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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구로구 가리봉동 국유지 109,580㎡ — 논도 밭도 아닌, 그 알 수 없는 땅이 숨기고 있는 역사의 진실.

  • 5월 30일
  • 7분 분량

문화재 지표조사발굴조사잡종지 82.3%

가리봉동 13필지,전체의 82%가 잡종지라는충격적인 사실

1912년 구로구 가리봉동 국유지 109,580㎡ — 논도 밭도 아닌, 그 알 수 없는 땅이 숨기고 있는 역사의 진실.

"잡종지"라는 단어,


들어보셨나요?


정체불명의 땅 90,149㎡


가리봉동의 역사를 바꿀 열쇠입니다.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지금은 디지털 단지와 물류 창고, 그리고 다양한 이주민 커뮤니티가 공존하는 역동적인 동네입니다. 그런데 110년 전, 이 땅의 모습은 지금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1912년 토지 대장에 기록된 가리봉동 국유지는 13필지, 총 109,580㎡. 그런데 이 중 무려 82.3%, 90,149㎡가 '잡종지(雜種地)'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논도 아니고, 밭도 아니고, 대지도 아닌 이 '잡종지'라는 지목은 대체 무엇일까요? 왜 가리봉동 국유지의 대부분이 이 정체불명의 분류로 기록되어 있는 걸까요? 그리고 이 땅이 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조사에서 왜 가장 뜨거운 주목을 받는지,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13필지총 국유지 필지 수

109,580㎡총 면적 (약 33,150평)

82.3%잡종지 비율 (압도적)

3종토지 유형 수


목 차

1.1912년 가리봉동 국유지 전체 데이터 — 숫자가 던지는 질문

2.잡종지 90,149㎡ — '정체불명의 땅'이 품은 비밀

3.논 15,973㎡ — 안양천 변 수전의 흔적

4.밭 3,457㎡ — 가장 작지만 가장 뾰족한 단서

5.잡종지와 문화재 — 왜 발굴 기관이 주목하는가

6.문화재 지표조사부터 발굴조사까지 — 가리봉동 실전 가이드

7.구로구 발굴 성공 사례와 가리봉동의 미래


1

1912년 가리봉동 국유지 전체 데이터 — 숫자가 던지는 질문

1912년 토지 대장을 처음 열었을 때, 가리봉동 페이지는 매우 이례적인 구성을 보여줍니다. 대부분의 서울 근교 동네들이 논과 밭 중심으로 구성된 것과 달리, 가리봉동 국유지는 잡종지가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13필지 109,580㎡ 중 잡종지 5필지 90,149㎡는 비율로 82.3%입니다. 논 7필지 15,973㎡가 14.6%, 밭 1필지 3,457㎡가 3.2%로 그 뒤를 잇습니다.

109,580㎡는 어느 정도 규모일까요? 축구장 약 15.3개를 이어 붙인 크기입니다. 경복궁 면적의 약 4분의 1에 해당하고, 여의도공원 전체 면적의 약 절반을 조금 넘습니다. 이 넓은 땅의 절대 다수가 '잡종지'였다는 사실은, 1912년 당시 가리봉동이 단순한 농촌 마을이 아닌 복합적인 기능을 수행했음을 강하게 암시합니다.

토지 유형

필지 수

면적 (㎡)

비율

잡종지 (雜種地)

5필지

90,149㎡

82.3%

논 (畓)

7필지

15,973㎡

14.6%

밭 (田)

1필지

3,457㎡

3.2%

합계

13필지

109,580㎡

100%

잡종지 82.3%

논 14.6%

잡종지 90,149㎡

논 15,973㎡

밭 3,457㎡



2

잡종지 90,149㎡ — '정체불명의 땅'이 품은 비밀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한 챕터입니다. 잡종지(雜種地)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현대인에게 낯설게 들리는 이 지목은 1910년대 일제 토지조사사업 당시 사용되던 분류 체계입니다. 논, 밭, 대지, 임야처럼 용도가 명확하지 않거나, 여러 용도가 혼재된 토지를 가리킵니다. 즉 잡종지는 '잡다하게 쓰이는 땅'이라는 뜻으로, 실제로는 매우 다양한 성격의 토지가 이 단일 분류 안에 뭉뚱그려진 경우가 많습니다.

잡종지로 분류되던 토지의 실제 용도는 무엇이었을까요?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군사용 토지입니다. 조선 시대 군영의 훈련장, 조련 마당, 병기고 부지, 군사 도로 등이 잡종지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둘째는 관청 부속 토지입니다. 관아의 마당, 창고 부지, 관청 소속 작업장 등이 해당합니다. 셋째는 하천변·저지대 미활용 토지입니다. 계절마다 침수되거나 활용 목적이 불명확한 하천 주변 토지가 잡종지로 기록되기도 했습니다. 넷째는 근대 인프라 부속 토지입니다. 1912년 시점에 이미 도로, 수로, 제방 등 새로운 인프라가 조성된 구역이 잡종지로 분류될 수 있었습니다. 다섯째는 묘지·제사 관련 토지입니다. 특정 집단이 관리하는 공동묘지나 제사 공간도 잡종지로 기록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가리봉동 국유 잡종지 90,149㎡는 단 5필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는 필지당 평균 약 18,030㎡, 즉 축구장 2.5개 크기의 거대한 단위 필지들임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큰 규모의 잡종지 필지는 소규모 잡목 지대나 불명확 농지가 아니라, 어떤 뚜렷한 목적으로 조성·관리된 시설 부지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잡종지는 역사학자들이 '미결 파일'이라고 부르는 땅입니다. 아직 정확한 용도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90,149㎡의 정체불명 땅 — 이것이 바로 가리봉동 문화재 기초조사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잡종지 분석

가리봉동 잡종지의 5가지 정체 가능성

① 군사 훈련장 또는 조선 후기 군영 부속 시설 부지 / ② 안양천·목감천 연결 수로·제방 관련 국유 토지 / ③ 조선 시대 금천현 또는 과천현 관아 부속 공간 / ④ 경부선·경인선 철도 부설 과정에서 발생한 근대 인프라 연계 부지 / ⑤ 국가 관리 공동묘지 또는 제사 관련 토지



3

논 15,973㎡ — 안양천 변 수전의 흔적

잡종지의 압도적 존재감 속에서, 논 7필지 15,973㎡는 비교적 조용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전체의 14.6%. 하지만 7필지라는 필지 수는 이 논들이 가리봉동 곳곳에 분산 배치되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필지당 평균 면적은 약 2,282㎡, 즉 약 690평입니다. 중간 규모의 논들이 동네 여러 곳에 나뉘어 있었던 셈입니다.

가리봉동 논의 수원(水源)은 무엇이었을까요? 이 동네의 서쪽으로는 안양천이 흐릅니다. 안양천은 경기도 안양에서 발원해 서울 구로구·금천구를 지나 한강으로 합류하는 지방 하천입니다. 가리봉동 국유 논은 안양천의 물을 끌어들인 수전(水田) 지대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이 하천 변 충적 평야를 따라 논이 광범위하게 조성되어 있었고, 그 중 일부가 국유지로 등록되어 관리되었던 것입니다.

문화재 발굴 관점에서 이 논 지역은 충적층 특유의 유물 보존 가능성을 가집니다. 하천 변 충적층은 산소가 차단되는 혐기성 환경을 형성해 목재, 씨앗, 섬유류 같은 유기질 유물이 수백 년간 보존되기에 적합합니다. 또한 논 아래 지층에는 이전 시대 생활면이 온전히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아, 고려·조선 시대 혹은 그 이전 시기의 유구가 발견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7필지로 흩어진 논들의 위치를 지적 원도에서 추적해 현재 지형과 대조하는 것이 지표조사의 첫 번째 과제가 됩니다.



4

밭 3,457㎡ — 가장 작지만 가장 뾰족한 단서

전체 면적의 3.2%, 단 1필지 3,457㎡. 가리봉동 국유지 중 가장 면적이 작은 밭입니다. 그런데 이 작은 밭이 문화재 조사 관점에서 오히려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단 1필지라는 사실이 핵심입니다. 여러 필지로 분산된 논과 달리, 밭은 하나의 필지로 뭉쳐 있습니다. 이것은 이 밭이 특정 용도를 위해 집중적으로 관리된 토지일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조선 시대 국유 밭 중에는 약재를 재배하는 약포(藥圃), 특수 채소를 생산하는 소채전(蔬菜田), 혹은 특정 관청이 직접 경작하는 시범 농지가 있었습니다. 단일 필지로 관리된 3,457㎡의 국유 밭은 그런 특수 목적 농경지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고고학적으로 밭 지역은 지표 가까이에서 유물이 발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작 활동이 반복되면서 지하의 유물이 위로 올라오는 경작 교란(耕作攪亂) 현상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단 1필지이기 때문에 조사 범위가 명확하고, 지표조사에서 중점적으로 답사하기도 수월합니다. 이 작은 밭에서 기와 조각 하나, 도자기 파편 하나가 발견된다면, 그것이 가리봉동 전체 발굴조사의 방향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약포 가능성

약재 재배 전문 국유지

의약 관련 유물 출토 기대

소채전 가능성

관청 전용 채소 재배지

관청 관련 유물과 연계

조사 난이도

단일 필지 — 낮음

지표조사 집중 가능

경작 교란층

유물 표면 노출 가능성

지표조사 1차 답사 대상


5

잡종지와 문화재 — 왜 발굴 기관이 주목하는가

잡종지는 문화재 발굴 기관에서 항상 특별히 주목하는 지목입니다. 그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정보가 없기 때문'입니다. 논이라면 수전 관련 유구를 예상하고, 대지라면 건물 기초를 예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잡종지는 선입견 없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조사해야 합니다. 이것이 오히려 가장 다양하고 예상치 못한 발견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국 발굴조사 사례를 보면, 잡종지로 분류된 구역에서 조선 시대 군영 관련 유구, 역원 터, 심지어 삼국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구가 발견된 사례가 다수 있습니다. 특히 서울 남부 지역, 즉 지금의 구로구와 금천구 일대는 조선 시대 한양 남쪽 방어선과 관련된 군사 시설이 분포했던 지역입니다. 가리봉동 잡종지 90,149㎡는 그 방어 체계와 연결된 군사 관련 유구를 품고 있을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가리봉동은 1960~70년대 구로공단의 핵심 지역으로, 급격한 도시화와 공장 건설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지표 부근의 역사 유구 일부가 훼손되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공장 건물의 기초가 깊지 않거나 건물이 세워지지 않은 잡종지 구역에서는 지하 깊은 곳의 유구가 온전히 보존되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잡종지의 특성상 건축물이 들어서지 않은 공터로 유지된 구역이 있었다면, 그 땅속은 수백 년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잡종지

90,149㎡ · 5필지

15,973㎡ · 7필지

3,457㎡ · 1필지

6

문화재 지표조사부터 발굴조사까지 — 가리봉동 실전 가이드

109,580㎡의 가리봉동 국유지를 실제로 조사한다면 어떻게 진행될까요? 특히 잡종지 비율이 82%에 달하는 이 특수한 구성에서는 일반적인 조사 절차와 다른 전략이 필요합니다. 단계별로 구체적으로 설명해 드립니다.

01

문헌 기초조사

1912년 토지 대장, 구 지적도, 조선 시대 금천현 관련 문헌, 구로공단 조성 이전 항공사진 등을 수집해 잡종지의 역사적 용도를 추적합니다. 특히 1960년대 이전 기록에서 잡종지 구역의 활용 흔적을 찾는 것이 핵심입니다.

02

지표조사

전문 고고학자가 부지 전체를 직접 걸으며 지표면을 관찰합니다. 잡종지 구역은 특히 지형 이상, 평탄면, 석축 잔재, 유물 파편 등을 중점 확인합니다. 밭 1필지는 집중 답사 대상입니다.

03

표본조사

109,580㎡의 넓은 면적을 효율적으로 조사하기 위해 전체 부지를 격자 구획으로 나누고, 일정 비율의 구획을 표본으로 선택합니다. 잡종지 5필지는 각각 별도 표본 구역으로 지정해 개별 조사합니다.

04

시굴조사

지표조사에서 유구 가능성이 확인된 구역에 트렌치를 굴착합니다. 잡종지 구역에서는 다양한 방향으로 트렌치를 배치해 지하 구조물이나 생활면의 존재 여부를 입체적으로 파악합니다.

05

발굴조사

시굴에서 중요 유구 확인 시 국가유산청 허가 하에 전면 발굴을 시작합니다. 잡종지 구역에서 군사·관청 관련 유구가 확인된다면, 구로구 전체 역사를 새롭게 쓸 발굴이 될 수 있습니다.

06

보고서 작성

각 단계별 조사 결과를 종합한 공식 보고서를 작성합니다. 잡종지의 역사적 성격이 밝혀진다면, 이 보고서는 가리봉동의 역사 교과서가 됩니다.



7

구로구 발굴 성공 사례와 가리봉동의 미래

가리봉동 이야기를 마무리하기 전에, 같은 구로구에서 이미 이루어진 역사 기록과 성공 사례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사례들은 가리봉동 잡종지 90,149㎡의 가능성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성공 사례 01

구로구 구로동 — 변하지 않는 시간 속 땅의 기억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시리즈에 따르면, 바로 이웃 동네인 구로동에서도 1912년 국유지 기록을 바탕으로 한 역사 추적 작업이 진행되었습니다. "변하지 않는 시간 속 땅의 기억과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조사 보고서는 1912년 구로동 토지 기록이 어떻게 그 동네 사람들의 삶과 연결되는지를 생생하게 담아냈습니다. 구로동 사례는 가리봉동처럼 도시화가 진행된 지역에서도 1912년 기록이 역사적 탐구의 유효한 출발점이 된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성공 사례 02

금천구 독산동 — 81필지 444,332㎡, 철도용지를 포함한 복합 국유지 기초조사

인접 금천구 독산동의 사례는 가리봉동 조사에 직접적인 시사점을 줍니다. 독산동 역시 논, 밭, 대지에 더해 철도용지라는 특수 지목이 포함된 복합 구성의 국유지로, 81필지 444,332㎡에 대한 문화재 기초조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지목이 복합된 구역일수록 문화재 발굴 잠재력이 높다는 것이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시리즈를 통해 확인되고 있습니다. 가리봉동의 잡종지 82.3%는 독산동 사례보다 더 복잡하고 더 흥미로운 역사를 품고 있을 수 있습니다.

가리봉동은 지금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재개발과 도시 재생 사업이 진행되면서 땅의 모습이 다시 한번 크게 바뀔 예정입니다. 이런 변화가 시작되기 전에, 혹은 변화와 동시에, 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조사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한번 사라진 역사 유구는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까요. 13필지 109,580㎡, 그 중 90,149㎡의 잡종지. 이 땅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아직 아무도 다 들은 사람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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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이 땅을 '잡종지'라고 적어 내려간 사람은아마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그저 분류하기 어려운 땅, 용도를 모르는 땅이라고 표시했겠지요.그런데 110년이 지난 지금,바로 그 '정체불명'이라는 기록이이 땅의 가장 강력한 역사적 가치가 되었습니다.모르는 것이 있다는 것은,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이 있다는 뜻입니다.가리봉동 잡종지 90,149㎡는아직 우리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기록에서, 가리봉동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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