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광진구 구의동 국유지 3필지 37,887㎡ — 전부 임야. 논도 밭도 대지도 없이, 오직 숲만 있었던 이 땅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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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표조사임야 발굴조사한강변 국유림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숲,구의동 임야 100%가숨기고 있는 것
1912년 광진구 구의동 국유지 3필지 37,887㎡ — 전부 임야. 논도 밭도 대지도 없이, 오직 숲만 있었던 이 땅의 비밀.
논도, 밭도, 건물도 없었습니다.
오직 숲만 있었습니다.
그 숲이 110년째 지키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서울 광진구 구의동. 지금은 구의역 주변 고층 아파트와 커피숍, 그리고 한강시민공원이 펼쳐진 이 동네는 110년 전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1912년 토지 대장에 기록된 구의동 국유지는 3필지, 37,887㎡. 그리고 이 세 필지는 전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임야(林野)였습니다. 비율로 100%입니다.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시리즈를 통틀어 단일 지목이 100%를 차지하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이 단순한 사실 하나가 역설적으로 가장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왜 이 땅에는 농경지도, 건물도, 어떤 다른 용도의 토지도 없었을까요? 무엇이 이 숲을 100년 넘게 지켜온 것일까요? 지금부터 그 이유를 함께 파헤쳐 보겠습니다.
3필지총 국유지 필지 수
37,887㎡총 면적 (약 11,461평)
100%임야 비율 — 단일 지목 완전 구성
목 차
1.임야 100% — 이 사실이 왜 특별한가
2.구의동(九宜洞)의 지형과 한강이 만든 역사
3.국유 임야의 세 가지 정체 — 능림·군사림·봉산
4.임야 발굴조사의 특수성 — 숲속에서 역사를 찾는 법
5.지표조사부터 발굴조사까지 — 구의동 조사 전략
6.광진구 발굴 성공 사례와 구의동의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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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야 100% — 이 사실이 왜 특별한가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시리즈에서 지금까지 살펴본 국유지들은 모두 다양한 지목이 섞여 있었습니다. 논과 밭이 함께 있거나, 대지와 임야가 공존하거나, 철도용지라는 특수 지목이 더해지거나. 어떤 형태로든 복합적인 구성을 보여왔습니다. 그런데 구의동 국유지는 다릅니다. 3필지 37,887㎡, 전부 임야. 이 완전한 단일 구성이 오히려 가장 강력한 역사적 신호입니다.
왜 단일 지목이 특별할까요? 한 지역 국유지가 단 하나의 지목으로만 구성되어 있다는 것은, 이 토지가 명확하고 단일한 목적 하에 국가에 의해 관리되었을 가능성이 높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저것 혼재된 토지가 아니라, 특정 이유로 철저하게 관리된 숲이었다는 뜻입니다. 조선 시대에 이런 방식으로 관리된 국유 임야에는 크게 세 가지 유형이 있었습니다. 왕릉이나 왕실 묘소 주변의 보호 숲인 능림(陵林), 군사 목적의 금산(禁山), 그리고 국가가 목재 자원을 보호하기 위해 지정한 봉산(封山)입니다. 구의동 임야 3필지가 이 중 어느 유형에 해당하는지를 밝히는 것이 문화재 기초조사의 핵심 목표가 됩니다.
100%
전체 국유지가 임야 — 단일 지목 완전 구성
3필지 37,887㎡ · 논 0㎡ · 밭 0㎡ · 대지 0㎡ · 철도용지 0㎡
이 시리즈에서 극히 드문 '순수 임야' 국유지
토지 유형 | 필지 수 | 면적 (㎡) | 비율 |
임야 (林野) | 3필지 | 37,887㎡ | 100% |
합계 | 3필지 | 37,887㎡ | 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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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동(九宜洞)의 지형과 한강이 만든 역사
구의동이라는 이름은 '아홉 가지로 마땅한 동네'라는 뜻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조선 시대 지명 연구에서는 '구이(九伊)'에서 변화된 표기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어떤 어원이든, 구의동은 한강과 매우 깊은 관계를 가진 땅입니다. 지금의 구의동은 한강 북안(北岸), 즉 한강의 북쪽 강변에 위치합니다. 동쪽으로는 광나루 나루터 방향, 서쪽으로는 뚝섬 방향으로 이어지는 이 지역은 조선 시대 한강 수운(水運)의 핵심 경유지였습니다.
구의동 국유 임야 3필지 37,887㎡는 이 한강변 구릉지에 자리 잡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강과 만나는 낮은 구릉 지대는 조선 시대에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였습니다. 강을 건너는 적을 감시하고 방어하기에 최적화된 지형이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광진구 일대, 특히 광나루 주변은 조선 시대부터 한강 방어의 거점이었고 이와 관련된 군사 시설의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이 맥락에서 구의동 임야가 군사 목적의 금산(禁山)으로 지정·관리되었을 가능성은 충분히 검토할 가치가 있습니다.
또 하나의 시각은 조선 왕실과의 연결입니다. 광진구 일대에는 조선 시대 왕실과 관련된 시설과 토지가 여럿 존재했습니다. 뚝섬 일대의 대규모 국유지(군자동 130필지 1,189,235㎡)가 그 대표적 사례입니다. 구의동 임야가 왕실 수렵지, 왕실 묘소 관련 보호림, 혹은 왕실 행차 경로와 연결된 보호 구역이었을 가능성도 역사적으로 검토되어야 합니다.
구의동 국유지
37,887㎡
3필지 · 임야 100% · 한강변 구릉지
광진구 군자동 임야
4,505㎡
130필지 중 임야 0.4% · 뚝섬 대규모 국유지
비교해보면 흥미로운 사실이 드러납니다. 같은 광진구 내에서 군자동 130필지의 경우 임야는 불과 4,505㎡, 전체의 0.4%에 그쳤습니다. 반면 구의동은 37,887㎡ 전부가 임야입니다. 이 극적인 차이는 두 지역이 1912년 당시 완전히 다른 성격의 국유지였음을 말해줍니다. 군자동이 농업·생산 기능 중심이었다면, 구의동은 보전·보호 목적의 국유림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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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유 임야의 세 가지 정체 — 능림·군사림·봉산
구의동 임야의 정체를 추적하려면, 조선 시대 국유 임야가 어떻게 분류·관리되었는지를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조선 시대 국가가 직접 관리한 임야는 그 목적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세 유형 각각이 문화재 발굴 관점에서 전혀 다른 예상 유구와 유물을 의미합니다.
능림 (陵林)
왕릉·왕실 묘소 주변의 보호 산림. 함부로 벌채하거나 출입할 수 없었습니다. 능림 안에는 석물(石物), 비석, 경계 표지 등이 매장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왕실과의 역사적 연결이 확인될 경우 문화재 가치가 특히 높습니다.
군사림·금산 (禁山)
군사 목적으로 지정된 보호 산림. 요새·봉수대·감시초소 관련 시설이 있었을 수 있습니다. 한강변 구릉에 위치한 구의동 임야는 강 방어와 관련된 군사 시설 유구가 잠재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봉산 (封山)
국가가 목재 자원 보호를 위해 지정한 산림. 조선 왕조는 건축·조선(造船)·연료용 목재 공급을 위해 주요 산림을 봉산으로 지정해 벌목을 금지했습니다. 봉산 경계를 표시하는 표석(標石)이 발견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세 유형 중 구의동 임야의 정체는 지표조사와 문헌 조사를 통해 처음으로 윤곽이 드러날 것입니다. 특히 한강변이라는 지리적 특성을 고려하면 군사림·금산의 가능성이 주목됩니다. 조선 시대 광나루(廣津)는 한강의 주요 도강 지점이었고, 이 나루터를 감시하는 구릉지 산림은 전략적으로 군사적 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었을 개연성이 높습니다. 또한 같은 광진구 내에서 왕실과 관련된 대규모 국유지가 확인된 만큼, 왕실 관련 보호림의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임야는 발굴하기 가장 까다로운 땅이지만, 동시에 가장 온전하게 보존된 역사를 품고 있는 땅이기도 합니다. 농경지는 경작 활동으로 지층이 교란되고, 대지는 건물 기초 공사로 파헤쳐집니다. 하지만 숲은 수백 년 동안 그 자리를 지킵니다. 구의동 임야 37,887㎡는 그런 숲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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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야 발굴조사의 특수성 — 숲속에서 역사를 찾는 법
임야는 다른 지목과는 전혀 다른 조사 방법이 필요합니다. 논밭이라면 지표면을 걷는 것만으로도 유물 파편을 발견할 수 있지만, 숲은 다릅니다. 낙엽층, 부식토층, 뿌리층이 지표를 덮고 있어 육안 관찰이 제한됩니다. 그래서 임야 지표조사에서는 일반 농경지 조사와는 다른 특수한 관찰 포인트가 중요합니다.
지표면
지형 이상 관찰 — 인위적 평탄면과 석축
자연 지형과 다른 인위적인 평탄면, 단차, 석축 흔적을 찾습니다. 과거 건물 터나 시설 부지는 자연 경사면 속에서 완만하게 고른 평탄부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군사 시설이나 봉수대 터는 특히 산 정상부나 시야가 확보되는 능선에 평탄면 형태로 남아 있습니다.
낙엽층 아래
표토 긁기 조사 — 토색과 유물 파편
낙엽층을 걷어내면 표토가 드러납니다. 이 표토의 색깔 변화(토색 이상)와 기와 조각, 도자기 파편, 석재 조각의 산포 여부를 관찰합니다. 기와 파편 하나만 발견되어도 과거 건축물의 존재를 강력히 시사합니다.
표토~30cm
표본 시굴 — 지층 확인
지표조사에서 이상 징후가 발견된 구역에 소규모 트렌치를 굴착해 지층 구성을 확인합니다. 임야에서는 부식토층, 생토층, 문화층(인간 활동 흔적 포함층)의 순서로 지층이 구성되며, 문화층에서 유구와 유물이 발견됩니다.
30~100cm+
정밀 발굴조사 — 유구의 전모 파악
시굴에서 유구가 확인되면 해당 구역을 전면 발굴합니다. 건물 기초, 석축, 배수 시설, 봉수대 구조물 등이 이 단계에서 완전한 형태로 기록됩니다. 특히 나무뿌리에 의한 교란이 없는 깊은 층위에서는 유구가 온전히 보존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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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표조사부터 발굴조사까지 — 구의동 조사 전략
3필지 37,887㎡의 순수 임야. 이 땅을 실제로 조사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전략은 무엇일까요? 임야 특유의 지형과 식생 조건을 고려한 단계별 접근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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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 기초조사 — 구의동 임야의 역사적 맥락 파악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비변사등록 등 조선 시대 1차 사료에서 광진구·광나루 일대 국유 임야 기록을 추적합니다. 특히 봉산 지정 기록, 군사림 관련 기록, 왕실 관련 토지 기록을 집중 검토합니다. 1912년 이전 고지도(대동여지도, 도성도 등)에서 구의동 구릉지의 지형 표현과 지명을 확인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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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표조사 — 숲을 읽는 전문가의 눈
고고학자와 임학(林學) 전문가가 함께 3필지 전체를 도보로 답사합니다. 능선 방향, 경사 변화, 인위적 평탄면, 석축 잔재, 표토 유물 산포 여부를 체계적으로 기록합니다. 37,887㎡ 임야의 정밀 지표조사에는 최소 3~5일이 소요됩니다. 드론 항공촬영을 병행해 수관(樹冠) 위에서 지형 이상을 파악하는 방법도 활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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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본조사 — 3필지를 나누어 집중 탐색
3필지를 각각 별도 단위로 나누고, 각 필지 안에서 지형적으로 유구 가능성이 높은 구역을 선별해 집중 표본 조사를 실시합니다. 특히 능선 정상부, 경사면 중단부의 평탄면, 필지 경계 부근을 우선 표본 구역으로 지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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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굴조사 — 트렌치로 지층을 열다
표본조사에서 이상 징후가 발견된 구역에 트렌치를 설치합니다. 임야에서는 뿌리 제거 작업이 선행되어야 하며, 삽과 손도구를 이용해 조심스럽게 굴착합니다. 문화층이 확인되면 유물 수습 및 층위 기록이 이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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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조사 — 역사가 빛을 만나는 순간
시굴에서 중요 유구가 확인되면 국가유산청 허가를 받아 전면 발굴을 시작합니다. 구의동 임야에서 군사 시설, 봉수대, 혹은 왕실 관련 시설의 유구가 발견된다면, 광진구 한강변 역사를 완전히 새롭게 쓰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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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진구 발굴 성공 사례와 구의동의 가능성
구의동 임야의 잠재력을 더 실감하게 해주는 사례들이 있습니다. 같은 광진구, 그리고 인근 지역에서 이미 확인된 역사 기록들입니다.
성공 사례 01
광진구 군자동 — 130필지 1,189,235㎡, 서울 최대 국유지 임야 포함 기록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시리즈에 따르면, 같은 광진구의 군자동에는 1912년 기준 130필지 1,189,235㎡의 방대한 국유지가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이 중 임야는 4,505㎡, 전체의 0.4%에 불과했지만, 군자동 국유지 전체는 뚝섬 일대 조선 왕실 관련 토지와의 연결 가능성이 제기되었습니다. 구의동 임야 37,887㎡는 군자동 전체 임야(4,505㎡)의 8.4배에 달하는 넓은 면적으로, 광진구 국유 임야 중 단연 압도적인 규모입니다.
성공 사례 02
광진구 모진동(화양동) — 100년을 거슬러 올라간 역사 재발견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시리즈의 광진구 모진동 편에서는 "시간을 100년 넘게 거슬러 올라가 보면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광진구 모진동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펼쳐진다"는 조사 결과가 보고되었습니다. 이처럼 광진구 일대는 1912년 토지 기록을 실마리로 삼아 전혀 새로운 역사적 면모가 발굴되는 지역입니다. 구의동 임야 3필지 역시 이 흐름 속에서 반드시 조사되어야 할 중요한 퍼즐 조각입니다.
한강변 구릉에 자리한 37,887㎡의 국유 임야. 논도 밭도 대지도 없이 오직 숲으로만 채워진 이 땅은, 바로 그 단순함 때문에 가장 순수한 역사를 품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람의 손이 덜 탄 숲일수록, 땅속은 더 온전합니다. 구의동의 세 필지가 언젠가 전문가의 발길을 받아들이는 날, 이 한강변 숲은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꺼내놓을 것입니다.

37,887㎡의 숲이 당신의 질문을 기다립니다
임야 문화재 지표조사, 시굴조사, 발굴조사는 일반 토지와 어떻게 다를까요? 구의동 같은 순수 임야 국유지를 어떻게 조사하는지, 발굴 기관 정보까지 바로 질문하세요.

구의동 임야 발굴조사 알아보기 ↗
숲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농경지처럼 뒤집어지지도 않고,건물처럼 철거되지도 않으며,그저 그 자리에서 계절을 거듭합니다.구의동의 세 필지 임야도 그렇게110년을 버텨왔습니다.누군가 처음으로 낙엽을 걷어내고그 아래 흙을 손으로 만지는 날,이 한강변 숲은 드디어자신이 지켜온 시간을 내어줄 것입니다.그 순간이 오기를,이 땅은 조용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기록에서, 구의동 임야를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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