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서울 용산구 동자동 국유지는 몇 필지였을까? 철도용지 한 필지가 국유지의 62%를 차지한 자리 문화유산 시굴조사 · 표본조사 · 지표조사 · 발굴조사를 위한 기초조사
- 23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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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토지조사 기록 시리즈 · 용산구 편 · 국유지 심층편
1912년 서울 용산구 동자동국유지는 몇 필지였을까?
철도용지 한 필지가 국유지의 62%를 차지한 자리
문화유산 시굴조사 · 표본조사 · 지표조사 · 발굴조사를 위한 기초조사
국유지 14필지257,475㎡동자동 전체 면적의 76.8%철도용지 62.1%
제목 ①1912년 서울 용산구 동자동 국유지는 몇 필지였을까? 철도용지 62%의 기록 ②철도용지 한 필지가 국유지의 62%를 차지한 자리 ③1912년 동자동 국유지 14필지, 동자동 전체 면적의 76.8% ④서울역 관문, 국유지로 채워진 근대 용산의 관문 ⑤1912년 동자동 국유지 대지·분묘지·임야·밭·철도용지 현황
동자동 전체 면적의 4분의 3이,
나라가 소유한 땅이었다.
동자동. 이 시리즈에서 앞서 살펴본 대로, 1912년 용산구 동자동은 총 58필지, 335,360㎡로 이루어진 마을이었다. 그런데 이 마을 땅의 소유 구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놀라운 사실이 드러난다. 전체 58필지 중 14필지, 면적으로는 무려 257,475㎡가 국유지였다는 것이다. 필지 수로는 24.1%에 불과하지만, 면적으로는 동자동 전체의 76.8%에 달한다.
이 국유지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동자동 전체 면적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던 철도용지(159,865㎡)가 바로 그 답의 핵심이다. 이 단 1필지의 철도용지가 국유지 전체 면적의 62.1%, 동자동 전체 면적의 47.7%를 차지하고 있었다. 지금은 전국 최대 규모의 쪽방촌으로 알려진 이 자리, 1912년 국유지 기록을 지금부터 하나씩 풀어본다.
핵심 요약
1912년 동자동의 국유지는 총 14필지, 257,475㎡로, 동자동 전체 면적(335,360㎡)의 76.8%를 차지했다.
대지 8필지, 임야 3필지, 밭 1필지, 분묘지 1필지, 철도용지 1필지로 구성되었으며, 철도용지 단 1필지가 국유지 면적의 62.1%를 차지했다.
동자동 전체 임야(4필지)의 75.0%, 대지(35필지)의 22.9%가 국유지였다.
목차
1912년 동자동 국유지, 총 몇 필지였을까 — 전체와 비교하기
철도용지 1필지, 159,865㎡ — 국유지의 절대 다수
대지·임야·밭·분묘지 — 나머지 13필지의 구성
국유지에서 쪽방촌까지, 서울역 관문의 근현대사
자주 묻는 질문
한 줄 결론
11912년 동자동 국유지, 총 몇 필지였을까 — 전체와 비교하기
1912년 토지조사사업 당시 동자동의 국유지는 총 14필지, 면적으로는 257,475㎡였다.
지목 | 국유지 필지 수 | 국유지 면적 |
철도용지 | 1필지 | 159,865㎡ |
대지 | 8필지 | 57,669㎡ |
임야 | 3필지 | 36,611㎡ |
밭 | 1필지 | 2,839㎡ |
분묘지 | 1필지 | 489㎡ |
합계 | 14필지 | 257,475㎡ |
14필지
국유지 필지 수(전체의 24.1%)
257,475㎡
국유지 면적(전체의 76.8%)
62.1%
철도용지가 국유지에서 차지하는 비율
면적 오차 안내지목별 면적 합계는 257,473㎡로, 표기된 전체 면적 257,475㎡보다 2㎡ 적으며, 평→㎡ 환산 반올림 오차로 추정됩니다. 필지 수 합계(14필지)는 정확히 일치합니다.
2철도용지 1필지, 159,865㎡ — 국유지의 절대 다수
국유지 14필지 중 단 1필지가 159,865㎡, 국유지 전체 면적의 62.1%를 차지했다.
시리즈 기록 노트동자동 전체 면적(335,360㎡) 기준으로 봐도 이 철도용지 하나가 47.7%를 차지한다. 이는 이 시리즈에서 앞서 다룬 용산구 신계동의 철도용지 비율(52.6%)과 비슷한 수준으로, 경부선·경의선이 지나는 서울역 인근 지역이 얼마나 철도 부지에 크게 잠식되어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3대지·임야·밭·분묘지 — 나머지 13필지의 구성
철도용지를 제외한 나머지 국유지는 대지 8필지(57,669㎡), 임야 3필지(36,611㎡), 밭 1필지(2,839㎡), 분묘지 1필지(489㎡)로 구성되었다. 동자동 전체 임야가 4필지였던 것을 고려하면, 그중 3필지, 75.0%가 국유지였던 셈이다. 대지도 전체 35필지 중 8필지, 22.9%가 국유지였다.

4국유지에서 쪽방촌까지, 서울역 관문의 근현대사
1900년대 초
경부선·경의선 개통으로 서울역 인근 철도 부지 대거 확보, 국유지화
1912년
이 토지조사 시점 — 국유지 14필지, 철도용지가 그중 62.1%
한국전쟁 이후
동자동의 옛 이름은 도동 1번지로,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 판자촌이었으며 이후 서울역 앞 여인숙을 중심으로 쪽방촌이 형성됨
1997년 이후
외환위기 이후 노숙 위기의 홈리스들이 대거 유입, 정착지로 자리매김
현재
전국 최대 규모의 쪽방촌으로, 서울 5대 쪽방촌 중 하나, 2021년 공공주택사업 발표 이후 지구 지정이 지연되고 있음
국가가 소유한 철도 부지가 마을 면적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던 이 자리는, 이후 한국전쟁 피난민 판자촌을 거쳐 지금은 전국 최대 규모의 쪽방촌으로 이어지고 있다. 1912년 토지조사 속 국유지 14필지, 철도용지가 압도적으로 많았던 이 기록은, 서울역이라는 근대 교통 관문이 이 땅의 운명을 어떻게 결정지었는지를 보여주는 스냅샷이다. 이 오래된 토지 기록이 앞으로 이 일대의 지표조사와 발굴조사에도 소중한 밑거름이 되어줄 것이다.

5자주 묻는 질문
1912년 동자동의 국유지는 총 몇 필지였나요?
총 14필지, 257,475㎡였습니다.
국유지가 동자동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였나요?
필지 수로는 24.1%였지만, 면적으로는 76.8%에 달했습니다.
국유지 중 가장 넓은 지목은 무엇이었나요?
철도용지로, 단 1필지가 159,865㎡, 국유지 전체 면적의 62.1%를 차지했습니다.
동자동은 지금 어떤 모습인가요?
전국 최대 규모의 쪽방촌으로, 서울 5대 쪽방촌 중 하나입니다. 2021년 공공주택사업이 발표되었으나 지구 지정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이 국유지 기록은 앞서 다룬 동자동 전체 기록과 어떻게 연결되나요?
이 시리즈에서 앞서 다룬 동자동 전체 58필지 335,360㎡ 기록 중, 국유지로 확인된 부분만을 따로 심층적으로 살펴본 것입니다.

6한 줄 결론
한 줄로 정리하면, 1912년 용산구 동자동의 국유지는 총 14필지 257,475㎡로, 동자동 전체 면적의 76.8%를 차지했다. 그중에서도 철도용지 단 1필지가 국유지 면적의 62.1%, 동자동 전체 면적의 47.7%를 차지할 만큼 압도적이었다. 이 자리는 서울역이라는 근대 교통의 관문이 형성되며 국가 소유의 땅으로 크게 잠식되었고, 그 흐름은 오늘날 전국 최대 규모의 쪽방촌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글은 1912년 토지조사사업 기초자료를 바탕으로 서울 용산구 동자동의 국유지 현황을 정리한 문화유산 기초조사 자료입니다. 향후 지표조사, 표본조사, 발굴조사의 참고 자료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데이터 검증 노트
지목별 필지 수 합계(대지 8 + 분묘지 1 + 임야 3 + 밭 1 + 철도용지 1 = 14필지)는 표기된 전체 국유지 필지 수 14필지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지목별 면적 합계는 257,473㎡로, 표기된 전체 면적 257,475㎡와 2㎡ 차이가 발생하며, 평→㎡ 환산 반올림 오차로 추정됩니다.
동자동 전체 필지·면적(58필지, 335,360㎡) 및 각 지목별 전체 수치는 본 시리즈에서 이전에 다룬 동자동 게시물의 데이터를 근거로 인용했으며, 이번에 제공된 국유지 세부 수치와 대조해 비율을 계산했습니다.
동자동 쪽방촌·서울역 관련 근현대사 정보는 언론 보도(메트로서울, 비마이너, 소셜임팩트뉴스, 라이프인) 및 나무위키 공개 자료를 근거로 인용했으며, 1912년 토지조사 수치와는 별개의 역사적 배경 설명임을 명시합니다. 신계동 비교 수치는 본 시리즈에서 이전에 다룬 게시물의 데이터를 근거로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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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https://www.seoulheritage.org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https://www.seoulheritage.org ©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자료 기준: 1912년 토지조사사업 현황 자료 · 분석 대상: 서울특별시 용산구 동자동 국유지 · 분석 항목: 필지 수, 지목, 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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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거두어들인 그 땅의 절반 넘는 자리 위로
기차가 하루에도 몇 번씩 기적을 울리며 지나갔다
철길 옆 작은 대지에는 몇몇 가구가 조용히 살고 있었고
그 사이 작은 분묘지 하나도 나라의 땅으로 남아있었다
피난민의 발길이 이 자리를 채운 것은 훗날의 일이었지만
이 땅은 처음부터 그렇게, 관문의 운명을 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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