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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서울 은평구 불광동 국유지는 몇 필지였을까? 부처의 빛이 머문 마을, 대지 열한 필지의 기록문화유산 시굴조사 · 표본조사 · 지표조사 · 발굴조사를 위한 기초조사
1912년 토지조사 기록 시리즈 · 은평구 편 1912년 서울 은평구 불광동 국유지는몇 필지였을까?부처의 빛이 머문 마을, 대지 열한 필지의 기록 문화유산 시굴조사 · 표본조사 · 지표조사 · 발굴조사를 위한 기초조사 18필지국유지 전체 15,748㎡총면적 2종지목 구성 북한산 그림자가 내려앉는 골짜기, 절집의 등불이 마을 이름이 된 땅. 1912년의 불광동은 열여덟 장의 토지대장 위에 그 살림살이를 고스란히 남겼습니다. 혹시 이런 생각,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동네가 110여 년 전에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연신내역의 인파도, 불광천변의 산책로도 없던 시절. 그 시절의 불광동을 숫자로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어떨까요. 놀랍게도 그 답은 이미 존재합니다. 1912년 토지조사사업이 남긴 기록 속에 말이죠. 오늘은 그 기록을 한 장 한 장 펼쳐보겠습니다. 이 글을 끝까지 읽으시면, 불광동이라는 땅의 첫 장부를 손에 쥐게 되실 겁니다
6분 분량


1912년 서울 용산구 동빙고동 국유지는 몇 필지였을까? 왕실 얼음창고 곁, 무덤의 땅 다섯 필지의 기록문화유산 시굴조사 · 표본조사 · 지표조사 · 발굴조사를 위한 기초조사
1912년 토지조사 기록 시리즈 · 용산구 편 1912년 서울 용산구 동빙고동 국유지는몇 필지였을까? 왕실 얼음창고 곁, 무덤의 땅 다섯 필지의 기록 문화유산 시굴조사 · 표본조사 · 지표조사 · 발굴조사를 위한 기초조사 국유지 12필지총 58,387㎡분묘지 29.8%지목 4종 핵심 요약 1912년 서울 용산구 동빙고동에는 국유지 12필지, 총 58,387㎡가 있었습니다. 지목별로는 밭이 5필지 26,343㎡로 가장 넓었고, 분묘지 5필지 17,381㎡, 잡종지 1필지 11,722㎡, 대지 1필지 2,938㎡ 순이었습니다. 특히 무덤의 땅인 분묘지가 국유지의 약 29.8%를 차지해, 조선왕실 제사용 얼음창고였던 동빙고의 역사와 맞닿는 독특한 구성을 보여줍니다. 이 동네 국유지의 3분의 1은, 무덤이었습니다. 장부를 열자 낯선 단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분묘지. 논도 밭도 대지도 아닌, 무덤의 땅.이 시리즈에서 좀처럼 주역으로 등장하지 않던 지목이 동
7분 분량


1912년 서울 영등포구 양화동 국유지는 몇 필지였을까? 장부 한 줄에 담긴 밭 162,618㎡, 버들 나루의 기록문화유산 시굴조사 · 표본조사 · 지표조사 · 발굴조사를 위한 기초조사
1912년 토지조사 기록 시리즈 · 영등포구 편 1912년 서울 영등포구 양화동 국유지는몇 필지였을까? 장부 한 줄에 담긴 밭 162,618㎡, 버들 나루의 기록 문화유산 시굴조사 · 표본조사 · 지표조사 · 발굴조사를 위한 기초조사 국유지 1필지총 162,618㎡밭 100%시리즈 신기록 3관왕 핵심 요약 1912년 서울 영등포구 양화동에는 국유지 1필지, 총 162,618㎡가 있었습니다. 이 중 밭이 1필지 162,618㎡로, 양화동 국유지 전체가 단 하나의 필지, 단 하나의 지목인 밭으로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필지 수는 시리즈 전체 최소이지만 한 필지의 면적은 축구장 약 22.8개에 달해, 단일 필지 규모로는 시리즈 역대 최대급 기록입니다. 이 동네의 국유지 장부는, 단 한 줄이면 끝납니다. 보통 한 동네의 국유지 기록을 열면 여러 필지가 줄줄이 이어집니다.논 몇 필지, 밭 몇 필지, 대지 몇 필지. 그런데 1912년 양화동의 장부는 다릅니다
7분 분량


1912년 서울 송파구 삼전동 국유지는 몇 필지였을까? 나루터가 사라진 자리, 4필지 전부가 잡종지였던 기록문화유산 시굴조사 · 표본조사 · 지표조사 · 발굴조사를 위한 기초조사
1912년 토지조사 기록 시리즈 · 송파구 편 1912년 서울 송파구 삼전동 국유지는몇 필지였을까? 나루터가 사라진 자리, 4필지 전부가 잡종지였던 기록 문화유산 시굴조사 · 표본조사 · 지표조사 · 발굴조사를 위한 기초조사 국유지 4필지총 63,160㎡잡종지 100%시리즈 신기록 핵심 요약 1912년 서울 송파구 삼전동에는 국유지 4필지, 총 63,160㎡가 있었습니다. 이 중 잡종지가 4필지 63,160㎡로, 삼전동 국유지 전체가 단 하나의 지목인 잡종지로만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논도 밭도 대지도 없이 잡종지 비율 100%를 기록한 이 구성은 삼전도 나루터가 있던 한강변 모래벌 지형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서울의 수백 개 동네 기록을 뒤져도, 이런 땅은 처음이었습니다. 논이 한 필지도 없습니다.밭도 없습니다.대지도, 임야도, 하천도 없습니다. 1912년 삼전동의 국유지 장부에는 오직 한 단어만 반복됩니다.잡종지. 잡종지. 잡종지
7분 분량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 1912년 토지조사 · 문화재 기초조사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 1912년 토지조사 · 문화재 기초조사 楊坪洞 — 양화진 나루 건너편의 땅 국유지 74필지,374,213㎡의 비밀 1912년 토지조사사업 기록으로 읽는 양평동.밭 52필지, 잡종지 6필지, 대지 16필지.한강이 기른 이 땅 아래에 무엇이 잠들어 있을까요. 버드나무 꽃 피던 양화진 나루 바로 건너편.조선 시대부터 한강 물이 키운 그 밭이,1912년에 국유지로 기록되었습니다. 지금의 영등포구 양평동은 공장과 아파트가 빼곡한 도심입니다. 하지만 1912년 토지조사사업 당시의 기록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집니다. 전체 국유지 74필지 가운데 무려 52필지, 면적으로는 204,602㎡가 밭이었습니다. 지금의 아파트 단지와 공장 부지가 100년 전에는 광활한 국유 농경지였다는 뜻입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잡종지입니다. 겨우 6필지인데 면적이 144,370㎡에 달합니다. 전체 국유지의 38.6%를 단 6필지가 차지하고 있는
8분 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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