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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1일, 강감찬이 개선하고 긴급조치가 위헌 판결 받은 날

  • 3월 21일
  • 4분 분량

HISTORY OF TODAY · 3월 21일

강감찬이 개선하고, 기후협약이 발효됐다

강감찬 귀주대첩 개선, 긴급조치 위헌 판결, 기후변화협약 발효, 나폴레옹 법전 발표


1019년 3월 21일, 강감찬 장군이 귀주대첩의 승리를 이끌고 개경으로 돌아왔습니다. 고려왕 현종이 직접 나가 장군을 맞이하고 연회를 베풀었습니다. 거란의 3차 침입을 막아낸 역사적인 승리였습니다. 그로부터 975년 뒤인 2013년 같은 날, 헌법재판소가 긴급조치 1·2·9호를 위헌으로 판결했습니다. 힘으로 막아낸 날과 법으로 바로잡은 날, 3월 21일의 두 장면입니다.


📑 목차

  1. 한국사 속 3월 21일 — 고대부터 근현대까지

  2. 세계사 속 3월 21일 — 나폴레옹 법전, 기후변화협약 발효

  3. 깊이 읽기 ① 강감찬 귀주대첩 개선 (1019)

  4. 깊이 읽기 ② 두산 구미 공장 낙동강 페놀 방류 사건 (1991)

  5. 깊이 읽기 ③ 긴급조치 1·2·9호 위헌 판결 (2013)

  6. 깊이 읽기 ④ 나폴레옹 법전(프랑스 민법전) 발표 (1804)

  7. 스토리텔링 — 1019년 3월 21일, 강감찬의 귀환

  8. 한 줄 인용 요약

  9. 수업·블로그 활용 가이드

  10. 키워드 & 해시태그


① 한국사 속 3월 21일

시기

음력

내용

수능

고려 현종 10년


(1019, 己未)

2.6

강감찬 장군 귀주대첩 개선 — 현종이 친히 나가 맞이하고 연회 및 포상

★★★★

조선 고종 42년


(1905, 乙巳)

-

도량형법 발표, 미터법 기준 제정

-

노태우 정부


(1991, 辛未)

-

두산전자 구미 공장, 낙동강 상수원에 발암 물질 페놀 325톤 방류 — 구속

김대중 정부


(2001, 辛巳)

-

현대그룹 창업자 정주영 사망 (86세)

-

박근혜 정부


(2013, 癸巳)

-

헌법재판소, 긴급조치 1·2·9호 전원일치로 위헌 판결

★★★

국무회의


(2006, 丙戌)

-

전두환·노태우 등 서훈 취소 요건 해당자 176명 훈장 환수 의결

-



② 세계사 속 3월 21일

연도

내용

수능

1804 (甲子)

나폴레옹 법전(프랑스 민법전) 발표 — 개인 평등·사유재산·계약 자유 원칙 성문화

★★★

1935 (乙亥)

페르시아, 나라 이름 '이란'으로 변경

-

1994 (甲戌)

기후변화협약 발효 —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하는 최초의 국제 협약

★★



③ 깊이 읽기 — 4대 핵심 사건

수능 핵심

1. 강감찬 귀주대첩 개선 (1019)

사건

강감찬이 거란 3차 침입을 귀주에서 대파하고 개경으로 개선함.

내용

1018년 소배압이 이끄는 거란 10만 대군의 침입을 물리친 귀주대첩. 거란군의 귀로를 차단하여 섬멸에 가까운 승리를 거뒀으며, 이후 고려-거란 간 실질적 전쟁이 종결됨.

중요성

고려 3대 침입 중 마지막이자 가장 결정적인 승리. 이후 고려가 동아시아의 균형 세력으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됨.

오늘날 의미

수능 고려 외침 단원에서 거란 1·2·3차 침입과 서희의 담판·강감찬의 귀주대첩은 반드시 정리해야 할 핵심 사건.

2. 두산 구미 공장 낙동강 페놀 방류 사건 (1991)

사건

두산전자 구미 공장이 발암 물질인 페놀 325톤을 낙동강 상수원에 방류한 사실이 드러남.

내용

페놀로 오염된 수돗물이 대구 시민들에게 공급되며 사회적 충격을 줌. 이후 두산 제품 불매 운동으로 이어졌으며, 당시 소비자 운동의 상징적 사건.

중요성

한국 환경 운동과 소비자 운동의 역사에서 대기업의 불법 행위에 맞선 시민 저항의 대표 사례.

오늘날 의미

이 사건을 계기로 환경 관련 법제가 강화되었으며, 기업 환경 책임 논의의 역사적 출발점 중 하나로 평가됨.

3. 긴급조치 1·2·9호 위헌 판결 (2013)

사건

헌법재판소가 박정희 정부 시절 발동된 긴급조치 1·2·9호를 재판관 전원일치로 위헌 판결함.

내용

1974~1975년 발동된 긴급조치들은 헌법 개정 청원, 반정부 발언, 집회 등을 금지하고 위반자를 군사법원에서 재판했음. 헌재는 이것이 참정권·표현의 자유·신체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판단.

중요성

유신 체제의 핵심 억압 수단이었던 긴급조치가 공식적으로 위헌임이 확인된 사건. 관련 피해자들의 재심 청구 길이 열림.

오늘날 의미

수능 현대사 단원에서 유신 체제와 긴급조치의 내용·성격을 정리할 때 이 위헌 판결은 역사 청산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사건.

4. 나폴레옹 법전(프랑스 민법전) 발표 (1804)

사건

나폴레옹 1세가 '민법전(Code Civil)', 즉 나폴레옹 법전을 공포함.

내용

개인 평등, 사유 재산 보호, 계약의 자유 원칙을 성문화. 프랑스 혁명의 정신을 법으로 구현한 것으로, 유럽과 세계 법제도에 큰 영향을 줌.

중요성

근대 시민법의 원형으로, 독일·스페인·이탈리아·일본 등의 법체계에 영향을 미쳤으며 한국 민법도 그 간접적 영향권 안에 있음.

오늘날 의미

수능 세계사에서 나폴레옹의 업적과 프랑스 혁명 이념의 확산을 논할 때 핵심적으로 다루어지는 사건.



④ 스토리텔링 — 1019년 3월 21일, 강감찬의 귀환

1019년 봄, 고려 개경에는 오랜만에 축제 분위기가 감돌았습니다. 거란의 3차 침입을 막아낸 강감찬 장군이 돌아오는 날이었습니다. 현종이 직접 교외까지 나가 장군을 맞이했습니다. 왕이 신하를 마중 나간다는 것은 극히 드문 예우였습니다.



1018년 겨울, 소배압이 이끄는 거란 10만 대군이 고려로 쳐들어왔을 때 강감찬은 20만 8천 명의 병사를 이끌었습니다. 귀주(현 평안북도 구성)에서 거란군의 퇴로를 차단하고 포위하여 섬멸했습니다. 거란군 중 살아서 돌아간 자가 수천 명에 불과했다고 기록은 전합니다.



이 승리 이후 거란은 다시는 고려를 침략하지 않았습니다. 강감찬이 개선한 1019년 3월 21일은, 993년부터 시작된 30년 가까운 거란과의 전쟁이 실질적으로 끝난 날이기도 했습니다.

1019년 3월 21일, 현종이 직접 교외로 나가 강감찬을 맞이했다.


왕이 신하를 마중 나간 날, 30년 전쟁의 마지막 장이 넘어갔다.



⑤ 수업·블로그 활용 가이드

  1. "거란의 고려 침입 1·2·3차를 표로 정리하고, 각 침입에서 고려가 취한 대응 방식(서희 담판·양규의 싸움·강감찬 귀주대첩)의 차이를 분석해보자."

  2. "두산 낙동강 페놀 사건이 한국 소비자 운동과 환경 법제 강화에 미친 영향을 정리해보자."

  3. "박정희 정부의 긴급조치가 발동된 배경(유신 체제·10월 유신)과 2013년 위헌 판결의 의미를 연결해 분석해보자."

  4. "나폴레옹 법전의 주요 원칙(개인 평등·사유 재산·계약 자유)이 한국 민법에 미친 간접적 영향을 조사해보자."

  5. "기후변화협약(1994)에서 파리협약(2015)까지 국제 기후 대응의 흐름을 연표로 정리해보자."



⑥ 키워드 & 해시태그

키워드(15): 강감찬, 귀주대첩, 3월 21일, 거란침입, 고려외침, 현종, 두산페놀사건, 낙동강오염, 소비자운동, 긴급조치위헌, 유신체제, 박정희, 나폴레옹법전, 기후변화협약, 정주영


이 글은 역사 교육, 블로그 글쓰기, 수업자료 제작을 위한 참고자료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내용 인용 시 아래와 같이 출처를 남겨주세요.



출처: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https://www.seoulheritag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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