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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옆 모래사장에 심어진 역사1912년 성동구 사근동 국유지 19,223㎡의 기록

  • 5일 전
  • 7분 분량

문화재 발굴조사 · 지표조사 · 사근동 역사

청계천 옆 모래사장에 심어진 역사1912년 성동구 사근동 국유지 19,223㎡의 기록

성동구 사근동, '모래가 가깝다'는 그 이름처럼112년 전 이 땅에는 청계천 변 밭과 야산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서울시 성동구 사근동기준연도 1912년밭·임야 복합 구성seoulheritage.org 기반

전체 국유지

19,223㎡

6필지 총 면적

밭 (5필지)

13,755㎡

전체 약 71.6%

임야 (1필지)

5,476㎡

전체 약 28.5%


목 차

01'모래 가까운 마을'이 품은 역사의 깊이

021912년 사근동 국유지 6필지의 실체

03밭 13,755㎡ — 청계천 변 농경지의 문화적 층위

04임야 5,476㎡ — 단 하나의 필지가 품은 가능성

05사근동과 청계천 — 물길 옆 삶의 흔적

06이 시리즈 전체로 본 사근동의 위치

07문화재 지표조사·시굴조사·발굴조사 절차 가이드

08성동구 일대 발굴조사 성공 사례

09작은 땅이 전하는 큰 이야기


01'모래 가까운 마을'이 품은 역사의 깊이

이름 안에 역사가 있습니다. 사근동(沙斤洞), '모래가 가까운 동네'. 청계천 변 그 모래밭 아래에 무엇이 잠들어 있는지, 아무도 아직 다 알지 못합니다.

성동구 사근동은 서울 도심과 성수동 사이, 청계천이 흐르는 방향을 따라 형성된 동네입니다. 지금은 재개발과 도시 재생의 바람이 부는 구도심 지역이지만, 이 동네의 이름 자체가 하나의 역사 기록입니다. 사근(沙斤)이란 '모래가 가깝다', 혹은 '모래톱이 있는 곳'을 의미하는 이름으로, 이 지역이 청계천과 한강의 영향을 직접 받는 충적 지형 위에 자리 잡고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전문 기관 seoulheritage.org의 1912년 지적원도 기초조사에 따르면, 당시 사근동에는 총 6필지 19,223㎡의 국유지가 있었습니다. 그 중 밭이 5필지 13,755㎡로 전체의 71.6%를 차지하고, 임야가 1필지 5,476㎡로 28.5%를 이루었습니다. 단 두 가지 지목, 그러나 그 안에 청계천 변 삶의 모든 층위가 담겨 있습니다.



사근동이 이 시리즈에서 특별한 이유는 규모의 작음 속에 담긴 밀도 때문입니다. 신원동의 347,366㎡가 압도적 스케일로 강남 농경의 역사를 보여줬다면, 사근동의 19,223㎡는 도심 한복판 청계천 변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훨씬 가까운 거리에서 보여줍니다. 작은 땅이 오히려 더 생생한 일상의 역사를 품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근동(沙斤洞). 지명 자체가 문화재 지표조사의 첫 번째 단서입니다. '모래가 가까운 땅'이라는 이름은 이 지역이 청계천 충적층 위에 형성된 곳임을 알려주며, 그 충적층 아래에 다양한 시대의 유물이 켜켜이 쌓여 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021912년 사근동 국유지 6필지의 실체

단 6필지, 두 가지 지목. 하지만 이 단순함 안에 역사의 밀도가 있습니다.

지목 구분

필지 수

면적

전체 비율

필지당 평균

밭 (농경지)

5필지

13,755㎡

약 71.6%

약 2,751㎡

임야 (산림지)

1필지

5,476㎡

약 28.5%

5,476㎡

합계

6필지

19,223㎡

100%

약 3,204㎡

밭 (5필지)13,755㎡ · 71.6%

임야 (1필지)5,476㎡ · 28.5%

눈에 띄는 점은 밭 5필지의 면적 구성입니다. 필지당 평균 2,751㎡로, 이는 이 시리즈에서 다룬 다른 밭 구역들과 비교할 때 비교적 중간 규모에 해당합니다. 청계천 변의 비옥한 충적 토양 위에 형성된 이 밭들은 경작 조건이 좋아 상업적 채소 재배에 적합했을 것입니다. 한양 도성 동쪽 외곽의 밭은 도성 안 시장에 채소를 공급하는 도시 근교 농업의 중심지 중 하나였습니다.

시리즈 전체 국유지 면적 비교 (사근동 위치)

신원동

347,366㎡

창동

134,255㎡

용두동

70,919㎡

본동

47,715㎡

사근동

19,223㎡

당인동

14,175㎡

대현동

12,614㎡

이 시리즈 전체와 비교하면 사근동의 19,223㎡는 중간 규모에 속합니다. 하지만 면적의 크고 작음이 역사적 가치를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청계천이라는 역사적 맥락 속에서, 단 6필지의 사근동 국유지는 이 도시의 일상 역사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보여주는 기록입니다.


03밭 13,755㎡ — 청계천 변 농경지의 문화적 층위

밭 5필지 13,755㎡. 청계천 변에 펼쳐진 이 농경지는 단순히 채소를 키우던 공간이 아닙니다. 도성 동쪽 외곽에서 도시와 농촌의 경계를 이루며 서울 사람들의 밥상을 채워주던 살아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사근동 일대는 청계천이 중랑천과 합류하기 직전의 하류 구간 인근에 위치합니다. 이 지역의 토양은 두 하천이 수천 년에 걸쳐 쌓아올린 충적 퇴적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충적층이란 홍수 때마다 강물이 운반해온 모래와 실트가 쌓여 형성된 토층으로, 유기물이 풍부하고 수분 보유력이 뛰어나 농경에 매우 적합합니다. 이 비옥한 충적토 위의 밭은 파, 마늘, 배추, 상추 등 도성 내 시장으로 공급되는 채소류의 주산지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문화재 발굴조사의 관점에서 이 밭 구역은 여러 층위의 유물이 중첩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청계천 변 충적층은 홍수가 있을 때마다 새로운 퇴적층이 쌓이면서 그 아래에 이전 시대의 생활 흔적을 봉인하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즉, 한 번의 굴착으로 여러 시대를 동시에 만날 수 있는 지역입니다. 조선 초기, 고려, 심지어 그 이전 시대의 유물이 각각의 토층 안에 잠들어 있을 수 있습니다.

충적층이 만드는 타임캡슐

청계천 변 충적층은 홍수 퇴적이 반복되면서 각 시대의 유물을 층위별로 봉인합니다. 한 번의 발굴로 삼국시대부터 조선까지 여러 시대의 유물을 만날 수 있는 '타임캡슐' 지형입니다.

도시 근교 농업의 증거

한양 도성 동쪽 외곽의 청계천 변 밭은 도성 내 시장으로 채소를 공급하던 도시 근교 농업의 핵심 지대였습니다. 농기구, 저장 시설, 유통 관련 유구가 발견될 수 있습니다.

또한 국유 밭이라는 점은 이 농경지가 단순한 민간 소유 채소밭이 아니라 국가가 직접 경영하거나 세금을 거두던 공적 농경지였음을 의미합니다. 어떤 기관이나 관청과 연결된 토지였는지가 문화재 지표조사의 중요한 과제입니다.


04임야 5,476㎡ — 단 하나의 필지가 품은 가능성

사근동 국유지 중 임야는 단 1필지 5,476㎡입니다. 전체의 28.5%를 차지하는 이 임야 한 필지는, 그 단독성 때문에 오히려 더 강한 역사적 주목을 받을 만합니다.

청계천 변 저지대에 주로 밭이 분포하는 사근동에서 임야가 존재한다는 것은 이 지역의 지형이 단순한 평지가 아님을 보여줍니다. 사근동 인근에는 낮은 구릉이 있었으며, 이 임야 필지는 그 구릉 지대에 위치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청계천 변 저지대의 밭과 구릉의 임야가 공존하는 이 지형 조합은, 사근동이 다양한 생태 환경을 아우르는 복합적인 생활 공간이었음을 보여줍니다.



국유 임야 5,476㎡는 문화재 발굴조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집니다. 임야 구역은 농경지에 비해 지표 교란이 적기 때문에, 지표면 가까이에서도 역사 유물이 비교적 원형에 가깝게 남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조선 시대에 관리된 국유 임야는 벌채나 경작이 금지된 경우가 있어 토층 보존 상태가 더욱 양호할 수 있습니다. 도자기 파편, 기와 조각, 석재 등이 낙엽층 아래에서 발견되는 사례가 서울 여러 임야 구역에서 보고되고 있습니다.

단 1필지의 임야이지만, 그 안에는 수백 년간 나무가 자라면서 쌓인 유기층과 그 아래 역사 층위가 온전히 보존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작은 숲이 만들어낸 가장 정직한 타임캡슐입니다.


05사근동과 청계천 — 물길 옆 삶의 흔적

사근동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청계천은 빼놓을 수 없는 열쇳말입니다. 청계천은 단순한 하천이 아니었습니다. 조선 시대 한양의 생활 하수와 우수를 모아 한강으로 보내는 도시의 혈관이었고, 동시에 그 변에 사는 사람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자원이었습니다.

청계천 하류 구간인 사근동 일대에서는 조선 시대부터 빨래, 물고기 잡이, 물 긷기 등 다양한 생활 활동이 이루어졌습니다. 하천 변에 형성된 모래톱과 충적지는 채소 재배에 활용되었고, 홍수 때는 범람으로 인한 피해도 있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토지를 더욱 비옥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순환이 수백 년 동안 이어지면서 사근동의 땅을 역사의 아카이브로 만들었습니다.



2005년 청계천 복원 사업 이후 이 지역 일대는 새로운 도시 환경으로 탈바꿈했습니다. 하지만 지표면 아래의 역사 층위는 그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존재합니다. 청계천 복원 공사 당시 진행된 발굴조사에서 조선 시대 수리 시설, 세탁 공간, 생활 토기 등이 다수 확인된 것이 그 증거입니다. 사근동의 국유 밭과 임야 구역에서도 이와 유사한 발견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06이 시리즈 전체로 본 사근동의 위치

이 블로그 시리즈는 서울 각 구의 1912년 국유지를 하나씩 탐구해왔습니다. 창동의 철도용지, 용두동의 밭과 임야, 본동의 수도용지, 당인동의 분묘지, 대현동의 국유 대지, 신원동의 광활한 논밭, 그리고 이제 사근동의 밭과 임야까지. 각각의 지역이 완전히 다른 역사적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이들 모두를 관통하는 하나의 진실이 있습니다.

1912년의 지적원도는 서울이 근대 도시로 변모하기 직전의 마지막 풍경을 담고 있습니다. 철도가 깔리고, 수도가 놓이고, 공동묘지가 조성되고, 학교가 세워지고, 논밭이 개발되는 모든 변화의 출발점이 바로 그 기록 안에 있습니다. 사근동의 6필지 19,223㎡도 그 변화의 흐름 속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해왔습니다.

특히 사근동은 성동구라는 지역적 특성상 청계천, 중랑천, 한강이 만나는 수계 교차 지역의 영향권에 있습니다. 이 지리적 조건은 사근동의 발굴조사가 단순한 단일 지역 조사를 넘어, 서울 동부 수계 문화권 전체의 역사를 복원하는 작업과 연결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사근동의 6필지는 서울이라는 거대한 역사 퍼즐의 작은 조각이지만, 그 조각 없이는 퍼즐이 완성되지 않습니다. 모든 땅에는 그 땅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07문화재 지표조사·시굴조사·발굴조사 절차 가이드

청계천 충적층이 발달한 사근동의 문화재 조사는 일반 내륙 지역과 다른 특수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수변 충적층 지역은 토층이 복잡하게 교대되어 있어 표준 굴착 방식만으로는 모든 역사 층위를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조사 단계

방법

사근동 특이사항

문화재 지표조사

육안·문헌·지형도 분석

청계천 고(古)지도와 비교, 충적층 두께 사전 추정, 지명 유래 문헌 조사

표본조사

소규모 굴착 (2% 이내)

밭 5필지 중 청계천에서 가장 가까운 필지부터 시작, 충적층 층위 확인

시굴조사

트렌치 굴착 (10% 이내)

수계 방향 직각으로 트렌치 배치, 홍수 퇴적층과 문화층 교대 여부 파악

정밀발굴조사

전면 굴착

습윤 환경 유기물 보존 가능 → 식물 유체·목제 유물 수습 전문 장비 필요

문화재 지표조사 단계에서는 사근(沙斤)이라는 지명과 관련된 역사 문헌 조사가 중요한 출발점이 됩니다. 조선 시대 읍지(邑誌)와 지리지에 기록된 사근동 관련 기사, 청계천 관련 고지도, 일제강점기 측량 지형도를 교차 분석하면 국유 밭과 임야의 구체적인 위치와 이용 방식을 추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임야 구역의 경우, 지표투과레이더(GPR) 탐사를 시굴조사 전에 먼저 적용하면 지하 구조물의 존재 여부를 비파괴 방식으로 확인할 수 있어 조사 효율을 크게 높일 수 있습니다. 단 1필지인 만큼, 조사 전 정보를 최대한 수집해 굴착 위치를 전략적으로 선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08성동구 일대 발굴조사 성공 사례



성공 사례 — 청계천 복원 구간 발굴조사 (성동구·중구 경계)

2003~2005년 청계천 복원 사업 과정에서 진행된 발굴조사는 성동구와 중구 경계 일대에서 조선 시대 수리 시설, 빨래터 유구, 생활 토기, 동전 등을 다수 출토하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특히 복수의 홍수 퇴적층 사이에서 각 시대의 유물이 층위별로 발견되어, 청계천 변 충적층이 다중 시대 유물의 보고임이 확인되었습니다. 사근동 밭 구역에서도 이와 유사한 층위 발굴이 기대됩니다.

성공 사례 — 뚝도수원지 성동구 근대 산업 유산 재평가

성동구 성수동에 위치한 뚝도수원지는 1908년 준공된 서울 최초의 근대 상수도 시설로, 체계적인 조사와 기록화를 통해 국가 문화재로 등록되었습니다. 현재 서울숲 수도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연간 수십만 명의 시민이 방문합니다. 성동구가 청계천·한강 수계와 연결된 수도 인프라의 역사적 현장임을 보여주는 이 사례는, 사근동 조사에서도 수계 관련 시설 유구 발견 가능성을 열어둬야 함을 시사합니다.

두 사례 모두 성동구 일대의 역사적 밀도가 얼마나 높은지를 증명합니다. 청계천과 한강이 만나는 이 지역에서 역사는 단층이 아니라 복층으로 쌓여 있습니다. 사근동의 작은 6필지도 그 복층 역사의 한 켜를 담고 있을 것입니다.


09작은 땅이 전하는 큰 이야기

이 시리즈의 마지막으로 다룬 사근동은 규모로는 작지만, 그 안에 담긴 역사의 밀도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청계천 충적층 위의 비옥한 밭과 인근 구릉의 임야, 단 두 가지 지목 6필지가 이 동네의 수백 년 역사를 압축해서 보여줍니다.

seoulheritage.org의 1912년 서울 국유지 기초조사 프로젝트는 사근동을 포함하여 서울 25개 구 전체의 국유지를 하나하나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작업은 단순한 토지 대장 정리가 아닙니다. 서울이라는 도시가 어떻게 지금의 모습으로 변해왔는지, 그 변화 이전에 이 땅에서 어떤 삶이 이루어졌는지를 기록하는 역사 복원 프로젝트입니다.

사근동에서 개발 사업을 계획 중이거나 토지 관련 업무를 담당한다면, 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조사를 사전에 실시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첫 걸음입니다. 특히 청계천 변의 충적층은 예상치 못한 유물이 출토될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므로, 공사 착공 전 전문 문화재 발굴 기관과의 사전 협의를 적극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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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의 모래는 지금도 어딘가에 있습니다.콘크리트 아래, 아스팔트 아래, 우리 발밑 깊은 곳에.사근동이라는 이름은 그 모래를 기억하는마지막 증인입니다.누군가 그 밭에서 씨앗을 심고,그 산에서 나무를 키우고,그 냇가에서 빨래를 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아직 땅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발굴조사는 그들의 침묵에 귀 기울이는 일입니다.그 귀 기울임이 멈추지 않는 한,역사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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