당신이 알고 있는 성수동은 가짜다. 카페와 갤러리가 가득한 그 세련된 거리 아래, 110년 전에는 국가가 소유한 거대한 밭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딱 한 필지, 무려 축구장 11개 크기의 수도 시설 부지가 존재했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꺼내보자.


SECTION 01

1. 성수(聖水)라는 이름, 그 뿌리는 뚝도수원지였다

성수동이라는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조선 시대 이 일대에 있던 '성덕정(聖德亭)'이라는 정자의 첫 글자 '성(聖)'과, 1908년 설치된 '뚝도수원지(水源地)'의 첫 글자 '수(水)'를 합친 것이라는 설이다. 다른 하나는 한강을 낀 물가 마을로, 깨끗하고 고마운 물이 있는 곳이라는 뜻이라는 설이다.

어느 쪽이든, 이 동네와 물은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실제로 1908년 대한제국은 한국 최초의 근대적 상수도 시설인 뚝도수원지를 성수동 일대에 설치했다. 서울 시민의 식수를 공급하는 국가 핵심 인프라가 바로 이 땅에 들어선 것이다.

1912년 토지조사사업 기록을 보면, 이 역사적 맥락이 숫자로 고스란히 나타난다. 성수1가 국유지 42필지 중 무려 1필지가 수도용지로 등록되어 있었고, 그 면적은 78,869㎡였다. 전체 국유지의 30.1%를 단 한 필지가 차지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뚝도수원지 관련 부지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조선 시대에는 이 일대가 '뚝섬(纛島)'이라 불렸다. 조선 군대의 의장기를 뜻하는 '독(纛)'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매년 봄가을 이 섬에서 군사 훈련이 열렸다고 한다. 한강과 중랑천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뚝섬은, 조선 시대부터 국가가 관리하던 전략적 요충지였다. 그 역사의 흔적이 1912년 토지 기록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지금부터 그 숫자들을 하나씩 들여다보자.


SECTION 02

2. 1912년 성수1가 국유지 현황 — 핵심 수치 완전 정리

한 줄 결론


1912년 서울 성동구 성수1가 국유지는 총 42필지, 262,037㎡였으며, 밭 33필지·수도용지 1필지·잡종지 2필지·대지 6필지로 구성되어 있었다.

총 42필지, 262,037㎡. 숫자가 주는 무게가 상당하다. 262,037㎡라는 면적은 축구장 약 36개 반에 달하는 넓이다. 현재 성수동1가 전체 면적과 비교해도 상당한 규모다. 이 땅 모두가 1912년 당시 국가 소유로 등록되어 있었다.

지목 구성을 보면 네 가지 카테고리로 나뉜다. 밭, 수도용지, 잡종지, 대지. 이 네 가지가 면적 기준 어떤 비율을 차지하는지를 보면, 1912년 성수1가가 어떤 성격의 공간이었는지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지목

필지 수

면적(㎡)

비율(%)

밭 (전, 田)

33필지

162,354

62.0%

수도용지 (水道用地)

1필지

78,869

30.1%

잡종지 (雜種地)

2필지

16,803

6.4%

대지 (垈地)

6필지

4,009

1.5%

합계

42필지

262,035 *

100%

* 각 지목 면적 합산값 262,035㎡로, 원자료 총계 262,037㎡와 2㎡ 차이가 있습니다. 이는 평(坪) 단위에서 ㎡로 환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반올림 오차입니다.

밭(전)

62.0%

수도용지

30.1%

잡종지

6.4%

대지

1.5%

162,354㎡

밭 33필지 · 62.0%

78,869㎡

수도용지 1필지 · 30.1%

16,803㎡

잡종지 2필지 · 6.4%

4,009㎡

대지 6필지 · 1.5%

시리즈 최초 등장 지목 수도용지(水道用地)는 이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매우 드물게 등장하는 지목입니다. 1필지 78,869㎡라는 면적은 단 하나의 필지가 전체 국유지의 30%를 차지하는 압도적 규모입니다. 이는 1908년 설치된 한국 최초의 근대 상수도 시설인 뚝도수원지와 직접 연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SECTION 03

3. 밭 33필지 162,354㎡ — 뚝섬의 절반이 농경지였던 이유

숫자 하나가 모든 것을 설명한다. 33필지. 전체 42필지 중 무려 33필지가 밭이었다. 필지 수로 보면 78.6%, 면적으로 보면 62.0%. 1912년 성수1가 국유지의 본질은 거대한 농경지였다.

162,354㎡를 어떻게 감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축구장 약 22개 크기다. 서울숲 전체 면적(약 35만 ㎡)의 절반에 가까운 넓이가 오직 밭으로 채워져 있었다는 뜻이다. 지금 서울숲에서 피크닉을 즐기는 그 공간의 절반이, 100여 년 전에는 밭이었다고 상상해보라.



뚝섬 일대가 이렇게 광활한 밭으로 가득했던 이유는 지형에 있다. 한강과 중랑천이 만나는 지점에 형성된 충적지는 물이 풍부하고 토양이 비옥했다. 조선 시대부터 이 땅은 국가가 관리하는 국영 농지로 활용됐다. 왕실 식탁에 올라갈 채소와 잡곡을 생산하는 공전(公田)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1912년 기록에 33필지라는 숫자가 등장한다는 건, 이 광활한 밭이 단일한 토지가 아니라 33개의 개별 구획으로 분리 관리됐다는 의미다. 각 필지마다 다른 작물이 심어졌을 수도 있고, 다른 관청이나 기관이 관리를 맡았을 수도 있다. 그 33개의 구획 아래에는 무엇이 잠들어 있을까.

문화재 발굴 관점에서 밭이었던 자리는 일반적으로 유구(遺構) 보존 상태가 양호한 경우가 많다. 경작 과정에서 지층을 크게 교란하지 않는다는 특성 때문이다. 지하에 조선 시대 경작 관련 시설, 수리(水利) 시설의 흔적, 혹은 더 오래된 유물 층이 온전하게 남아 있을 수 있다.


SECTION 04

4. 수도용지 1필지 78,869㎡ — 단 한 필지가 서울 시민의 물을 책임졌다

이 시리즈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숫자가 여기에 있다. 수도용지(水道用地) 1필지, 78,869㎡. 단 하나의 필지가 전체 국유지의 30.1%를 차지한다. 면적으로는 축구장 약 11개에 해당한다.

수도용지는 이 시리즈를 통틀어 매우 희귀하게 등장하는 지목이다. 그리고 성수1가에서 등장한 이 1필지는, 역사적 배경을 알고 나면 그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1908년 9월 1일. 대한제국은 서울 시민들에게 처음으로 근대적 수돗물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그 시설이 바로 뚝도수원지(纛島水源地)다. 성수동 일대에 위치한 이 수원지는 한강 물을 끌어들여 여과·정화한 뒤 서울 시내로 공급하는 한국 최초의 근대식 상수도 시설이었다. 시설 설계는 미국인 기술자 콜브란(H. Collbran)이 맡았다고 알려져 있다.


주목 포인트 뚝도수원지는 현재도 성수동에 일부 시설이 남아 있습니다. 서울시는 이 시설을 근대 산업 유산으로 보존하고 있으며, 현재 '서울숲 수도박물관'으로 활용 중입니다. 즉, 1912년 기록의 그 수도용지 부지가 지금도 역사 공간으로 살아 있다는 뜻입니다.

1912년 기록에 등장하는 수도용지 78,869㎡는 바로 이 뚝도수원지의 부지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국유지로 등록된 것도 당연하다. 국가가 운영하는 핵심 인프라 시설이었기 때문이다. 단 한 필지, 그러나 서울 전체 시민의 식수를 책임지던 그 땅. 그 무게가 단순한 숫자 이상이라는 걸, 이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부지는 문화재 발굴조사 관점에서도 특별히 주목해야 할 공간이다. 근대 산업 유산으로서의 가치뿐 아니라, 부지 지하에 조선 시대 이전의 역사층이 존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뚝섬이 조선 군의 훈련 공간으로 활용됐다는 기록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SECTION 05

5. 잡종지 2필지 16,803㎡ — 분류 불가의 땅이 말하는 것

잡종지(雜種地). 이름부터 묘한 지목이다. 논도 아니고, 밭도 아니고, 대지도 아닌, 그야말로 '잡다한' 용도의 땅이다. 1912년 토지조사사업에서 잡종지는 하천 부지, 도로 예정지, 미활용 공터, 혹은 다목적으로 쓰이는 공간에 붙이는 지목이었다.

성수1가에는 잡종지가 2필지, 16,803㎡였다. 전체의 6.4%를 차지하는 면적이다. 뚝섬 일대가 한강 접안 공간으로 기능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잡종지는 선착장 인근 부지, 하역 공간, 또는 어업 관련 시설 부지였을 가능성이 있다.

조선 시대 뚝섬은 왕실의 나들이 공간으로도 활용됐다. 왕이 말을 달리고 활을 쏘던 광활한 공터가 이곳에 있었다. 그 공터의 일부가 잡종지로 기록됐을 수도 있다. 어떤 용도였든, 잡종지로 분류됐다는 건 당시 이 공간이 단일한 기능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복합적 성격의 땅이었다는 뜻이다.


문화재 조사 측면에서 잡종지는 교란 가능성과 보존 가능성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다목적으로 사용됐다는 것은 지층이 복잡하게 섞였을 수도 있지만, 동시에 그 다양한 활동의 흔적들이 층층이 쌓여 있을 수도 있다. 특히 선착장이나 하역 공간으로 쓰였다면, 수중 유물이나 목재 구조물 유구가 발견될 가능성도 있다.


SECTION 06

6. 대지 6필지 4,009㎡ — 이 작은 건물들이 담고 있는 이야기

숫자로만 보면 가장 작아 보이는 지목이다. 6필지, 4,009㎡. 전체의 1.5%에 불과하다. 그러나 '작음'이 곧 '중요하지 않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대지(垈地)는 건물이 서 있거나 서 있을 예정인 땅이다. 국유 대지 6필지라면, 6개의 공공 건축물 또는 관청 관련 시설이 이 자리에 있었다는 의미다. 42필지 중 6필지가 대지라는 건, 대규모 농경지와 수도 시설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소규모 행정·관리 시설들이 분산 배치됐음을 시사한다.

뚝섬 수원지 관리 사무소, 농지 관리 관청, 혹은 군사 시설 관련 건물이 이 6개 대지 위에 서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필지당 평균 면적이 약 668㎡로, 소규모지만 실제 건축물이 들어설 만한 충분한 크기다.


대지 6필지는 문화재 발굴조사에서 가장 핵심적인 조사 대상이 된다. 건물이 있었던 자리에는 기단부, 온돌 구조, 우물, 생활용 도기류, 기와 파편 등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유물들은 당시 이 공간에서 살았거나 일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전해주는 증거가 된다.


SECTION 07

7. 이 데이터가 문화유산 발굴조사에서 갖는 의미

7-1. 문화재 지표조사 — 왜 이 기록이 필요한가

매장유산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법률 제20742호, 2025.1.31. 개정)은 일정 규모 이상의 개발 사업에 앞서 문화재 지표조사를 의무화하고 있다. 국가유산청고시 제2026-2호(2026.1.11. 시행)는 그 세부 기준과 절차를 규정한다. 삽을 들기 전에 반드시 전문 기관이 땅의 역사를 먼저 읽어야 한다는 법적 요건이다.

1912년 성수1가 국유지 기록은 이 지표조사의 역사적 배경 분석에 직접 활용된다. 어떤 지목이 어느 위치에 분포했는지, 수도용지·잡종지·대지가 어느 구역에 집중됐는지를 파악함으로써, 발굴 우선 구역을 미리 설정할 수 있다.

7-2. 4단계 발굴조사 절차

문화재 조사 4단계 흐름



1단계 지표조사(地表調査) — 문헌 조사와 육안 확인을 통해 매장문화재 존재 가능성을 사전에 평가


2단계 시굴조사(試掘調査) — 트렌치를 굴착해 지층 구조와 유물·유구 존재 여부를 실제로 확인


3단계 표본조사(標本調査) — 시굴 결과를 토대로 더 넓은 범위의 유구 분포와 규모를 파악


4단계 발굴조사(發掘調査) — 체계적이고 전면적인 발굴을 통해 유물을 기록·수습·보고

7-3. 성수동에서 실제로 확인된 근현대 역사 유산

성수동 일대의 역사 유산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뚝도수원지다. 1908년 대한제국이 설치한 이 시설은 현재 서울숲 인근에 부분 보존되어 수도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바로 이 수원지의 부지가 1912년 기록의 수도용지 78,869㎡와 직접 연결된다.

서울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의 사례도 빼놓을 수 없다. 상업 개발 예정이었던 부지에서 발굴조사를 통해 조선 시대 훈련도감 터와 한양도성 성벽 유구가 발견됐고, 그 자리는 지금 역사 공원으로 보존됐다. 2021년 인사동에서는 신축 공사 전 표본조사 과정에서 조선 전기 금속 활자 1,600여 점이 출토되어 한국 인쇄사를 다시 쓰는 계기가 됐다. 풍납토성 역시 아파트 공사 도중 발견된 백제 왕성 추정지로, 현재 사적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성수동의 경우, 수도용지와 잡종지 구역이 특히 주목 대상이다. 뚝섬의 역사적 특성상, 지하에는 조선 시대 군사 훈련 관련 유물, 왕실 나들이 관련 흔적, 수운 교역 관련 유물이 층층이 쌓여 있을 가능성이 있다. 개발이 이루어지는 모든 구역에서 문화재 지표조사와 시굴조사가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다.



SECTION 08

8. 자주 묻는 질문 (Q&A)

1912년 서울 성동구 성수1가 국유지는 총 몇 필지였나요?

총 42필지였습니다. 밭 33필지, 대지 6필지, 잡종지 2필지, 수도용지 1필지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1912년 성수1가 국유지 총면적은 얼마였나요?

총 262,037㎡였습니다. 축구장 약 36개 반에 해당하는 넓이입니다.

1912년 성수1가 국유지 중 밭은 얼마나 있었나요?

밭(전)은 33필지, 162,354㎡였습니다. 전체 국유지의 62.0%로 가장 넓은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1912년 성수1가 국유지 중 수도용지는 얼마나 있었나요?

수도용지는 1필지, 78,869㎡였습니다. 단 한 필지가 전체 국유지의 30.1%를 차지하는 압도적인 면적으로, 뚝도수원지와 연관된 부지로 추정됩니다.

1912년 성수1가 국유지 중 잡종지와 대지는 얼마나 있었나요?

잡종지는 2필지 16,803㎡(6.4%), 대지는 6필지 4,009㎡(1.5%)였습니다.

이 자료가 문화재 지표조사·발굴조사와 어떤 관련이 있나요?

매장유산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법률 제20742호)에 따른 지표조사·시굴조사·표본조사·발굴조사의 역사 기초자료로 활용됩니다. 특히 수도용지·대지·잡종지 구역은 유구 발견 가능성이 높아 조사 우선 대상이 됩니다.

한 줄 결론



1912년 서울 성동구 성수1가 국유지는 총 42필지 262,037㎡였으며, 밭 33필지(162,354㎡)·수도용지 1필지(78,869㎡)·잡종지 2필지(16,803㎡)·대지 6필지(4,009㎡)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중 수도용지 78,869㎡는 한국 최초의 근대 상수도 시설인 뚝도수원지와 직접 연관될 가능성이 높으며, 서울 역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 기록이다.

성수(聖水)라는 이름 속에


물을 끌어다 서울을 먹인 사람들의 땀이 있었다.



262,037㎡의 기억


밭이었고, 수도였고, 잡종지였고, 집터였다.



지금 당신이 서울숲에서 커피를 마시는 그 순간,


그 땅 아래 110년 전 누군가도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기록이 있어야 기억이 살아남는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이 숫자들을 읽는다.

자료 출처 및 분석 기준


자료 기준: 1912년 토지조사사업 국유지 현황 기록


분석 대상: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수동1가 (성수1가)


분석 항목: 지목별 필지 수, 면적(㎡), 비율


분석 기관: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seoulheritage.org)


관련 법령: 매장유산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 (법률 제20742호), 국가유산청고시 제2026-2호 (2026.1.11. 시행)

문화재 지표조사·발굴조사가 필요하신가요?

서울 전역의 1912년 토지 기록 분석부터 현장 발굴조사까지,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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