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유지는 몇 필지였을까? 국가가 소유했던 그 쓸모없는 섬 문화유산 시굴조사 · 표본조사 · 발굴조사를 위한 기초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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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토지조사 기록 시리즈 · 영등포구 편 (국유지 특별편)
1912년 영등포구 여의도동국유지는 몇 필지였을까?
국가가 소유했던 그 쓸모없는 섬
문화유산 시굴조사 · 표본조사 · 발굴조사를 위한 기초조사
국유지 160필지잡종지 면적 72.2%밭 76필지임야 3필지
"너나 가져라"던 그 쓸모없는 섬의 상당 부분은,정작 어느 개인도 아닌 나라가 소유하고 있었다.
AI 브리핑 요약
1912년 영등포구 여의도동의 국유지는 총 160필지, 3,375,549㎡였습니다. 잡종지가 75필지 2,437,495㎡로 면적의 72.2%를 차지하며 압도적으로 넓었고, 밭이 76필지 769,686㎡로 필지 수가 가장 많았습니다. 임야 3필지, 대지 5필지, 사사지 1필지도 확인됩니다.
이 시리즈가 앞서 다룬 여의도동 전편에서 살펴본 것처럼, 여의도(汝矣島)라는 이름에는 "너나 가져라", "나의 섬이다, 너의 섬이다"라는 얄궂은 유래가 함께 전해집니다. 홍수 때마다 대부분이 잠기는 이 상습 범람원에서, 유일하게 물 위로 머리를 내밀었던 자리가 지금 국회의사당이 있는 양말산이었습니다. 이 산은 이름 그대로 조선 전기부터 국가가 양과 말을 기르던 목축 시설이 있던 자리였습니다.
1912년의 이 섬 국유지 장부에서, 잡종지가 단 75필지에 불과했음에도 2,437,495㎡, 국유지 전체 면적의 72.2%라는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잡종지 한 필지의 평균은 32,499.9㎡, 약 9,831평이라는 방대한 규모로, 이는 상습적으로 물에 잠기던 하천 부지와 범람원 대부분이 국가 소유로 관리되고 있었음을 강하게 시사합니다. 160장의, 국가가 관리하던 이 쓸모없는 섬의 기록을 지금부터 넘겨봅니다.

목차
1912년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유지는 어떤 곳이었나요?
국유지 잡종지 75필지, 범람원의 실체
국유지 밭 76필지는 얼마나 있었나요?
국유지 임야, 대지, 사사지는 어떤 자리였을까요?
데이터 검증 노트
지목별 현황 표
이 자료가 문화유산 기초조사에 중요한 이유
실제 발굴 성공 사례 세 가지
자주 묻는 질문
한 줄 결론
1. 1912년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유지는 어떤 곳이었나요?
1912년 영등포구 여의도동의 국유지는 총 160필지, 3,375,549㎡였습니다. 평으로 환산하면 약 1,021,088평이라는 방대한 규모입니다.
이 시리즈가 앞서 다룬 여의도동 전편에서 확인한 대로, 1912년 여의도동 전체는 489필지, 4,584,724㎡였습니다. 이번 국유지 160필지, 3,375,549㎡는 그 전체 면적의 73.6%에 달하는 압도적인 비중으로, 이 섬 대부분이 실제로는 국가 소유였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이 시리즈는 여의도동 전편에 이어 이번 국유지 편을 함께 다룹니다. 지금의 여의도는 국회의사당, KBS 사옥, 63빌딩, 서울국제금융센터가 자리한 정치·상업·금융의 중심지로, "너나 가져라"던 그 이름과는 완전히 다른 운명을 걷고 있습니다.
2. 국유지 잡종지 75필지, 범람원의 실체
1912년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유지에는 잡종지가 75필지, 2,437,495㎡ 있었습니다.
국유지 전체 필지의 46.9%, 면적으로는 72.2%를 차지하는 압도적인 비중입니다. 잡종지 한 필지의 평균은 32,499.9㎡, 약 9,831평이라는 이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도 최상위권의 방대한 규모입니다. 상습적으로 침수되던 하천 부지가 대부분 국유지로 편입되어 있었음을 이 수치가 명확히 보여줍니다.

3. 국유지 밭 76필지는 얼마나 있었나요?
1912년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유지에는 밭이 76필지, 769,686㎡ 있었습니다.
국유지 전체 필지의 47.5%로 가장 많은 필지 수를 이루는 지목입니다. 밭 한 필지의 평균은 10,127.4㎡, 약 3,064평이라는 넓은 규모입니다.
4. 국유지 임야, 대지, 사사지는 어떤 자리였을까요?
1912년 여의도동 국유지에는 임야가 3필지 140,122㎡, 대지가 5필지 28,033㎡, 사사지가 1필지 211㎡ 있었습니다.
임야 한 필지의 평균은 46,707.3㎡, 약 14,129평이라는 매우 넓은 규모로, 양말산 자락의 산림이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대지 5필지는 이 국유 섬 안에 있었던 소수의 국가 관련 건물 부지였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5. 데이터 검증 노트
검증 노트
본 글의 모든 수치는 게재 전 프로그램(Python) 산술 검증을 거쳤습니다.
필지 수 검증: 대지 5 + 임야 3 + 잡종지 75 + 사사지 1 + 밭 76 = 160필지로, 전체 합계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면적 검증: 28,033 + 140,122 + 2,437,495 + 211 + 769,686 = 3,375,547㎡로, 전체 면적 3,375,549㎡와 2㎡의 극히 근소한 차이가 확인되었습니다. 이는 평(坪) 단위를 제곱미터로 환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정상적인 반올림 오차로 판단됩니다.
6. 지목별 현황 표
구분 | 필지 수 | 면적(㎡) | 필지 비율 | 면적 비율 |
잡종지 | 75필지 | 2,437,495㎡ | 46.9% | 72.2% |
밭 | 76필지 | 769,686㎡ | 47.5% | 22.8% |
임야 | 3필지 | 140,122㎡ | 1.9% | 4.2% |
대지 | 5필지 | 28,033㎡ | 3.1% | 0.8% |
사사지 | 1필지 | 211㎡ | 0.6% | 0.01% |
전체 | 160필지 | 3,375,549㎡ | 100% | 100% |
표 설명: 1912년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유지의 지목별 현황으로, 밭이 필지 수, 잡종지가 면적에서 각각 최대 비중을 차지한다.
시리즈 기록 노트
여의도동 국유지는 이 섬 전체 면적의 73.6%를 차지하는 이 시리즈 최상위권 국유지 비중 사례로 기록됩니다. 잡종지 평균 필지 32,499.9㎡ 역시 이 시리즈 최상위권 규모입니다.
여의도동 전편에 이은 영등포구 국유지 특별편입니다.
7. 이 자료가 문화유산 기초조사에 중요한 이유
114년 전의 필지 목록이 지금 왜 중요한지, 답은 법에 있습니다.
매장유산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법률 제20742호)과 국가유산청고시 제2026-2호에 따라, 일정 규모 이상의 개발 사업은 착공 전에 매장유산 조사를 거쳐야 합니다. 지표조사에서 표본조사로, 시굴조사에서 발굴조사로 이어지는 판단의 출발점이 이런 문헌 기초조사입니다.
여의도동 국유지의 기록은 조사 전략에 각별한 신호를 보냅니다. 첫째, 양말산이라는 국가 목축 시설의 정확한 경계와 그 국유지 편입 시기를 확인하는 일은 조선시대와 근대 초기 국유지 관리 정책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둘째, 이 섬 국유지의 72.2%를 차지했던 광대한 잡종지가 정확히 어떤 하천 관리 목적으로 활용되었는지를 규명하는 일도 근대 치수 행정사 연구에 흥미로운 과제입니다. 셋째, 사사지 1필지가 정확히 어떤 종교 시설과 관련되어 있었는지도 이 섬의 신앙사 연구에 의미가 있습니다.
"너나 가져라"던 그 쓸모없는 섬의 실제 주인은, 어느 개인도 아닌 나라 자신이었습니다. 100년이 넘는 세월을 건너, 그 국유지는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와 금융의 심장부로 완전히 다른 운명을 걷고 있습니다.
8. 실제 발굴 성공 사례 세 가지
밤섬의 희생, 여의도를 새롭게 탄생시킨 개발사
1968년, 여의도 제방인 윤중제 공사를 위해 인근 밤섬이 폭파되었습니다. 그 돌로 채워진 제방 덕분에 상습 침수 지역이었던 여의도는 비로소 안정된 땅이 되었고, 이후 국회의사당을 비롯한 주요 시설이 들어서며 서울의 중심으로 거듭났습니다. 국유지였던 이 광대한 잡종지가 안정된 택지로 전환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입니다.
동대문운동장 아래에서 나온 조선의 군영
2008년, 동대문운동장 철거 부지에서 조선 시대 하도감 터와 성곽 수문인 이간수문이 통째로 드러났습니다. 발굴 덕분에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의 설계가 바뀌었고, 유구는 현장에 보존되어 역사 공원이 되었습니다.
인사동 금속활자, 항아리 하나에 담긴 세계사
2021년, 종로 인사동의 재개발 부지에서 항아리 하나가 나왔습니다. 그 안에는 세종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금속활자 1,600여 점이 담겨 있었습니다. 훈민정음 창제 직후의 한글 활자가 실물로 확인된 순간이었습니다. 조사 없이 공사가 진행되었다면 영원히 사라졌을 유산입니다.
세 사례의 공통점은 하나입니다. 조사가 있었기에 발견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첫 단추는 언제나 1912년 토지조사부 같은 문헌을 읽는 일에서 시작됩니다.

9. 자주 묻는 질문
Q. 1912년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유지는 총 몇 필지였나요?
A. 총 160필지, 3,375,549㎡(약 1,021,088평)였으며, 이는 여의도동 전체 면적의 73.6%에 달하는 비중입니다.
Q. 왜 여의도의 대부분이 국유지였나요?
A. 상습적으로 홍수에 잠기던 범람원이었기 때문입니다. 개인이 소유하기 어려운 하천 부지 대부분이 국가 관리 대상인 잡종지로 편입되어 있었습니다.
Q. 양말산은 국유지와 어떤 관계가 있나요?
A. 지금 국회의사당이 자리한 양말산은 조선 전기부터 국가가 양과 말을 기르던 목축 시설이 있던 자리로, 홍수 때도 물에 잠기지 않던 이 섬의 유일한 고지대였습니다.
Q. 지금 여의도는 어떻게 달라졌나요?
A. 1968년 밤섬을 헐어 윤중제를 쌓은 이후 침수 위험에서 벗어나, 국회의사당과 63빌딩, 서울국제금융센터가 자리한 서울의 정치·금융 중심지로 완전히 탈바꿈했습니다.
10. 한 줄 결론
한 줄 결론
한 줄로 정리하면, 1912년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유지는 총 160필지 3,375,549㎡로 이 섬 전체 면적의 73.6%를 차지했으며, 잡종지가 그 대부분을 이루는 가운데, "너나 가져라"던 그 쓸모없는 섬의 실제 주인이 국가 자신이었음을 보여주는 기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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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는 문화재 지표조사, 표본조사, 시굴조사, 발굴조사를 위한 기초조사 자료를 동 단위로 정리해 공개하고 있습니다. 문화재 발굴 기관을 찾고 계시거나, 개발 예정 부지의 매장유산 조사가 필요하시다면 지금 방문해 보세요.

출처 및 자료 기준
본 글은 1912년 토지조사부 및 국유지 관련 기초자료를 바탕으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유지의 토지 이용 현황을 정리한 글입니다.
자료 기준: 1912년 토지조사사업 국유지 기록
분석 대상: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유지
분석 항목: 필지 수, 지목(대지·임야·잡종지·사사지·밭), 면적
관련 법령: 매장유산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법률 제20742호), 국가유산청고시 제2026-2호
출처: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https://www.seoulheritage.org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https://www.seoulheritage.org ©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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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는 글 · 산문시
"너나 가져라"던 그 쓸모없는 섬의 상당 부분은,
정작 어느 개인도 아닌 나라가 소유하고 있었다.
일흔다섯 곳의 드넓은 잡종지가 이 국유지의 대부분을 채우고,
일흔여섯 뙈기의 밭이 그 곁을 함께 지켰다.
섬 전체 면적의 사분의 삼에 가까운 땅이, 국가의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물에 잠길 때마다 머리만 내밀던 그 양말산은, 이제 국회의 지붕이 되었다.
밤섬이 스러진 자리에서, 이 국유의 섬은 완전히 새로운 운명을 얻었다.
당신이 이 글을 끝까지 읽은 것으로,
여의도동 국유지의 160필지에 다시 그 쓸모없던 섬의 반전이 되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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