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마포구 7,985필지 9,957,450㎡이씨 1,134필지, 중국인 8필지, 19개 성씨의 상업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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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 · 1912 토지조사부 시리즈
서울특별시 마포구 전역 · 문화재 기초조사 데이터
1912년 마포구 7,985필지 9,957,450㎡이씨 1,134필지, 중국인 8필지, 19개 성씨의 상업도시
조선 최대 상업항 마포나루. 소금과 새우젓이 오가고, 경강상인이 천하를 호령하던 이 땅에 1912년 중국인이 8필지, 프랑스인이 1필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마포는 한국 역사상 가장 국제적인 동네 중 하나였다.
7,985총 필지
4,464대지(최다)
19성씨 종류
139분묘지 필지
4국적 토지 소유
1912년 마포나루에 중국 상인이 8필지의 땅을 가지고 있었다. 이 한 줄의 기록이 마포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
7,985필지. 이 시리즈에서 가장 많은 필지 수다. 그런데 그 중 4,464필지가 대지다. 전체의 55.9%가 사람이 사는 집터라는 뜻이다. 영등포(443필지), 송파(640필지), 성동구(2,699필지)와 비교하면 마포구의 대지 집중도가 얼마나 압도적인지가 드러난다.
마포는 조선 시대 한강의 오강(五江) 중 하나였다. 삼남 지방의 세곡이 몰려들고, 서해안의 소금과 새우젓이 쌓이며, 강원도의 뗏목이 도착하는 곳. 수백 년간 한반도 물류의 중심축을 담당했던 이 나루터 주변에 사람들이 집을 짓고 상점을 열고 여관을 운영했다. 그 결과가 4,464필지라는 숫자다.
그리고 19개 성씨. 이 시리즈 최다 성씨 다양성이다. 이씨, 최씨, 박씨만이 아니라 조씨, 정씨, 윤씨, 장씨, 송씨, 오씨, 고씨, 유씨, 신씨, 안씨, 강씨, 노씨, 황씨, 차씨, 한씨, 홍씨까지. 전국에서 몰려든 상인들과 그 후손들이 마포에 뿌리를 내린 결과다. 그리고 그 위에 중국인 8필지, 프랑스인 1필지. 마포는 이미 1912년에 국제 도시였다.
목차
11912년 마포구 토지 통계 총괄
2대지 4,464필지 — 조선 상업도시의 증거
319개 성씨 — 전국에서 마포로 모인 사람들
4소유자 국적 분석 — 4개국의 땅이 된 마포
5마포나루 600년 역사 — 경강상인의 왕국
6분묘지 139필지 — 나루터 사람들의 마지막 자리
7사사지 5필지와 마포 신앙 공간의 역사
8문화재 지표조사·시굴조사·발굴조사의 필요성
9성공 사례와 감동으로 닫는 이야기

1
1912년 마포구 토지 통계 총괄 — 숫자로 보는 상업도시
1912년 마포구 토지조사부의 전체 현황을 정리한다. 7,985필지 9,957,450㎡. 이 시리즈에서 다룬 어느 구보다 필지 수가 많다. 그리고 그 내부 구성이 다른 구들과 확연히 다르다.
4,464필지대지(시리즈 최다)
2,538필지밭
729필지논
282필지국유지
148필지동양척식(주)
139필지분묘지
105필지일본인
64필지잡종지
43필지임야·법인
30필지마을 공유지
8필지중국인 소유
1필지프랑스인 소유
지목 | 필지 수 | 면적(㎡) | 면적 비율 | 비율 시각화 |
밭(田) | 2,538 | 4,982,142 | 50.0% | |
논(畓) | 729 | 2,609,023 | 26.2% | |
대지(垈) | 4,464 | 1,479,061 | 14.9% | |
분묘지 | 139 | 390,960 | 3.9% | |
임야(林野) | 43 | 322,804 | 3.2% | |
잡종지 | 64 | 167,399 | 1.7% | |
지소(池沼) | 2 | 4,343 | 0.044% | |
사사지(寺社地) | 5 | 1,692 | 0.017% | |
합계 | 7,985 | 9,957,424 | ≈100% |
지목 구성에서 가장 주목할 것은 대지 4,464필지의 압도적 수치다. 면적 비율로는 14.9%로 밭(50.0%)·논(26.2%)보다 낮지만, 필지 수로는 전체의 55.9%를 차지한다. 이것은 마포의 대지가 작은 필지로 촘촘하게 나뉘어 수많은 가구에 분산되어 있었음을 뜻한다. 즉 마포는 소수 지주가 넓은 땅을 독점하는 구조가 아니라, 많은 사람이 좁은 집터에서 상업과 생활을 함께 영위하는 도시형 구조였다.
분묘지 139필지 390,960㎡도 주목해야 한다. 영등포 13필지(46,899㎡), 성동구 137필지(239,392㎡)와 비교할 때 마포구의 분묘지는 필지 수에서 시리즈 공동 최다이고 면적에서는 단연 최다다. 마포나루를 오가던 수백 년의 상인들과 그 가족들이 묻힌 공간이 이 139필지 390,960㎡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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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대지 4,464필지 — 이 시리즈 최다, 조선 상업도시의 고고학적 증거
마포구 vs 다른 구 대지 필지 비교
4,464마포구 대지 필지
2,699성동구
640송파구
443영등포구
마포구의 대지 필지 수는 다음으로 많은 성동구(2,699필지)의 1.65배다. 단순 비교만으로도 마포구가 1912년 서울에서 얼마나 도시화된 지역이었는지가 확연히 드러난다.
4,464필지의 대지는 고고학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수백 년간 집이 허물어지고 다시 지어지는 반복 속에서 각 시기의 건물지, 우물, 화덕, 생활 유물이 층층이 쌓인다. 마포나루 주변의 대지 구역에서는 조선 초기부터 일제강점기에 걸친 상업 건물 유구, 창고 터, 여관지, 시장 관련 유구가 발굴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경강상인들이 물자를 보관하던 창고(광흥창 등)의 흔적은 중요한 발굴 대상이다.
마포구청 문화재 자료에는 광흥창지(廣興倉址)가 창전동 402번지 일대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 시대 왕실의 곡물을 저장하던 창고인 광흥창의 흔적이 이 일대 대지 구역과 겹칠 가능성이 있다. 1912년 대지 4,464필지의 분포 패턴을 분석하면 이 창고 관련 유구의 위치를 추정하는 데 결정적 도움이 된다.
3
19개 성씨 — 전국에서 마포로 모인 사람들의 이름
이 시리즈에서 가장 다양한 성씨 분포다. 영등포 7개, 송파 11개, 성동구 7개. 마포는 무려 19개 성씨가 100필지 이상을 소유하고 있었다. 이 숫자 하나가 마포가 얼마나 다양한 출신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는지를 말해준다.
이씨1,134필지1위
최씨510필지2위
박씨396필지3위
조씨316필지4위
정씨240필지5위
윤씨208필지6위
장씨172필지7위
송씨161필지8위
오씨159필지9위
고씨154필지10위
유씨148필지11위
신씨138필지12위
안씨138필지12위
강씨128필지14위
노씨116필지15위
황씨112필지16위
차씨108필지17위
한씨108필지17위
홍씨107필지19위
이씨 1,134필지가 압도적 1위지만 2위 최씨 510필지도 이 시리즈의 다른 구 2위들(영등포 김씨 537필지 수준)과 비슷하다. 그런데 마포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상위 성씨들의 격차가 작다는 것이다. 1위 이씨와 10위 고씨의 필지 차이는 980필지에 불과하다. 이것은 마포에 특정 가문이 독점적으로 토지를 장악하는 집성촌 구조보다는 다양한 가문이 고루 분산된 상업 도시형 토지 분포가 형성됐음을 보여준다.
특히 차씨 108필지의 존재가 흥미롭다. 차씨는 전국적으로 희귀한 성씨다. 마포 일대에 차씨 집성촌이 형성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것은 이 성씨 가문이 마포나루와 깊은 관련이 있는 상인 집안이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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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소유자 국적 분석 — 4개국의 땅이 된 마포나루
1912년 마포구는 조선인, 일본인, 중국인, 프랑스인 4개국 소유자의 토지가 공존하는 이례적인 지역이었다.
조선인 (성씨)약 7,367필지 · 92.3%
일본인105필지
중국인8필지
프랑스인1필지
중국인 8필지. 이것은 1912년 마포에 중국 상인이 실제로 토지를 소유하고 거주하고 있었음을 증명한다. 역사적 근거가 있다. 1892년 청국이 마포나루에 경사국(警査局)을 설치했을 때부터, 구한말에 중국 선박회사가 증기선을 마포나루와 인천 사이에 운행할 때까지, 마포는 중국 상인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던 거점이었다. 중국인 8필지의 토지 위치는 그 상업 거점의 위치를 추정하는 직접적인 단서가 된다.
프랑스인 1필지도 중요하다. 1866년 병인박해 당시 프랑스 군함이 서강까지 진입한 역사가 있고, 합정동의 절두산 순교성지는 천주교 박해와 관련된 사적지다. 마포 지역의 프랑스인 토지는 천주교 선교 관련 부지이거나 프랑스 공사관 관계자의 사택지일 가능성이 있다.
국제 상업도시 마포의 고고학적 의미
중국인 8필지와 프랑스인 1필지가 분포한 구역의 문화재 지표조사에서는 조선 유물 외에 청나라 도자기류, 서양식 건물 기초 흔적 등 이국적 유물이 출토될 가능성이 있다. 이런 국제 교류의 물적 증거는 한국 근대사 연구에서 매우 희귀하고 가치 있는 자료가 된다. 마포구 문화재 지표조사에서 이 필지들의 위치 파악은 필수 과제다.
조선인(성씨)
약 7,367필지 (92.3%)
92.3%
국유지
282필지 (3.5%)
3.5%
동양척식(주)
148필지
1.85%
일본인
105필지
법인
43필지
마을 공유지
30필지
중국인
8필지
프랑스인
1필지

5
마포나루 600년 역사 — 경강상인이 천하를 호령하던 곳
마포나루의 역사는 조선 건국과 함께 시작됐다. 한양을 수도로 정하면서 그 서쪽 한강변이 물자 집산지로 자리잡았다. 마포, 서강, 용호 세 포구를 합쳐 삼개(三浦)라 불렀고, 그 중 가장 번성한 것이 마포였다.
마포나루가 특별했던 이유는 위치에 있다. 수심이 깊어 큰 배가 정박하기 좋았고, 조수 간만의 차가 작아 선박 운영이 편했다. 서해와 한강이 만나는 이 지점에는 삼남 지방의 세곡, 강화도와 서해안의 소금과 새우젓, 인천의 수입 물자가 집결했다. 조선시대에 "이마가 까맣게 탄 사람은 마포 새우젓 장사"라는 말이 있었을 만큼 마포 상인들은 전국 물류망의 핵심이었다.
"마포에서 처음 생긴 '여객주인업'. 뱃사공과 상인들에게 숙식을 제공할 뿐 아니라 물건을 대신 팔아주고 시전상인과의 거래를 연결해주는 중개업까지. 이 최초의 유통 전문가들이 경강주인이다."
— 마포나루 역사 기록 (경강상인 관련 사료)
경강상인(京江商人)은 마포를 포함한 한강변을 기반으로 성장한 조선 후기 상인 집단이다. 단순한 운반업에서 시작해 어물·목재·소금의 유통망을 장악하고, 도성 안 시전 상인들과 경쟁하는 사상도고(私商都賈)로 성장했다. 이들이 경강변에 쌓은 자본과 인프라의 흔적이 지금도 마포구 땅 아래에 묻혀 있다. 1912년 대지 4,464필지는 그 흔적들의 위치를 가리키는 지도다.
6
분묘지 139필지 390,960㎡ — 이 시리즈 최대 면적, 나루터 사람들의 마지막 자리
분묘지 139필지 390,960㎡. 필지 수로는 성동구(137필지)와 비슷하지만 면적에서는 압도적이다. 성동구 분묘지 239,392㎡의 1.63배다. 이것은 마포구의 분묘지가 규모가 큰 묘역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평균 한 필지당 2,813㎡. 개인 무덤이 아니라 가문 전체의 선산 규모다.
마포나루를 수백 년간 운영한 경강상인 가문들, 왕실과 거래하던 광흥창 관련 관리들, 토정 이지함처럼 마포에 정착한 사대부 가문들의 묘역이 이 139필지 안에 있을 것이다. 조선 후기 상업 자본을 축적한 이들의 묘역에서는 분청사기·백자·동전·복식 유물이 출토될 가능성이 있다.
토정 이지함과 마포의 연결
마포구 토정동은 조선 중기 성리학자 토정(土亭) 이지함이 거주한 곳에서 지명이 유래됐다. 예지력이 뛰어난 학자로 알려진 이지함은 마포 한강변에 토정을 짓고 살면서 가난한 백성들을 도왔다. 그의 집터 부근에 설치된 기념표석이 지금도 토정동 삼성아파트 단지 입구에 있다. 이지함 관련 유구가 분묘지 또는 대지 필지와 연결된다면 역사적으로 중요한 발굴 성과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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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사사지 5필지와 마포 신앙 공간의 역사
마포구의 사사지는 5필지 1,692㎡다. 필지 수로는 성동구(8필지)보다 적지만, 마포의 사사지는 역사적 맥락이 풍부하다.
마포구청 문화재 목록에는 당인리부군당, 복개당(신수동), 공민왕 사당(창전동) 등 다양한 민간 신앙 시설이 기록되어 있다. 한강 나루터 주변의 어부와 뱃사공들에게 부군당은 안전 항해를 기원하는 핵심 신앙 공간이었다. 이 5필지의 사사지가 이런 민간 신앙 공간과 연결된다면, 한국 민간 신앙 관련 유물이 발굴될 수 있다.
또한 합정동의 서울 양화나루와 잠두봉 유적(사적 제399호)은 1866년 병인박해 때 천주교 순교자들이 처형된 장소다. 프랑스인 소유 1필지와 이 사적지의 지리적 연관성을 분석하는 것이 문화재 지표조사의 중요한 과제가 된다.
8
문화재 지표조사·시굴조사·발굴조사 — 마포에서의 4단계 전략
마포구 7,985필지는 조선 최대 상업항의 역사, 19개 성씨의 다양한 상인 문화, 4개국 토지 소유의 국제성, 139필지 분묘지의 방대한 묘역이 겹쳐있는 복합 문화유산 지대다. 이 땅에서 어떤 개발 행위가 이루어지든 철저한 문화재 지표조사가 선행되어야 한다.
조사 단계 | 마포구 핵심 적용 지점 | 기대 성과 |
문화재 지표조사 | 광흥창지 인근 대지 분포 분석·중국인 8필지 위치 현장 확인·마포나루터 주변 상업 유구 흔적·분묘지 139필지 현황 조사 | 조사 우선 구역 선정 |
시굴조사 | 나루터 인접 퇴적층 문화층 깊이 측정·대지 구역 조선 상업 건물지 트렌치 확인·분묘지 경계부 묘제 형식 파악 | 유구 성격·층위 확인 |
표본조사 | 경강상인 창고 관련 유구 선택 발굴·중국인 필지 인근 청나라 유물층 확인·사사지 5필지 부군당 유구 발굴 | 유적 범위·성격 파악 |
본발굴조사 | 전면 발굴·기록·보고서·국가유산청 보고·마포나루 역사 전시 연계 계획 | 역사 복원 완성 |
9
성공 사례와 마무리
마포구와 인접 지역의 발굴 사례들이 이 일대의 고고학적 가능성을 보여준다.
성공 사례 01
양화나루·잠두봉 유적 — 사적 지정으로 이어진 발굴 성과
합정동 절두산 일대 양화나루와 잠두봉 유적이 1997년 사적 제399호로 지정됐다. 병인박해 당시 순교한 천주교인들의 흔적, 조선시대 나루터 시설물의 석축, 관련 유물들이 확인됐다. 문화재 지표조사를 통해 유적의 성격이 파악됐고, 이것이 법적 보호로 이어진 모범 사례다. 1912년 토지조사부의 사사지 필지와 프랑스인 토지 기록이 이 발굴과 연결되는 역사적 맥락을 제공한다.
성공 사례 02
망원정터 발굴 — 조선 한강 명소의 실물 확인
서울시 기념물로 지정된 망원정터에 대한 발굴조사에서 조선시대 정자 건물지의 기초 흔적과 관련 유물이 확인됐다. 한강변 최대의 명소로 꼽혔던 망원정(원래 이름 희우정)의 실물 흔적을 찾아낸 이 발굴은, 마포구 대지 필지 구역에서 조선시대 상업·문화 시설의 유구가 발굴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성공 사례 03
행촌동 발굴 — 조선 시대 성 밖 취락 유구의 발견
마포구 인근 행촌동 재개발 현장에서 조선 시대 성 밖 취락 유구가 확인됐다. 한양 도성 외곽의 주거 패턴, 우물, 화덕 자리, 생활 토기류가 출토됐다. 이 사례는 마포구 대지 4,464필지 구역에서 유사한 취락 유구가 발굴될 수 있다는 직접적인 근거가 됐다. 1912년 대지 필지 분포와 현재 지적도를 대조한 문화재 지표조사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 · seoulheritag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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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 1,134필지, 최씨 510필지,
중국 상인 8필지, 프랑스인 1필지.
소금이 금보다 귀하던 나루터에서
전국의 사람들이 마포로 모여들었고
그 이름들이 땅 위에 새겨졌다.
19개 성씨와 4개국의 발자국이
지금도 마포의 흙 속에 남아 있다.
— 마포구 7,985필지, 600년의 기억을 위해
마포나루의 뱃사공 아리랑이 한강 위에 흘렀고, 경강상인의 흥정 소리가 나루터 시장을 가득 채웠다. 그 소리들은 사라졌지만, 그 사람들이 밟던 땅은 남아 있다. 삽 하나가 그 땅을 열면, 600년의 마포가 다시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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