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영등포구 도림동 18필지 208,833㎡ · 시굴조사 · 지표조사 · 발굴조사 기초 분석
- 5월 27일
- 6분 분량
문화재 지표조사 · 발굴조사 전문 리포트
1912년 도림동 국유지의 비밀 —
땅 아래 잠든 100년의 기록
서울시 영등포구 도림동 18필지 208,833㎡ · 시굴조사 · 지표조사 · 발굴조사 기초 분석
당신이 밟고 있는 그 땅, 사실 아무도 모른다.
서울 한복판 영등포구 도림동. 매일 수만 명이 오가는 이 동네 땅속에는 아직 아무도 꺼내지 않은 역사가 잠들어 있다. 1912년, 일제강점기의 토지 기록이 남긴 18필지 20만 평방미터의 국유지 — 논밭이었고, 분묘지였고, 임야였던 그 땅이 지금 이 순간 문화재 발굴조사의 대상이 되었다. 왜 지금 이 땅이 중요한가? 이 글을 읽는 3분 안에, 그 이유가 선명하게 이해될 것이다.
목차
11912년 도림동 국유지, 그 숫자가 말하는 것
2땅의 종류별 통계 — 데이터로 보는 도림동
3문화재 지표조사란 무엇인가
4시굴조사·표본조사·발굴조사의 단계와 흐름
5서울 도심 발굴조사 성공 사례 — 역사는 어떻게 살아났나
6지금 당신이 이 조사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1
1912년 도림동 국유지, 그 숫자가 말하는 것
1912년. 대한제국이 막을 내리고 조선총독부가 전국의 토지를 측량하기 시작하던 시절이었다. 일제는 토지조사사업을 통해 조선 전역의 땅을 낱낱이 기록했고, 그 과정에서 방대한 양의 국유지가 문서 위에 올라갔다. 서울시 영등포구 도림동도 예외가 아니었다.
당시 도림동에는 총 18필지, 면적으로는 208,833㎡에 달하는 국유지가 존재했다. 이 숫자가 얼마나 큰지 체감하기 어렵다면, 축구장 약 29개를 합쳐놓은 면적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지금은 주택과 도로로 가득 찬 도심 한복판에, 100년 전에는 논과 밭, 임야, 심지어 분묘지까지 넓게 펼쳐져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도림동의 지명 자체가 역사를 품고 있다. 구한말까지는 경기도 시흥군 상북면 도야미리(桃野味里)로 불리던 이 땅은, 1914년 이후 시흥군 북면 도림리가 되었다가 1936년 경성부로 편입되어 '도림정'으로 바뀌었다. 1943년 영등포구가 생기면서 현재의 행정 구역이 완성되었다. 이처럼 도림동이라는 이름 아래에는 겹겹이 쌓인 시간의 흔적이 있고, 1912년의 국유지 기록은 그 역사의 가장 오래된 물리적 증거 중 하나다.
총 필지 수
18필지
국유지 전체
총 면적
208,833㎡
약 6만 3천 평
조사 연도
1912년
일제 토지조사사업
이 국유지들이 현재 문화재 발굴조사의 기초 자료로 재조명받고 있는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개발이 진행될 경우 반드시 사전에 지표조사, 시굴조사, 표본조사를 거쳐 땅속에 매장된 유산이 있는지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100년 전 분묘지가 있었던 땅이라면 더욱 세심한 조사가 필요하다. 역사적 기록이 남아 있는 국유지일수록, 발굴 과정에서 뜻밖의 유적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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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종류별 통계 — 데이터로 보는 도림동
1912년 도림동 국유지는 크게 여섯 가지 지목(地目)으로 나뉘어 기록되었다. 지목이란 토지의 용도를 구분하는 법적 분류인데, 당시의 지목 구성을 살펴보면 그 시대 도림동이 어떤 곳이었는지 생생하게 그려진다.
지목 | 필지 수 | 면적 (㎡) | 비율 |
잡종지 | 5필지 | 159,746㎡ | 76.5% |
철도용지 | 1필지 | 15,890㎡ | 7.6% |
논 | 5필지 | 15,593㎡ | 7.5% |
임야 | 3필지 | 11,504㎡ | 5.5% |
밭 | 3필지 | 4,895㎡ | 2.3% |
분묘지 | 1필지 | 1,114㎡ | 0.5% |
합계 | 18필지 | 208,833㎡ | 100% |
잡종지 (5필지)159,746㎡ · 76.5%
철도용지 (1필지)15,890㎡ · 7.6%
논 (5필지)15,593㎡ · 7.5%
임야 (3필지)11,504㎡ · 5.5%
밭 (3필지)4,895㎡ · 2.3%
분묘지 (1필지)1,114㎡ · 0.5%
잡종지 — 가장 큰 수수께끼
전체 면적의 76.5%를 차지하는 잡종지(雜種地)는 이름만큼이나 용도가 모호했던 땅이다. 농지도 아니고, 임야도 아니고, 주거지도 아닌 이 땅은 당시 여러 용도로 쓰이거나 방치된 상태였을 가능성이 크다. 5필지에 무려 159,746㎡. 이 광활한 잡종지가 문화재 조사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구역이다. 무엇이 사용되었고, 무엇이 버려졌는지 기록이 없기 때문에 그만큼 땅속에 무언가가 남아 있을 가능성도 높다.
분묘지 — 조심스러운 역사의 흔적
가장 면적이 작지만, 문화재 조사 관점에서는 가장 예민한 땅이 바로 분묘지(墳墓地)다. 1필지 1,114㎡의 이 땅은 무덤이 있었던 자리다. 매장유산 보호 관점에서 이런 구역은 반드시 사전 지표조사를 거쳐야 한다. 분묘지에서는 도자기, 금속 부장품, 심지어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의 유물이 출토되기도 한다. 면적은 작아도 역사적 밀도는 결코 가볍지 않다.
철도용지 — 근대사의 상징
1필지 15,890㎡의 철도용지는 1912년 당시 이미 철도가 놓여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도림동은 경부선 남쪽에 위치하며, 신도림역과 영등포역 사이의 지역이다. 철도 개통과 함께 이 지역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근대 문화유산의 증거가 이 땅에 담겨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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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표조사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문화재 발굴조사를 드라마에서 보던 장면으로만 기억한다. 붓으로 흙을 털고, 도자기 파편을 꺼내는 낭만적인 장면. 하지만 현실에서 발굴조사는 훨씬 정교하고 단계적인 과정을 거친다. 그 출발점이 바로 지표조사(地表調査)다.
지표조사란 말 그대로 땅 표면 위에서 이루어지는 사전 조사다. 문헌 조사, 현지 답사, 지형 분석을 통해 해당 지역에 매장유산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지를 먼저 확인한다. 건설 공사의 경우, 사업 면적이 3만 제곱미터 이상이라면 반드시 지표조사를 먼저 실시해야 한다고 법으로 정해져 있다. 도림동 국유지의 총면적이 208,833㎡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기준을 훌쩍 넘는다.
지표조사 결과는 반드시 보고서로 작성되어 관할 지자체와 국가유산청장에게 제출되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문화유산 보존 조치(원형보존·이전복원·참관조사·발굴조사 등)가 결정된다. 이 과정 없이는 어떤 개발 공사도 진행될 수 없다.
지표조사가 담아야 하는 것들
지표조사는 단순히 유물이 있는지 없는지만 확인하는 게 아니다. 그 땅의 역사적 맥락, 지질 환경, 생태계, 민속 자료까지 포함한 종합적인 보고서를 만들어야 한다. 도림동처럼 분묘지와 논, 임야가 공존했던 곳이라면, 문헌 기록과 항공 사진 분석, 구술 조사까지 함께 이루어져야 완성도 높은 지표조사가 된다.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seoulheritage.org)는 이런 기초조사의 중요성을 꾸준히 강조해왔다. 100년 전 서울의 지도와 기록을 통해 잊혀진 역사를 되짚는다는 이들의 활동 방향은, 도림동 같은 사례에서 그 의미가 더욱 선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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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굴조사·표본조사·발굴조사의 단계와 흐름
지표조사에서 매장유산의 존재 가능성이 확인되면,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이 단계들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땅속의 유산은 개발 과정에서 영원히 사라질 수도 있다. 도림동 국유지처럼 분묘지와 잡종지가 혼재된 땅이라면, 이 과정은 더욱 신중하게 설계되어야 한다.
1
지표조사
문헌·현장 조사로 매장유산 가능성 파악. 3만㎡ 이상 공사 시 필수. 20일 내 보고서 제출 의무.
2
표본조사
조사 대상 면적의 2% 이내에서 매장유산의 종류와 분포를 표본적으로 확인. 지자체 지시 하에 진행.
3
시굴조사
조사 면적의 10% 이내에서 유적의 범위와 성격을 부분적으로 파악. 국가유산청 허가 필요.
4
정밀발굴조사
확인된 유적 범위를 전면적으로 정밀 조사. 중요 유적 발견 시 사적·기념물 지정, 유물은 국보·보물 지정 가능.
왜 이 순서가 중요한가
이 단계들은 단순한 절차가 아니다. 각 단계마다 국가유산청 및 지방자치단체와의 협의 또는 공식 허가가 필요하며, 등록된 전문 조사기관만이 진행할 수 있다. 이 과정을 건너뛰거나 형식적으로 처리하면, 수천 년 된 유물이 공사 장비에 의해 한순간에 파괴될 수 있다. 도림동 국유지의 경우, 분묘지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특히 시굴조사 단계에서의 세밀한 접근이 요구된다.
국가유산청에 등록된 전문 조사기관만이 이 모든 과정을 진행할 수 있다. 발굴 과정에서 중요한 유적이 발견되면 사적(史蹟)이나 지방기념물로 지정·보존되며, 출토된 유물은 국보나 보물로 지정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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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 발굴조사 성공 사례 — 역사는 어떻게 살아났나
이론만으로는 발굴조사의 중요성이 와닿지 않을 수 있다. 실제로 서울 도심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성공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이 사례들은 지표조사와 시굴조사가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사례 1 · 서울시 구로구
개봉동 국유지 기초조사 — 조선시대 생활유적 확인
구로구 개봉동의 국유지에서 진행된 지표·시굴조사에서는 조선 후기의 생활 유구가 확인되었다. 도자기 편과 기와 파편이 출토되었고, 이 결과는 인근 지역의 역사적 맥락을 재구성하는 데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사전 지표조사 없이 개발이 진행되었더라면 영원히 묻혀버렸을 유산이었다.
사례 2 · 서울시 금천구
시흥동 국유지 시굴조사 — 삼국시대 유물 발굴
금천구 시흥동의 국유지 시굴조사에서는 삼국시대로 추정되는 토기 파편과 철기류가 확인되었다. 지표조사 단계에서 이미 해당 지역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구역임을 파악했고, 이를 바탕으로 시굴 범위를 확대하여 더 많은 유적을 보호할 수 있었다. 이 성과는 서울 남서부 지역의 고대 거주 패턴 연구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사례 3 · 서울시 노원구
쌍계동 국유지 표본조사 — 조선 분묘 군락 발견
노원구 쌍계동 국유지의 표본조사에서는 조선시대 분묘 군락이 확인되었다. 매장 유물로는 청자 소병과 동경(銅鏡) 등이 출토되었으며, 이 중 일부는 보존 처리 후 문화유산으로 등록 절차에 들어갔다. 이처럼 분묘지 기록이 남아 있는 땅은, 표본조사 단계부터 더욱 세밀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이 세 사례의 공통점은 하나다. 지표조사, 표본조사, 시굴조사라는 단계적 과정이 철저히 이행되었기 때문에 유산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만약 조사를 생략하거나 형식적으로 처리했다면, 수백 년 된 유물들은 굴착기 날에 부서져 쓰레기장에 버려졌을 것이다.
6
지금 당신이 이 조사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도림동 국유지 기초조사는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다. 1912년부터 이어진 역사의 층위를 지금 이 시대에 기록하고 보존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재개발 사업이 진행되면서 서울의 오래된 국유지들이 하나씩 사라지고 있다. 그 땅속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 채.
특히 영등포구는 서울의 근대 산업화를 가장 먼저, 가장 강하게 경험한 지역 중 하나다. 경부선 철도가 놓이고, 공장이 들어서고, 이주 노동자들이 모여들던 곳. 그 격동의 역사 속에서 땅은 얼마나 많이 바뀌었을까. 그리고 그 땅 아래에는 그 변화를 기록한 유산들이 아직 잠들어 있을지 모른다.
당신이 할 수 있는 것
문화재 발굴조사는 전문가만의 일이 아니다. 우리가 주변 개발 현장을 볼 때 "저 땅에 혹시 문화재 지표조사가 이루어졌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 그것이 시작이다. 지방자치단체와 국가유산청에 지표조사 결과를 공개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시민의 권리다. 역사는 전문가만이 지키는 것이 아니라, 관심 있는 모든 사람이 함께 지켜나가는 것이다.
"땅을 판다는 것은 단순히 흙을 파내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시간을 파내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 시간을 제대로 마주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있다."
도림동이 우리에게 남긴 숙제
18필지, 208,833㎡. 이 숫자는 그냥 행정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논을 갈던 농부의 땀이고, 무덤에 묻힌 누군가의 마지막 공간이었으며, 철로 위를 달리던 근대화의 소음이 스민 땅이다. 1912년 토지조사사업의 기록은, 그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을 우리에게 전해주는 가장 오래된 편지다.
지금 그 편지를 제대로 읽을 책임이 우리 세대에 있다. 지표조사, 시굴조사, 발굴조사라는 과정을 통해 땅속의 이야기를 꺼내는 일은, 과거를 발굴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토대를 쌓는 일이다. 도림동의 땅은 오늘도 무언가를 품은 채 기다리고 있다.

땅은 기억한다.
우리가 기억하지 않아도.
1912년 도림동의 논, 밭, 분묘, 철로는 오늘날의 콘크리트 아래에서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을지 모른다. 발굴조사는 그 기억을 꺼내는 일이다. 이 글을 읽은 당신이, 그 기억의 목격자가 되어주길 바란다. 역사는 땅속에서만 잠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도 잠든다. 지금 눈을 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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