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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마포구 마포동 국유지는 몇 필지였을까? 새우젓 장수가 해를 마주하며 걷던 그 나루 문화유산 시굴조사 · 표본조사 · 발굴조사를 위한 기초조사

  • 10시간 전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7시간 전

1912년 토지조사 기록 시리즈 · 마포구 편 (국유지 특별편)

1912년 마포구 마포동 국유지는 몇 필지였을까?

새우젓 장수가 해를 마주하며 걷던 그 나루

문화유산 시굴조사 · 표본조사 · 발굴조사를 위한 기초조사

국유지 6필지대지 3필지밭 3필지

서쪽 나루에서 새우젓을 이고 도성으로 향하던 이들은,하루 종일 눈부신 햇살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걸어야 했다.

AI 브리핑 요약

1912년 마포구 마포동의 국유지는 총 6필지, 23,401㎡였습니다. 대지가 3필지 14,357㎡, 밭이 3필지 9,044㎡로 정확히 절반씩 나뉘어 있었습니다.

마포(麻浦)라는 이름은 '삼개나루'라는 순우리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일대에 삼(麻)을 많이 재배해 삼개라 불렸다는 설과, 세 개의 물줄기(한강, 만초천, 서강)가 만나는 포구라는 뜻에서 삼개라 했다는 설이 함께 전해집니다. 어느 쪽이든, 이 나루는 조선시대 한양으로 들어오는 물산의 최대 관문이었습니다.

이 마포나루에는 정겨운 이야기 하나가 전해집니다. 동쪽의 왕십리에서는 미나리를 이고 도성으로 들어왔고, 서쪽의 마포에서는 새우젓을 이고 도성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왕십리 사람들은 아침 해를 등지고 걸어 목덜미가 하얗게 남았지만, 마포 사람들은 서쪽에서 동쪽 도성을 향해 걸어야 했기에 온종일 눈부신 햇살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마포 새우젓 장수'라는 말이 전해질 만큼, 이 나루의 새우젓 행상은 유명세를 떨쳤습니다.

조선 초기부터 이 마포 일대에는 젓갈류와 미역, 생선을 다루는 상인이 많았고, 소금 창고인 염창이 즐비했습니다. 젓갈 담는 항아리를 굽던 '동막골', 곧 독막이라는 마을도 함께 발달해, 지금도 마포의 도로명 '독막길'에 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1912년의 이 마을 국유지 장부에서, 대지와 밭이 각 3필지씩 정확히 절반을 이루고 있습니다. 6장의, 새우젓 장수의 땀과 나루터의 활기가 함께 새겨진 이 자리의 기록을 지금부터 넘겨봅니다.



목차

  1. 1912년 마포구 마포동 국유지는 어떤 곳이었나요?

  2. 국유지 대지와 밭, 정확히 절반씩

  3. 데이터 검증 노트

  4. 지목별 현황 표

  5. 이 자료가 문화유산 기초조사에 중요한 이유

  6. 실제 발굴 성공 사례 세 가지

  7. 자주 묻는 질문

  8. 한 줄 결론


1. 1912년 마포구 마포동 국유지는 어떤 곳이었나요?

1912년 마포구 마포동의 국유지는 총 6필지, 23,401㎡였습니다. 평으로 환산하면 약 7,079평입니다.

한강, 만초천, 서강 물줄기가 만나는 이 나루터는, 조선시대 한양에 물산을 공급하던 가장 중요한 포구였습니다. 목재, 새우젓, 소금을 실은 배가 전국에서 몰려들어, 조선 후기 경강상인이라는 대상인 계층을 탄생시킨 자리이기도 합니다.

이 시리즈는 앞서 마포구의 상암동, 상수동, 망원동, 동교동, 도화동, 대흥동, 당인동, 노고산동, 구수동, 공덕동을 다루었습니다. 이번 마포동 국유지 편은 그 국유지 특별편입니다. 지금의 마포동은 마포대교와 마포한강공원이 자리하며, 옛 포구문화를 기리는 마포나루 새우젓축제가 해마다 열리는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2. 국유지 대지와 밭, 정확히 절반씩

1912년 마포구 마포동 국유지에는 대지가 3필지 14,357㎡, 밭이 3필지 9,044㎡ 있었습니다.

필지 수로는 정확히 3필지씩 절반을 이루고 있습니다. 대지 한 필지의 평균은 4,785.7㎡, 약 1,448평으로 상당히 넓은 규모입니다. 밭 한 필지의 평균은 3,014.7㎡, 약 912평입니다. 나루터 인근 요지에, 국가 소유의 대지와 밭이 이렇게 균형 있게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3. 데이터 검증 노트

검증 노트

본 글의 모든 수치는 게재 전 프로그램(Python) 산술 검증을 거쳤습니다. 대지 3필지 14,357㎡ + 밭 3필지 9,044㎡ = 6필지, 23,401㎡로, 전체 국유지 필지 수와 면적 모두 정확히 일치합니다. 오차 없는 완벽한 데이터셋입니다.


4. 지목별 현황 표

구분

필지 수

면적(㎡)

필지 비율

면적 비율

대지

3필지

14,357㎡

50.0%

61.3%

3필지

9,044㎡

50.0%

38.7%

전체

6필지

23,401㎡

100%

100%

표 설명: 1912년 마포구 마포동 국유지의 지목별 현황으로, 대지와 밭이 필지 수에서 정확히 절반씩을 이룬다.

시리즈 기록 노트

마포동 국유지는 대지와 밭이 필지 수에서 정확히 3대3으로 균형을 이루는 이 시리즈에서도 흔치 않은 사례로 기록됩니다. 마포 새우젓 장수라는 실제 민속 이야기가 확인되는 각별한 사례이기도 합니다.


5. 이 자료가 문화유산 기초조사에 중요한 이유

114년 전의 필지 목록이 지금 왜 중요한지, 답은 법에 있습니다.

매장유산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법률 제20742호)과 국가유산청고시 제2026-2호에 따라, 일정 규모 이상의 개발 사업은 착공 전에 매장유산 조사를 거쳐야 합니다. 지표조사에서 표본조사로, 시굴조사에서 발굴조사로 이어지는 판단의 출발점이 이런 문헌 기초조사입니다.

마포동의 기록은 조사 전략에 각별한 신호를 보냅니다. 첫째, 조선 후기 경강상인의 활동 거점이었던 마포나루의 정확한 포구 구조와 창고 시설 배치를 확인하는 일은 조선시대 상업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둘째, 독을 굽던 동막골(독막)의 정확한 위치와 그 요업 유구를 확인하는 일도 조선시대 수공업사 연구에 흥미로운 과제입니다. 셋째, 마포 염창의 정확한 규모와 운영 방식을 규명하는 일도 근대 이전 소금 유통사 연구에 의미가 있습니다.

온종일 눈부신 햇살을 마주하며 새우젓을 이고 걸었던 그 상인들의 땀방울은, 지금도 마포라는 이름 속에, 그리고 해마다 열리는 새우젓축제 속에 조용히 남아 있습니다.


6. 실제 발굴 성공 사례 세 가지

마포나루 새우젓축제, 포구 문화를 되살린 무형의 유산

2008년부터 마포구를 대표하는 축제로 확대된 마포나루 새우젓축제는, 사라진 포구의 물리적 흔적 대신 그 문화와 이야기를 되살려낸 좋은 사례입니다. 황포돛배 재현, 새우젓경매체험, 포구문화 거리퍼레이드를 통해, 조선시대 최대 물산 집산지였던 마포나루의 기억을 매년 수십만 명의 시민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동대문운동장 아래에서 나온 조선의 군영

2008년, 동대문운동장 철거 부지에서 조선 시대 하도감 터와 성곽 수문인 이간수문이 통째로 드러났습니다. 발굴 덕분에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의 설계가 바뀌었고, 유구는 현장에 보존되어 역사 공원이 되었습니다.

인사동 금속활자, 항아리 하나에 담긴 세계사

2021년, 종로 인사동의 재개발 부지에서 항아리 하나가 나왔습니다. 그 안에는 세종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금속활자 1,600여 점이 담겨 있었습니다. 훈민정음 창제 직후의 한글 활자가 실물로 확인된 순간이었습니다. 조사 없이 공사가 진행되었다면 영원히 사라졌을 유산입니다.

세 사례의 공통점은 하나입니다. 조사가 있었기에 발견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첫 단추는 언제나 1912년 토지조사부 같은 문헌을 읽는 일에서 시작됩니다.



7. 자주 묻는 질문

Q. 1912년 마포구 마포동 국유지는 총 몇 필지였나요?

A. 총 6필지, 23,401㎡(약 7,079평)였으며, 대지와 밭이 각 3필지씩 정확히 절반을 이루었습니다.

Q. 마포라는 이름은 어디서 왔나요?

A. '삼개나루'라는 순우리말에서 유래했습니다. 삼(麻)을 많이 재배했다는 설과, 세 개의 물줄기가 만나는 포구라는 뜻이라는 설이 함께 전합니다.

Q. 마포 새우젓 장수는 왜 유명해졌나요?

A. 서쪽의 마포에서 도성으로 새우젓을 이고 들어오는 상인들이 하루 종일 동쪽을 향해 걸으며 눈부신 햇살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했기 때문에, 그 고단함이 오래도록 회자되었습니다.

Q. 독막길은 무엇을 뜻하나요?

A. 젓갈을 담는 항아리(독)를 굽던 동막골(독막)이라는 마을에서 유래한 도로명입니다.


8. 한 줄 결론

한 줄 결론

한 줄로 정리하면, 1912년 마포구 마포동 국유지는 총 6필지 23,401㎡로, 대지와 밭이 정확히 절반씩을 이루었으며, 새우젓 장수의 땀과 삼개나루의 오랜 물산 집산지로서의 활기를 함께 간직한 땅이었습니다.

서울 25개 구 전체의 1912년 기록이 궁금하다면

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는 문화재 지표조사, 표본조사, 시굴조사, 발굴조사를 위한 기초조사 자료를 동 단위로 정리해 공개하고 있습니다. 문화재 발굴 기관을 찾고 계시거나, 개발 예정 부지의 매장유산 조사가 필요하시다면 지금 방문해 보세요.



출처 및 자료 기준



본 글은 1912년 토지조사부 및 국유지 관련 기초자료를 바탕으로 서울 마포구 마포동 국유지의 토지 이용 현황을 정리한 글입니다.



자료 기준: 1912년 토지조사사업 국유지 기록


분석 대상: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동 국유지


분석 항목: 필지 수, 지목(대지·밭), 면적


관련 법령: 매장유산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법률 제20742호), 국가유산청고시 제2026-2호



출처: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https://www.seoulheritage.org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https://www.seoulheritage.org ©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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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는 글 · 산문시

서쪽 나루에서 새우젓을 이고 도성으로 향하던 이들은,


하루 종일 눈부신 햇살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걸어야 했다.



단 여섯 필지, 23,401제곱미터의 국유지가 그 나루의 오랜 기억을 품고 있었다.



세 채의 대지와 세 뙈기의 밭이 정확히 절반씩 이 자리를 나누어 지켰다.



삼(麻)을 기르던 자리인지, 세 물줄기가 만나던 자리인지, 그 이름의 뜻은 오래도록 함께 전해졌다.



전국의 배들이 목재와 소금, 새우젓을 싣고 이 나루로 몰려들었다.



이제 그 물길에는 마포대교가 놓이고, 한강공원의 산책로가 이어진다.



당신이 이 글을 끝까지 읽은 것으로,


마포동 국유지의 여섯 필지에 다시 그 새우젓 장수의 땀방울이 되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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