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송파구 마천동에 '나' 있었을지도?! 핵인싸템 타임머신 타고 과거 여행 GO!
- 2025년 4월 2일
- 6분 분량
최종 수정일: 5월 19일
잠실 옆 그 동네, 110년 전엔 밭이 절반이고 산이 등을 맞댄 오지였다.
송파구 마천동. 지하철 5호선 마천역이 있고, 외곽순환도로와 가까운 이 동네를 오가며 혹시 이런 생각을 해본 적 있는가. 이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기 전, 이 땅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 1912년 기록이 전혀 다른 마천동을 보여준다. 335필지 1,044,269㎡의 땅에서 밭이 41퍼센트를 차지하고, 임야가 19퍼센트를 넘으며, 민씨가 55필지로 1위를 달리던 그 마을. 지금부터 그 이야기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목 차
1. 1912년 마천동, 숫자로 복원한 땅의 초상
2. 밭 41% — 마천동을 먹여 살린 땅의 이야기
3. 논 37% — 쌀을 키우던 공동체의 리듬
4. 임야 19% — 산이 등을 맞대던 마을의 기억
5. 대지와 그 외 — 사람이 산다는 것의 흔적
6. 민씨 55필지, 마천동 토지 권력 지도
7. 문화재 지표조사·발굴조사란 무엇인가
8. 성공 사례 — 송파구에서 역사가 걸어 나온 순간들
9. 밭두렁 아래 잠든 이야기를 꺼내는 법

1.1912년 마천동, 숫자로 복원한 땅의 초상
오늘날 마천동은 서울 송파구의 동쪽 끝, 경계를 넘으면 바로 하남시가 시작되는 자리에 있다. 잠실에서 이어지는 도시의 흐름이 이 동네에서 잠시 숨을 고르듯 낮아지고, 뒤로는 남한산성 자락이 이어진다. 그 지형적 특성은 1912년에도 마찬가지였다. 산을 등지고 앞으로 논밭이 펼쳐지는 배산임수의 전형적인 조선 시대 마을 구조가 이 동네에 고스란히 살아 있었다.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기관이 분석한 1912년 마천동의 토지 기록은 이 사실을 숫자로 증명한다. 총 335필지, 1,044,269㎡. 지금 기준으로 축구장 146개를 이어붙인 크기다. 그 광대한 땅은 논과 밭과 산이 균형 있게 분할되어 있었고, 그 위에서 민씨와 이씨, 구씨, 최씨를 비롯한 여러 가문의 사람들이 계절에 맞추어 하루를 살았다.
총 필지 수
335필지
총 면적
1,044,269㎡ (축구장 146개)
밭 면적
431,092㎡ · 169필지
논 면적
391,995㎡ · 108필지
임야 면적
199,389㎡ · 35필지
대지 면적
21,791㎡ · 23필지
마천동 토지 기록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밭과 논의 균형이다. 밭이 41.3퍼센트, 논이 37.5퍼센트로 두 토지 유형이 비슷한 비율로 공존하고 있었다. 여기에 임야가 19.1퍼센트를 더하면, 세 가지 자연 경관이 어우러진 입체적인 마을 구조가 그려진다. 밭이 앞에, 논이 그 뒤에, 산이 뒤를 받치는 마천동만의 독특한 풍경.

2.밭 41% — 마천동을 먹여 살린 땅의 이야기
169필지, 431,092㎡의 밭. 마천동 전체 면적의 41.3퍼센트가 밭이었다는 사실은, 이 동네의 생존 방식을 단번에 설명한다. 산자락이 가까운 마천동은 물을 대기 어려운 경사지와 구릉지가 적지 않았고, 그런 땅에서는 논보다 밭이 훨씬 실용적이었다. 사람들은 땅의 성질을 읽고 거기에 맞는 작물을 심었다. 고구마, 감자, 콩, 배추, 무, 팥. 마천동의 밭이 먹여 살린 것은 단지 한 가족이 아니라 이 마을 전체였다.
169필지는 169개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른 봄 씨앗을 뿌리던 손길, 한여름 잡초를 뽑으며 흘리던 땀, 가을 수확물을 지게에 지고 집으로 돌아오던 발걸음. 그 반복되는 농부의 하루가 431,092㎡의 흙 위에 켜켜이 새겨져 있었다. 그 흙 속 어딘가에는 씨앗 껍데기의 흔적, 농기구의 파편, 경작층의 유기물이 지금도 잠들어 있을 수 있다.
밭 41.3%
논 37.5%
임야 19.1%
대지 2.1%
문화재 지표조사에서는 밭 경작지의 흔적이 주요 분석 대상이 된다. 경작층의 토양 성분, 씨앗 탄화 잔재, 농기구 파편 등을 통해 당시의 작물 종류와 농경 방식을 추론할 수 있다. 개발 전 지표조사를 통해 이런 자료들이 기록으로 보존될 수 있다.
3.논 37% — 쌀을 키우던 공동체의 리듬
밭에 이어 논이 37.5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었다. 108필지, 391,995㎡. 마천동 일대에는 남한산성 자락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있었고, 그 물을 끌어들이는 수로가 논을 먹여 살렸다. 물이 있는 곳에 논이 형성되고, 논이 있는 곳에 마을이 커지는 것이 조선 시대 농경 공동체의 기본 원리였다.
108필지의 논은 혼자서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웃과 물꼬를 나누어야 하고, 모내기 철에는 품앗이를 해야 하며, 벼 베는 날에는 온 마을이 한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 민씨 집안 어른과 이씨 집안 어른이 논두렁에서 물꼬 위치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고, 구씨 집안 아이들이 논물에 발을 담그고 미꾸라지를 잡던 풍경. 그것이 1912년 마천동 논이 품고 있던 진짜 이야기다.
오늘날 마천동의 아파트 지하 어딘가에는, 그 수로의 단면이 지층 속에 아직 남아 있을 수 있다. 시굴조사나 발굴조사 과정에서 이런 수리 시설의 흔적이 드러나는 사례는 서울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4.임야 19% — 산이 등을 맞대던 마을의 기억
마천동 토지 기록에서 특별히 주목해야 할 수치가 있다. 임야 35필지, 199,389㎡. 전체의 19.1퍼센트다. 이것은 이번 시리즈에서 다룬 다른 서울 동네들과 비교하면 상당히 높은 임야 비율이다. 대현동의 임야가 전무했고, 신원동도 0.6퍼센트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마천동의 19퍼센트는 이 동네가 진정한 산촌형 마을이었음을 말해준다.
그 임야는 지금의 남한산성 자락과 이어지는 산지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 산에서 주민들은 겨울을 버틸 땔감을 해오고, 야생 나물을 뜯으며, 버섯을 따고, 약초를 채취했다. 아이들에게는 뛰어놀 넓은 운동장이었고, 어른들에게는 여름 더위를 피하는 그늘이었다. 35필지의 임야는 마천동 사람들의 생활 반경과 자연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다.
임야가 많다는 사실은 문화재 지표조사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산자락과 평지가 만나는 경계 지점은 종종 매장 문화재가 발견되는 구역이기 때문이다. 분묘, 건물지, 석축 유구 등이 산기슭에 집중되는 경우가 많아, 이런 지형을 가진 동네에서는 지표조사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5.대지와 그 외 — 사람이 산다는 것의 흔적
대지는 23필지, 21,791㎡. 전체의 2.1퍼센트에 불과하다. 논과 밭과 산이 1,044,269㎡의 땅을 거의 다 채우고 나면, 사람이 실제로 집을 짓고 사는 대지는 이처럼 좁다. 하지만 그 23필지 위에 마천동 마을의 생활 공간 전체가 들어차 있었다. 한 필지당 평균 947㎡, 지금 기준으로 약 286평 넓이의 땅에 집을 짓고 마당을 내고 텃밭을 가꾸었을 것이다.
그 집터에는 지금 아파트나 도로가 들어서 있다. 하지만 땅 아래 깊은 곳에는 그 집들의 기초석, 온돌 구조, 생활 도구의 파편이 아직 잠들어 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한 번 쌓인 삶의 흔적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수십 센티미터, 때로는 수 미터 아래에서 그 흔적들이 발굴조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6.민씨 55필지, 마천동 토지 권력 지도
1912년 마천동의 토지 소유를 성씨별로 분석하면, 이 동네의 독특한 사회적 구조가 드러난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민씨가 55필지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체 335필지 중 16.4퍼센트를 민씨 가문이 보유하고 있었다. 민씨는 조선 시대 이후 한반도 각지에서 유력 가문을 이루며 활동했던 성씨로, 마천동 역시 오랜 세월에 걸쳐 민씨 가문이 뿌리를 내린 마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민씨 55필지 1위이씨 52필지 2위구씨 52필지 2위최씨 38필지김씨 27필지박씨 24필지오씨 21필지기타 성씨
흥미로운 것은 이씨와 구씨가 나란히 52필지로 공동 2위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세 성씨, 민씨·이씨·구씨가 마천동 전체 필지의 절반 가까이를 나누어 가지고 있었다. 그 뒤를 최씨(38필지), 김씨(27필지), 박씨(24필지), 오씨(21필지)가 이었다. 비교적 다양한 성씨가 고르게 분포하면서도, 상위 세 성씨가 뚜렷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였다.
특히 구씨가 이씨와 동률을 이루며 2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은 마천동만의 독특한 특징이다. 서울의 다른 동네 기록에서 구씨가 이렇게 높은 순위를 기록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구씨 가문이 이 지역에 얼마나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데이터다. 이런 성씨 분포 정보는 문화재 발굴조사에서 어느 구역을 우선 조사해야 할지를 판단하는 실질적인 참고 자료가 된다.
7.문화재 지표조사·발굴조사란 무엇인가
문화재 지표조사란 건설 공사나 개발 사업 전에 그 땅에 매장 문화재가 있는지를 사전에 확인하는 작업이다. 지표면을 직접 관찰하고, 역사 문헌·고지도·항공사진·1912년 토지 기록 같은 자료들을 교차 분석해서 유물이나 유구가 있을 가능성을 판단한다. 이 단계에서 가능성이 확인되면 시굴조사로 이어진다.
시굴조사는 실제로 트렌치를 여러 곳 파서 지층의 구조와 유물 존재를 확인하는 단계다. 이 단계에서 유의미한 결과가 나오면, 전문 고고학자들이 투입되는 본격 발굴조사가 시작된다. 발굴조사는 층위별 기록, 유물 수습, 유구 실측, 보존 처리까지 아우르는 정밀한 전문 작업으로, 경우에 따라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리기도 한다.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일정 규모 이상의 개발 공사 전에는 문화재 지표조사가 법적으로 의무화되어 있다. 이 절차를 생략하고 공사 중 유물이 발견되면 공사는 전면 중단되며, 법적 제재와 예상치 못한 추가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사전에 지표조사를 받는 것이 시간과 비용 모두를 아끼는 가장 현명한 선택이다.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기관(seoulheritage.org)은 송파구 마천동을 포함한 서울 전역 25개 구의 역사 토지 기록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문화재 지표·시굴·발굴조사 상담과 의뢰 연계를 제공하는 전문 기관이다. 송파구에서는 풍납동을 비롯한 여러 동의 기초 조사 자료가 이미 구축되어 있다.

8.성공 사례 — 송파구에서 역사가 걸어 나온 순간들
사례 1. 풍납토성 — 송파구 땅 아래 백제 왕성이 잠들어 있었다
송파구 풍납동의 풍납토성은 서울 발굴조사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사례 중 하나다. 1997년 재건축 공사 도중 백제 시대 유물이 대거 출토되면서 전면 발굴조사가 시작됐고, 이후 이 일대가 백제 초기 왕성인 위례성과 연관된 핵심 유적임이 밝혀졌다. 사전 지표조사가 있었다면 더 많은 것이 보존됐을 것이라는 아쉬움 속에서, 이 사례는 서울 개발 지역에서 지표조사가 왜 반드시 필요한지를 가장 강력하게 보여주는 증거가 됐다.
사례 2. 송파구 재개발 구역 — 조선 후기 마을 유구 발굴
송파구 일대 재개발 구역에서 사전 문화재 지표조사를 실시한 결과, 조선 후기 마을 흔적이 있을 가능성이 확인됐다. 발굴조사에서는 기와 건물지와 생활 폐기물 층, 조선 후기 백자 파편이 수습됐으며, 이는 한강 동쪽 지역의 조선 시대 취락 구조를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로 기록됐다.
사례 3. 송파구 산자락 개발 구역 — 조선 시대 분묘 및 부장품 확인
마천동 인근 산자락 개발 구역에서 시행된 지표조사에서 조선 시대 분묘가 밀집해 있을 가능성이 포착됐다. 발굴조사 결과 조선 전·중기의 묘역이 확인됐으며, 일부 묘에서는 청동 장신구와 토기류가 부장된 채 발견됐다. 임야가 19퍼센트를 넘는 마천동 같은 산촌형 마을에서는 이런 산자락 분묘 유적의 발굴 가능성이 특히 높다.
세 사례가 공통으로 말해주는 것은 분명하다. 송파구의 땅은 생각보다 훨씬 오래된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땅에게 제대로 물어볼 때만 들을 수 있다. 지표조사와 발굴조사가 바로 그 물음의 방법이다.

9.밭두렁 아래 잠든 이야기를 꺼내는 법
마천역에서 내려 동네를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아파트 단지 끝이 보이고, 그 너머로 야트막한 산자락이 시작된다. 그 경계 어딘가에, 110년 전 민씨 가문 어른이 밭두렁을 걸어 논으로 나가던 길이 있었다. 이씨와 구씨가 물꼬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던 논의 가장자리가 있었다. 그리고 마을 뒤 산자락에는, 이름 없는 조상들의 무덤이 조용히 자리하고 있었다.
그 모든 이야기가 지금 이 땅 아래 110년의 시간과 함께 잠들어 있다. 개발이나 건축을 앞두고 있다면, 그 이야기가 영영 사라지기 전에 먼저 들어보길 권한다. 문화재 지표조사는 그 이야기를 듣는 첫 번째 방법이다. 땅을 파기 전에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것. 그것이 오늘 우리가 과거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성실한 인사다.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기관(seoulheritage.org)에서는 1912년 마천동을 포함해 서울 전역 25개 구의 역사 토지 기록 분석 자료와 문화재 지표·시굴·발굴조사 상담을 제공하고 있다. 네이버 블로그(blog.naver.com/seoulheritage)에서도 송파구를 비롯한 각 지역의 기초 조사 기록이 꾸준히 업로드되고 있다. 내 동네의 110년 전 얼굴이 궁금하다면, 지금 바로 확인해보자.
"밭두렁 하나, 논두렁 하나를 손으로 쌓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손길이 쌓아 올린 것 위에,
지금 우리가 서 있다."
내 땅의 이야기, 지금 확인해보세요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기관에서 송파구 마천동을 포함한 서울 전역 25개 구 문화재 지표조사·시굴조사·발굴조사 정보와 상담을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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