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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1일, 강감찬이 개선하고 긴급조치가 위헌 판결 받은 날
HISTORY OF TODAY · 3월 21일 강감찬이 개선하고, 기후협약이 발효됐다 강감찬 귀주대첩 개선, 긴급조치 위헌 판결, 기후변화협약 발효, 나폴레옹 법전 발표 1019년 3월 21일, 강감찬 장군이 귀주대첩의 승리를 이끌고 개경으로 돌아왔습니다. 고려왕 현종이 직접 나가 장군을 맞이하고 연회를 베풀었습니다. 거란의 3차 침입을 막아낸 역사적인 승리였습니다. 그로부터 975년 뒤인 2013년 같은 날, 헌법재판소가 긴급조치 1·2·9호를 위헌으로 판결했습니다. 힘으로 막아낸 날과 법으로 바로잡은 날, 3월 21일의 두 장면입니다. 📑 목차 한국사 속 3월 21일 — 고대부터 근현대까지 세계사 속 3월 21일 — 나폴레옹 법전, 기후변화협약 발효 깊이 읽기 ① 강감찬 귀주대첩 개선 (1019) 깊이 읽기 ② 두산 구미 공장 낙동강 페놀 방류 사건 (1991) 깊이 읽기 ③ 긴급조치 1·2·9호 위헌 판결 (2013) 깊이 읽기 ④ 나폴레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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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 총성과 10·26 사건 — 10월 26일, 70년을 사이에 둔 두 발의 총소리
10월 26일 · OCTOBER 26th 총성 두 발, 시대가 바뀌다 —안중근의 의거와 10·26 사건 銃 — 같은 날짜, 70년의 간격을 둔 두 발의 총성과 역사의 전환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https://www.seoulheritage.org 오늘의 역사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총성이 울렸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다. 그리고 정확히 70년 뒤인 1979년 같은 날, 또 다른 총성이 청와대 인근 궁정동에서 울렸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한 것이다. 한 발의 총성은 식민지 침략자를 향했고, 다른 한 발은 18년 독재자를 향했다. 10월 26일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극적인 두 개의 총성이 새겨진 날이다. 안중근의 총성과 10·26 사건 — 10월 26일, 70년을 사이에 둔 두 발의 총소리 매소성 전투 대승부터 박정희 시해까지 — 10월 26일 한국사 1300년의 기록 이토 히로부미는 왜 하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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