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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서울 송파구 송파동 국유지는 몇 필지였을까? 논 한 배미, 대지 열두 자리가 지켜온 나루터의 기록문화유산 시굴조사 · 표본조사 · 지표조사 · 발굴조사를 위한 기초조사

9월 15일
7분 분량

1912년 토지조사 기록 시리즈 · 송파구 편

1912년 서울 송파구 송파동국유지는 몇 필지였을까?

논 한 배미, 대지 열두 자리가 지켜온 나루터의 기록

문화유산 시굴조사 · 표본조사 · 지표조사 · 발굴조사를 위한 기초조사

13필지전체 국유지

29,312㎡전체 면적 (약 8,900평)

88.7%대지 면적 비중, 최대 지목

0필지밭, 시리즈 중 첫 부재 사례

1912년 서울 송파구 송파동에는 국유지 13필지, 총 29,312제곱미터가 있었습니다. 이 중 대지가 12필지 26,006제곱미터로 전체 면적의 88.7%를 차지해 가장 넓었고, 논은 1필지 3,305제곱미터로 뒤를 이었습니다. 밭과 잡종지, 임야는 단 한 필지도 없어, 대지와 논 두 지목만으로 이루어진 드문 구성을 보였습니다.

밭이, 단 한 곳도 없었습니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이건 백 년도 더 된 서울 송파구 송파동의 실제 기록입니다. 1912년, 조선총독부가 전국의 땅을 필지 하나하나까지 촘촘히 조사하던 그 시절, 송파동에는 열세 필지의 국유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안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밭이 보이지 않습니다. 잡종지도, 임야도 없습니다. 열세 필지 중 열두 필지가 대지였고, 나머지 한 필지만 논이었습니다.

당시 서울 근교 대부분의 마을이 논과 밭을 중심으로 한 농촌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이건 꽤 낯선 그림입니다. 그리고 이런 낯선 숫자를 가장 먼저 알아채고 파고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문화재 발굴조사나 문화재 발굴 기관에서 일하는 조사자들입니다. 이들은 본격적으로 삽을 뜨기 전, 문화재 지표조사 단계에서 이런 옛 토지 기록부터 샅샅이 훑습니다. 농사짓던 땅과 사람이 모여 살던 땅은, 그 아래 남아 있을 흔적의 성격 자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그 백 년 전 송파동으로 함께 걸어 들어가 보려 합니다. 끝까지 읽으시면, 왜 밭 하나 없는 이 작은 마을의 기록이 문화재 지표조사와 시굴조사, 표본조사, 발굴조사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지, 그리고 이 땅이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지 조금은 다르게 느껴지실 겁니다.


목차

  1. 핵심 요약, 이 숫자에 먼저 주목해야 하는 이유

  2. 1912년의 송파동, 그 시절 이 마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3. 국유지 13필지, 숫자로 먼저 만나보기

  4. 대지 12필지 26,006㎡, 전체 면적의 89%를 차지한 압도적 숫자

  5. 논 1필지 3,305㎡, 마을에 남은 단 하나의 논

  6. 밭이 단 한 곳도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7. 대지 한 곳의 평균 면적이 말해주는 것

  8. 이 숫자가 문화유산 조사에서 중요한 진짜 이유

  9. 기초자료 하나가 만든 변화, 실제 조사 성공 사례

  10. 자주 묻는 질문

  11. 한 줄로 정리하는 송파동 국유지 이야기


01

핵심 요약, 이 숫자에 먼저 주목해야 하는 이유

1912년 서울 송파구 송파동에는 국가 소유로 등록된 국유지가 모두 열세 필지 있었습니다. 이 필지들을 모두 더한 면적은 29,312제곱미터, 평수로 환산하면 8,900평가량의 규모입니다. 지목별로 나눠보면 이 마을의 성격이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대지가 열두 필지, 26,006제곱미터로 전체 면적의 88.7퍼센트를 차지했고, 논은 단 한 필지, 3,305제곱미터로 11.3퍼센트에 그쳤습니다.

밭도, 잡종지도, 임야도 단 한 필지조차 없었습니다. 필지 수로 보면 대지가 무려 92.3퍼센트를 차지하는 압도적인 구성입니다. 농촌 마을이라면 응당 있어야 할 밭이 완전히 빠져 있는 이 구성이야말로, 오늘 우리가 함께 풀어볼 송파동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02

1912년의 송파동, 그 시절 이 마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지금의 송파구 송파동을 걷다 보면 롯데월드타워와 고층 빌딩, 번화한 도심 풍경만 눈에 들어오지만, 1912년의 이 땅은 전혀 다른 이유로 분주했던 곳입니다. 당시 이 일대는 지금의 서울이 아니라 경기도 광주군 중대면에 속해 있었습니다. 오늘 살펴보는 1912년의 행정구역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송파구의 경계와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심지어 지금의 송파구라는 이름 자체도 1988년, 강동구에서 갈라져 나오며 새로 만들어진 것이니, 이 땅은 행정구역상으로도 여러 번 옷을 갈아입은 셈입니다.

송파라는 이름은 이 마을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단서입니다. 송파는 조선시대 한강을 오가던 나루터, 송파나루가 있던 자리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삼남 지방에서 한양으로 향하는 물자와 사람이 반드시 거쳐 가던 길목이었고, 그 곁에는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규모의 장이 서던 상업 중심지, 송파장이 있었습니다. 농사보다는 물류와 장사로 사람이 모여들던 땅, 그것이 송파동의 본래 얼굴이었습니다.

장이 서고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언제나 흥과 놀이가 따라붙기 마련입니다.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무형문화재 송파산대놀이 역시 바로 이 송파장의 활기 속에서 자라난 탈놀음입니다. 장꾼과 나그네, 뱃사람이 뒤섞여 흥정하고 웃고 떠들던 거리의 풍경을 떠올려 보면, 오늘 우리가 살펴볼 국유지의 숫자들이 왜 여느 농촌 마을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짐작이 갑니다.



03

국유지 13필지, 숫자로 먼저 만나보기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처럼, 숫자는 표로 정리했을 때 가장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송파구 송파동 국유지의 전체 그림을 아래 표로 함께 확인해 보겠습니다.

구분

필지 수

면적

면적 비중

전체 국유지

13필지

29,312㎡

100%

대지

12필지

26,006㎡

88.7%

논

1필지

3,305㎡

11.3%

표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마을의 성격이 한눈에 읽힙니다. 필지 수로도, 면적으로도 대지가 압도적입니다. 아흔 퍼센트에 가까운 필지가 대지였고, 논은 겨우 한 필지뿐이었습니다. 앞서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나루터와 장터를 낀 마을이었다는 역사적 배경과 이 숫자는 정확히 맞아떨어집니다.


검증 노트지목별 면적을 다시 더하면 29,311제곱미터로, 제공된 전체 수치인 29,312제곱미터와 1제곱미터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는 평(坪)에서 제곱미터로 환산하는 과정에서 흔히 발생하는 반올림 오차로, 이번 시리즈의 다른 지역 기록에서도 1~3제곱미터 수준의 유사한 차이가 반복적으로 확인됩니다. 임의로 수정하지 않고 원자료의 수치를 그대로 밝혀 둡니다. 필지 수는 논 1, 대지 12를 더한 13필지로, 전체 필지 수와 정확히 일치함을 확인했습니다.


04

대지 12필지 26,006㎡, 전체 면적의 89%를 차지한 압도적 숫자

대지는 사람이 실제로 거주하거나 건물을 짓고 활용하던 땅을 가리킵니다. 송파동 국유지 열세 필지 가운데 열두 필지, 88.7퍼센트에 이르는 면적이 이 대지로 채워져 있었다는 사실은 이 마을이 순수한 농촌이 아니었다는 걸 강하게 시사합니다.

대지 한 필지의 평균 면적을 계산해 보면 2,167제곱미터에 이릅니다. 보통의 살림집 한 채가 차지하는 크기를 훌쩍 넘어서는 규모입니다. 나루터를 오가는 사람들을 위한 객주나 주막, 물건을 쌓아 두던 창고, 혹은 장이 서던 너른 터가 이 대지 안에 섞여 있었을 가능성을 짐작하게 합니다. 물론 이는 지금 남아 있는 필지 수와 면적만으로 추정할 수 있는 가설일 뿐, 정확한 용도를 확인하려면 추가적인 문헌 조사와 현장 조사가 필요합니다.



05

논 1필지 3,305㎡, 마을에 남은 단 하나의 논

열세 필지 가운데 유일하게 논으로 분류된 땅이 있습니다. 3,305제곱미터, 결코 작지 않은 크기의 논 한 배미입니다. 나루터와 장터로 북적이던 마을에도 이렇게 한 뙈기의 논이 남아 있었다는 사실은, 상업이 아무리 번성해도 사람은 결국 먹을거리를 스스로 마련해야 했다는 아주 단순하고도 근본적인 진실을 보여줍니다.


한강을 곁에 둔 저지대였던 만큼 물을 대기는 어렵지 않았을 겁니다. 다만 논이 겨우 한 필지뿐이었다는 건, 이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직접 농사를 짓기보다는 나루터의 일과 장사로 생계를 꾸렸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06

밭이 단 한 곳도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번 송파동 기록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사실 있는 것이 아니라 없는 것입니다. 밭이 단 한 필지도 없습니다. 잡종지도, 임야도 없습니다. 지금까지 이 시리즈에서 살펴본 여러 동네에서는 밭이 빠지지 않고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송파동에는 대지와 논, 이 두 지목만 존재합니다.

이런 구성은 흔치 않습니다. 밭이 없다는 건 이 국유지가 애초에 개인의 경작이 아니라 거주와 상업, 그리고 약간의 자급용 농사만을 위해 쓰이던 땅이었을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나루터 마을이자 장터 마을이었던 송파동의 정체성이, 백 년도 더 지난 지금 이 숫자 하나로 고스란히 증명되는 셈입니다.

시리즈 기록 노트지금까지 이 시리즈에서 다룬 동 단위 국유지 기록 가운데, 밭이 단 한 필지도 없는 사례는 송파동이 처음입니다. 지목이 대지와 논 단 두 가지로만 구성된 것 역시 매우 드문 경우입니다. 앞으로 다른 지역의 데이터가 추가될 때마다 이런 지목 구성의 단순함이 시리즈 내에서 얼마나 이례적인지 계속 비교해 나갈 예정입니다.


07

대지 한 곳의 평균 면적이 말해주는 것

앞서 대지 한 필지의 평균 면적이 2,167제곱미터에 이른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숫자를 조금 더 들여다보겠습니다. 열두 필지의 대지 중에는 아주 작은 집터도, 훨씬 넓은 터도 섞여 있었을 것입니다. 평균값만으로 개별 필지의 성격을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전체적으로 넓은 대지가 많았다는 사실 자체는 분명합니다.

나루터 마을에서 넓은 대지가 필요했던 이유는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물건을 부리고 쌓아 두는 창고, 길손을 재우던 객주, 혹은 관아나 세곡을 관리하던 시설이 그 후보입니다. 어느 쪽이든, 이 숫자는 송파동이 작은 농촌 마을 하나가 아니라 물류와 상업이 오가던 거점이었다는 그림을 뒷받침합니다.


08

이 숫자가 문화유산 조사에서 중요한 진짜 이유

문화재 발굴조사나 문화재 발굴 기관이 어떤 지역을 조사하기에 앞서 가장 먼저 들여다보는 자료가 바로 오늘 살펴본 것과 같은 옛 토지대장입니다. 본격적으로 땅을 파기 전에 진행하는 문화재 지표조사 단계에서는, 그 지역의 지형과 과거 토지 이용 기록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유적이 남아 있을 가능성을 가늠합니다.

지목이 대지였다면 오랫동안 사람이 거주했다는 뜻이라 주거 유적이나 생활 유적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접근합니다. 송파동처럼 대지 비중이 90퍼센트에 가까운 경우, 좁은 지역 안에 상당히 밀집된 생활 흔적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 지역은 나루터와 장터라는 역사적 기능까지 더해져 있으니, 실제 조사에서는 주거 유적은 물론 상업 활동과 관련된 흔적까지 폭넓게 염두에 두고 시굴조사와 표본조사의 범위를 정하게 됩니다. 이 사전 단계를 충분히 거친 뒤에야 본격적인 발굴조사로 이어지게 됩니다. 오늘 정리한 송파동 국유지 열세 필지, 29,312제곱미터라는 숫자는 그래서 그 자체로 끝나는 정보가 아니라, 앞으로 이 지역에서 어떤 형태로든 조사가 이루어질 때 가장 먼저 펼쳐 봐야 할 기초 자료가 되는 셈입니다.



09

기초자료 하나가 만든 변화, 실제 조사 성공 사례

이런 기초조사 자료가 실제 조사 현장에서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는 서울 곳곳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도심 재개발이나 도로 확장 공사를 앞두고 진행되는 문화재 지표조사에서, 조사팀이 가장 먼저 펼쳐 보는 자료가 바로 옛 지적도와 토지대장입니다.



실제로 송파구 인근에서는 한성백제 시기의 토성과 고분군이 옛 지적 자료 및 지형 분석과 맞물려 확인된 사례가 있어, 이 지역 전체가 오래전부터 사람이 밀집해 살아온 땅이었음을 보여줍니다. 대지 비중이 유독 높았던 지역에서는 발굴 전 단계부터 생활 유적의 가능성을 높게 두고 조사 범위를 넓히는 식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기초자료 하나가 조사의 방향과 순서, 나아가 조사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까지 바꿔놓는 경우가 실제로 적지 않습니다. 송파동의 이 기록 역시, 지금은 그저 옛 통계처럼 보일지 몰라도 언젠가 이 지역에서 조사가 이루어질 때 가장 먼저 펼쳐질 자료 중 하나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10

자주 묻는 질문

Q. 1912년 서울 송파구 송파동 국유지는 총 몇 필지였나요?

A. 총 열세 필지였습니다.

Q. 1912년 송파동 국유지의 전체 면적은 얼마였나요?

A. 전체 면적은 29,312제곱미터였습니다.

Q. 송파동 국유지 중 대지는 얼마나 있었나요?

A. 대지는 열두 필지, 26,006제곱미터로 전체 면적의 88.7퍼센트를 차지해 가장 넓은 지목이었습니다.

Q. 송파동 국유지 중 논은 얼마나 있었나요?

A. 논은 한 필지, 3,305제곱미터였습니다.

Q. 송파동 국유지에는 밭이 있었나요?

A. 밭은 단 한 필지도 없었습니다. 잡종지와 임야 역시 없었습니다.


11

한 줄로 정리하는 송파동 국유지 이야기

한 줄로 정리하면, 1912년 서울 송파구 송파동 국유지는 총 열세 필지 29,312제곱미터였으며, 밭 없이 대지 열두 필지와 논 한 필지만으로 이루어진, 나루터와 장터 마을다운 땅의 기록이었습니다.


여기까지 함께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지금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오가는 송파동의 번화한 거리 아래에는, 백 년 전 나루터를 오가던 사람들의 발걸음과 장이 서던 날의 왁자한 소리가 여전히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밭 한 뙈기 없이 대지로 가득했던 이 작은 국유지 기록은, 사실 이 마을이 처음부터 농사가 아니라 사람과 물건이 오가는 길목이었다는 걸 조용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문화유산을 지킨다는 건 거창한 일이 아니라, 이렇게 잊혀질 뻔한 숫자 하나를 다시 꺼내어 그 안에 담긴 사람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송파동의 이 기록도 앞으로 오랫동안 소중히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송파동처럼 뜻밖의 지목 구성을 가진 마을, 여러분의 동네에 숨어 있는 1912년의 기록도 궁금하시다면 —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에서 더 많은 지역의 기초조사 자료를 만나보세요.

본 글은 1912년 토지대장 및 국유지 관련 기초자료를 바탕으로 서울 송파구 송파동의 토지 이용 현황을 정리한 글입니다.


자료 기준: 1912년 국유지 현황 자료 · 분석 대상: 서울특별시 송파구 송파동 · 분석 항목: 필지 수, 지목, 면적


관련 법령: 매장유산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법률 제20742호), 국가유산청고시 제2026-2호



출처: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https://www.seoulheritage.org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https://www.seoulheritage.org


©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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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터에 배가 닿으면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등짐을 진 이도, 갓을 쓴 이도, 흥정을 붙이는 이도


모두 이 작은 땅 위에서 하루를 살아냈습니다


밭 한 뙈기 없이도 마을은 넉넉했고


대지 열두 자리마다 사람의 온기가 배어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다시 꺼내 읽은 숫자는


사실 강을 건너던 발걸음이었고, 장이 서던 웃음소리였습니다


송파동의 땅은 이제 빌딩 아래 잠들어 있지만


그 안에 새겨진 이야기는 이렇게 다시 태어나


앞으로도 오래오래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1912년 토지조사 기록 시리즈 · 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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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산책자
6일 전
별점 5점 중 5점을 주었습니다.

대지가 88.7%를 차지했다는 점에서 나루터 마을의 생활상이 그려집니다. 밭이 한 필지도 없었다는 것도 특이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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