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성동구 송정동 국유지는 몇 필지였을까? 숫말을 기르던 그 들판이 소나무 정자가 되기까지 문화유산 시굴조사 · 표본조사 · 발굴조사를 위한 기초조사
1912년 토지조사 기록 시리즈 · 성동구 편 (국유지 특별편)
1912년 성동구 송정동국유지는 몇 필지였을까?
숫말을 기르던 그 들판이 소나무 정자가 되기까지
문화유산 시굴조사 · 표본조사 · 발굴조사를 위한 기초조사
국유지 52필지잡종지 면적 85.5%밭 41필지논 3필지
숫말을 기르던 그 들판의 이름은, 세월이 흐르며 소리만 남기고전혀 다른 뜻의 한자로 옷을 갈아입었다.
AI 브리핑 요약
1912년 성동구 송정동의 국유지는 총 52필지, 1,000,735㎡였습니다. 잡종지가 단 6필지에 불과했지만 855,960㎡, 국유지 전체 면적의 85.5%를 차지하는 압도적인 비중이었습니다. 밭이 41필지로 필지 수가 가장 많았고, 논 3필지, 대지 2필지도 확인됩니다.
송정동(松亭洞)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명확한 문헌이나 구비설화가 남아 있지 않지만, 흥미로운 추정이 전해집니다. 송정동 앞에는 예로부터 '솔마장벌' 또는 '양마장평'이라 불리던 들판이 있었는데, 이는 조선시대 국가가 관리하던 양마장(솔마장)과 관련된 이름이었습니다. '숫말을 기르는 곳'이라는 뜻의 '숫마장'이 세월이 흐르며 소리가 변해 '솔마장'이 되었고, 이것이 다시 한자 '송정(松亭)'으로 옮겨졌다는 것입니다.
이 마을은 이 시리즈가 앞서 다룬 성동구 마장동(국가 양마장)과 같은 뿌리를 지닌 지명으로, 성동구 일대 전체가 조선시대 국가의 말 목축 정책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한강과 중랑천이 만나는 이 저지대는, 장마철마다 중랑천이 범람해 일시적인 섬(뚝섬)을 이루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런 지리적 특성 때문에 이 지역은 오래도록 농경지와 목축지로 활용되며 큰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1912년의 이 마을 국유지 장부에서, 잡종지가 단 6필지에 불과했음에도 855,960㎡, 국유지 전체 면적의 85.5%라는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잡종지 한 필지의 평균은 142,660.0㎡, 약 43,155평이라는 이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도 최상위권의 방대한 규모로, 중랑천 범람원과 옛 목장 부지 대부분이 국유지로 남아 있었음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52장의, 숫말을 기르던 들판의 오랜 기억이 새겨진 이 자리의 기록을 지금부터 넘겨봅니다.

목차
1912년 성동구 송정동 국유지는 어떤 곳이었나요?
국유지 잡종지 6필지, 중랑천 범람원의 실체
국유지 밭 41필지는 얼마나 있었나요?
국유지 논과 대지는 어떤 자리였을까요?
데이터 검증 노트
지목별 현황 표
이 자료가 문화유산 기초조사에 중요한 이유
실제 발굴 성공 사례 세 가지
자주 묻는 질문
한 줄 결론
1. 1912년 성동구 송정동 국유지는 어떤 곳이었나요?
1912년 성동구 송정동의 국유지는 총 52필지, 1,000,735㎡였습니다. 평으로 환산하면 약 302,722평이라는 방대한 규모입니다.
조선시대 경기도 양주군 고양주면에 속했던 이 마을은, 1894년 갑오개혁 때 한성부 남서 두모방 전관계 장내능동이 되었습니다. 1911년 경성부 두모면 장내능동이었다가, 1914년 경기도 고양군 독도면 송정리가 되었습니다. 1949년 서울특별시 성동구로 편입되었고, 1950년 지금의 송정동이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이 시리즈는 앞서 성동구의 성수1가, 성수2가, 상왕십리, 사근동, 마장동, 금호동을 다루었습니다. 이번 송정동 국유지 편은 그 국유지 특별편입니다. 지금의 송정동은 중랑천변에 조성된 2.5km에 이르는 송정벚꽃길로 유명하며, 벚나무와 은행나무, 장미가 이어진 성동구의 대표적인 산책로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2. 국유지 잡종지 6필지, 중랑천 범람원의 실체
1912년 성동구 송정동 국유지에는 잡종지가 6필지, 855,960㎡ 있었습니다.
국유지 전체 필지의 11.5%에 불과했지만, 면적으로는 85.5%라는 압도적인 비중입니다. 잡종지 한 필지의 평균은 142,660.0㎡, 약 43,155평이라는 이 시리즈 최상위권의 방대한 규모입니다. 중랑천이 자주 범람하던 이 저지대의 실체가, 이 극단적인 지목 구성 속에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3. 국유지 밭 41필지는 얼마나 있었나요?
1912년 성동구 송정동 국유지에는 밭이 41필지, 114,251㎡ 있었습니다.
국유지 전체 필지의 78.8%로 가장 많은 필지 수를 이루는 지목입니다. 밭 한 필지의 평균은 2,786.6㎡, 약 843평입니다. 솔마장벌이라는 옛 목장 인근에, 국가 소유의 많은 밭들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4. 국유지 논과 대지는 어떤 자리였을까요?
1912년 송정동 국유지에는 논이 3필지 29,623㎡, 대지가 2필지 899㎡ 있었습니다.
논 한 필지의 평균은 9,874.3㎡, 약 2,987평이라는 매우 넓은 배미였습니다. 대지 2필지, 평균 449.5㎡는 국가가 관리하던 소규모 시설 부지였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5. 데이터 검증 노트
검증 노트
본 글의 모든 수치는 게재 전 프로그램(Python) 산술 검증을 거쳤습니다.
필지 수 검증: 논 3 + 대지 2 + 잡종지 6 + 밭 41 = 52필지로, 전체 합계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면적 검증: 29,623 + 899 + 855,960 + 114,251 = 1,000,733㎡로, 전체 면적 1,000,735㎡와 2㎡의 극히 근소한 차이가 확인되었습니다. 이는 평(坪) 단위를 제곱미터로 환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정상적인 반올림 오차로 판단됩니다.
6. 지목별 현황 표
구분 | 필지 수 | 면적(㎡) | 필지 비율 | 면적 비율 |
잡종지 | 6필지 | 855,960㎡ | 11.5% | 85.5% |
밭 | 41필지 | 114,251㎡ | 78.8% | 11.4% |
논 | 3필지 | 29,623㎡ | 5.8% | 3.0% |
대지 | 2필지 | 899㎡ | 3.8% | 0.1% |
전체 | 52필지 | 1,000,735㎡ | 100% | 100% |
표 설명: 1912년 성동구 송정동 국유지의 지목별 현황으로, 밭이 필지 수, 잡종지가 면적에서 각각 압도적 비중을 차지한다.
시리즈 기록 노트
송정동은 마장동, 등촌동, 면목동, 여의도동, 목동, 성수2가에 이은 이 시리즈 일곱 번째 목축 관련 지명(숫마장→솔마장→송정) 사례로 기록됩니다. 잡종지 평균 필지 142,660.0㎡는 이 시리즈 전체 최상위권 규모입니다.
성수1가, 성수2가, 상왕십리, 사근동, 마장동, 금호동에 이은 성동구 국유지 특별편입니다.
7. 이 자료가 문화유산 기초조사에 중요한 이유
114년 전의 필지 목록이 지금 왜 중요한지, 답은 법에 있습니다.
매장유산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법률 제20742호)과 국가유산청고시 제2026-2호에 따라, 일정 규모 이상의 개발 사업은 착공 전에 매장유산 조사를 거쳐야 합니다. 지표조사에서 표본조사로, 시굴조사에서 발굴조사로 이어지는 판단의 출발점이 이런 문헌 기초조사입니다.
송정동의 기록은 조사 전략에 각별한 신호를 보냅니다. 첫째, 솔마장벌(양마장평)이라는 옛 목장의 정확한 경계와 마장동 양마장과의 관계를 규명하는 일은 조선시대 국가 목축 정책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둘째, 중랑천 범람원이었던 이 저지대의 원형 물길과 그 변천 과정을 확인하는 일도 한강 유역 수문학적 변천사 연구에 흥미로운 과제입니다. 셋째, '숫마장'이라는 순우리말이 '솔마장'을 거쳐 '송정'이라는 한자로 정착되는 과정을 언어학적으로 정밀 분석하는 일도 지명학 연구에 의미가 있습니다.
숫말을 기르던 그 넓은 들판의 이름은, 소리만 남긴 채 전혀 다른 뜻의 한자 옷을 입고 지금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그 오랜 변천의 흔적은, 지금도 송정이라는 이름 속에 조용히 잠들어 있습니다.
8. 실제 발굴 성공 사례 세 가지
마장동, 이웃 마을에서 확인된 조선시대 국가 목장
이 시리즈가 앞서 다룬 성동구 마장동은 조선시대 국가 양마장이 실제로 있던 자리였습니다. 송정동의 '숫마장' 유래설이 사실이라면, 두 마을은 같은 목장 정책의 서로 다른 구역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 두 지역을 함께 정밀 조사한다면, 조선시대 성동구 일대에 펼쳐졌던 국가 목축 체계의 전체 규모를 온전히 복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동대문운동장 아래에서 나온 조선의 군영
2008년, 동대문운동장 철거 부지에서 조선 시대 하도감 터와 성곽 수문인 이간수문이 통째로 드러났습니다. 발굴 덕분에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의 설계가 바뀌었고, 유구는 현장에 보존되어 역사 공원이 되었습니다.
인사동 금속활자, 항아리 하나에 담긴 세계사
2021년, 종로 인사동의 재개발 부지에서 항아리 하나가 나왔습니다. 그 안에는 세종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금속활자 1,600여 점이 담겨 있었습니다. 훈민정음 창제 직후의 한글 활자가 실물로 확인된 순간이었습니다. 조사 없이 공사가 진행되었다면 영원히 사라졌을 유산입니다.
세 사례의 공통점은 하나입니다. 조사가 있었기에 발견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첫 단추는 언제나 1912년 토지조사부 같은 문헌을 읽는 일에서 시작됩니다.

9. 자주 묻는 질문
Q. 1912년 성동구 송정동 국유지는 총 몇 필지였나요?
A. 총 52필지, 1,000,735㎡(약 302,722평)였습니다.
Q. 송정동이라는 이름은 어디서 왔나요?
A. 명확한 문헌 기록은 없지만, 솔마장벌(양마장평)이라는 옛 목장 들판의 이름 '숫마장'(숫말을 기르는 곳)이 '솔마장'을 거쳐 한자 '송정(松亭)'으로 정착되었다는 추정이 전해집니다.
Q. 송정동은 마장동과 어떤 관계가 있나요?
A. 둘 다 조선시대 국가 양마장과 관련된 지명으로 추정됩니다. 마장동은 실제 양마장 자리였고, 송정동은 그 인근 들판(솔마장벌)이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Q. 왜 송정동 국유지에 잡종지가 이렇게 많았나요?
A. 중랑천이 자주 범람하던 저지대였기 때문입니다. 잡종지는 단 6필지였지만 국유지 전체 면적의 85.5%를 차지했습니다.
10. 한 줄 결론
한 줄 결론
한 줄로 정리하면, 1912년 성동구 송정동 국유지는 총 52필지 1,000,735㎡로, 잡종지가 면적의 85.5%를 차지하는 압도적인 비중을 이루었으며, 숫말을 기르던 옛 목장의 이름이 소리만 남긴 채 소나무 정자라는 전혀 다른 뜻의 한자로 정착된, 지명 변천의 흥미로운 흔적을 간직한 땅이었습니다.
서울 25개 구 전체의 1912년 기록이 궁금하다면
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는 문화재 지표조사, 표본조사, 시굴조사, 발굴조사를 위한 기초조사 자료를 동 단위로 정리해 공개하고 있습니다. 문화재 발굴 기관을 찾고 계시거나, 개발 예정 부지의 매장유산 조사가 필요하시다면 지금 방문해 보세요.

출처 및 자료 기준
본 글은 1912년 토지조사부 및 국유지 관련 기초자료를 바탕으로 서울 성동구 송정동 국유지의 토지 이용 현황을 정리한 글입니다.
자료 기준: 1912년 토지조사사업 국유지 기록
분석 대상: 서울특별시 성동구 송정동 국유지
분석 항목: 필지 수, 지목(논·대지·잡종지·밭), 면적
관련 법령: 매장유산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법률 제20742호), 국가유산청고시 제2026-2호
출처: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https://www.seoulheritage.org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https://www.seoulheritage.org ©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1912년#성동구송정동#송정동#솔마장벌#숫마장#송정벚꽃길#중랑천#마장동#금호동#토지조사사업#문화재발굴
닫는 글 · 산문시
숫말을 기르던 그 들판의 이름은, 세월이 흐르며 소리만 남기고
전혀 다른 뜻의 한자로 옷을 갈아입었다.
여섯 곳의 드넓은 잡종지가 이 국유지 면적의 대부분을 채우고,
마흔한 뙈기의 밭이 그 곁을 함께 지켰다.
숫마장에서 솔마장으로, 다시 송정으로, 그 이름은 세 번의 옷을 갈아입었다.
중랑천이 범람할 때마다, 이 벌판은 섬이 되었다가 다시 육지가 되곤 했다.
이제 그 자리에는 벚꽃 흩날리는 산책로가 봄마다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당신이 이 글을 끝까지 읽은 것으로,
송정동 국유지의 52필지에 다시 그 숫마장의 이야기가 되살아났다.





잡종지가 85.5%를 차지했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숫말을 기르던 들판이라는 유래도 흥미롭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