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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속에 잠든 도봉구 창동의 112년 비밀1912년 국유지 134,255㎡가 품은 이야기

  • 5월 28일
  • 5분 분량

문화재 발굴조사 · 지표조사 · 창동 역사

땅속에 잠든 창동의 112년 비밀1912년 국유지 134,255㎡가 품은 이야기

서울 도봉구 창동, 지금은 아파트와 상가가 빼곡한 그 땅 아래에일제강점기 국유지 기록이 고스란히 숨쉬고 있습니다.

서울시 도봉구 창동기준연도 1912년문화유산 발굴·지표조사seoulheritage.org 기반

전체 국유지

134,255㎡

5필지 총 면적

임야 (3필지)

24,770㎡

전체의 약 18.5%

철도용지 (1필지)

106,850㎡

전체의 약 79.6%


목 차

01당신이 밟고 있는 그 땅, 정말 아무것도 없을까?

021912년 창동 국유지의 실체 — 숫자로 보는 역사

03철도용지 106,850㎡의 비밀 — 경원선이 남긴 흔적

04문화재 지표조사·시굴조사·발굴조사란 무엇인가

05창동에서 실제로 발굴된 이야기 — 성공 사례

06지금 당신이 할 수 있는 일


01당신이 밟고 있는 그 땅, 정말 아무것도 없을까?

지금 이 순간에도, 서울 어딘가의 땅속에서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잠들어 있습니다.



도봉구 창동은 지금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교통 요충지입니다. 지하철 1호선과 4호선이 교차하고, 동북선 연장 공사가 한창인 이곳은 재개발과 도시 재생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공사 현장 어딘가에는 112년 전의 기록이 고스란히 묻혀 있습니다.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전문 기관인 seoulheritage.org에서 진행한 1912년 지적원도 기반 기초조사에 따르면, 당시 창동에는 총 5필지, 134,255㎡에 달하는 국유지가 존재했습니다. 지금 기준으로 치면 축구장 약 19개 면적에 해당하는 거대한 공간입니다.

개발이 본격화되기 전에 이 땅이 어떤 역사적 맥락을 품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 그것이 바로 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조사의 출발점입니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땅 한 평 한 평에는 과거가 층층이 쌓여 있고, 그것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이 현재를 사는 우리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seoulheritage.org는 "100년 전 서울의 지도와 기록을 통해 잊혀진 역사를 되짚고, 그 속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풀어간다"는 사명 아래 서울 전역의 1912년 국유지를 체계적으로 조사하고 있습니다.


021912년 창동 국유지의 실체 — 숫자로 보는 역사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1912년 당시 창동 국유지의 구성을 살펴보면, 이 지역이 얼마나 복잡한 역사적 층위를 가지고 있는지 한눈에 보입니다.

지목 구분

필지 수

면적

전체 비율

임야 (산림지)

3필지

24,770㎡

약 18.5%

지소 (연못·저습지)

1필지

2,634㎡

약 2.0%

철도용지

1필지

106,850㎡

약 79.6%

합계

5필지

134,255㎡

100%

철도용지106,850㎡ (79.6%)

임야24,770㎡ (18.5%)

지소2,634㎡ (2.0%)

임야 3필지 24,770㎡은 지금의 초안산 일대와 연결되는 야산 지역으로 추정됩니다. 초안산에는 조선시대 내시들의 분묘를 비롯해 양반·서민·상궁 등 다양한 계층의 묘 1,000여 기가 분포하고 있어, 이 임야 지역이 단순한 산림이 아닌 문화유산의 보고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지소 1필지 2,634㎡는 창동 일대의 저습지 혹은 연못으로, 조선시대 생활환경을 그대로 담고 있는 흔적일 수 있습니다. 지표조사 과정에서 이런 습지 지형은 특히 유물 보존 상태가 양호한 경우가 많아 정밀 조사가 필요한 구역으로 분류됩니다.



03철도용지 106,850㎡의 비밀 — 경원선이 남긴 흔적

1912년 창동 국유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철도용지입니다. 1필지임에도 106,850㎡, 전체 국유지의 무려 79.6%를 차지하는 이 거대한 땅은 일제강점기의 핵심 인프라인 경원선(京元線)의 흔적입니다.

경원선은 1914년에 완전 개통된 철도로, 서울(용산)에서 원산까지 이어지는 한반도 동북부의 주요 간선 철도였습니다. 창동역이 이 경원선 노선상에 위치하면서, 창동 일대의 넓은 토지가 철도용지로 수용되었습니다. 1912년의 지적원도는 바로 이 대규모 철도용지가 국유지로 등록되기 시작하던 시점의 기록입니다.



문화재 발굴조사의 관점에서 이 철도용지는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철도 부설 당시 지표면 아래에 이미 존재하던 조선시대 생활 유적, 무덤군, 기와 파편 등이 그 깊은 토층 속에 보존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 일대는 조선시대부터 한양과 북부 지방을 잇는 교통로가 지나던 곳으로, 역사적 층위가 상당히 두터울 것으로 전문가들은 판단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서울역사박물관은 2005년부터 서울 지역 발굴조사를 진행하면서, 교통로 인근 지역에서 의외의 유물들이 다수 출토되는 사례를 확인해왔습니다. 창동 철도용지 또한 정밀 지표조사와 시굴조사를 거치면 그 역사적 가치가 새롭게 드러날 수 있습니다.

철도용지 아래에는 경원선 부설 이전의 생활 유적이 잠들어 있을 수 있습니다. 땅은 덮여도, 역사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04문화재 지표조사·시굴조사·발굴조사란 무엇인가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는 "문화재 발굴조사"나 "문화재 지표조사"라는 말을 들어봤지만 정확히 어떤 과정인지 잘 모르는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쉽게 설명하면, 개발 공사 전에 그 땅에 문화유산이 있는지 없는지를 단계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문화재 지표조사는 가장 먼저 실시하는 조사입니다. 땅을 파지 않고 지표면 위에 드러난 유물이나 유적의 흔적을 육안으로 확인하고 기록하는 방식입니다. 기와 조각, 자기 파편, 석재 등 지표에 노출된 흔적만으로도 그 아래에 유적이 있을 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지표조사는 개발행위로 인한 문화유산의 훼손과 멸실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핵심 제도로, 사업계획 수립 단계에서부터 반드시 실시해야 합니다.

표본조사는 그다음 단계로, 조사 대상 면적의 2% 이내에서 표본적으로 땅을 파보는 조사입니다. 지표조사에서 유적 가능성이 확인된 경우 시행하며, 국가유산청 허가 없이 해당 지자체의 지시만으로 진행할 수 있어 비교적 신속한 조사가 가능합니다.

시굴조사는 조사 면적의 10% 이내에서 실시하는 좀 더 본격적인 조사입니다. 트렌치(도랑)를 파서 유적의 층위와 분포 양상을 파악하고, 정밀발굴조사가 필요한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근거 자료를 만드는 것이 목적입니다.

마지막으로 정밀발굴조사는 유적이 확인된 구역에 대해 전면적으로 땅을 파서 유물을 수습하고 기록하는 가장 심층적인 조사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국가유산청의 정식 허가가 필요하며, 전문 발굴조사 기관이 참여해 체계적인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조사 단계

방법

범위

주요 목적

지표조사

육안 확인, 문헌조사

전 구역

유적 존재 가능성 판단

표본조사

소규모 굴착

2% 이내

분포·종류 표본 확인

시굴조사

트렌치 굴착

10% 이내

층위·분포 파악

정밀발굴조사

전면 굴착

유적 확인 구역

유물 수습·기록·보존

창동 국유지의 경우, 이 4단계 조사 중 지표조사와 기초조사가 선행되어야 이후 개발 계획과의 충돌 없이 역사적 가치를 보존할 수 있습니다. 특히 철도용지와 임야 구역은 각기 다른 성격의 유적이 잠들어 있을 가능성이 있어, 구역별 맞춤형 조사 설계가 중요합니다.


05창동에서 실제로 발굴된 이야기 — 성공 사례

창동과 도봉구 일대는 실제로 문화유산이 풍부한 지역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성공 사례는 바로 창동 초안산 분묘군입니다.



성공 사례 — 서울 초안산 분묘군 (사적 지정)

창동 초안산 일대에서는 체계적인 지표조사와 발굴조사를 통해 조선시대 내시 분묘를 중심으로 양반·서민·상궁 등 다양한 계층의 무덤 1,000여 기가 확인되었습니다. 이 발굴 성과를 바탕으로 2002년 국가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조선시대 묘제(墓制)와 석물 변천사를 연구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자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초안산 분묘군의 사례는 체계적인 조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줍니다. 만약 지표조사와 발굴조사 없이 무분별한 개발이 이루어졌다면, 이 1,000여 기의 무덤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것입니다. 15세기 이후의 문관석과 동자상들이 시기별로 다양하게 분포하고 있어 시대별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이 소중한 유산이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사전 조사 덕분이었습니다.

성공 사례 — 서울역사박물관 발굴조사 성과

서울역사박물관은 2005년부터 한양도성, 의정부지, 종묘광장, 수유동 가마터, 우이동 가마터, 진관사 등 서울 곳곳에서 발굴조사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조사 보고서를 발간하고 전시·교육·유적 전시관 건립의 기초 자료로 활용함으로써, 땅속의 역사를 시민의 일상 속으로 끌어내는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사례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먼저 조사하고, 그다음 결정한다'는 원칙입니다. 창동 국유지도 마찬가지입니다. 1912년 지적원도에 기록된 5필지 134,255㎡의 땅이 단순한 부지가 아닌 역사의 기록임을 인식하고, 체계적인 기초조사부터 시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seoulheritage.org에서 진행하는 서울 지역 1912년 국유지 조사 프로젝트는 바로 이런 맥락에서 출발합니다. 이미 종로구, 중구, 용산구, 성동구, 송파구 등 서울 전역의 기록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면서, 개발 이전에 반드시 확인해야 할 역사적 맥락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06지금 당신이 할 수 있는 일



역사는 전문가만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살고 있는 이 도시의 역사는 우리 모두의 것입니다. 창동 국유지의 이야기처럼, 1912년의 기록 하나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의 의미를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이 살고 있는 동네, 혹은 자주 걷는 그 길이 100여 년 전에는 어떤 땅이었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seoulheritage.org에서는 서울 전역의 1912년 국유지 데이터를 구별로 정리해 누구나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공개하고 있습니다. 도봉구를 포함한 25개 구의 기록이 계속해서 업데이트되고 있으니, 관심 있는 지역을 직접 검색해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당신이 건설·개발 사업을 계획 중이라면, 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조사 절차를 반드시 사전에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국가유산청과 해당 지자체에 문의하면 절차 안내를 받을 수 있으며, 전문 매장문화유산 조사기관을 통해 체계적인 조사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사전 조사는 비용과 시간이 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공사 도중 유물이 출토되어 공사가 전면 중단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안전한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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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동의 그 땅은 지금도 기다리고 있습니다.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를.112년 전 그곳을 걸었던 사람들의 발자국이,지금 우리가 밟는 이 땅 어딘가에 새겨져 있습니다.발굴조사는 단순히 땅을 파는 일이 아닙니다.그것은 잊혀진 이름들을 다시 불러내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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