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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서울시 강동구 고덕동 국유지 24필지 66,264㎡ 완전 해설

  • 5월 30일
  • 7분 분량

문화재 발굴조사 · 문화재 지표조사 · 강동구 고덕동

높고 덕스러운 땅, 고덕동 — 논과 밭이 팽팽히 맞선 24필지의 속 깊은 이야기

1912년 서울시 강동구 고덕동 국유지 24필지 66,264㎡ 완전 해설 — 문화재 지표조사·시굴조사·표본조사·발굴조사 기초 분석

논이 47.4%, 밭이 48.5%. 한강 동쪽 끝자락에서 논과 밭이 거의 정확히 절반씩 맞서고 있습니다.



이 균형은 우연이 아닙니다. 고덕동이라는 땅의 지형이 만들어낸 필연입니다. 그리고 그 균형 속 어딘가에, 대지 3필지 2,677㎡ 위에 세워진 건물이 이 모든 것을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그 건물의 정체를 지금 밝혀봅니다.

목차

  1. 고덕(高德) — 높고 덕스럽다는 이름이 품은 한강의 역사

  2. 1912년 고덕동 국유지 전체 통계 완전 해설

  3. 밭 10필지 32,168㎡ — 48.5%, 논과 팽팽히 겨루는 경작지

  4. 논 11필지 31,418㎡ — 47.4%, 한강 물을 품은 수전의 기억

  5. 논과 밭의 균형 — 고덕동만의 특별한 농경 구조

  6. 대지 3필지 2,677㎡ — 세 채의 건물이 말하는 것

  7. 문화재 지표조사·시굴조사·발굴조사 — 고덕동에서 무엇을 찾을 수 있나

  8. 네 지역 비교 분석 — 신림·개화·수유·고덕동

  9. 고덕동의 땅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



24필지고덕동 국유지 총 필지

66,264㎡전체 면적 (약 20,045평)

48.5%밭 면적 비율

47.4%논 면적 비율


1. 고덕(高德) — 높고 덕스럽다는 이름이 품은 한강의 역사

고덕동(高德洞). 높을 고(高), 덕 덕(德). 높고 덕스러운 마을이라는 뜻입니다. 지금은 강동구 동쪽 끝, 하남시와 맞닿은 한강변의 아파트 밀집 지역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름 속에는 훨씬 오래된 공간의 기억이 담겨 있습니다. 고덕동이라는 이름은 이 마을 뒤편에 자리한 고덕산(高德山)에서 유래했습니다. 해발 약 106m의 야트막한 산이지만,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전망과 완만한 구릉지 지형이 이 일대를 독특한 농경 공간으로 만들었습니다.

고덕동은 한강의 동쪽 끝자락에 해당합니다. 한강 본류와 가까운 저지대에는 논을 만들기 좋은 평탄한 충적 지형이 발달했고, 고덕산 기슭의 구릉지에는 밭을 일구기 좋은 경사면이 형성되었습니다. 이 두 가지 지형이 공존하는 고덕동에서 1912년 논과 밭이 거의 정확히 절반씩 국유지를 나눠 가졌다는 것은 지형의 특성이 토지 이용에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입니다.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seoulheritage.org)가 고덕동 국유지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 균형 잡힌 토지 구성 때문입니다. 논과 밭이 각각 절반씩 차지하는 구조는 이 지역이 단순한 단일 목적 경작지가 아니었음을 보여줍니다. 다양한 용도가 공존했다는 것은, 그만큼 다층적인 문화 유적이 형성되었을 가능성을 의미합니다. 24필지라는 상당한 필지 수와 66,264㎡라는 규모도 체계적인 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조사의 필요성을 뒷받침합니다.



2. 1912년 고덕동 국유지 전체 통계 완전 해설

1912년 기록에 남은 고덕동 국유지는 총 24필지, 66,264㎡입니다. 지금의 단위로 환산하면 약 20,045평으로, 축구장 약 9개를 합친 크기입니다. 앞서 살펴본 네 지역 중 신림동(183,752㎡)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큰 규모이며, 개화동(9,358㎡)과 수유동(6,393㎡)보다는 훨씬 넓습니다.

전체 필지 수

24필지

전체 면적

66,264㎡

필지당 평균 면적

2,761㎡

환산 평수

약 20,045평

고덕동 국유지는 세 종류의 토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밭 10필지 32,168㎡, 논 11필지 31,418㎡, 대지 3필지 2,677㎡입니다. 수유동처럼 밭과 대지 두 종류만 있는 것도 아니고, 신림동처럼 네 종류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세 종류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논과 밭의 극단적인 균형입니다.

면적 비율 분포

48.5%

47.4%

대지

4.1%

밭 48.5%, 논 47.4%의 차이는 고작 1.1%포인트입니다. 이 숫자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는 것은 필지 수를 보면 더 분명해집니다. 밭 10필지, 논 11필지. 단 한 필지 차이입니다. 면적으로 보면 밭이 750㎡ 더 넓고, 필지 수로 보면 논이 하나 더 많습니다. 어느 각도에서 봐도 두 토지가 팽팽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균형이 고덕동을 다른 지역과 구별 짓는 가장 핵심적인 특성입니다.


3. 밭 10필지 32,168㎡ — 48.5%, 논과 팽팽히 겨루는 경작지

밭 10필지, 32,168㎡. 필지당 평균 면적이 3,217㎡, 약 973평입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살펴본 네 지역의 밭 필지당 평균 중 두 번째로 큰 규모입니다. 신림동(6,232㎡), 고덕동(3,217㎡), 수유동(1,917㎡), 개화동(684㎡) 순으로, 고덕동의 밭은 상당한 규모를 자랑합니다.

밭 데이터

10필지필지 수

32,168㎡총 면적

3,217㎡필지당 평균

48.5%전체 대비 비율

고덕동 밭의 위치는 고덕산 기슭의 구릉 지형과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한강변의 평탄한 저지대와 달리 고덕산 사면을 따라 완만하게 경사진 구릉지는 배수가 잘 되어 논보다 밭에 적합한 지형입니다. 필지당 평균 면적이 크다는 것은 이 지역의 밭이 좁은 계단식 소규모 경작지가 아닌, 완만한 구릉을 넓게 활용한 개방형 경작지였음을 시사합니다.

문화재 발굴조사의 관점에서 고덕동 밭 10필지는 여러 시대의 경작 유구가 중첩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고덕동 일대는 한강 동쪽 지역으로, 선사 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한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실제로 강동구 일대에서는 암사동 선사 유적지로 대표되는 신석기 시대 주거 유적이 발굴된 바 있습니다. 고덕동 밭의 경작층 아래에 이보다 오래된 문화층이 숨어 있을 가능성이 있으며, 지표조사 단계에서 토기편이나 석기 파편의 산포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덕동의 밭과 논이 거의 정확히 절반씩 나뉜다는 것은 이 땅을 설계한 누군가의 의도가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자연이 만든 지형에 사람의 계획이 더해진 공간 — 그것이 고덕동 국유지의 진짜 얼굴입니다.



4. 논 11필지 31,418㎡ — 47.4%, 한강 물을 품은 수전의 기억

논 11필지, 31,418㎡. 필지당 평균 면적 2,856㎡, 약 864평입니다. 한강과 가까운 저지대의 충적 토양 위에 형성된 이 논들은 한강의 물을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활용하던 전형적인 한강변 수전이었습니다.

논 데이터

11필지필지 수

31,418㎡총 면적

2,856㎡필지당 평균

47.4%전체 대비 비율

고덕동 논이 개화동 논(필지당 2,213㎡)보다 크고 신림동 논(필지당 4,762㎡)보다 작다는 것은 두 지역의 중간 규모에 해당합니다. 한강 하구의 개화동보다는 상류에 위치하고 관악산 기슭인 신림동보다는 지대가 훨씬 낮은 고덕동의 지형적 위치가 논의 규모에 반영된 결과입니다.

한강 동쪽 충적 지형에 만들어진 논은 문화재 발굴조사에서 특별한 가치를 지닙니다. 한강은 계절마다 범람을 반복했고, 그때마다 새로운 퇴적층이 쌓였습니다. 이 퇴적층은 각 시대의 유물을 봉인하는 캡슐 역할을 합니다. 한강 범람이 남긴 퇴적층과 경작층이 교대로 쌓인 고덕동 논의 토층은 선사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는 수천 년의 흔적을 품고 있을 수 있습니다. 강동구 암사동에서 신석기 시대 빗살무늬 토기가 대량으로 출토된 배경도 이런 충적 지형의 특성에 있습니다.

또한 논 11필지가 밭 10필지보다 필지 수가 많지만 총 면적은 750㎡ 더 작다는 사실은, 논 한 필지의 규모가 밭 한 필지보다 평균적으로 작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논이 물 관리를 위해 더 세밀하게 나뉘어 관리되었음을 보여줍니다. 각 논마다 독립적인 수로와 물꼬를 갖추기 위해 필지를 작게 쪼갠 것이고, 그 수로의 흔적이 지금도 논바닥 아래에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5. 논과 밭의 균형 — 고덕동만의 특별한 농경 구조

고덕동 국유지에서 논(47.4%)과 밭(48.5%)이 1.1%포인트 차이로 거의 정확히 절반씩 나뉜다는 사실은 이 땅이 설계된 공간이었음을 암시합니다. 자연 지형이 만들어낸 우연한 결과라기보다는, 의도적인 토지 배분의 흔적으로 읽힙니다.

고덕동 논·밭 균형의 의미

필지 수 차이 — 논 11필지 vs 밭 10필지, 단 1필지 차이

면적 차이 — 밭이 논보다 750㎡ 더 넓음 (전체의 1.1%p 차이)

논 필지당 평균 — 2,856㎡ (밭 3,217㎡보다 361㎡ 작음)

해석 — 저지대 논, 구릉 밭의 지형 맞춤형 배분 구조

조선 시대 국유지를 관리하던 기관은 논과 밭의 비율을 의도적으로 조절했습니다. 논은 쌀을 생산하는 고부가가치 토지이고, 밭은 다양한 잡곡과 채소를 생산하는 다목적 토지입니다. 쌀과 잡곡의 균형 있는 생산을 위해 논과 밭이 비슷한 비율로 배분된 것이라면, 고덕동 국유지는 자급자족 능력을 갖춘 독립적인 농경 단위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지 3필지 위의 건물들이 이 농경 단위를 관리하던 중심 시설이었을 것입니다.



6. 대지 3필지 2,677㎡ — 세 채의 건물이 말하는 것

대지 3필지, 2,677㎡. 전체의 4.1%에 해당하는 이 세 필지가 고덕동 발굴조사의 핵심입니다. 필지당 평균 면적은 892.3㎡, 약 270평입니다. 세 필지가 각각 독립적으로 기록된 것은 세 개의 구별된 건물 또는 구역이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대지 데이터

3필지필지 수

2,677㎡총 면적

892㎡필지당 평균

4.1%전체 대비 비율

대지가 세 필지로 나뉜다는 것은 단일 건물이 아닌 건물군(群)이 존재했음을 뜻합니다. 조선 시대에 세 필지로 구성된 국유 건물군의 가능성은 몇 가지로 좁혀집니다. 첫째, 관아(官衙) 복합 시설입니다. 조선 시대 지방 관아는 동헌(東軒), 내아(內衙), 부속 창고가 별도 구획으로 나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고덕동처럼 한강변의 넓은 논밭을 관리하는 지방 관아가 세 필지에 걸쳐 기능별로 분리된 건물군을 구성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둘째, 역원(驛院) 또는 원(院) 시설입니다. 한강 동쪽의 고덕동은 서울에서 광주와 충주 방면으로 이어지는 옛길의 길목에 위치합니다. 조선 시대 이 길을 따라 여행자와 관리들이 쉬어가는 원(院) 또는 역(驛)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런 시설은 숙박동·마방·창고가 별도 필지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세 필지의 대지가 이 역원 시설의 세 기능에 대응할 수 있습니다.

셋째, 제언(堤堰) 관리 시설입니다. 한강변의 넓은 수전을 관리하기 위한 저수지나 수로 관리 시설 — 제언(둑)을 관리하던 제언사(堤堰司) 관련 건물 — 이 세 필지에 걸쳐 있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논 11필지 31,418㎡를 안정적으로 경작하려면 체계적인 물 관리 시설이 반드시 필요했고, 그 관리 기구의 청사가 대지 세 필지를 차지했을 수 있습니다.


7. 문화재 지표조사·시굴조사·발굴조사 — 고덕동에서 무엇을 찾을 수 있나

고덕동 국유지 66,264㎡에 대한 문화재 조사는 규모와 복잡성 모두에서 이전 세 지역보다 높은 수준의 체계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24필지라는 다수의 필지, 논과 밭의 균등 배분, 그리고 세 필지의 대지가 결합된 이 국유지는 단층적 유적이 아닌 복합적 역사 공간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문화재 지표조사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은 논과 밭의 공간적 배치를 현재 지형과 대조하는 것입니다. 한강변 저지대에 위치한 논 필지들과 고덕산 기슭 구릉지에 위치한 밭 필지들을 GIS로 재구성하면, 1912년 당시 고덕동 국유지의 전체 공간 배치도가 복원됩니다. 이 배치도를 바탕으로 대지 3필지의 위치를 특정하면 어떤 종류의 건물이 있었는지 추론할 수 있습니다.

표본조사(전체 면적의 2% 이내, 약 1,325㎡)는 대지 3필지(2,677㎡)와 논 11필지(31,418㎡)를 우선 대상으로 합니다. 대지에서는 건물 기초 구조물의 흔적을 확인하고, 논에서는 토층의 시대별 층위와 유기물 보존 상태를 파악합니다. 특히 한강 충적 지형의 논에서는 수십 센티미터 굴착만으로도 청동기~삼국 시대 유물이 출토될 수 있으므로, 굴착 속도와 층위 기록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시굴조사(전체 면적의 10% 이내, 약 6,626㎡) 단계에서는 밭 10필지 전체에 격자형 트렌치를 배치해 유물 산포 범위를 파악합니다. 고덕동 밭이 선사 시대 생활 유적 위에 조성되었다면, 밭의 경작층 아래에서 주거지 유구나 저장 구덩이의 흔적이 확인될 수 있습니다. 암사동 선사 유적과의 지리적 연속성을 고려한 광역 시굴 계획이 필요합니다.

고덕동에서 출토 가능성이 있는 유물의 범위는 신석기 시대 빗살무늬 토기부터 청동기 시대 무문토기, 삼국 시대 백제 토기, 통일신라~고려 시대 도자기, 조선 시대 분청·백자에 이르기까지 매우 폭넓습니다. 강동구라는 위치 자체가 한국 선사·고대 문화의 핵심 권역이기 때문입니다. 대지 3필지에서는 조선 시대 관청 또는 역원 관련 금속 유물, 건물 구조를 보여주는 초석과 기와가 중심 수습 목표가 됩니다.



8. 네 지역 비교 분석 — 신림·개화·수유·고덕동

이제 네 지역의 1912년 국유지 기초조사를 종합적으로 비교할 수 있습니다. 같은 서울이라는 공간이지만, 지역마다 토지 구성이 완전히 다르고, 그에 따라 문화재 발굴조사의 전략도 달라집니다.

네 지역 국유지 종합 비교

항목

신림동

개화동

수유동

고덕동

총 필지

31필지

6필지

5필지

24필지

총 면적

183,752㎡

9,358㎡

6,393㎡

66,264㎡

토지 종류

4종

3종

2종

3종

논 비율

28.5%

70.9%

0%

47.4%

밭 비율

50.9%

14.6%

90.0%

48.5%

대지 비율

3.1%

0%

10.0%

4.1%

대지 필지

2필지

0필지

2필지

3필지

핵심 특징

밭 압도

논 압도

밭 극단

논밭 균형

이 비교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고덕동이 네 지역 중 유일하게 논과 밭이 균형을 이루는 곳이라는 점입니다. 개화동은 논이 압도적이고, 수유동은 밭이 극단적으로 많으며, 신림동은 밭이 우세합니다. 오직 고덕동만이 두 토지가 거의 같은 비율로 공존합니다. 또한 대지 필지 수에서도 고덕동이 3필지로 가장 많아, 네 지역 중 건물 유구 발견 가능성이 가장 다양한 지역이기도 합니다.


9. 고덕동의 땅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

지금 고덕동에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습니다. 한강과 가까운 저지대는 아파트 단지가 되었고, 고덕산 기슭은 근린공원이 되었습니다. 110년 전 논이었던 자리가 아스팔트가 되고, 밭이었던 구릉지가 잔디밭이 되었습니다. 대지 3필지 위에 서 있던 세 채의 건물은 이제 기억 속에도 남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땅은 기억을 지우지 않습니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 바닥 아래 어딘가에 한강이 남긴 퇴적층이 있고, 그 안에 수천 년 전 사람이 버린 토기 파편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근린공원 잔디 아래 어딘가에 조선 시대 관원이 말을 매었던 목책의 흔적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지 3필지의 초석 — 누군가의 건물을 받치던 그 돌덩이 — 은 지금도 콘크리트 아래에서 제 자리를 지키고 있을지 모릅니다.

24필지 66,264㎡의 고덕동 국유지가 품은 이야기는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습니다. seoulheritage.org의 1912년 기록 기반 기초조사는 그 이야기의 첫 문장을 쓰는 작업입니다. 논과 밭이 절반씩 나뉘어 균형을 이루던 그 땅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는 삽이 대답해 줄 것입니다.



밭 10필지가 구릉을 뒤덮었습니다.논 11필지가 한강의 물을 받아 벼를 키웠습니다.그리고 대지 3필지 위에서 — 세 채의 건물이 이 모든 것을 지켜봤습니다.논과 밭이 1.1%포인트 차이로 균형을 이룬 이 땅,그 균형 속에 숨겨진 이야기가24필지 66,264㎡ 아래 지금도 잠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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