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진구 능동, 1912년 과거로 떠나는 짜릿한 타임슬립!
- 2025년 4월 1일
- 8분 분량
문화재 발굴조사 · 광진 역사
어린이대공원 그 땅, 원래 황후의 무덤이었다.
그리고 1912년 기록에는 그 흔적이 숫자로 남아 있어. 묘지 11필지 60,796㎡. 이 숫자가 뭘 의미하는지, 지금부터 이야기할게.
1912년 광진구 능동, 어린이대공원 아래 잠든 황후의 기억 — 문화재 발굴조사·지표조사로 되살아나는 대한제국 마지막 황실의 흔적
seoulheritage.org 기반 분석 | 문화재 발굴기관 · 지표조사 · 시굴조사 · 표본조사 | 광진구 문화유산
목차
1. 능동(陵洞)이라는 이름 — 황후의 능이 만들어낸 동네
2. 1912년 능동 토지 통계 — 449필지에 담긴 논밭과 능골 마을의 얼굴
3. 밭 219필지, 논 109필지 — 황후 능 옆에서 살아간 사람들의 농경지
4. 묘지 11필지 60,796㎡의 비밀 — 이 숫자가 유강원과 연결되는 이유
5. 잡종지 340,484㎡와 임야 — 능 관리 구역이 품은 광활한 땅
6. 박씨·김씨·최씨가 나눠 가진 땅 — 능골 마을 다섯 가문의 이야기
7. 유강원에서 골프장, 그리고 어린이대공원까지 — 한 땅의 100년 변천사
8. 문화재 지표조사란 무엇인가 — 황실 능역 인근에서의 특별한 접근법
9. 실제 성공 사례 — 1912년 기록이 왕실 관련 지역 발굴을 바꾼 이야기
10. 마무리 — 놀이터 아래 잠든 황후에게 우리가 전할 수 있는 것
1.능동(陵洞)이라는 이름 — 황후의 능이 만들어낸 동네
능동(陵洞). 한자 그대로 '능이 있는 마을'이야. 이 이름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를 알면 능동의 역사가 전혀 다르게 보여.
1904년, 대한제국의 황태자 순종(이척)의 태자비 민씨가 세상을 떠났어. 순종의 비, 나중에 순명효황후로 추존된 인물이야. 황태자비의 능을 어디에 만들지 결정해야 했을 때, 조선 왕실은 지금의 능동, 용마산 기슭 부근을 선택했어. 그 능을 유강원(裕康園)이라고 불렀어.
유강원이 조성된 이후 이 동네는 '능골'이라고 불리기 시작했어. 능이 있는 골짜기. 그 능골이 시간이 흐르면서 능동이 됐어. 지금 광진구 능동이라는 이름이 120년 전 황태자비의 죽음에서 시작된 거야.
그리고 1912년,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이 시작됐을 때 능동의 기록이 처음으로 공식 문서에 고정됐어. 그 시점은 유강원이 조성된 지 8년이 지난 때야. 황후의 능이 이 땅에 존재하고 있었고, 그 주변으로 마을 사람들이 논밭을 일구며 살았어. 그 모든 것이 449필지라는 숫자 속에 담겨 있어.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seoulheritage.org)는 이 1912년 기록을 분석해서 광진구 일대 문화재 발굴조사와 지표조사의 기초 자료로 제공하고 있어. 능동이라는 이름 자체가 역사 유적인 이 동네에서, 1912년 기록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지금부터 하나씩 풀어볼게.

2.1912년 능동 토지 통계 — 449필지에 담긴 논밭과 능골 마을의 얼굴
1912년 능동의 토지 기록을 숫자로 보면 이 동네가 얼마나 다층적인 공간이었는지가 한눈에 들어와.
1912년 광진구 능동 토지 통계 요약 (seoulheritage.org 기반)
전체 필지 수449필지
전체 면적1,275,351㎡
밭 (전)219필지 / 420,477㎡ (전체의 약 33%)
잡종지3필지 / 340,484㎡ (전체의 약 27%)
논 (수전)109필지 / 303,346㎡ (전체의 약 24%)
임야 (산)9필지 / 105,934㎡ (전체의 약 8%)
묘지 (무덤)11필지 / 60,796㎡ (전체의 약 5%)
대지 (집터)98필지 / 44,310㎡
주요 소유 성씨 1위박씨 39필지
주요 소유 성씨 2위김씨 32필지
주요 소유 성씨 3위최씨 25필지
1,275,351㎡. 축구장 약 178개를 합쳐놓은 크기야. 이 넓은 땅의 구성이 흥미로워. 밭 33%, 잡종지 27%, 논 24%의 순서인데, 잡종지가 두 번째로 크다는 게 눈에 띄어. 잡종지 3필지가 무려 340,484㎡야. 필지 수는 3개뿐인데 면적이 엄청나. 이 잡종지가 무엇인지가 능동 1912년 기록의 핵심 미스터리야.
그리고 묘지 11필지 60,796㎡. 이건 다른 동네와 비교했을 때 규모가 눈에 띄게 커. 단순한 마을 공동묘지 수준이 아니야. 이 묘지의 정체가 뭔지를 역사 기록과 교차하면, 놀라운 연결이 나타나.
3.밭 219필지, 논 109필지 — 황후 능 옆에서 살아간 사람들의 농경지
유강원이 있던 능골 마을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1912년 기록이 보여주는 건 논밭이 이 마을의 생활 기반이었다는 거야. 밭 219필지 420,477㎡, 논 109필지 303,346㎡. 합치면 328필지 723,823㎡로 전체의 57%가 논밭이었어.
능동은 지금의 서울 광진구 동쪽에 위치해. 용마산 서쪽 기슭을 끼고 있고, 중랑천 지류가 흘러내려오는 지형이야. 이 물길이 논농사를 가능하게 했어. 산기슭에는 계단식 밭이 펼쳐지고, 평지에는 논이 조성됐을 거야. 황태자비의 능이 들어선 이후에도 마을 사람들은 바로 그 옆에서 매일 새벽 논밭으로 나가 일을 했어.
능의 참봉(능지기)이 이 마을에서 상당한 세도를 누렸다고 해. 황태자비의 능을 관리하는 역할이었으니 그 권위가 보통이 아니었겠지. 마을 사람들 입장에서는 황실과 연결된 공간 옆에서 농사를 짓는 독특한 일상을 살았을 거야. 그 긴장감과 경건함이 매일 농사를 지으면서도 유지됐을 거야.
그 농경지 어딘가에 당시 사람들이 쓰던 농기구의 파편, 씨앗을 담던 도기 조각, 밭두렁의 경계석이 잠들어 있을 수 있어. 그리고 혹시 황실 관련 물품이 농경지 주변에서 발견된다면, 그 가치는 일반 생활 유물과는 완전히 달라질 거야.

4.묘지 11필지 60,796㎡의 비밀 — 이 숫자가 유강원과 연결되는 이유
이제 능동 1912년 기록에서 가장 무게감 있는 항목을 살펴볼 차례야. 묘지 11필지 60,796㎡.
다른 서울 동네들의 묘지 기록과 비교해볼게. 구로동은 1필지, 세곡동은 7필지, 반포동은 5필지. 능동은 11필지야. 필지 수도 많지만 더 중요한 건 면적이야. 60,796㎡. 축구장 8개를 합쳐놓은 크기야. 이 규모는 단순한 마을 공동묘지가 아니야.
유강원(裕康園)의 면적과 1912년 묘지 기록의 연결
1904년 유강원이 조성될 때 황태자비의 능역으로 상당한 면적이 확보됐어. 황후나 황태자비의 능역은 능침 구역을 포함해서 경계를 넓게 설정하는 게 조선 왕실의 관례야. 1912년 기록의 묘지 11필지 60,796㎡는 바로 이 유강원 능역의 일부 또는 전부와 겹칠 가능성이 높아. 유강원의 능침과 주변 관리 구역, 석물이 배치된 공간이 묘지로 기록됐을 가능성이 있는 거야. 지금도 어린이대공원 안에는 유강원 때의 석물 20여 기가 남아 있어. 그 석물들이 1912년 기록의 묘지 필지 위에 있었을 가능성이 있어.
이 연결이 문화재 발굴조사에서 왜 중요하냐고? 황실 능역의 석물 주변에는 조선 왕실 문화의 흔적이 남아 있어. 제례 용품, 능역 관리를 위한 도구, 건물 기초 석재, 기와 조각이 그 주변에 분포할 수 있어. 능역을 조성하면서 만든 석조 시설의 기초부가 지표 아래에 남아 있을 가능성도 있어.
어린이대공원 안에 남아 있는 유강원 석물들, 그리고 1912년 기록의 묘지 11필지. 이 두 가지를 교차하면 능동이라는 동네가 얼마나 독특한 역사 층위를 가지고 있는지가 선명하게 드러나.

5.잡종지 340,484㎡와 임야 — 능 관리 구역이 품은 광활한 땅
능동 1912년 기록에서 면적으로 두 번째로 큰 지목이 잡종지야. 3필지인데 합산 면적이 340,484㎡야. 밭 다음으로 넓어. 이 잡종지의 정체를 밝히는 게 능동 역사 분석의 핵심이야.
잡종지는 농사도, 주거도 아닌 다목적 토지야. 일반적인 농촌 마을에서 잡종지는 공용 작업장, 창고, 가축 공간으로 쓰여. 근데 능동처럼 황실 능역이 있는 지역에서 잡종지가 340,484㎡나 된다는 건 달리 해석할 여지가 있어. 이 면적이 유강원 능역의 경계 구역, 즉 능침을 직접 둘러싸지는 않지만 능역 관리를 위해 확보된 완충 지대였을 가능성이 있어. 황실 능역은 능침 외에도 주변 일정 범위를 관리 구역으로 설정하는 경우가 많거든.
임야 9필지 105,934㎡도 능동의 공간 구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용마산 기슭의 산림이야. 조선시대 왕릉 주변의 임야는 단순히 나무가 우거진 공간이 아니었어. 능역을 보호하는 금산(禁山)으로 지정되어 일반인이 벌목하거나 출입하는 걸 금지하는 경우가 있었어. 1912년 기록의 임야 9필지가 그런 보호 구역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잡종지 340,484㎡와 임야 105,934㎡를 합치면 446,418㎡야. 전체 면적의 35%가 넘어. 이 땅이 능 관련 구역이었다면, 능동의 실질적인 절반 가까이가 황실과 연관된 공간이었다는 뜻이야. 그 안에 어떤 유적이 잠들어 있을지는 발굴조사가 대답해야 해.
6.박씨·김씨·최씨가 나눠 가진 땅 — 능골 마을 다섯 가문의 이야기
유강원이 있는 능골 마을에서 땅을 가진 가문들은 누구였을까? 1912년 기록에 따르면 박씨 39필지가 1위, 김씨 32필지가 2위, 최씨 25필지가 3위야. 그 뒤를 곽씨 11필지, 이씨 10필지가 따르고 있어.
박씨 — 39필지
1위. 능동에서 박씨 가문이 가장 많은 땅을 가지고 있었어. 밭과 집터 중심의 집성촌을 형성했을 가능성이 높아. 능골 북촌·남촌·서촌 중 어느 쪽을 중심으로 했는지가 발굴 예측의 핵심이야.
김씨 — 32필지
2위. 박씨와 함께 마을의 두 축을 이룬 가문. 논 중심 구역에 집중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있어. 집성촌 구역에서 생활 유물 집중 출토가 기대돼.
최씨 — 25필지
3위. 상당한 규모의 집성촌을 형성했을 가능성이 있어. 최씨 가문이 능역 관리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었는지도 흥미로운 연구 주제야.
곽씨·이씨 — 11·10필지
4·5위. 곽씨 11필지, 이씨 10필지. 곽씨는 비교적 드문 성씨야. 능동에서 곽씨가 11필지를 차지했다는 건 이 지역에 곽씨 집성촌이 있었다는 뜻이야. 집중 유물 출토 예측 구역이 될 수 있어.
이 성씨 분포에서 흥미로운 게 하나 있어. 유강원을 조성한 황태자비 민씨는 여흥 민씨야. 1912년 기록에서 민씨가 주요 성씨 상위 5위 안에 없어. 근데 이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야. 황실 능역과 직접 관련된 토지는 일반 민간인 명의로 등록되지 않을 수 있거든. 황실 소유 토지나 국유지는 다른 방식으로 기록됐을 가능성이 있어. 그 부분이 잡종지 340,484㎡와 연결될 수도 있어.
혹시 능동이나 주변 광진구에 사는 박씨, 김씨, 최씨, 곽씨, 이씨 독자 있어? 1912년 기록에 네 조상의 이름이 있을 수 있어. 황후의 능 옆에서 농사를 짓고 살았던 그 사람들의 후손이 지금도 이 동네에 살고 있을 수 있어.
7.유강원에서 골프장, 그리고 어린이대공원까지 — 한 땅의 100년 변천사
능동의 그 땅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시간 순서로 보면, 이 동네의 역사가 얼마나 드라마틱한지가 느껴져.
1904년
황태자비 민씨(순명효황후) 훙서. 용마산 기슭 능동 일대에 유강원 조성. 이후 이 일대를 '능골'이라 부르기 시작함.
1907년
순종 즉위 후 순명효황후로 추존, 유강원이 유릉으로 격상.
1912년
일제 토지조사사업. 능동 449필지, 1,275,351㎡ 기록. 묘지 11필지 60,796㎡, 잡종지 3필지 340,484㎡ 포함.
1926년
순종 승하. 순명효황후 유해를 남양주 홍릉 옆 유릉으로 이장·합장. 능동 터에는 석물만 남음.
1929년
빈 능터에 '경성 골프구락부' 18홀 골프장 조성. 조선총독부 고관과 친일 귀족의 사교장이 됨.
1973년
박정희 대통령 지시로 골프장을 어린이공원으로 전환. 5월 5일 서울어린이대공원 개원. 유강원 석물 20여 기는 현재도 공원 내에 보존 중.
이 타임라인이 말해주는 건 한 가지야. 지금 어린이들이 뛰노는 어린이대공원 땅이, 120년 전에는 황후의 능이었다는 거야. 그리고 1912년에는 그 능 주변으로 마을 사람들이 논밭을 일구며 살았어. 그 흔적이 지금도 땅 아래에 남아 있을 수 있어.
지금도 어린이대공원 내부에서 유강원 석물을 직접 볼 수 있어. 공원 안을 걷다가 그 돌들을 만나거든, 잠깐 발을 멈춰줘. 1912년 기록의 묘지 11필지가 그 돌들과 연결될 수 있어.

8.문화재 지표조사란 무엇인가 — 황실 능역 인근에서의 특별한 접근법
능동처럼 황실 능역이 있었던 지역에서는 문화재 지표조사가 일반 농경지 지역과는 다른 방식으로 설계되어야 해. 유강원 석물이 현재도 어린이대공원 내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 이 지역의 발굴 잠재성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야.
1
지표조사 — 유강원 석물 위치와 1912년 묘지 필지 대조
현재 어린이대공원 내 유강원 석물의 위치를 1912년 묘지 11필지의 추정 분포 구역과 대조하는 게 첫 단계야. 석물이 원위치를 유지하고 있다면, 그 석물 주변 일정 반경이 발굴 우선 구역이 돼.
2
표본조사 — 묘지·잡종지·집터 구역을 별도로 설계
능동의 묘지 11필지, 잡종지 3필지, 대지 98필지는 각기 다른 종류의 유물 가능성을 품고 있어. 표본조사 포인트를 이 세 유형별로 분리해서 설정하면 조사 면적 2% 이내에서 가장 효율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어.
3
시굴조사 — 황실 능역 경계 구역 집중 탐색
잡종지 340,484㎡가 능역 관리 구역이었을 가능성을 고려해서, 유강원 석물 주변 반경에서 수평 탐색 트렌치를 병행하는 게 중요해. 능역 경계를 나타내던 석재 구조물이나 배수 시설의 잔재가 나올 수 있어.
4
본발굴조사 — 황실 관련 유적 발견 시 즉시 국가유산청과 협의
황실 능역 관련 유물이 확인되면 일반 생활 유물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보존 논의가 필요해. 발굴 전에 이 가능성을 인지하고, 국가유산청 전담 부서와 사전 소통하는 게 중요해. 황실 유적은 발견 즉시 보도 자료가 나갈 수 있어.
능동 일대에서 개발이나 공사를 계획한다면, 특히 어린이대공원 인근이거나 유강원 석물 반경에 해당하는 구역이라면 반드시 문화재 지표조사를 먼저 진행해야 해. seoulheritage.org에서 광진구 전체의 1912년 역사 지적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어.
9.실제 성공 사례 — 1912년 기록이 왕실 관련 지역 발굴을 바꾼 이야기
능동과 비슷한 맥락에서 1912년 기록이 발굴 성과로 이어진 사례들을 살펴볼게.
사례 1 — 강남구 세곡동: 조선 왕실 관련 기와가마 4기 발굴
2013년 세곡2 보금자리주택 발굴에서 조선 전기 기와가마 4기와 왕실 사찰 추정 건물터가 출토됐어. 인근에 광평대군 묘역이 있는 지역이야. 왕실 관련 묘역 인근에서는 이런 종류의 관련 시설이 함께 발견된다는 걸 보여준 사례야. 능동도 황실 능역이 있었던 만큼 동일한 가능성을 품고 있어.
사례 2 — 서울 종로구 공평동: 역사 기록 교차로 금속활자 발굴
공평동 발굴은 1912년 기록과 조선시대 문헌을 교차 분석해서 유적 방향을 잡았어. 금속활자, 일성정시의, 주전 등 귀중한 유물이 나왔어. 능동도 유강원 관련 문헌 기록과 1912년 지목 기록을 교차하면 발굴 방향이 훨씬 정밀해질 수 있어.
사례 3 — 서울 용산구 한남동: 분묘지 23필지가 발굴 방향 결정
한남동 1912년 기록에 분묘지 23필지 18,958㎡가 있었어. seoulheritage.org가 이 분묘지 분포를 발굴 방향 설정에 활용했어. 실제 조사에서 도자기 조각, 묘비 파편, 제기류가 출토됐어. 능동의 묘지 11필지 60,796㎡는 면적이 훨씬 크고, 황실 능역과 연결될 가능성까지 더해져 잠재적 발굴 가치가 훨씬 높아.
이 세 사례가 공통으로 말하는 건 하나야. 역사 기록을 먼저 분석하고 발굴 방향을 설정했을 때, 유물 발견 확률과 발굴 효율이 모두 올라간다는 거야. 능동의 449필지도 그 경로를 따르면 황후의 기억을 다시 꺼낼 수 있어.

10.마무리 — 놀이터 아래 잠든 황후에게 우리가 전할 수 있는 것
이 글을 여기까지 읽었다면, 이제 어린이대공원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을 거야. 아이들 손 잡고 놀이기구 타러 가면서, 혹은 잔디밭에 돗자리 깔고 누워 하늘 보면서, 잠깐만 그 땅의 이야기를 생각해줘.
1904년, 스물두 살의 젊은 황후가 이 땅에 묻혔어. 순명효황후 민씨. 그녀의 능이 조성되면서 마을 이름이 바뀌었어. 능골, 그리고 능동. 그 이름이 120년이 지난 지금도 여기 있어.
박씨 39필지. 김씨 32필지. 최씨 25필지. 곽씨 11필지. 이씨 10필지. 그 황후의 능 옆에서 매일 아침 논밭으로 나가 일했던 사람들이야.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그 땅을 일군 덕분에 능 주변이 오래 보호됐어.
1912년 기록의 묘지 11필지 60,796㎡. 그 숫자가 지금 어린이대공원 안에 남아 있는 유강원 석물들과 연결된다면, 그 돌들 아래 아직도 황후의 기억이 잠들어 있을 수 있어. 놀이기구 소리와 아이들 웃음소리 아래에 120년 전 황후의 흔적이 있는 거야.
우리가 그 기억을 기억하는 것. 그게 어쩌면 스물두 살에 세상을 떠나 이름 없이 잊혀갈 뻔했던 황후에게 전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예의일 수 있어. 다음에 어린이대공원을 지나가거든, 유강원 석물 앞에서 잠깐만 발을 멈춰줘. 거기, 황후가 있었어.

황후의 이름에서 마을 이름이 생겼고,
그 마을 이름이 120년을 버텼다.
어린이의 웃음소리 아래
황후의 기억이 아직 잠들어 있다.
우리가 기억하는 한,
그 이름은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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