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산이 내려다본 그 땅,1912년 도봉구의 잊혀진 기록
- 5월 31일
- 6분 분량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 지표조사 · 시굴조사
도봉산이 내려다본 그 땅,1912년 도봉구의 잊혀진 기록
도봉구 전체 2,435필지 · 7,095,298㎡ — 논이 밭보다 넓고, 공유지가 국유지보다 많았던 서울의 이례적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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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구에서 공유지가 국유지의 5배가 넘었다. 도대체 이 땅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지금의 도봉구는 도봉산과 수락산이 감싸는 서울 북쪽 끝 동네다. 그런데 1912년 이 땅의 기록을 들여다보면 범상치 않은 숫자들이 눈에 들어온다. 국유지는 단 10필지에 불과한데 공유지는 54필지나 된다. 논이 전체 면적의 56%를 넘는다. 연못이 세 개나 있다. 그리고 하나의 철도 필지가 106,850㎡라는 어마어마한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조사는 이 낯선 숫자들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꺼내는 작업이다.
목차
11912년 도봉구의 전체 규모 — 서울에서 가장 작은 면적의 실체
2논과 밭 — 논이 지배한 도봉구의 농경 풍경
3무덤·사사지·연못·철도 — 작은 땅 속의 다채로운 이야기
4성씨별 토지 소유 — 이씨와 한씨가 만든 도봉구의 지형도
5공유지·국유지·동양척식주식회사 — 도봉구 권력 구조의 역설
6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조사 — 도봉구 땅이 품은 역사의 층위

01 · 기초 통계
1912년 도봉구의 전체 규모 — 이 시리즈에서 가장 작은 면적
1912년 도봉구는 총 2,435필지, 면적 7,095,298㎡의 땅으로 기록되어 있다. 약 709헥타르로, 지금까지 이 시리즈에서 살펴본 구들 중 가장 작은 면적이다. 강서구(28,878,761㎡)의 약 24.6%, 강동구(16,053,906㎡)의 약 44.2%, 은평구(9,308,319㎡)의 약 76.2%에 해당한다. 필지 수 역시 2,435필지로 가장 적다.
그러나 규모가 작다고 해서 이야기가 빈약하지는 않다. 오히려 도봉구는 이 시리즈 전체에서 가장 이례적인 수치들을 담고 있는 지역이다. 공유지가 국유지보다 5배 이상 많고, 논이 밭보다 필지 수와 면적 모두에서 월등히 많으며, 철도용지 단 1필지가 구 전체 면적의 1.5%를 차지한다.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기관(seoulheritage.org)이 이 기록에서 주목하는 지점이 바로 이 이례성이다.
총 필지 수
2,435
필지
총 면적
7,095,298
㎡
논 필지
1,041
필지
밭 필지
1,023
필지
대지(집)
256
필지
임야(산)
93
필지
이 시리즈 면적 비교
강서구 1위
28,878,761㎡ — 도봉구의 4.1배
도봉구 위치
최소 면적
7,095,298㎡ — 시리즈 중 가장 작음
작은 면적임에도 대지 256필지는 전체의 10.5%로 이 시리즈에서 가장 높은 대지 비율이다. 강동구는 2.5%, 은평구는 4.9%였다. 도봉구가 같은 시기 다른 구에 비해 더 많은 주거 밀집이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도봉산 계곡을 따라 형성된 마을들이 좁은 면적에 촘촘히 모여 있었음을 알 수 있다.
02 · 농경지 분석
논과 밭 — 논이 지배한 도봉구의 농경 풍경

도봉구에서 가장 눈에 띄는 농경지 특성은 논이 밭을 압도한다는 점이다. 논은 1,041필지에 3,996,388㎡, 밭은 1,023필지에 2,203,633㎡였다. 필지 수는 논이 18필지 더 많은 수준으로 거의 비슷하지만, 면적에서는 논이 밭의 약 1.81배에 달했다. 즉 논 한 필지의 평균 면적(3,839㎡)이 밭 한 필지(2,154㎡)보다 훨씬 넓었다는 뜻이다.
이는 도봉구의 지형과 직결된다. 도봉산에서 발원하는 중랑천 상류 지류와 우이천이 흘러내리는 평야 지대에 대형 논이 형성되었고, 좁은 산기슭의 구릉지에 소규모 밭들이 촘촘히 들어서 있었다. 논의 총면적 3,996,388㎡는 전체 7,095,298㎡의 56.3%에 달한다. 도봉구의 땅 절반 이상이 논물이 찰랑이는 수전(水田)이었다는 이야기다.
논 56.3%밭 31.1%임야 7.8%대지 2.9%철도·기타 1.9%
논과 밭을 합산하면 2,064필지, 6,200,021㎡로 도봉구 전체의 87.4%다. 이 비율은 은평구(87.3%)와 거의 동일하다. 도봉구와 은평구 모두 북쪽 산악 지대를 배경으로 한 농촌 지역이었으며, 서울 외곽의 전형적인 논밭 지대로서 서울 도심의 식량을 공급하는 역할을 했다.
논 면적 3,996,388㎡는 현재 도봉구 면적(20.7㎢)의 약 19.3%에 해당한다. 지금의 도봉구 면적 5분의 1이 온전히 논이었다. 중랑천과 우이천 주변의 저지대 논은 문화재 지표조사에서 혐기성 환경 덕분에 유기물 유물이 잘 보존되는 구역으로 분류된다. 목제 농기구, 씨앗, 식물 화분 등의 유물이 출토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03 · 특수 지목
무덤·사사지·연못·철도 — 작은 땅 속의 다채로운 이야기
도봉구는 필지 수가 가장 적은 구지만, 지목의 다양성은 결코 작지 않다. 무덤, 즉 분묘지는 15필지에 18,076㎡였다. 필지당 평균 1,205㎡로 이 시리즈 중 필지당 규모가 중간 수준이다. 사사지는 3필지에 2,489㎡였다. 도봉구 내 도봉사, 회룡사 등 도봉산 일대의 사찰이 이 기록에 포함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못, 즉 지소(池沼)는 3필지에 7,897㎡였다. 강서구에 3개소, 서울 전체에 94필지였던 것과 비교하면, 도봉구에 연못이 3개나 있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필지당 평균 면적이 2,632㎡로 꽤 넓다. 산간 계곡에서 흘러내린 물이 자연적으로 모인 연못이거나, 인공적으로 조성된 저수지였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연못 주변은 수변 유적이 발견되는 경우가 있어 문화재 지표조사에서 주목받는 지점이다.
분묘지(무덤)
15
필지 / 18,076㎡
사사지
3
필지 / 2,489㎡
연못(지소)
3
필지 / 7,897㎡
철도용지
1
필지 / 106,850㎡
공유지
54
필지
국유지
10
필지
철도용지 1필지 106,850㎡ — 전체 면적의 1.5%, 축구장 15개 규모
그리고 이번에도 철도가 등장한다. 은평구의 경의선이 241,852㎡ 단 1필지였던 것처럼, 도봉구에서도 철도용지는 1필지에 106,850㎡였다. 경원선(서울~원산)이 도봉구를 관통했다. 1911년 개통된 이 철도는 당시 조선 북부를 연결하는 중요한 간선으로, 지금의 1호선 도봉역·방학역·도봉산역 일대의 선로 위치가 이 철도용지의 자취다. 하나의 필지가 구 전체 면적의 1.5%를 차지한다는 것은, 철도가 얼마나 넓은 선형 부지를 잘라내며 지역을 가로질렀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04 · 성씨별 토지 분포
성씨별 토지 소유 — 이씨와 한씨가 만든 도봉구의 지형도
1912년 도봉구의 성씨별 토지 소유 현황은 전체 필지 수가 2,435필지로 가장 작은 만큼, 상위 성씨의 집중도가 다른 구보다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씨가 503필지로 1위였다. 이는 전체 2,435필지의 20.7%에 해당한다. 다섯 필지 중 하나가 이씨 소유였다는 뜻이다.
이씨
503필지
김씨
374필지
한씨
163필지
조씨
161필지
박씨
117필지
2위 김씨(374필지)와 합산하면 877필지로 전체의 36%다. 여기서 특별히 주목해야 할 성씨는 한씨(韓氏)다. 163필지로 3위를 차지했다. 이 시리즈에서 지금까지 한씨가 3위 이상에 오른 것은 처음이다. 강서구에서 한씨는 160필지로 9위, 강동구에서는 10위권 밖이었다. 도봉구에서 한씨가 3위로 급부상한다는 것은 이 지역에 한씨 집성촌이 집중 형성되어 있었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4위 조씨(161필지)는 한씨와 단 2필지 차이다. 사실상 공동 3위라 해도 무방하다. 상위 5개 성씨만으로 1,318필지, 전체의 54.1%를 차지한다. 이 집중도는 강동구(상위 5위 합계 약 35%)나 은평구(상위 3위 합계 약 43.8%)보다 훨씬 높다. 도봉구가 특정 성씨 집성촌 중심의 폐쇄적 농촌 공동체 성격이 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공 사례 — 도봉구 성씨 집성촌과 발굴
도봉구 방학동 일대 재개발 사업 전 문화재 지표조사를 시행한 결과, 1912년 기록에서 이씨와 한씨 소유지가 밀집된 구역에서 조선 후기 기와편과 담장 기초석이 발견되었다. 이어진 시굴조사에서는 조선 중기 사대부가(士大夫家)로 추정되는 건물지 흔적과 분청사기 도편이 출토되었다. 이 결과는 도봉구가 단순 농촌이 아니라 조선 시대 사대부 가문들의 세거지(世居地)이기도 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가 되었다.
05 · 권력 구조의 역설
공유지·국유지·동양척식주식회사 — 도봉구 권력 구조의 역설

이 글의 첫 문장에서 던진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왜 도봉구에서는 공유지(54필지)가 국유지(10필지)보다 5.4배나 많았을까. 서울 전체 기록에서 국유지(7,883필지)는 공유지(143필지)의 55배였다. 그런데 도봉구에서는 이 비율이 완전히 역전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공유지(公有地)는 국가가 아닌 지역 공동체, 즉 마을이 공동으로 소유·관리하는 토지다. 54필지의 공유지는 도봉구의 강한 마을 공동체 문화를 보여준다. 도봉산 계곡마다 형성된 소규모 마을들이 산림과 물길을 공동 자산으로 관리하는 전통이 1912년까지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국유지가 10필지에 불과했다는 것은, 도봉구가 식민 정부의 직접 관할 범위에서 상대적으로 비켜나 있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동양척식주식회사는 달랐다. 도봉구에서 64필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국유지 10필지의 6.4배다. 국가 소유보다 수탈 기관 소유가 더 많다는 이 역설적 상황이 1912년 도봉구의 민낯이다. 공동체가 지켜온 땅은 행정 권력보다 수탈 자본이 먼저 파고들었다.
공유지
54
필지 (국유지의 5.4배)
동양척식주식회사
64
필지
국유지
10
필지
법인
8
필지
일본인
4
필지
일본인 개인 소유는 4필지로 이 시리즈에서 가장 적다. 강서구 15필지, 강동구 12필지, 은평구 14필지였던 것과 비교된다. 도봉구는 외곽 산간 지역이라 일본인 개인이 땅을 매입할 상업적 유인이 작았다. 대신 동양척식주식회사라는 조직이 체계적으로 64필지를 장악하고 있었다. 법인 소유 8필지도 이 시리즈에서 가장 적다. 도봉구는 그만큼 외부 자본의 시선이 덜 미쳤지만, 조직화된 수탈만큼은 예외 없이 도달해 있었다.
06 · 현재와의 연결
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조사 — 도봉구 땅이 품은 역사의 층위

도봉구는 도봉산과 수락산이라는 거대한 자연 환경 덕분에 개발 압력이 다른 구보다 상대적으로 낮았다. 그러나 그 낮은 개발 압력이 오히려 더 많은 역사 유적을 지하에 온전히 보존시켰을 가능성이 크다. 1912년 기록에서 확인된 분묘지 15필지, 사사지 3필지, 연못 3필지, 그리고 이씨·한씨 집성촌의 흔적들은 모두 문화재 지표조사의 핵심 대상이다.
특히 공유지 54필지의 위치가 중요하다. 마을 공동 소유지에는 마을 회관, 공동 우물, 공동 창고 등의 시설이 집중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공공 시설 터는 마을의 역사적 기억이 집약된 곳으로, 도기류와 금속 유물, 문서 유물이 함께 발견될 가능성이 높다. 문화재 지표조사 기관들은 공유지와 분묘지가 인접한 구역을 발굴 우선 순위 지점으로 설정한다.
도봉구는 현재도 도봉산 둘레길 정비, 방학동·창동 일대 도시재생 사업이 진행 중이다. 특히 방학동 연산군묘 인근 지역은 조선 왕실 관련 유적의 연장선상에 있어 문화재 지표조사가 매우 중요하다. 1912년 토지 기록에서 이씨 집중 소유지와 분묘지가 겹치는 이 구역에서는 발굴 전 반드시 표본조사가 선행되어야 한다.
성공 사례 — 공유지 주변 발굴과 마을 역사 복원
도봉구 도봉동 일대 소공원 조성 공사 전 문화재 지표조사를 시행한 결과, 1912년 기록에서 공유지와 인접한 구역에서 조선 시대 우물 석축 1기와 도기 파편 다수가 발견되었다. 이는 조선 후기 마을 공동 생활 공간의 흔적으로 해석되었으며, 현장 보존 처리 후 도봉구청 소규모 향토 전시관에 기록·전시되었다. 공유지 54필지라는 기록 하나가 마을 전체의 역사를 되살려낸 사례다.

2,435필지. 이 시리즈에서 가장 작은 숫자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의 밀도는 어느 구보다 높다. 논물을 댈 물길을 공동으로 관리하던 마을 사람들, 도봉산 계곡 사찰에서 새벽 예불을 올리던 스님들, 이씨 문중의 선산을 지키던 자손들, 경원선 기적 소리에 처음으로 먼 세계를 상상한 도봉 사람들, 그리고 공동체의 땅을 장부에 올린 수탈 기관의 관리들. 그 모두의 흔적이 도봉구의 땅 어딘가에 켜켜이 쌓여 있다.
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조사는 그 층위를 한 꺼풀씩 벗겨내는 일이다. 가장 작은 구에서, 가장 촘촘한 역사가 기다리고 있다.
도봉산은 모든 것을 보았다.2,435필지 위에서 살아간 사람들을.
54개의 공유지에서 공동체를 지켰던 마을 사람들, 선산을 지키며 조상의 뜻을 이어간 이씨와 한씨 집안의 자손들, 연못가에서 물을 긷던 누군가. 그들의 기억이 지금도 도봉구의 땅 아래 잠들어 있다. 우리가 그 기억에 귀를 기울이는 한, 도봉구는 아파트 단지가 아니라 살아있는 역사의 공간으로 남는다. 이 글을 읽은 당신이 그 기억을 이어가는 한 사람이 되어주길 바란다.
더 궁금한 게 있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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