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노원구 3,805필지 10,771,036㎡논 61.7% 시리즈 최고 면적, 창덕궁 1필지, 내시 묘 100기가 잠든 초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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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 · 1912 토지조사부 시리즈
서울특별시 노원구 전역 · 문화재 기초조사 데이터
1912년 노원구 3,805필지 10,771,036㎡논 61.7% 시리즈 최고 면적, 창덕궁 1필지, 내시 묘 100기가 잠든 초안산
마들평야에서 농요가 울리고, 태릉에서 왕비가 잠들고, 초안산에서 내시들이 겨울을 보내던 땅. 1912년 노원구 전체 면적의 61.7%가 논이었다. 이 숫자는 이 시리즈 전체 최고 기록이다.
3,805총 필지
61.7%논 면적 비율(최고)
1창덕궁 소유 필지
1,000+초안산 분묘 기수
8성씨 종류
1912년 노원구는 논이 전체 면적의 61.7%였다. 이 시리즈 전체에서 가장 높은 논 면적 비율이다.
강북구(52.1%)가 이 시리즈 최고 논 비율이라고 했지만, 노원구는 그보다 더 높다. 3,805필지 10,771,036㎡ 중 1,623필지 6,640,905㎡가 논이다. 면적 기준으로 61.7%다. 지금 상계동, 중계동, 노원역 주변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이 땅이 1912년엔 열 중 여섯 칸이 논이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중랑천 때문이다. 경기도 양주에서 발원해 의정부를 거쳐 노원구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중랑천이 수천 년에 걸쳐 이 평야를 만들었다. 마들평야(상계·중계·하계동 일대)는 중랑천이 만든 충적 평야로, 물이 풍부하고 토질이 비옥해 논농사에 최적이었다. 그 논에서 나오는 수확물이 서울 도성으로 공급됐고, 마들평야에서 농사를 지을 때 부르던 노래가 서울에서 유일하게 남은 농요인 마들농요다.
그리고 이 논 61.7%의 땅 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 태릉·강릉이 있었고, 창덕궁이 1필지를 소유하고 있었으며, 초안산에는 내시 묘 100기를 포함한 1,000기 이상의 조선 시대 분묘가 잠들어 있었다.
목차
11912년 노원구 토지 통계 총괄
2논 61.7% — 시리즈 전체 최고 논 면적 비율
3마들평야와 마들농요 — 논의 땅이 낳은 무형문화유산
4태릉·강릉 — 유네스코 세계유산과 1912년 국유지
5창덕궁 1필지 — 이 시리즈 마지막 왕실 소유지
6초안산 분묘군 — 내시 묘 100기가 잠든 사적지
7성씨 8종 — 한씨·전씨·송씨의 노원 씨족 사회
8소유자 구조와 문화재 발굴 필요성
9성공 사례와 마무리

1
1912년 노원구 토지 통계 총괄 — 중랑천이 만든 논의 왕국
1912년 노원구의 토지 전체 현황이다. 3,805필지 10,771,036㎡. 이 숫자를 지목별로 들여다보면 노원구가 얼마나 압도적인 논 중심 지역이었는지가 드러난다.
1,623필지논(면적 61.7%)
1,760필지밭
274필지대지
189필지동양척식(주)
119필지임야
22필지법인
19필지국유지
18필지공유지
16필지분묘지
9필지지소(연못)
4필지사사지
1필지창덕궁 소유
지목 | 필지 수 | 면적(㎡) | 면적 비율 | 비율 시각화 |
논(畓) | 1,623 | 6,640,905 | 61.7% | |
밭(田) | 1,760 | 3,391,565 | 31.5% | |
임야(林野) | 119 | 427,195 | 3.97% | |
대지(垈) | 274 | 292,566 | 2.72% | |
분묘지 | 16 | 7,804 | 0.072% | |
사사지(寺社地) | 4 | 4,700 | 0.044% | |
지소(池沼/연못) | 9 | 6,297 | 0.058% | |
합계 | 3,805 | 10,771,032 | ≈100% |
논 61.7%와 밭 31.5%. 이 두 지목이 전체의 93.2%를 차지한다. 노원구는 1912년 거의 완벽한 농경 지대였다. 대지는 2.72%(274필지)에 불과하다. 이것은 취락 규모가 작았음을 의미한다. 중랑천변을 따라 소규모 마을들이 점점이 분산되어 있었고, 그 마을들 주변을 광활한 논이 둘러싸고 있었다.
지소 9필지 6,297㎡가 이 시리즈에서 가장 많은 연못 필지 수다. 9개의 연못이 중랑천변 논 지대에 분포했다는 것은 이 일대의 수리 시설이 조선 시대부터 체계적으로 관리됐음을 시사한다. 논농사를 위한 저수지나 관개용 연못들이 이 9필지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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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논 61.7% — 이 시리즈 전체 최고 논 면적 비율
시리즈 전 구 논 면적 비율 비교
노원구
61.7% — 시리즈 최고
61.7%
강북구
52.1%
52.1%
강남구
35.1%
35.1%
영등포구
15.1%
15.1%
성동구
12.9%
12.9%
노원구 61.7%는 이 시리즈 최고이자 서울 어느 구와 비교해도 압도적인 논 비율이다. 중랑천이 만든 마들평야가 이 수치를 가능하게 했다. 중랑천은 경기도 양주에서 발원해 의정부, 노원구를 거쳐 한강으로 흐르면서 수천 년에 걸쳐 비옥한 충적 평야를 만들었다.
마들(馬等)이라는 지명은 '논밭이 넓게 펼쳐진 들판'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조선 시대부터 마들평야는 서울 북동부의 최대 곡창 지대였다. 이 논에서 생산된 쌀이 중랑천과 한강 수로를 통해 한양 도성으로 공급됐다. 1912년 논 1,623필지 6,640,905㎡는 그 수천 년 농경 역사의 정점이자 마지막 기록이다.
3
마들평야와 마들농요 — 논의 땅이 낳은 무형문화유산

마들농요(서울특별시 무형유산 제21호, 1999년 지정)는 옛 마들평야에서 농사를 지을 때 부르던 농요다. 서울에 남아 있는 유일한 농요이며, 총 열 소리 마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내기 소리부터 논매기 소리, 벼 베는 소리까지 논농사의 전 과정을 노래로 담고 있다.
이 농요가 1912년 논 1,623필지에서 실제로 울렸다. 이씨, 김씨, 한씨 가문의 농민들이 중랑천 변 넓은 논에서 모를 심고, 논을 매고, 벼를 베면서 이 노래를 불렀다. 그 소리는 사라졌지만 그 논 아래 흙에는 그들이 밟은 발자국, 사용한 농기구, 먹고 마신 것들의 흔적이 문화층으로 남아 있다. 마들농요는 무형유산이고, 논 아래의 흔적은 매장문화재다. 두 가지가 함께 마들평야의 완전한 역사를 이룬다.
논 지소(池沼) 9필지 6,297㎡는 마들농요와 직접 연결된다. 논농사의 핵심은 수리(水利)다. 관개용 연못과 수로가 없으면 마들평야의 논농사는 불가능했다. 이 9필지의 연못은 조선 시대부터 이어온 수리 시설의 일부다. 연못 주변의 혐기성 환경에서는 목제 농기구, 볍씨, 수리 관련 석조 구조물이 보존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9필지 지소의 정확한 위치 파악이 문화재 지표조사의 핵심 과제다.
4
태릉·강릉 — 유네스코 세계유산과 1912년 국유지의 관계
태릉(泰陵)은 조선 제11대 왕 중종의 두 번째 왕비 문정왕후(1501~1565)의 능이다. 강릉(康陵)은 조선 제13대 왕 명종(1534~1567)과 인순왕후의 능이다. 두 능은 노원구 화랑로 681번지에 나란히 위치하며,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릉의 일부다.
1912년 국유지 19필지는 필지 수로는 적지만, 그 위치가 중요하다. 태릉·강릉 능역이 국유지로 포함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조선 왕릉은 왕조가 망한 뒤에도 국유지로 관리됐다. 1912년 국유지 19필지 중 태릉·강릉 능역 부분의 지하에는 왕릉 조성 과정에서 형성된 다양한 유구가 남아 있을 수 있다.
태릉과 조선 시대 노원구의 연결
문정왕후 재위 시기(1545~1565년)는 조선 정치사에서 중요한 시기다. 명종의 어머니로서 수렴청정을 한 그녀의 권력과 영향력은 이 지역 주변 토지 관리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1912년 노원구 창덕궁 소유 1필지, 국유지 19필지, 공유지 18필지의 위치를 태릉·강릉 능역과 연관하여 분석하는 것이 지표조사의 핵심이다.
5
창덕궁 1필지 — 이 시리즈의 마지막 왕실 소유지
창덕궁 1필지. 이 시리즈에서 창덕궁 소유 토지는 서대문구(4필지), 광진구(30필지), 강남구는 없었고, 강북구(9필지), 노원구(1필지)로 등장했다. 노원구의 창덕궁 1필지는 이 시리즈에서 기록된 창덕궁 소유지 중 가장 마지막이자 가장 소규모다.
단 1필지지만 그 의미는 작지 않다. 노원구 일대는 태릉·강릉의 능역이 있고, 조선 시대 왕실 사냥터와 관련된 지역이었다. 창덕궁이 이곳에 1필지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은 능역 관리나 왕실 직속 농지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이 1필지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 노원구 문화재 지표조사에서 우선순위가 높은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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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초안산 분묘군 — 내시 묘 100기가 잠든 사적지

초안산(楚安山) 분묘군. 노원구 월계동과 도봉구 창동에 걸쳐 있는 이 산에는 조선시대 300년에 걸쳐 조성된 1,000기 이상의 분묘가 있다. 2002년 사적 제440호로 지정된 이 분묘군은 조선 시대 양반 분묘부터 서민 민묘까지 다양한 계층의 무덤이 공존하는 독특한 유적이다.
특히 이곳에는 내시(內侍) 묘 약 100기가 집중 분포되어 있다. 조선 궁중 내시들이 이 산 일대에 묘역을 형성한 것이다. 내시들은 자손이 없었기 때문에 서로 의지하며 공동 묘역을 만들었다. 이 내시 묘들은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조성됐으며, 각 시기의 묘제 변화를 한 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는 역사적 자료다.
"초안산 분묘군에는 승극철을 중심으로 한 내시 묘와 연양군파의 내시 묘 약 100기가 있어 주목할 만하다. 봉분과 석상, 묘표를 밀집하여 구성하였으며, 15세기 형식에서 18세기 중반 사실주의 양식까지 묘제의 변화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
— 디지털도봉문화대전, 초안산 분묘군 학술 기록
1912년 노원구 분묘지 16필지 7,804㎡와 초안산 분묘군의 관계가 중요하다. 16필지는 토지조사사업 당시 공식적으로 분묘지로 분류된 구역이지만, 초안산의 1,000기 이상 분묘 중 상당수는 산지 임야 구역에 포함되어 별도 분류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임야 119필지 427,195㎡ 안에 초안산 분묘군의 많은 부분이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7
성씨 8종 — 한씨·전씨·송씨, 노원 씨족 사회의 특별한 구성
노원구 8개 성씨의 분포가 이 시리즈에서 특별한 이유는 3·4·6위 성씨의 조합 때문이다.
이씨783필지1위
김씨548필지2위
한씨317필지3위 · 주목
전씨274필지4위 · 주목
박씨233필지5위
송씨203필지6위 · 주목
최씨195필지7위
윤씨177필지8위
한씨 317필지(3위), 전씨 274필지(4위), 송씨 203필지(6위). 이 세 성씨의 조합이 특별하다. 한씨와 전씨는 강북구(한씨 4위, 전씨 5위)와 강남구(전씨 5위·한씨 9위)에도 등장했다. 그런데 송씨 203필지는 이 시리즈에서 노원구에서 처음으로 상위권에 등장한다.
송씨 203필지는 노원구 일대에 송씨 집성촌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 지역에 세거한 진천 송씨(鎭川宋氏)나 여산 송씨(礪山宋氏) 가문이 이 지역에 대규모로 정착했을 가능성이 있다. 송씨 집성촌의 위치를 추정하면 노원구 논 1,623필지와 대지 274필지의 분포 패턴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한씨 317필지도 중요하다. 노원구와 강북구에서 모두 상위에 등장하는 한씨는 중랑천을 따라 세거한 청주 한씨(淸州韓氏) 또는 양주 지역 토박이 한씨 가문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중랑천변 한씨 씨족 마을의 발굴조사에서는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에 걸친 연속 문화층이 확인될 수 있다.
8
소유자 구조와 문화재 지표조사·시굴조사·발굴조사 필요성
조선인(성씨)
약 3,338필지 (87.7%)
87.7%
동양척식(주)
189필지 (5.0%)
5.0%
공유지
18필지
국유지
19필지
법인
22필지
창덕궁
1필지
동양척식주식회사 189필지(5.0%)는 이 시리즈 평균 수준이다. 하지만 마들평야의 비옥한 논 지대를 겨냥한 동척의 침투는 1912년 이후 더욱 심화됐다. 이미 1912년에 189필지를 확보한 동척이 이후 수십 년간 마들평야 논의 상당 부분을 잠식했을 것이다. 동척 189필지의 위치를 현재 지적도와 대조하면 강점기 수탈의 공간적 패턴을 추적할 수 있다.
조사 단계 | 노원구 핵심 적용 지점 | 기대 성과 |
문화재 지표조사 | 논 1,623필지 중랑천변 저습지 분포·지소 9필지 수리시설 위치·창덕궁 1필지 구 왕실 소유지·태릉·강릉 국유지 19필지 능역 경계·송씨·한씨 집성촌 추정 구역 | 조사 우선 구역 선정 |
시굴조사 | 마들평야 문화층 깊이 측정·초안산 분묘군 인접 구역 유구 확인·지소 9필지 유기물층 측정·대지 274필지 중 씨족 마을 터 트렌치 | 유구 성격·층위 확인 |
표본조사 | 송씨·한씨 집성촌 주거 유구 선택 발굴·마들농요 관련 농경 유구 확인·태릉 능행로 석조 유구 조사 | 유적 범위·성격 파악 |
본발굴조사 | 전면 발굴·기록·국가유산청 보고·태릉·강릉 문화재관리소 연계 전시 | 역사 복원 완성 |
9
성공 사례와 마무리
노원구와 주변 지역의 발굴 성과들이 이 일대의 고고학적 잠재력을 입증한다.
성공 사례 01
초안산 분묘군 사적 지정 — 1,000기 내시 묘를 문화재로
2002년 국가유산청은 초안산 분묘군을 사적 제440호로 지정했다. 조선 300년에 걸친 1,000기 이상의 분묘를 체계적으로 조사한 결과,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묘제 변천과 내시 집단 묘역이라는 독특한 특성이 확인됐다. 1912년 노원구 임야 119필지 구역이 이 분묘군 분포 지역과 겹치는 것으로 분석됐다. 문화재 지표조사에서 1912년 토지조사부와 초안산 지형을 대조한 것이 사적 지정의 기초 자료가 됐다.
성공 사례 02
태릉·강릉 발굴 —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실물 확인
태릉(문정왕후)·강릉(명종·인순왕후) 능역에 대한 발굴조사에서 조선 왕릉 조성 당시의 의례 유구, 능역 경계 시설, 능행로 관련 석조 구조물이 확인됐다.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와 함께 보존·복원 연구가 강화되면서 1912년 국유지 19필지 기록이 능역의 역사적 범위를 추적하는 핵심 자료로 활용됐다.
성공 사례 03
중랑천변 수리 유구 조사 — 마들평야 농경 시스템의 실물
중랑천 정비 사업 과정에서 조선 시대 수리 시설(수문 석조 구조물, 보(洑) 관련 유구)이 확인됐다. 1912년 지소 9필지의 분포와 현재 지적도를 대조한 문화재 지표조사를 통해 수리 시설의 위치가 특정됐다. 이 발굴은 마들평야 논 61.7%를 가능하게 한 조선 시대 농업 인프라의 실물 증거를 처음으로 확인한 사례다.

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 · seoulheritage.org
마들농요가 울리던 논 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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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 61.7%, 마들평야에서 농요가 울렸고,
태릉에서 문정왕후가 잠들었으며,
초안산에서 내시 100기가 겨울을 보냈다.
이씨, 김씨, 한씨, 송씨들이
중랑천 물로 논을 채우던 그 땅.
지금 그 논 아래에는
농요의 리듬이, 왕비의 슬픔이,
내시들의 고독이 흙 속에 잠들어 있다.
발굴은 그 잠을 깨우는 일이다.
— 노원구 3,805필지, 마들평야의 기억을 위해
1999년 서울시 무형유산으로 지정된 마들농요. 그 농요가 울리던 논 61.7%의 땅 아래에 수천 년의 역사가 쌓여 있다. 아직 꺼내지 못한 그 역사를 발굴하는 것이 지금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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