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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구로구 구로동52필지 565,890㎡6가지 얼굴을 가진 땅의 비밀

5월 29일
8분 분량

문화재 지표조사 · 시굴조사 · 발굴조사 기관 완벽 가이드

6가지 토지 유형 · 서울 구로구 구로동

1912년 구로구 구로동52필지 565,890㎡6가지 얼굴을 가진 땅의 비밀잡종지 72.2% · 밭 16.4% · 지소 5.1% · 논 3.3% · 임야 2.1% · 대지 0.9%

논도, 밭도, 숲도, 연못도, 집도, 그리고 아무도 몰랐던 땅까지.한 동네에 6가지 토지 유형이 공존한 그 이유는구로동이 단순한 농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잡종지 408,768㎡(72.2%)

밭 92,681㎡(16.4%)

지소 28,608㎡(5.1%)

논 18,848㎡(3.3%)

임야 12,155㎡(2.1%)

대지 1,838㎡(0.9%)

52필지

총 필지 수

565,890㎡

총 면적

6가지

토지 유형

1912년

지적 등록


잡종지 72.2% · 이 시리즈 유일 · 6종 토지 혼합

"논도 밭도 임야도 아닌, 잡종지(雜種地).구로동 국유지의 72%가 이 낯선 이름의 땅이었다."

서울시 구로구 구로동. 지금은 구로디지털단지와 서울 서남권의 핵심 상업·업무 지구지만, 1912년 이 땅의 국유지 기록은 이 시리즈에서 가장 복잡하고 가장 흥미롭다. 52필지 565,890㎡에 무려 6가지 토지 유형이 공존했다. 그런데 그 중 72.2%, 408,768㎡가 '잡종지(雜種地)'라는 생소한 유형이었다. 이것이 무엇인지 알면, 1912년 구로동이 단순한 농촌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


목차 — Table of Contents

011912년 구로동 국유지 통계 — 6가지 토지의 충격적 구성

02잡종지란 무엇인가 — 72%가 감춘 역사의 열쇠

03구로동이란 어디인가 — 구로의 역사와 6종 토지의 배경

046가지 토지 유형별 발굴 가치 — 지소·잡종지의 특수성

05문화재 지표조사란 무엇인가 — 복합 토지를 읽는 법

06표본·시굴·발굴조사 — 6종 복합지 단계별 해설

07문화재 발굴조사 기관 — 어디에 맡겨야 하나

08당신이 지금 해야 할 것 — 행동을 부르는 마지막 이야기


01핵심 통계

1912년 구로동 국유지 통계 — 6가지 토지의 충격적 구성



565,890㎡ — 52필지 · 6가지 토지 유형 · 이 시리즈 두 번째 최대

잡종지 29필지 72.2%밭 11필지 16.4%지소 4필지 5.1%논 4필지 3.3%임야 1필지 2.1%대지 3필지 0.9%

🏭

잡종지 (雜種地)

29필지

408,768㎡ · 72.2%


필지당 평균 14,095㎡

🌾

밭 (田)

11필지

92,681㎡ · 16.4%


필지당 평균 8,426㎡

💧

지소 (池沼)

4필지

28,608㎡ · 5.1%


필지당 평균 7,152㎡

🌿

논 (畓)

4필지

18,848㎡ · 3.3%


필지당 평균 4,712㎡

🌲

임야 (林野)

1필지

12,155㎡ · 2.1%


단독 필지

🏡

대지 (垈地)

3필지

5,190㎡ · 0.9%


필지당 평균 1,730㎡

6종

토지 유형 수


(이 시리즈 최다)

10,883㎡

필지당 평균

72.2%

잡종지 비율

1912년

지적 등록

토지 유형별 면적 비율 (총 565,890㎡)

🏭잡종지

72.2%408,768㎡

🌾밭

16.4%92,681㎡

💧지소

5.1%28,608㎡

🌿논

3.3%18,848㎡

🌲임야

2.1%12,155㎡

🏡대지

0.9%5,190㎡

이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토지 유형이 6가지나 되는 사례는 구로동이 유일하다. 논, 밭, 임야, 대지라는 일반적인 4가지 유형에 더해 '지소(池沼)'와 '잡종지(雜種地)'라는 두 가지 특수 유형이 추가로 나타난다. 이것이 구로동 국유지를 이 시리즈에서 가장 복잡하고 가장 흥미로운 사례로 만드는 핵심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비율이다. 6가지 유형 중 잡종지가 무려 72.2%, 408,768㎡를 차지한다. 단 29필지가 전체의 4분의 3을 점유한다. 29개 필지의 평균 면적이 14,095㎡에 달한다는 것은 이것이 소규모 잡다한 땅이 아니라, 대규모로 특정 용도로 사용되던 땅이었음을 보여준다. 구로동의 진짜 역사는 바로 이 잡종지가 무엇이었는지를 밝히는 것에서 시작된다.


02핵심 해설

잡종지란 무엇인가 — 72%가 감춘 역사의 열쇠

72%잡종지(雜種地)

잡종지(雜種地)란?

일제강점기 토지조사사업에서 사용된 특수 토지 분류. 논·밭·임야·대지로 분류할 수 없는 특수 용도의 땅을 통칭했다. 군사 시설, 공공 기관 부지, 도로·수로 인접지, 광업 관련 토지, 폐기지, 하천부지, 특수 용도 국유지 등이 포함됐다. 1912년 구로동 408,768㎡의 잡종지는 일반적인 농경지와는 전혀 다른 역사를 품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잡종지는 단순히 "잡다한 땅"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지적 체계에서 잡종지는 매우 구체적인 의미를 가졌다. 전통적인 농경 용도(논·밭)나 산림 용도(임야), 거주 용도(대지)로 분류할 수 없는 특수한 용도의 토지를 하나로 묶어 분류한 것이다. 여기에 해당하는 것들은 매우 다양했다.

군용지·관아 부지·역원(驛院) 터·창고지·공공 도로·수리 시설 인근 토지·광업 관련 토지·하천변 미개간지 등이 모두 잡종지로 분류될 수 있었다. 구로동이라는 지역적 맥락에서 408,768㎡의 잡종지는 어떤 성격이었을까. 구로 일대는 조선시대 관아 및 역원(말을 교체하고 관원이 쉬어가는 공공 시설) 관련 시설이 있었던 지역이며, 일제강점기에는 철도 인프라와 관련된 국유지가 대거 형성되었다. 1912년 구로동 잡종지는 이런 복합적인 역사의 산물일 가능성이 높다.

발굴 고고학 관점에서 잡종지는 가장 예측 불가능하고 가장 다양한 유구를 품을 수 있는 토지 유형이다. 일반 농경지와 달리, 잡종지에서는 관아 건물 기단, 역원 건물터, 군사 시설 흔적, 창고 유구 등 다양한 성격의 유적이 드러날 수 있다. 전체의 72%가 이런 잠재력을 가진 잡종지였다는 것, 이것이 구로동 국유지 기록이 이 시리즈에서 가장 흥미로운 이유다.

잡종지는 분류하기 힘들었던 땅이다. 그러나 분류하기 힘들다는 것은, 그 땅이 단 하나의 이야기로는 설명될 수 없을 만큼 복잡한 역사를 품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408,768㎡의 잡종지 아래, 이 시리즈 최다 종류의 유구가 기다리고 있다.


03역사 배경

구로동이란 어디인가 — 구로의 역사와 6종 토지의 배경



구로동(九老洞)은 구로구의 중심부에 위치한다. '구로(九老)'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아홉 명의 노인이 이 마을에 살면서 기로회(耆老會, 노인들의 친목 모임)를 만들었다는 전설에서 비롯됐다. 이 이름 자체가 이 동네가 오랜 역사를 가진 정착 마을이었음을 보여준다.

구로동이 위치한 안양천(安養川) 유역은 한양 서남쪽의 교통 요충지였다. 경기도 각지에서 한양으로 들어오는 주요 도로가 이 지역을 통과했고, 조선시대 역원(驛院) 제도 하에서 이 일대에 교통 관련 국가 시설이 집중되어 있었다. 이것이 408,768㎡라는 거대한 잡종지 국유지가 형성된 배경 중 하나였을 것이다.

지소(池沼) 4필지 28,608㎡도 구로동의 역사적 특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지소는 연못이나 소택지(늪)를 의미한다. 안양천 지류가 흐르는 구로동의 저지대에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연못과 습지가 있었을 것이다. 이런 수환경 지형은 조선시대 생태 다양성과 함께, 연꽃 재배·어로 활동·수생식물 채취 등 다양한 생업 활동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을 수 있다. 4필지 28,608㎡의 지소가 국유지로 등록된 것은 이것이 단순한 자연 연못이 아니라 국가가 관리하던 수리 시설이나 어장이었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1912년 당시 구로동은 경기도 시흥군 동면 구로리였다. 안양천 유역의 이 평탄한 지형은 논·밭·지소·잡종지가 복잡하게 얽힌 다목적 국유지 지대를 형성하기에 이상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04유형별 분석

6가지 토지 유형별 발굴 가치 — 지소·잡종지의 특수성



🏭

잡종지

408,768㎡

역원·관아·창고·군사시설 유구 기대. 조선~일제 복합 구조물 흔적. 이 시리즈 최다 유구 다양성 가능.

🌾

밭

92,681㎡

도자기·기와 파편 집중 분포. 안양천 유역 농경 문화층. 조선~삼국 다층 구조 기대.

💧

지소

28,608㎡

습지 고고학 특수 환경. 목재·유기물 보존 탁월. 국가 수리시설·어장 관련 유구 가능성.

🌿

논

18,848㎡

논 퇴적층 유기물 보존. 볍씨·목재 농기구 기대. 안양천 수계 관개 체계 흔적.

🌲

임야

12,155㎡

인위적 교란 없어 보존 최상. 분묘 유구 가능성. 조선 봉산·금산 관련 시설 흔적.

🏡

대지

5,190㎡

3필지 생활 유구 밀집. 국유지 관리인 거처 또는 역원 관련 시설. 온돌·우물·기단 기대.

6가지 유형 중 가장 독특한 발굴 가치를 가진 두 가지를 꼽는다면 잡종지와 지소다. 잡종지 408,768㎡는 이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가장 예측 불가능한 유구를 품은 토지다. 일반 농경지 발굴과 달리 잡종지 발굴에서는 표준적인 조사 접근법이 없다. 각 필지가 어떤 역사적 용도로 사용되었는지를 먼저 문헌으로 파악하고, 그 용도에 맞는 맞춤형 조사 방법을 적용해야 한다. 29필지 각각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잡종지 조사는 발굴팀에게 도전이자 흥분의 연속이 될 것이다.

지소(池沼) 4필지 28,608㎡는 논 발굴과 유사한 습지 고고학 환경을 제공한다. 연못이나 소택지 바닥의 퇴적층에는 수백 년간 물속에 가라앉은 유물들이 혐기성 환경 속에서 탁월한 보존 상태를 유지하고 있을 수 있다. 국가가 관리하던 연못·어장의 수변 구조물, 목재 말뚝, 배를 묶던 시설 등이 출토될 경우 조선시대 수리·어업 문화의 새로운 면이 드러날 것이다.

💡 지소(池沼) — 이 시리즈 최초 등장 토지 유형

지소는 이 시리즈에서 구로동에 처음 등장하는 토지 유형이다. 논밭 임야 대지와 달리 연못·소택지·늪을 의미하는 지소는 독특한 습지 고고학 환경을 제공한다. 일반 토양에서는 수십 년이면 사라지는 목재·유기물이 지소의 혐기성 환경에서는 수백 년을 버틸 수 있다. 4필지 28,608㎡의 국유 지소는 구로동 발굴에서 가장 예상치 못한 발견의 원천이 될 가능성이 높다.


05조사 방법론

문화재 지표조사란 무엇인가 — 복합 토지를 읽는 방법

6가지 토지 유형이 혼재한 565,890㎡의 지표조사는 단일 유형 토지 조사와 근본적으로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 각 유형마다 지표에서 관찰해야 할 것이 다르고, 기대해야 할 유물이 다르며, 조사에 필요한 기술이 다르다. 특히 잡종지 29필지는 필지별로 전혀 다른 역사를 가지고 있을 수 있어, 필지 단위의 개별 문헌 조사가 필수다.

565,890㎡는 법적 지표조사 의무 기준인 3만 제곱미터를 약 18배 초과한다. 국가유산청과의 전면 협의 및 문화유산위원회 심의가 반드시 필요한 규모다. 특히 잡종지의 역사적 성격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조선시대 시흥군 구로리 관련 문헌과 일제강점기 토지대장을 병행 분석해야 한다.

1

잡종지 29필지 개별 역사 추적 — 역원·관아·군용지 여부 확인

각 잡종지 필지의 구체적 역사적 용도를 조선시대 도로·역원 기록, 일제강점기 토지조사서, 시흥군 행정 문서 등을 통해 개별적으로 파악한다. 408,768㎡를 단일 유형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

2

안양천 수계 분석 및 지소 위치 복원

4필지 28,608㎡의 지소가 어떤 수계 환경에서 형성되었는지 안양천 유역 지형도와 항공사진으로 분석한다. 국유 어장·연못·수리 시설 여부 파악이 핵심이다.

3

6종 유형별 격자 지표 조사 — 유형별 맞춤 탐색

잡종지·밭·지소·논·임야·대지 각 구간마다 해당 유형에 적합한 탐색 방법을 적용한다. 지소 구간은 퇴적물 코어 샘플링, 잡종지 구간은 지표 구조물 흔적 탐색, 논 구간은 토층 분석을 우선 실시한다.

4

6종 복합 종합 보고서 작성

각 토지 유형별 조사 결과를 종합하여 구로동 국유지 565,890㎡의 전체 역사 층위를 재구성하는 종합 보고서를 작성한다. 6종 유형이 어떻게 공간적으로 배치되어 상호작용했는지가 핵심 분석 내용이다.

06발굴 단계

표본·시굴·발굴조사 — 6종 복합지 단계별 해설



565,890㎡에 6가지 토지 유형이 혼재한 구로동 발굴은 이 시리즈 전체에서 가장 복잡한 발굴 전략을 요구한다. 표본조사의 2%인 최대 11,317.8㎡만으로도, 6가지 유형 각각에서 대표 구간을 선정해 동시에 탐색을 진행해야 한다. 이것은 마치 6개의 서로 다른 발굴을 한꺼번에 관리하는 것과 같다.

표본조사에서 잡종지 구간은 가장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역원 터가 있었다면 건물 기단과 마당 유구가, 창고 터였다면 기단과 배수 시설이, 군사 시설이었다면 방어 구조물 흔적이 드러날 수 있다. 각 필지의 문헌 연구 결과에 따라 탐색 깊이와 방향을 다르게 설정해야 한다. 지소 구간은 수분 관리 장비를 갖추고 퇴적물 코어를 먼저 채취해 보존 가능성을 확인한 뒤 발굴 범위를 결정한다.

시굴조사 단계에서 56,589㎡가 조사되면, 구로동 국유지의 전체 역사 구조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잡종지의 건물 배치, 지소와 수로의 연결 구조, 밭과 논의 공간적 관계, 임야의 분묘 분포, 대지의 생활 유구가 하나의 그림으로 연결되는 순간. 이것은 단순한 개별 유적 발굴이 아니라 1912년 구로동 국유지 전체의 공간 구성을 완전하게 복원하는 작업이다.

정밀발굴조사에서 가장 극적인 가능성은 잡종지에서 나온다. 만약 408,768㎡의 잡종지 중 상당 부분이 조선시대 역원(驛院) 관련 국유지였다면, 역원 건물 기단, 마방(馬房, 말 관리 시설), 숙박 공간, 우물, 창고가 복합적으로 드러날 것이다. 조선시대 전국 교통망의 핵심 인프라였던 역원의 실체가 구로동 잡종지 아래에서 처음으로 완전한 형태로 발굴될 수 있다.

잡종지는 분류를 거부했던 땅이다. 하지만 발굴팀의 삽 앞에서는 분류를 거부할 수 없다. 그 안에 역원이 있었는지, 창고가 있었는지, 아니면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무언가가 있었는지. 408,768㎡의 잡종지는 이 시리즈 최대의 미스터리다.


07기관 안내

문화재 발굴조사 기관 — 어디에 맡겨야 하나

6가지 토지 유형이 혼재한 구로동 국유지 발굴은 단일 전문 분야로는 대응할 수 없는 복합적인 사안이다. 국가유산청 등록 전문기관 중에서도 잡종지 역사 문헌 분석, 습지 고고학, 산지 발굴, 도심 발굴을 모두 경험한 종합 역량의 기관이 필요하다. 또는 각 분야의 전문 기관들이 공동 참여하는 컨소시엄 방식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www.seoulheritage.org)는 구로동처럼 이 시리즈 전체에서 유일하게 6가지 토지 유형이 공존하는 특수한 사례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잡종지 72.2%라는 극히 드문 구성은 서울 국유지 데이터베이스에서도 최상위 특이 사례로 분류되며, 이 땅의 역사적 성격을 규명하는 것이 구로동 문화유산 연구의 핵심 과제다.

발굴 기관 선정 시 반드시 확인해야 할 사항이 있다. 잡종지 역사 문헌 분석 역량, 지소 습지 발굴 경험, 조선시대 역원·교통 관련 유적 발굴 실적, 복합 토지 유형 대면적 발굴 수행 능력, 그리고 6개 유형을 동시 관리하는 현장 조직 운영 능력이다. 이 중 하나라도 부족한 기관에게 구로동 발굴을 맡기면, 잡종지의 진짜 이야기는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 수 있다.

성공 사례 — 경기도 과천 조선시대 역원(驛院) 발굴

경기도 과천 인근에서 진행된 조선시대 역원 유적 발굴에서는 역원 건물 기단, 마방 시설, 우물, 잡종지로 분류된 토지 아래에서 출토된 다양한 생활 유물이 조선시대 교통 인프라의 실체를 생생하게 복원했다. 한양-과천-수원을 잇는 주요 도로에 위치한 이 역원 발굴은 구로동 잡종지 발굴에서 기대할 수 있는 성과의 좋은 선례다.

성공 사례 — 서울 영등포 안양천 변 복합지 발굴

구로동과 인접한 안양천 유역 복합지 발굴에서는 조선~일제 전환기의 수리 시설, 농경 유구, 생활 유적이 복합적으로 확인되었다. 안양천 수계를 공유하는 구로동 지소·논·잡종지 발굴에서도 이와 유사한 복합 문화층이 기대된다.


08행동 촉구

당신이 지금 해야 할 것 — 행동을 부르는 마지막 이야기



이 글을 끝까지 읽어온 당신은 이제 '구로'라는 이름을 다르게 듣게 될 것이다. 구로디지털단지, 구로공단, 서울 서남권의 번화한 도시. 그 모든 것 아래에, 6가지 얼굴을 가진 565,890㎡의 땅이 잠들어 있다는 것을. 그 중 72%가 아직도 무엇인지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잡종지라는 것을.

만약 당신이 구로구에서 건설·개발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면, 지금 반드시 해야 할 것이 있다. 565,890㎡는 법적 지표조사 의무 기준의 18배를 넘는 면적이다. 이 땅의 어느 구간을 개발하든 국가유산청과의 사전 협의는 법적 의무다. 특히 잡종지와 지소 구간은 예상치 못한 유구가 드러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구간이므로, 착공 전 전문 발굴조사 기관의 기초조사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법을 넘어서는 이야기다. 아홉 노인이 살았다는 구로동, 조선의 역원이 있었을 그 땅, 연못과 소택지와 논밭이 공존했던 그 풍경. 그 풍경 아래의 역사를 꺼내 이 세대와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가 이 땅에 진 가장 오랜 빚이다.



6가지 유형의 땅은 6가지 삶의 방식이었다. 논에서 벼를 심고, 밭에서 채소를 키우고, 연못에서 고기를 잡고, 숲에서 나무를 베고, 역원에서 길손을 맞이했던 그 사람들의 이야기. 구로동 잡종지가 마지막으로 전하는 이야기는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www.seoulheritage.org)는 지금도 구로동처럼 서울의 가장 복잡하고 가장 특별한 국유지 기록들을 분석하며 잠든 역사를 찾아가고 있다. 1912년 구로구 구로동 565,890㎡, 6가지 얼굴을 가진 그 땅의 이야기는 아직 절반도 들리지 않았다. 나머지는 첫 번째 삽이 잡종지의 흙을 열 때, 비로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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