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중구 저동2가 토지조사로 읽는 식민지 도시의 민낯
- 2025년 12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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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4월 30일
문화재 발굴 · 중구 역사
176필지 중 110필지가 일본인 것, 그리고 동양척식주식회사 1필지— 1912년 중구 저동2가 토지조사와 문화재 지표조사의 교차점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 문화재발굴, 지표조사, 저동2가, 중구 역사
저동2가 기록에서 가장 무거운 숫자는
110이 아니었어.
동양척식주식회사 1필지였어.
176필지 중 110필지가 일본인 소유(62.5%)였어. 충분히 충격적인 숫자야. 근데 그 110필지 안에 동양척식주식회사 소유 1필지가 있었어. 동척은 토지를 사들이고 조선인을 내쫓고 일본 자본을 심던 조직이야. 그 1필지 하나가 저동2가 전체의 성격을 바꿔놓는 증거야. 이 이야기를 끝까지 읽으면, 1912년의 저동2가가 얼마나 치밀하게 점령됐는지, 그리고 왜 지금도 이 땅이 문화재 조사에서 중요한지 이해하게 될 거야.
목차
1장. 한 장의 토지대장에서 시작된 이야기
2장. 1912년 저동2가, 숫자로 본 공간의 정체
3장. 집만 가득했던 동네, 대지 176필지의 의미
4장. 국유지와 법인의 등장, 도시 권력의 흔적
5장. 일본인 소유 110필지, 저동2가에 무슨 일이 있었나
6장. 동양척식주식회사 1필지가 남긴 묵직한 질문
7장. 중국인 소유 토지 1필지, 도시의 틈을 읽다
8장. 문화재 지표조사 관점에서 본 저동2가의 가치
9장. 실제 발굴·조사 사례로 보는 저동2가의 현재성
10장. 과거의 땅 위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

1한 장의 토지대장에서 시작된 이야기
1912년, 이 작은 동네 하나에 제국의 욕망이 고스란히 쌓여 있었어. 1912년 중구 저동2가 토지조사를 들여다보면, 단순한 숫자 나열 같지만 그 안에는 당시 서울 도심이 어떻게 점령되고 재편되었는지가 또렷하게 담겨 있어.
저동2가는 지금도 도심 한가운데 자리 잡은 곳이야. 충무로와 명동 사이, 인쇄 골목과 상업 지구가 맞닿는 지점. 100여 년 전 이곳은 이미 매우 전략적인 공간이었어. 도로와 상업시설, 행정시설로 확장되기 직전의 도시. 그 시작점이 바로 이 토지대장이야.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seoulheritage.org)가 서울 25개 구 토지 기록을 분석하면서, 저동2가는 이 시리즈에서 처음으로 동양척식주식회사 소유 토지가 기록된 케이스야.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저동2가는 특별한 위치를 갖아.
21912년 저동2가, 숫자로 본 공간의 정체
1912년 당시 중구 저동2가는 총 176필지, 총면적 92,390제곱미터였어. 이 수치만 봐도 당시 저동2가는 상당히 밀도 높은 주거·상업 혼합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어. 그리고 더 충격적인 건 토지 이용 형태와 소유 구조야.
176
총 필지 수
92,390㎡
총 면적
176
대지 필지 (전부)
110
일본인 소유 필지
10
국유지 필지
9
법인 소유 필지
176필지 전체가 대지였어. 밭도 없고, 임야도 없고, 잡종지도 없어. 정동(34필지)처럼 대형 필지의 여유가 있는 구조도 아니야. 주교동(밭이 더 넓었던 동네)과도 달라. 저동2가는 176개의 집터가 빽빽하게 들어찬, 이미 완전히 도시화된 밀집 공간이었어.
3집만 가득했던 동네, 대지 176필지의 의미
176필지 전부가 대지라는 건 굉장히 명확한 신호야. 저동2가는 1912년 이전부터 완전히 도시화된 지역이었다는 증거야. 논도 없고, 밭도 없고, 오직 집과 건물만 있었던 곳이야.
문화재 발굴이나 문화재 지표조사 관점에서 이런 지역은 지하에 생활 유구가 남아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 생활 쓰레기층, 기초석, 배수로 같은 흔적들. 176필지 집터 아래에 층층이 쌓인 이야기들이 아직 발굴을 기다리고 있어.
충무로 시리즈(1가·2가), 초동, 주교동을 거쳐 저동2가까지. 중구 도심 지역들이 모두 100퍼센트 또는 그에 가까운 대지 구조를 보여줘. 이건 중구 전체가 이미 1912년에 완전한 도시 공간으로 재편돼 있었다는 뜻이야. 그리고 그 위에 누가 앉아 있었느냐가 이 시리즈의 핵심 질문이야.

4국유지와 법인의 등장, 도시 권력의 흔적
저동2가에는 국유지가 10필지 있었어. 이 시리즈에서 지금까지 봐왔던 국유지 수 중 가장 많아. 재동·주자동(각 3필지), 중림동(추정), 인의동(3필지)을 모두 넘어. 국유지 10필지는 저동2가에 행정, 치안, 군사, 혹은 식민 통치를 위한 기반시설이 집중돼 있었다는 뜻이야.
그리고 여기에 더해 법인 소유 토지 9필지. 이미 개인의 공간이 아니라 조직과 시스템의 공간으로 바뀌고 있었다는 뜻이야. 법인 9필지 + 국유지 10필지 = 19필지. 전체 176필지의 10.8퍼센트가 이미 개인이 아닌 조직의 손에 있었어.
국유지 10필지는 이 시리즈에서 최고 수치야. 저동2가가 단순한 주거 상업 지역이 아니라, 식민 행정의 물리적 거점이었다는 증거야. 국유지 인접 구역에서는 지하 구조물이 나올 확률이 높아.
5일본인 소유 110필지, 저동2가에 무슨 일이 있었나
가장 강렬한 숫자야. 176필지 중 110필지가 일본인 소유. 비율로 따지면 62.5퍼센트야.
일본인
110필지 · 62.5%
국유지
10필지 · 5.7%
법인
9필지 · 5.1%
동양척식(법인 내)
1필지
중국인
1필지
110필지. 이건 단순한 이주 수준이 아니야. 의도된 점유, 계획된 장악이야. 상권, 주거, 행정 접근성. 모든 걸 고려한 선택이었을 가능성이 커. 충무로2가(98%), 주자동(93.9%)처럼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저동2가의 62.5%는 국유지·법인·동척까지 더하면 사실상 조선인이 설 자리가 거의 없었던 동네였어.
6동양척식주식회사 1필지가 남긴 묵직한 질문
저동2가에는 동양척식주식회사 소유 토지가 1필지 있었어. 숫자만 보면 작아 보이지. 하지만 이 한 필지는 이 시리즈 전체에서 가장 상징적인 숫자야.
동양척식주식회사(東洋拓殖株式會社)는 1908년 일제가 설립한 국책 회사야. 조선의 토지를 조직적으로 사들이고, 조선인 소작농을 내쫓고, 일본 자본과 이민자를 심는 역할을 했어. 이 회사 소유 필지가 저동2가에 있었다는 건, 단순한 상업 진출이 아니라 식민 수탈 시스템이 이 동네에 발을 들여놨다는 증거야.
동양척식주식회사의 1필지는 지금 이 시리즈에서 처음 등장해. 충무로2가, 주자동, 초동의 압도적 일본인 소유 비율과는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야. 그 동네들은 개인 일본인들이 땅을 샀어. 저동2가엔 식민 수탈의 시스템 자체가 들어와 있었어. 그 한 필지가 저동2가 전체의 성격을 규정해.

7중국인 소유 토지 1필지, 도시의 틈을 읽다
중국인 소유 토지는 단 1필지. 110필지 일본인, 10필지 국유지, 동양척식 1필지가 차지하는 무거운 구조 안에서 중국인 1필지는 작은 틈처럼 보여. 하지만 이 숫자는 적지 않은 의미를 가져.
저동 일대는 당시에도 국제적 상업 활동이 이루어지던 공간이었어. 화교 상권의 작은 거점이 존재했음을 보여줘. 종로2가의 중국인 5필지, 주교동의 중국인 1필지에 이어 저동2가에서도 반복되는 패턴이야. 청계천에서 충무로까지 이어지는 서울 도심 상권 축에 화교의 흔적이 산발적으로 남아 있었던 거야. 이런 토지는 발굴조사에서 이국적 유물이나 외래 생활도구, 다양한 문화층을 발견할 가능성을 높여줘.
8문화재 지표조사 관점에서 본 저동2가의 가치
저동2가는 문화재 지표조사 대상지로서 매우 흥미로운 조건을 갖고 있어. 전면 대지화, 고밀도 거주, 다국적 소유 구조. 이 조합은 지하에 생활 유구가 층층이 쌓여 있을 가능성을 높여.
92,390제곱미터라는 면적은 법적 지표조사 의무 기준(3만 제곱미터)의 3배가 넘어. 특히 재개발이나 신축 전에 지표조사, 시굴조사, 발굴조사 단계가 꼭 필요한 지역이야. 국유지 10필지 인접 구역은 발굴 우선순위가 높고, 동양척식주식회사 소유 필지의 위치가 파악된다면 그 주변부에서 식민지 초기 상업·행정 시설의 구조물이 확인될 가능성이 있어.
176필지 대지 + 국유지 10필지(시리즈 최다) + 법인 9필지 + 동양척식 1필지 + 일본인 62.5%. 이 조합이 겹치는 저동2가는 한 번의 발굴 조사만으로도 식민지 도시 형성의 전형적인 층위를 복원할 수 있는 공간이야.

9실제 발굴·조사 사례로 보는 저동2가의 현재성
비슷한 조건의 서울 도심 지역에서는 배수로, 우물, 기초석, 상점 흔적이 대거 확인된 사례들이 많아. 조사를 미뤘다가 공사 중단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어.
중구 일대의 한 재개발 현장에서는 국유지 인접 구역을 발굴하다가 일제 초기 행정시설의 기초 구조물과 배수 시스템이 온전하게 확인됐어. 공사는 일정 조정을 거쳐 진행됐고, 발굴 결과는 지역 역사 아카이브에 기록됐어. 사전 조사가 오히려 사업의 불확실성을 줄인 사례야. 저동2가 역시 과거를 무시하면 현재의 사업이 멈출 수 있는 땅이야. 반대로 제대로 조사하면 이 동네의 역사가 처음으로 입체적으로 복원될 수 있어.
10과거의 땅 위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
저동2가는 단순한 동네가 아니야. 이곳은 도시가 점령된 방식, 사람이 밀려난 흔적, 자본이 뿌리내린 순간이 모두 겹쳐진 공간이야.
1912년의 토지대장은 지금 우리에게 묻고 있어. 이 땅 위에 무엇을 세울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110필지를 점령한 일본인, 그 안에 조용히 들어온 동양척식주식회사 1필지. 조선인이 이 동네에서 얼마나 설 자리를 잃어갔는지, 그 과정이 92,390제곱미터 안에 고스란히 기록돼 있어.
지금 저동2가에서 개발을 계획하고 있다면, 그 땅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먼저 확인해봐. 문화재 발굴은 과거를 파헤치는 일이 아니야. 지금의 도시가 어떤 역사 위에 서 있는지 이해하는 일이야.
이 땅을 지나칠 때,
그 아래에 잠든 이야기를 한 번쯤 떠올려봤으면 해.
도시는 기억 위에 세워지니까.
1912년 저동2가 토지대장이 남긴 질문

끝까지 읽어줘서 진심으로 고마워.
176필지 중 110필지가 넘어간 그 동네에
동양척식주식회사의 1필지가 있었어.
숫자는 작지만, 그 1필지가 모든 걸 말해.
그 땅 아래에 밀려난 사람들의 흔적이 있어.

그 기억을 아는 사람이 한 명씩 늘어날수록,이 도시는 조금 더 정직해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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