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성동구 5,419필지 9,965,502㎡서울 최다 대지 2,699필지, 뚝도수원지 78,869㎡, 국유지 1,503필지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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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 · 1912 토지조사부 시리즈
서울특별시 성동구 전역 · 문화재 기초조사 데이터
1912년 성동구 5,419필지 9,965,502㎡서울 최다 대지 2,699필지, 뚝도수원지 78,869㎡, 국유지 1,503필지의 비밀
삼국이 서로 빼앗으려 했던 한강 요충지, 조선의 살곶이목장, 대한제국의 첫 수돗물. 그리고 1912년 국유지 1,503필지는 이 모든 역사가 땅 위에 새겨진 흔적이다.
5,419총 필지
9.97M총 면적(㎡)
2,699대지(서울 최다)
1,503국유지 필지
137분묘지 필지
1912년 성동구의 국유지가 1,503필지라는 숫자는, 이 땅이 얼마나 오래 국가의 품 안에 있었는지를 말해준다.
5,419필지 가운데 1,503필지가 국유지. 전체의 27.7%다. 서울 어느 구와 비교해도 이례적으로 높은 비율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성동구가 가진 특별한 역사에 있다.
이곳은 고구려·백제·신라가 서로 차지하려 한강 유역을 두고 격전을 벌이던 땅이었다. 조선시대엔 왕실 직속 말 목장인 살곶이장이 수십 리에 걸쳐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리고 1908년, 대한제국 고종 황제의 명으로 한국 최초의 수돗물이 뚝도수원지에서 흘러나왔다. 그 수도용지 1필지 78,869㎡가 1912년 토지조사부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또 하나의 숫자가 시선을 멈추게 한다. 대지 2,699필지. 성동구는 논·밭보다 대지 필지 수가 훨씬 많다. 이것은 성동구가 1912년 이미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던 서울 도심의 동쪽 관문이었음을 보여준다. 사람이 많이 살던 곳에는 문화층이 두껍게 쌓인다.
목차
11912년 성동구 토지 통계 총괄
2대지 2,699필지 — 서울에서 가장 사람이 많이 산 동네
3수도용지 1필지 78,869㎡ — 대한제국 최초 수돗물의 땅
4국유지 1,503필지 — 살곶이목장과 왕실의 땅
5동척 412필지 — 뚝섬 수탈의 기록
6성씨 분포 — 7개 성씨와 뚝도 마을 사람들
7분묘지 137필지 — 가장 풍부한 고고학 단서
8삼국의 각축장, 성동구의 선사~고대 역사
9문화재 지표조사·시굴조사·발굴조사의 필요성
10성공 사례와 마무리

1
1912년 성동구 토지 통계 총괄 — 다른 구와 결정적으로 다른 것
1912년 토지조사사업 기록에서 성동구는 다른 서울 지역들과 뚜렷이 구별되는 두 가지 특징을 가진다. 대지 비율의 압도적 높음과 국유지 비율의 이례적 높음. 이 두 가지가 성동구의 1912년 풍경을 결정짓는다.
2,699필지대지(서울 최다급)
1,503필지국유지(27.7%)
2,050필지밭
441필지논
412필지동양척식(주)
137필지분묘지
40필지임야
39필지잡종지
8필지사사지
2필지철도용지
2필지지소(연못)
1필지수도용지 78,869㎡
지목 | 필지 수 | 면적(㎡) | 면적 비율 | 비율 시각화 |
밭(田) | 2,050 | 5,900,710 | 59.2% | |
잡종지 | 39 | 1,024,341 | 10.3% | |
논(畓) | 441 | 1,287,367 | 12.9% | |
임야(林野) | 40 | 599,705 | 6.0% | |
대지(垈) | 2,699 | 731,044 | 7.3% | |
수도용지 | 1 | 78,869 | 0.79% | |
철도용지 | 2 | 93,240 | 0.94% | |
분묘지 | 137 | 239,392 | 2.4% | |
사사지(寺社地) | 8 | 8,158 | 0.08% | |
지소(池沼) | 2 | 2,671 | 0.027% | |
합계 | 5,419 | 9,965,497 | ≈100% |
대지 2,699필지, 면적 731,044㎡. 필지 수로는 전체의 49.8%에 달한다. 5,419필지 중 절반에 가까운 필지가 사람이 사는 집터라는 뜻이다. 이것은 성동구가 이미 1912년에 상당한 인구 밀집 지역이었음을 입증한다. 한강 나루터(뚝섬나루, 두뭇개나루)와 조선의 살곶이 시장이 있던 이 지역은 도성에서 동쪽으로 나오는 길목으로 상인과 주민이 밀집해 있었다.
반면 밭의 면적 비율은 59.2%로 높지만 필지 수는 2,050필지에 그친다. 대지 2,699필지보다 적다. 이것은 밭은 큰 필지로 소수가 소유하고, 대지는 작은 필지로 다수가 나누어 살았다는 1912년 성동구 사회 구조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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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대지 2,699필지 — 서울에서 가장 사람이 빽빽하게 살던 동네
이 시리즈에서 지금까지 살펴본 구들과 비교해보면 성동구 대지 필지의 특이성이 더욱 선명해진다. 영등포는 5,534필지 중 대지가 443필지, 송파는 5,534필지 중 640필지, 성북동 국유지는 대지 1필지. 그런데 성동구는 5,419필지 중 대지가 무려 2,699필지다. 다른 구들이 농경지 위주인 것과 달리 성동구는 이미 반도시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이유는 지형과 역사에 있다. 성동구는 한양 도성 동쪽 성문인 광희문과 동대문 바깥에 바로 인접한 지역이다. 도성 밖 외각이지만 한강 나루터와 연결되는 교통 요지였고, 조선시대부터 도성 외곽의 주요 취락이 형성됐다. 특히 뚝섬(두뭇개) 나루는 강원도 뗏목꾼들의 종착지이자 물자 집산지였다. 18세기부터 뚝도시장이 열린 이 지역에 사람이 모여들고 집들이 들어선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대지 2,699필지는 고고학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조선시대부터 이어진 주거 밀집 지역은 문화층이 복합적으로 형성되어 있다는 뜻이다. 집이 허물어지면 그 자리에 새 집이 들어선다. 그 과정이 수백 년간 반복되면서 각 시기의 건물지, 생활 유물, 우물, 화덕 자리가 층층이 쌓인다. 성동구의 대지 구역은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에 걸친 도시 생활 유구의 보고가 될 수 있다.
3
수도용지 1필지 78,869㎡ — 대한제국 최초 수돗물이 흘러나온 땅
한국 근대 상수도 발상지
78,869㎡ — 1912년 성동구 수도용지 1필지
1908년 9월 1일, 이 땅에서 한국 최초의 수돗물이 흘렀다
뚝도수원지 제1정수장. 1903년 고종 황제의 특허, 1906년 착공, 1908년 준공. 하루 12,500㎥의 수돗물로 125,000명에게 공급됐다. 이 1필지 78,869㎡가 그 역사의 무게를 오롯이 담고 있다.
1912년 토지조사부에 등장하는 수도용지 1필지 78,869㎡는 단순한 토지 분류가 아니다. 이것은 대한제국이 근대 국가로 전환하려던 마지막 몸부림의 흔적이다. 1903년 12월, 고종 황제는 미국인 사업가 콜브란과 보스트위크에게 서울 상수도 사업권을 허가했다. 그리고 1908년 8월, 뚝섬 한강변에 한국 최초의 정수장인 뚝도수원지 제1정수장이 완공됐다.
이 정수장은 한강에서 물을 취수해 자갈과 모래로 여과한 뒤 도성 안으로 보내는 방식이었다. 1912년 기준으로 서울 인구 30만 3천 명 중 7만 8천 명에게 급수됐다. 당시 수돗물을 처음 본 한양 시민들은 꼭지를 뽑으면 물이 나오는 것을 마술 도구로 오해해 꼭지를 가져가려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수도용지 78,869㎡의 문화재적 가치
뚝도수원지 제1정수장 부지 일부는 현재 수도박물관으로 운영 중이며, 1908년 준공된 완속여과지, 송수실, 침전지 등이 근대 문화유산으로 보존되어 있다. 이 78,869㎡의 수도용지는 조선 후기 살곶이목장 터와 겹치는 곳이기도 해 근대 이전의 문화층이 정수장 건설 이전에 형성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수도시설 지하의 층위 조사가 이루어진다면 조선 시대 목장 관련 유구가 확인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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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국유지 1,503필지 — 살곶이목장에서 이어진 왕실의 땅
성동구의 국유지 1,503필지는 왜 이렇게 많을까. 이 질문의 답은 조선 시대 살곶이장(箭串場)에 있다. 태조 이성계 때부터 이 지역에는 왕실 직속 국영 말 목장이 운영됐다. 1555년(명종 10년)에는 말이 달아나지 못하도록 둘레 30리(약 12km)에 돌담을 쌓았다. 이 돌담으로 둘러싸인 광대한 목장이 수백 년간 국유지로 관리됐다.
조선의 말 목장은 군사 목적과 왕실 의례 목적 모두에 필수적이었다. 살곶이장에서 기른 말들이 왕의 행렬과 전쟁에 동원됐다. 이 목장 땅이 조선 후기부터 점차 농경지로 전환되면서도 국유지 지위는 유지됐고, 그 유산이 1912년 기록에서 1,503필지라는 숫자로 남아 있는 것이다.
"뚝섬 나루는 강원도 정선·영월·인제에서 뗏목을 타고 온 뗏군들의 종착지였다. 수 백리 떨어진 고향에서 출발한 뗏군들의 아리랑에는 뚝섬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 성동구의 지명유래, 성동문화원, 2003
국유지 1,503필지는 고고학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국가가 수백 년간 직접 관리한 땅은 민간 개발이 제한적이었다. 살곶이 목장 구역에서는 조선 초기부터의 목장 관련 유구, 말 매장 흔적, 목장 경계 표석, 관리 시설 터 등이 발굴될 가능성이 있다. 이 지역의 문화재 지표조사에서 국유지 경계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핵심 과제다.
5
동양척식주식회사 412필지 — 뚝섬을 집어삼킨 수탈의 손길
성동구의 동척 소유 필지는 412필지다. 송파구의 393필지보다 많다. 그리고 성동구 총 필지 5,419개 대비 7.6%로 역시 높은 비율이다. 동척이 성동구에서 노린 것은 무엇이었을까.
뚝섬 일대는 한강 접근성, 수운 편의성, 비옥한 충적토라는 세 가지 조건을 갖춘 최적의 농업 경영지였다. 동척이 전국에서 가장 먼저 잠식하는 땅은 항상 생산성이 높은 한강변 농경지였다. 성동구의 412필지는 그 패턴의 반복이었다. 이 땅들을 차지한 동척은 기존 경작 농민들에게 50%가 넘는 고율 소작료를 부과했고, 그 결과 많은 농민이 삶의 기반을 잃었다.
동척 412필지와 문화재 조사의 교차점
동척이 취득한 토지는 대개 비옥한 한강변 충적지와 한강 나루터 인근이었다. 이런 땅은 선사시대부터 취락이 형성된 곳이기도 하다. 성동구 동척 412필지의 위치를 현재 지적도와 대조하면, 뚝섬 일대의 신석기·청동기 취락지 또는 조선 나루터 관련 유구와 겹칠 가능성이 있다.
6
성씨 분포 — 뚝도 마을 사람들의 이름
1912년 성동구에 살던 사람들의 성씨 기록이다. 김씨와 이씨가 1·2위를 나란히 차지하는 것은 서울 어느 구나 비슷하다. 하지만 성동구에서는 홍씨 125필지의 존재가 독특하다.
김씨652필지1위
이씨611필지2위
박씨243필지3위
최씨221필지4위
홍씨125필지5위 · 주목
정씨124필지6위
조씨102필지7위
홍씨 125필지가 5위를 차지한다. 조선 시대 한강 이동(以東) 지역에서 홍씨 가문은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사족(士族) 가문이었다. 홍씨 집성촌이 뚝섬 또는 그 인근에 형성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집성촌의 흔적은 문화재 지표조사에서 대지 필지 분포 패턴을 분석해 추정할 수 있으며, 사사지 8필지와 연결되어 씨족 재실(齋室)이나 사당 건물지가 확인될 수도 있다.
사사지 8필지 8,158㎡는 이 시리즈에서 확인된 구들 중 가장 많은 숫자다. 성북동 6필지, 영등포 6필지, 송파 1필지와 비교할 때 성동구의 사사지 8필지는 이 지역에 조선 시대 불교 사찰이나 민간 신앙 시설이 복수로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이 폐사지(廢寺地) 가능성이 있는 8필지는 불교 유물 출토 기대 구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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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분묘지 137필지 239,392㎡ — 이 시리즈 최대 분묘지 규모
분묘지 137필지 239,392㎡. 이 시리즈에서 살펴본 구들 중 가장 많은 숫자다. 영등포 13필지 46,899㎡, 송파 50필지 95,025㎡, 성북동 국유지 0필지. 성동구의 137필지 239,392㎡는 이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평균 한 필지당 1,747㎡다. 상당한 규모의 가문 묘역들이 이 137필지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뜻이다. 성동구의 분묘지가 이렇게 많은 이유는 한양 도성 바로 외곽이라는 위치 때문이다. 도성 안에는 분묘를 쓸 수 없었다. 도성 외곽의 첫 번째 구역인 성동구 일대가 자연스럽게 한양 주민들의 묘역으로 발달했다. 대대로 한양에 살던 가문들의 선산이 이 137필지 안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다.
137필지의 분묘지 중 상당수는 조선 중·후기 한양 사대부 가문의 묘역일 가능성이 있다. 이런 묘역에서는 회곽묘, 묘지석(墓誌石), 목관, 부장 도자기류, 금동 장신구 등이 출토된다. 특히 묘지석은 피장자의 이름·관직·생몰년을 기록하고 있어 역사 기록과 고고학을 연결하는 핵심 유물이다. 성동구 분묘지의 체계적인 문화재 지표조사는 조선 시대 한양 사족 문화를 복원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
8
삼국의 각축장 — 성동구의 선사~고대 역사가 발굴조사에 중요한 이유

성동구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서로 빼앗으려 각축을 벌이던 한강 요충지였다. 성동구청 자료에 따르면 철기문화 발달과 함께 한강 유역은 비옥한 농경지로 발전했고, 삼국이 이 지역을 선점하기 위해 경쟁했다. 신라 진흥왕 16년(553년)에 신라가 최종적으로 점령한 이 지역은 그 이전에 백제, 고구려의 지배를 차례로 받았다.
이것은 성동구의 토층 안에 백제층·고구려층·신라층이 각각 형성되어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뚝섬 일대 한강변 충적지는 혐기성 환경이 발달하여 유기물 보존이 양호하다. 신석기 시대부터의 토기, 삼국 시대 기와, 조선 시대 분청사기까지 다층적인 문화층이 존재할 수 있다. 성동구의 문화재 발굴 잠재력은 대단히 높다.
9
소유자 구조와 문화재 지표조사·시굴조사·발굴조사 필요성
1912년 성동구 토지를 소유자별로 분류하면 식민지 경제 구조와 조선 공동체 문화의 양면이 드러난다.
조선인(성씨)
약 3,345필지 (61.7%)
61.7%
국유지
1,503필지 (27.7%)
27.7%
동양척식(주)
412필지 (7.6%)
7.6%
일본인
38필지
법인
21필지
조사 단계 | 성동구 핵심 적용 지점 | 기대 성과 |
문화재 지표조사 | 분묘지 137필지 위치 현황·살곶이목장 국유지 경계 확인·사사지 8필지 폐사지 여부·수도용지 인접 문화층 파악 | 조사 우선 구역 선정 |
시굴조사 | 한강변 충적지 문화층 깊이 측정·대지 구역 건물지 유구 확인·분묘지 트렌치로 묘제 형식 파악 | 유구 성격·층위 확인 |
표본조사 | 조선 나루터 관련 유구 발굴·동척 인접 취락지 조사·홍씨 집성촌 추정 구역 발굴 | 유적 범위·성격 파악 |
본발굴조사 | 전면 발굴·기록·국가유산청 보고·수도박물관 연계 전시 계획 | 역사 복원 완성 |
10
성공 사례와 마무리 — 성동구의 땅이 기다리는 것
성동구와 인접 지역의 발굴 사례들이 이 일대의 고고학적 잠재력을 보여준다.
성공 사례 01
뚝도수원지 근대 문화유산 보존 — 수도박물관의 탄생
1908년 준공된 뚝도수원지 제1정수장의 완속여과지, 송수실, 침전지 등이 근대 문화유산으로 보존됐다. 정수장 부지 일부가 수도박물관으로 전환되면서 한국 근대 상수도 역사를 시민들에게 전달하는 공간이 됐다. 문화재 지정과 보존이 역사 교육 공간으로 이어진 모범 사례다.
성공 사례 02
청계천 복원과 문화층 조사 — 도시 재생과 역사의 공존
청계천 복원사업 과정에서 조선 시대 청계천 변의 생활 유구, 석축, 교량 관련 유물들이 확인됐다. 성동구 마장동의 청계천문화관은 이 발굴 성과와 청계천 역사를 전시하고 있다. 대규모 도시 재생 사업 전에 문화재 지표조사가 선행됐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성공 사례 03
한강변 충적지 조사 — 뚝섬 선사 문화층의 가능성
뚝섬 한강공원 조성 과정에서 수행된 지표조사에서 조선 시대 나루터 관련 유물층과 그 아래 삼국 시대 문화층의 존재 가능성이 확인됐다. 한강변 충적지의 혐기성 환경이 유기물 보존에 유리하다는 점이 입증된 조사였다. 1912년 논 441필지 구역이 이런 환경과 겹칠 수 있다.

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 · seoulheritag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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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유지 1,503필지는
조선 왕실의 말이 달리던 땅이었고,
수도용지 78,869㎡에서는
대한제국 최초의 수돗물이 흘렀으며,
분묘지 137필지 아래에는
수백 년 한양 사람들의 이름이 잠들어 있다.
그 이름들을 꺼내는 일,
그것이 발굴조사다.
— 성동구 5,419필지의 기억을 위해
삼국이 서로 차지하려 했던 땅, 조선 왕의 말이 뛰놀던 목장, 대한제국의 첫 수돗물, 뗏군들의 고향 노래가 울리던 나루터. 성동구의 땅은 이 모든 시간을 품고 있다. 지금 이 순간도 성동구 어딘가에서 삽이 흙을 파고, 그 아래 역사가 빛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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