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서울 강서구 마곡동 국유지는 몇 필지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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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토지조사 기록 시리즈 · 강서구 편
1912년 서울 강서구 마곡동국유지는 몇 필지였을까?
삼(麻)을 심던 나루터 골짜기, 오직 논으로만 채워진 국유지의 기록
문화유산 시굴조사 · 표본조사 · 지표조사 · 발굴조사를 위한 기초조사
"LG사이언스파크가 서 있는 그 자리,
114년 전에는 온통 논이었다"
3필지, 8,928㎡ — 단 하나의 지목으로만 채워진 마곡동 국유지의 비밀
3필지
전체 국유지
8,928㎡
전체 면적
100%
논 비율
[AI 브리핑 요약]
1912년 서울시 강서구 마곡동에는 국유지 3필지, 총 8,928㎡가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이 필지들은 전부 논으로, 다른 지목은 단 한 건도 없었습니다. 이 자료는 지금은 마곡엠벨리와 LG사이언스파크가 들어선 서울 서남권 신도시 부지의 1912년 원형을 보여주는 문화유산 지표조사·발굴조사의 기초 자료로 쓰입니다.
지금의 마곡동을 처음 걷는 사람은 상상하기 어렵다. LG사이언스파크와 롯데 R&D센터, 최소 진입가격 12억 원을 넘나든다는 마곡엠벨리 아파트촌. 서울 서남권을 대표하는 첨단 부촌이라는 이름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은 동네다.
그런데 114년 전, 이 자리를 국가가 소유하고 있던 땅이 있었다. 그 땅의 정체는 놀랍도록 단순했다. 세 필지, 8,928㎡, 그리고 지목은 오직 하나, 논이었다. 다른 지목은 단 한 뼘도 섞여 있지 않았다. 오늘은 이 극단적으로 단순한 숫자가 무엇을 말해주는지 짚어본다.
목차
삼(麻)을 심던 골짜기, 1912년 마곡동으로 들어가며
국유지 3필지, 8,928㎡의 전체 그림
논 3필지 8,928㎡ — 지목이 오직 하나뿐이었던 이유
100% 논이라는 숫자가 말해주는 것
나루터 마을에서 첨단 신도시로, 마곡동의 백년
문화유산 지표조사와 이 기록이 만나는 지점
한강변 저지대 개발과 발굴조사 성공 사례
자주 묻는 질문
한 줄 결론
1삼(麻)을 심던 골짜기, 1912년 마곡동으로 들어가며
마곡(麻谷)이라는 이름부터 살펴보자. 삼 마(麻)에 골짜기 곡(谷), 즉 삼을 많이 심었던 골짜기라는 뜻이다. 삼베의 원료가 되는 삼이 유독 많이 자랐던 이 땅은, 이름 그대로 한강변 저지대의 비옥한 농경지였다.
지금의 마곡동 일대에는 고고마진이라 불리던 나루터가 있었다. 한강을 오가는 배들이 드나들던 어촌이자 나루터 마을, 그것이 마곡동의 원래 얼굴이었다. 논이 넓게 펼쳐지고, 나루터에서는 사람과 물자가 오가고, 삼밭에서는 삼베를 짜기 위한 삼이 자라던 곳. 그 조용한 강변 마을에, 1912년 조선총독부의 토지조사사업이 지나갔다.

2국유지 3필지, 8,928㎡의 전체 그림
숫자를 정리하면 이렇다. 1912년 마곡동 국유지는 모두 세 필지, 합쳐서 8,928㎡였다. 평수로 환산하면 약 2,701평, 필지 하나당 평균 2,976㎡에 이르는 규모다.
지목 | 필지 수 | 면적 | 비율 |
전체 국유지 | 3필지 | 8,928㎡ | 100% |
논 | 3필지 | 8,928㎡ | 100% |
한 줄 요약 · 1912년 마곡동 국유지는 세 필지 모두 논으로만 구성되어 있었으며, 다른 지목은 단 하나도 섞여 있지 않았다.
3논 3필지 8,928㎡ — 지목이 오직 하나뿐이었던 이유
세 필지, 8,928㎡가 모두 논이었다는 사실은 마곡동 국유지 기록 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지점이다. 보통 한 마을의 국유지에는 논과 밭, 대지, 임야가 뒤섞여 있기 마련인데, 마곡동은 예외였다.
이렇게 지목이 단일하게 나타나는 경우는 대개 두 가지 이유로 설명된다. 하나는 그 지역의 지형 자체가 물을 대기 좋은 저지대여서 논농사에 압도적으로 유리했던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애초에 국유지로 편입된 필지 자체가 특정 용도, 즉 관개시설이나 저수 관리와 관련된 논에 한정되어 있었을 가능성이다. 한강과 맞닿은 마곡동의 지리적 조건을 생각하면, 전자의 가능성이 특히 유력하다.

4100% 논이라는 숫자가 말해주는 것
전체 국유지의 지목이 100% 논이라는 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이 땅이 오래도록 물을 다루는 데 특화된 저습지였다는 뜻이고, 동시에 사람이 상시로 거주하는 집터, 즉 대지가 전혀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지가 없다는 건 이 국유지 필지들 근처에 관청이나 별도의 취락이 형성되지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순수하게 농사, 그중에서도 벼농사만을 위해 관리되던 국가 소유의 논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작은 표본이지만, 오히려 그 단순함 덕분에 이 땅의 성격을 더 또렷하게 읽어낼 수 있다.
비슷한 시기 다른 동네의 국유지 기록과 비교해 보면 이 차이가 더 선명해진다. 대개는 논과 밭이 섞이고, 크고 작은 대지와 임야까지 함께 등장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마곡동은 세 필지 모두가 논으로만 채워져 있다. 이는 국유지로 편입된 이 구간이 애초부터 하나의 목적, 즉 벼농사에 최적화된 저습 경작지로 관리되고 있었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한강과 가까운 저지대는 밀물과 썰물의 영향을 받거나, 장마철마다 범람의 위험을 안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가 꾸준히 논으로 유지됐다는 건, 그만큼 관개와 배수를 관리하는 손길이 오랫동안 이어졌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시리즈 기록 노트마곡동은 시리즈 내에서 보기 드물게 국유지 전 필지의 지목이 단 하나로만 구성된 사례다. 논 100% 표본이라는 점에서, 저지대 단일 용도 국유지의 전형으로 기록해 둔다.
5나루터 마을에서 첨단 신도시로, 마곡동의 백년
마곡동은 이후로도 오랫동안 개발이 더딘 지역으로 남아 있었다. 그린벨트로 묶여 있던 강서구의 넓은 저지대 중 하나로, 후포마을 같은 옛 자연마을이 최근까지도 남아 있었을 정도다. 그러다 마곡도시개발사업이 추진되면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2014년, 사업 부지와 인접 지역의 필지들이 대거 마곡동으로 편입됐고, 이후 마곡엠벨리 1단지부터 15단지까지 1만 7천 세대가 넘는 아파트촌이 들어섰다. 지금은 LG사이언스파크와 롯데 R&D센터를 비롯한 대기업 연구소들이 자리 잡으며, 서울 서남권을 대표하는 첨단 산업단지이자 부촌으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논 3필지, 8,928㎡라는 소박한 숫자가 100여 년 만에 이렇게 극적으로 달라진 셈이다.
흥미로운 건 이 극적인 변화 속에서도, 마곡동이라는 이름은 원래 훨씬 좁은 구역만을 가리켰다는 사실이다. 지금 우리가 아는 넓은 마곡동은 2014년 도시개발사업이 진행되면서 주변 법정동의 상당 부분을 흡수해 새로 그려진 경계다. 즉 지금의 행정구역만 보고 1912년 자료를 그대로 대입하기보다는, 당시의 좁은 원마곡동 구역을 기준으로 이 숫자를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함께 짚어둘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록이 갖는 의미는 분명하다. 지금 첨단 연구단지와 고층 아파트가 빼곡히 들어선 이 땅이, 불과 백여 년 전에는 강물과 삼밭, 논두렁 사이로 나룻배가 오가던 조용한 마을이었다는 사실. 그 격차 자체가 이 기록을 다시 꺼내 읽어야 할 이유가 된다.

6문화유산 지표조사와 이 기록이 만나는 지점
그렇다면 이 작은 숫자가 지금 왜 다시 중요할까. 답은 마곡동이 겪은 대규모 개발 그 자체에 있다. 매장유산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법률 제20742호)과 국가유산청고시 제2026-2호에 따르면, 대규모 도시개발이나 택지조성 사업을 앞둔 부지는 반드시 문화재 지표조사를 거쳐야 한다.
지표조사란 실제로 땅을 파기 전, 지형과 옛 문헌 자료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유적의 존재 가능성을 가늠하는 사전 조사다. 이 단계에서 1912년 토지조사부처럼 그 땅이 오랫동안 어떤 용도로 쓰였는지를 보여주는 자료는 핵심적인 참고 문헌이 된다.
오랫동안 논으로만 이용된 저지대는, 지속적인 경작으로 인해 지표면 아래가 비교적 온전하게 유지됐을 가능성과, 동시에 강변 저습지 특유의 퇴적 환경 때문에 오래된 유물이 흙 속 깊이 묻혀 있을 가능성을 함께 시사한다. 이런 판단을 근거로 표본조사와 시굴조사의 범위가 정해지고, 그 이후에야 본격적인 발굴조사로 이어진다.
7한강변 저지대 개발과 발굴조사 성공 사례
실제로 마곡도시개발사업처럼 대규모로 땅을 뒤엎는 사업에서는, 착공 전 지표조사가 사업 전체의 안전판 역할을 한다. 서울역사박물관은 2005년부터 도심 곳곳에서 발굴조사를 이어오며 한양도성, 종묘광장, 여러 가마터 유적을 확인해 왔다. 공통점은 하나다. 겉보기엔 이미 오래전에 정리된 땅처럼 보여도, 사전 조사를 거치지 않았다면 그 아래의 시간은 영영 확인되지 못한 채 사라졌을 것이라는 점이다.
반대로 사전 지표조사 없이 대규모 공사에 착수했다가, 진행 중이던 현장에서 예상치 못한 유구가 확인되어 몇 달씩 공정이 멈춘 사례도 서울 도심 개발 현장에서 드물지 않게 발생한다. 이런 지연은 단순한 일정 문제를 넘어, 수십억 원 단위의 손실로 이어지기도 한다.
마곡동처럼 대규모 신도시 개발이 이미 대부분 완료된 지역이라 해도, 아직 남아 있는 미개발 구간이나 향후 추가 정비가 예정된 구역이 있다면, 이 1912년 국유지 기록은 여전히 유효한 기초 참고 자료로 남는다.

8자주 묻는 질문
Q. 1912년 서울시 강서구 마곡동 국유지는 총 몇 필지였나요?
A. 총 3필지, 8,928㎡였습니다.
Q. 국유지 중 논은 얼마나 있었나요?
A. 논은 3필지, 8,928㎡로 전체 국유지 면적의 100%를 차지했습니다.
Q. 논 외에 다른 지목의 국유지도 있었나요?
A. 아니요. 확인된 자료상 마곡동 국유지는 논 3필지가 전부였으며, 밭·대지·임야 등 다른 지목은 없었습니다.
Q. 마곡(麻谷)이라는 지명은 무슨 뜻인가요?
A. 삼 마(麻)와 골짜기 곡(谷)을 합친 이름으로, 삼을 많이 심었던 골짜기라는 뜻에서 유래했습니다.
Q. 이 자료가 문화유산 조사에 왜 중요한가요?
A. 대규모 도시개발이 이뤄진 지역일수록, 개발 이전 토지의 원래 용도를 보여주는 1912년 국유지 기록이 지표조사·시굴조사의 핵심 참고 문헌이 되기 때문입니다.
9한 줄 결론
1912년 마곡동 국유지는 총 3필지 8,928㎡, 지목은 오직 논 하나뿐이었다. 삼을 심던 나루터 골짜기가 LG사이언스파크와 마곡엠벨리로 뒤바뀐 지금, 이 소박한 숫자는 그 땅이 걸어온 백 년의 거리를 가장 정직하게 증언한다.
데이터 검증 노트
논 3필지 8,928㎡는 전체 국유지 3필지 8,928㎡와 정확히 일치한다. 필지 수와 면적 모두 별도의 오차 없이 검증되었으며, 지목이 단일하게 확인되는 만큼 원문의 수치를 그대로 반영했다.
서울 곳곳의 1912년 국유지 기록을 하나씩 되짚고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또 다른 동네의 잊힌 숫자를 꺼내 봅니다.
자료 기준: 1912년 국유지 현황 자료(토지조사부 기반)
분석 대상: 서울특별시 강서구 마곡동
분석 항목: 필지 수, 지목, 면적
관련 법령: 매장유산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법률 제20742호), 국가유산청고시 제2026-2호(2026.1.11. 시행)
본 글은 1912년 토지조사 기초자료를 바탕으로 서울 강서구 마곡동의 국유지 현황을 정리한 문화유산 기초조사 참고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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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밭이 있던 골짜기, 논 세 배미의 기록. 그 위로 나루터의 물소리가 잦아들었다. 배가 오가던 강가에, 지금은 유리창 빛나는 연구소가 서 있다. 논 세 필지, 8,928제곱미터. 숫자는 단순했지만, 그 위의 시간은 단순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한강은 흐르고, 마곡의 흙은 여전히 말이 없다. 다만 우리가, 그 침묵을 다시 읽어낼 뿐이다.
출처: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https://www.seoulheritage.org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https://www.seoulheritage.org ©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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