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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서울 성동구 마장동 국유지 현황 — 총 23필지 141,174㎡

  • 5월 25일
  • 6분 분량

1912년 서울 성동구 마장동 국유지 현황 — 총 23필지 141,174㎡

전체 필지 수 23필지 총 141,174㎡

임야 104,760㎡ 6필지 · 전체의 74.2%

23,910㎡ 11필지 · 전체의 16.9%

대지12,502㎡ 6필지 · 전체의 8.9%

토지 유형별 면적 비율

임야 74.2%

밭 16.9%

대지 8.9%

출처: seoulheritage.org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기초조사 자료 기반




지금 당신의 땅 아래에 뭐가 묻혀 있는지 알고 있나요?

서울 한복판, 지하철역 바로 옆, 흔하디흔한 공터처럼 보이는 그곳이 사실 110년도 넘은 역사를 품고 있다면 어떨 것 같으세요. 아스팔트와 빌딩이 가득한 이 도시 어딘가에, 누군가의 삶이 기록된 땅이 아직 잠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땅을 깨우는 작업, 바로 문화유산 지표 조사와 발굴조사입니다. 오늘 이야기는 서울시 성동구 마장동에서 시작됩니다. 1912년, 그때의 기록을 손에 들고 현재로 걸어들어온 이야기입니다. 끝까지 읽어보시면, 아마 서울 거리를 걷는 눈이 달라질 겁니다.


목차

1장. 마장동, 그 이름 뒤에 숨겨진 시간

2장. 1912년의 기록 — 숫자로 읽는 마장동 국유지

3장. 문화재 지표 조사란 무엇인가 — 삽 뜨기 전에 하는 가장 중요한 일

4장. 시굴조사부터 발굴조사까지 — 땅을 읽는 단계별 과정

5장. 성동구 마장동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6장. 문화유산 발굴, 우리가 함께 지켜야 할 이유


1장. 마장동, 그 이름 뒤에 숨겨진 시간

마장동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깃집을 먼저 떠올릴 겁니다. 성동구 마장동 하면 도축장 근처 고기골목, 활기찬 시장 골목, 아니면 그냥 지나치는 지하철 환승 동네 정도로 기억하는 분들이 많죠. 하지만 이 땅이 단순한 주거지나 상업지가 되기 훨씬 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훨씬 더 전인 1912년에 이곳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1912년의 서울, 그러니까 당시에는 경성이라 불리던 이 도시는 일제강점기 초기로 접어들면서 토지조사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던 시기였습니다. 일본은 조선 전역의 토지를 측량하고 분류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남겨진 방대한 기록들이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성동구 마장동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이 일대에는 국유지, 즉 국가 소유 토지가 총 23필지에 걸쳐 무려 141,174㎡나 존재했습니다. 평수로 환산하면 약 42,700평, 축구장 20개를 훌쩍 넘는 거대한 면적입니다.



그리고 그 땅의 성격을 들여다보면 꽤 흥미로운 사실이 드러납니다. 평범한 도심지가 아니라, 임야와 밭과 대지가 혼재된 복잡한 지형이었다는 겁니다. 이 세 가지 토지 유형이 어떻게 나뉘어 있었는지를 이해하면, 당시 마장동이 어떤 공간이었는지가 훨씬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2장. 1912년의 기록 — 숫자로 읽는 마장동 국유지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아카이브(seoulheritage.org) 자료를 기반으로 1912년 성동구 마장동의 국유지 현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전체 국유지는 23필지에 면적 합계 141,174㎡였습니다. 이 중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한 것은 임야였습니다. 임야는 6필지에 총 104,760㎡로, 전체 국유지 면적의 무려 74.2%를 차지했습니다. 지금의 마장동 하면 빽빽한 도시 건물들이 떠오르지만, 110여 년 전에는 이 땅의 4분의 3 이상이 나무가 우거진 산림 지대였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자체로도 상당히 충격적인 사실이죠.

두 번째로 넓은 것은 밭이었습니다. 밭은 11필지에 23,910㎡로 전체의 약 16.9%를 차지했습니다. 필지 수로는 가장 많지만 개별 면적이 상대적으로 작았습니다. 1912년 당시 마장동 주변에서 사람들이 실제로 농사를 짓고 살았다는 증거입니다. 개별 필지들이 소규모로 흩어져 분포했을 가능성이 높고, 이는 당시 소규모 자작농 또는 소작 형태의 경작지가 여러 곳에 분산되어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대지는 6필지에 12,502㎡로 전체 면적의 8.9%를 차지했습니다. 대지라는 건 사람이 건물을 짓고 실제로 생활했거나 생활할 수 있는 토지를 의미합니다. 전체 국유지 중 불과 10%에 가까운 면적만이 대지였다는 것은, 당시 마장동이 지금처럼 빽빽한 주거지나 상업지가 아니라 대부분이 자연 지형 그대로인 공간이었음을 잘 보여줍니다.

이 숫자들이 왜 중요하냐고요? 문화재 지표 조사와 발굴조사를 진행할 때 이 기록들이 바로 출발점이 되기 때문입니다. 땅의 과거 용도를 파악하는 것은 그 땅 아래에 어떤 유물이나 유구가 있을 가능성이 있는지를 예측하는 데 핵심적인 단서가 됩니다.


3장. 문화재 지표 조사란 무엇인가 — 삽 뜨기 전에 하는 가장 중요한 일

문화재 지표 조사라는 단어, 뉴스에서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건설 현장에서 공사가 갑자기 중단됐다는 소식과 함께 등장하는 그 단어 말이죠. 하지만 정작 지표 조사가 무엇을 하는 과정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지표 조사는 말 그대로 땅 표면, 즉 '지표'를 살피는 조사입니다. 실제로 땅을 파기 전에 그 지역에 문화재가 매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는지를 미리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전문 조사원들이 현장을 직접 걸어다니며 지형, 지질, 역사 문헌 자료, 지표에 드러난 유물 흔적 등을 꼼꼼히 점검합니다. 이때 1912년 토지 기록 같은 역사 자료가 중요한 참고 자료로 활용됩니다.

지표 조사는 단순히 걸어다니며 보는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매우 정교한 과학적 접근이 필요한 작업입니다. 역사 지도, 항공사진, 고문서, 구전 자료까지 모두 동원해서 해당 부지의 역사적 맥락을 파악해야 합니다. 성동구 마장동의 경우, 1912년 당시 74%가 임야였다는 사실은 이 지역이 조선시대 이전부터 산림 지대로 활용됐을 가능성을 시사하고, 그 안에 봉분이나 고분, 옛 경작지 흔적 등이 남아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국가유산청(옛 문화재청)이 정한 규정에 따르면, 일정 규모 이상의 건설이나 개발 사업이 시작되기 전에는 반드시 문화재 지표 조사를 실시해야 합니다. 이 과정을 건너뛰거나 제대로 수행하지 않으면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며, 더 큰 문제는 돌이킬 수 없는 역사적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한 번 파괴된 문화재는 영원히 복원할 수 없습니다.


4장. 시굴조사부터 발굴조사까지 — 땅을 읽는 단계별 과정

지표 조사에서 문화재 존재 가능성이 확인되면, 그 다음 단계는 시굴조사입니다. 시굴조사는 지표면 아래를 실제로 조금씩 파보는 과정입니다. 일반적으로 트렌치라고 부르는 좁고 긴 홈을 일정 간격으로 파내려가면서 지층의 상태와 유물의 존재 여부를 확인합니다.

시굴조사를 통해 유물이나 유구의 흔적이 발견되면 본격적인 발굴조사로 넘어갑니다. 발굴조사는 우리가 뉴스나 다큐멘터리에서 흔히 보는 그 장면, 즉 흙을 조심스럽게 걷어내고 도자기 파편이나 건물 기단, 무덤 등을 드러내는 작업입니다. 이 과정은 몇 달에서 심하면 몇 년까지 걸리기도 합니다.



표본 조사라는 단계도 있습니다. 이는 넓은 부지 전체를 모두 발굴하기 전에, 일부 구획을 선별적으로 먼저 조사하여 전체 유적의 성격을 파악하는 방법입니다. 시간과 비용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면서도 전체 현황을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틀어 '기초조사'라고 부를 수 있는데, seoulheritage.org에서 진행하는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프로젝트가 바로 이 기초조사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1912년 토지 기록을 비롯한 각종 역사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분석함으로써, 서울 각 지역의 문화유산 잠재력을 사전에 파악하는 작업입니다. 단순한 행정 데이터가 아니라, 역사의 지도를 만들어가는 작업이라고 보면 됩니다.

마장동의 경우를 예로 들면, 1912년 당시 104,760㎡의 임야가 있었다는 기록은 이후 도시화 과정에서 이 일대가 어떻게 변해갔는지를 추적하는 데 결정적인 단서가 됩니다. 현재 주거지나 상업 시설이 들어선 자리가 과거에는 산림이었다면, 그 지반 아래에는 조선시대 혹은 그 이전 시대의 흔적이 고스란히 잠들어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5장. 성동구 마장동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마장동 일대는 현재도 개발과 재개발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지역입니다. 낡은 건물들이 철거되고 새 아파트가 들어서는 과정에서, 땅 속 역사가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지는 우리가 주목해야 할 문제입니다.



실제 성공 사례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서울 종로구 청진동 재개발 사업 당시, 공사 착공 전 문화재 지표 조사와 발굴조사를 거쳐 조선시대 시전행랑 터와 각종 생활 유물 수천 점이 발굴된 바 있습니다. 만약 이 과정을 생략하고 바로 공사에 들어갔다면, 수백 년의 역사가 콘크리트 아래 영원히 사라졌을 것입니다. 발굴된 유물들은 현재 보존 처리 후 전시·연구에 활용되고 있으며, 청진동의 역사 복원에 핵심적인 근거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마장동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1912년 당시 11필지 23,910㎡에 달하던 밭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이 일대에 농경 생활을 영위했던 사람들의 생활 흔적이 남아있을 가능성을 의미합니다. 우물터, 경작지 경계석, 소규모 제례 시설, 심지어 무명의 무덤까지 나올 수도 있습니다. 국유지의 대지 6필지 12,502㎡가 있었다는 기록은 관청이나 공공 시설이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합니다. 조선시대 마필을 관리하던 마장(馬場)과 관련된 시설의 흔적이 실제로 이 지역 어딘가에 잠들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마장동이라는 지명 자체가 바로 말을 키우던 목장(牧場)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만약 발굴조사를 통해 조선시대 왕실 마목장과 관련된 유구가 발견된다면, 그것은 단순한 동네 역사를 넘어 서울 전체의 역사 지형도를 새로 그릴 수 있는 발견이 될 것입니다.

6장. 문화유산 발굴, 우리가 함께 지켜야 할 이유

문화재 발굴조사나 문화재 지표 조사 이야기를 하면, "그게 개발이랑 뭔 상관이야"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공사 지연이나 비용 증가의 원인처럼 여겨지기도 하죠. 하지만 조금만 시각을 바꿔보면, 이 작업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가 SNS에 올리는 일상 사진 한 장이 10년 후 나 자신의 삶을 기억하게 해주는 것처럼, 문화유산 발굴은 수백 년 전 이 땅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기억을 되살리는 작업입니다. 이름 없이 사라진 사람들의 흔적, 기록에 남지 않은 보통 사람들의 하루하루가 땅 속 유물 하나, 유구 하나에 담겨있습니다.



seoulheritage.org가 하고 있는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아카이브 작업은 바로 이런 기억들을 미래 세대에게 전달하기 위한 조용하지만 끈질긴 노력입니다. 1912년 마장동의 토지 기록 하나하나를 정리하고, 그 숫자들 뒤에 숨어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복원하는 것, 그것이 결국 우리 모두의 뿌리를 지키는 일입니다.

문화재 발굴이나 문화재 발굴 기관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seoulheritage.org를 방문해보시길 권합니다. 서울 25개 구별 지역조사 자료가 방대하게 정리되어 있고, 발굴조사 비용, 절차, 법적 행정적 FAQ까지 실질적인 정보들이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개발 사업자뿐 아니라 자기 동네의 역사가 궁금한 일반 시민들에게도 매우 유용한 아카이브입니다.

만약 내가 살고 있는 동네, 내가 걷는 그 골목길이 100년 전에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궁금해본 적이 있다면, 그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바로 문화유산 지표 조사에서 시작됩니다.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 땅은 단순한 부동산이 아닙니다. 그것은 수천 년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기억의 지층입니다.

마장동 땅 아래에는 아직 깨어나지 못한 이야기들이 잠들어 있습니다. 그 이야기들을 발굴하는 것,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사라지지 않도록 지켜내는 것, 그것이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주어진 조용한 사명입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신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이 글을 쓰면서 내내 생각한 건 단 하나였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이 도시의 땅 곳곳에,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담겨 있다는 것. 그들은 아무 흔적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졌지만, 땅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문화재 발굴조사는 단순히 유물을 캐내는 작업이 아닙니다. 그것은 잊혀진 사람들에게 이름을 돌려주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이름들이 모여 지금 우리가 딛고 있는 이 도시의 진짜 이야기가 완성됩니다.

다음에 성동구 마장동 거리를 걸을 때, 잠깐 발 아래를 내려다봐 주세요. 그곳에 아직 깨어나길 기다리는 시간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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