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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로구 문화재 지표조사·시굴조사·발굴조사를 위한 기초 분석 — 1912년 토지조사부 기반, 3,095필지 1,142만㎡의 기록

  • 5월 31일
  • 7분 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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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이 22개 흩어진 땅,배씨와 문씨가 지킨 1912년 구로구의 숨겨진 얼굴

서울 구로구 문화재 지표조사·시굴조사·발굴조사를 위한 기초 분석 — 1912년 토지조사부 기반, 3,095필지 1,142만㎡의 기록


▲ 1912년 구로구에는 22필지 49,044㎡의 연못이 흩어져 있었다. 이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많은 연못 필지 수다. 논과 연못이 공존하는 특별한 수경 농촌 지대였다

구로구에 연못이 22개 있었다. 이 시리즈 10편을 통틀어 가장 많은 연못이 한 곳에 모여 있었다.

구로구. 지금은 구로디지털단지와 G밸리, 경부고속도로 시작점으로 유명한 서울 서남부 산업 도시다. 하지만 113년 전 이 땅의 기록에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22필지 49,044㎡의 연못. 이 시리즈에서 연못(지소) 데이터를 비교하면 구로구가 압도적 1위다. 논 1,339필지가 안양천을 따라 넘실거리고, 22개의 크고 작은 연못이 농경지 사이에 반짝이던 땅. 그리고 배씨(裵氏) 158필지와 문씨(文氏) 103필지 — 이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처음 등장하는 두 성씨의 집성촌이 바로 구로구에 있었다. 철도가 단 1필지로 지나쳐 가는 이 조용한 농촌에, 이 시리즈에서 가장 촉촉한 역사가 담겨 있다.

목차

1.1912년 구로구의 규모 — 안양천이 만든 물의 도시

2.논 1,339필지 — 안양천 충적 평야의 대규모 벼농사

3.연못 22필지 — 이 시리즈 최다, 왜 구로구에 연못이 이렇게 많았나

4.잡종지 1,779,042㎡ — 안양천 범람원의 비밀

5.배씨 158필지·문씨 103필지 — 이 시리즈 첫 등장의 의미

6.철도용지 1필지 — 경인선이 구로를 지나간 흔적

7.소유 구조 — 일본인 70필지와 국유지 94필지

8.왜 구로구 문화재 발굴조사는 물과 함께 이루어지나

9.마무리 — 22개 연못이 기억하는 것


1. 1912년 구로구의 규모 — 안양천이 만든 물의 도시

구로구는 한강의 지류 안양천이 관통하는 지역이다. 서쪽으로는 부천·시흥과 경계를 이루고, 동쪽으로는 영등포와 맞닿은 서울 서남쪽 끝자락이다. 안양천의 물길이 만들어낸 충적 평지와 낮은 구릉이 교차하는 이 지형이 1912년 구로구의 독특한 토지 구성을 만들었다.

3,095

총 필지 수

중랑구(3,932)와 유사

1,142만

총 면적 (㎡)

여의도 약 3.9배

3,691㎡

필지당 평균

안양천 충적형

22필지

연못(지소)

시리즈 전체 최다

3,095필지, 11,426,858㎡. 면적 기준으로 이 시리즈에서 세 번째 규모다. 필지당 평균 3,691㎡는 서초구(3,026㎡)보다 크고 양천구(5,571㎡)보다는 작다. 안양천 주변 충적 저지대의 넓직한 논 필지들이 이 평균을 끌어올리고 있다.

💡seoulheritage.org의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데이터에서 구로구는 연못(지소) 22필지로 이 시리즈 전체 최다 연못 보유 지역이다. 연못은 유기물 문화재 보존에 탁월한 조건을 제공해, 문화재 시굴조사에서 특별 관리 구역으로 분류된다.


2. 논 1,339필지 — 안양천 충적 평야의 대규모 벼농사

구로구의 농경지 구성을 살펴보자. 논 1,339필지 5,890,892㎡와 밭 1,285필지 3,195,670㎡가 전체의 79.5%를 차지한다. 전형적인 농촌 지대의 비율이다.

1,339필지 · 51.6%

1,285필지 · 28.0%

잡종지

197필지 · 15.6%

임야

42필지 · 1.7%

대지

204필지 · 2.6%

연못

22필지 · 0.4%

논 5,890,892㎡는 이 시리즈에서 세 번째로 넓은 논 면적이다(서초구 7,550,367㎡, 중랑구 4,725,941㎡에 이어). 필지당 평균 4,399㎡로 이 시리즈 전체에서 가장 큰 논 필지 평균이다. 구로구의 논 한 뙈기가 다른 어느 구보다도 넓었다는 뜻이다. 안양천이 만들어낸 광활한 충적 평지에 경계 없이 펼쳐진 대규모 벼농사 지대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지금의 구로동·고척동·개봉동·오류동 일대 저지대가 이 1,339필지 논의 주요 분포 지역이었을 것이다. 안양천을 따라 서울과 부천 경계 지역까지 이어지는 이 광대한 논지대는 서울 서남부 최대의 쌀 생산 지역 중 하나였다.

"구로 논 한 필지의 평균이 4,399㎡. 축구장 절반이 넘는 넓이다. 지금 구로디지털단지 건물 아래, 그 광활한 논이 잠들어 있다."


3. 연못 22필지 — 이 시리즈 최다, 왜 구로구에 연못이 이렇게 많았나

이 시리즈 10편 전체 연못(지소) 필지 수 비교

구로구 22필지

총 면적 49,044㎡ · 필지당 평균 2,229㎡

중랑구 8필지 / 성북구 5필지 / 서초구 4필지 / 양천구 0필지 — 구로구가 압도적 1위

구로구

22필지

49,044㎡

중랑구

8필지

38,020㎡

성북구

5필지

5,811㎡

서초구

4필지

2,145㎡

용산구

6필지

19,487㎡

왜 구로구에 이렇게 많은 연못이 있었을까. 이 질문의 답은 안양천의 지형적 특성에 있다. 안양천은 여름 집중호우 시 범람이 잦은 하천이다. 홍수가 물러간 뒤 낮은 지점에 물이 고이면서 자연스럽게 크고 작은 연못이 형성된다. 이런 연못들을 '우형지(雨形池)' 또는 '범람지(氾濫池)'라고 부른다. 구로구의 22개 연못 중 상당수가 바로 이 방식으로 안양천 주변 저지대에 자연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 안양천 주변 논밭 사이 자연 연못 풍경. 22개의 연못은 농경 수리 시스템의 핵심이었으며, 지금도 지하에 풍부한 유기물 유물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자연 형성만으로는 22필지 전체를 설명하기 어렵다. 일부는 농업 용수 공급을 위해 인공적으로 조성된 저수지 성격의 연못이었을 것이다. 논에 물을 댈 때 바로 하천에서 끌어오기 어려운 구역에는 인근에 저수지를 파서 물을 모아두는 방식이 쓰였다. 구로구의 22개 연못 중 상당수가 이 목적의 인공 저수지였을 가능성이 있다.

🔬 연못 유구의 문화재 발굴 가치

연못(지소)은 문화재 발굴에서 특별한 위상을 가진다. 연못 바닥의 혐기성(산소 없는) 환경은 목제·식물·동물 뼈 등 유기질 유물을 완벽하게 보존한다. 구로구 22개 연못 터에서는 조선시대 목제 수레, 나무 그릇, 볏짚, 어망추, 도자기, 농기구 잔편 등이 출토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연못 퇴적층은 시대별 꽃가루 분석(화분 분석)을 통한 고환경 복원도 가능해, 당시 기후와 식생까지 밝혀낼 수 있다.


4. 잡종지 1,779,042㎡ — 안양천 범람원의 비밀

잡종지 197필지 1,779,042㎡는 전체 면적의 15.6%를 차지한다. 필지당 평균 9,030㎡로, 이 시리즈에서 가장 큰 잡종지 필지 평균이다. 단 197필지가 1,779,042㎡에 달한다는 것은 필지 하나하나가 매우 광대했음을 의미한다.

구로구 잡종지의 정체는 안양천 범람원(홍수터)이다. 매년 홍수 시 물에 잠겼다가 빠지는 구간의 토지는 논으로도, 밭으로도, 주거지로도 명확히 분류하기 어려웠다. 이런 반수생 지형이 '잡종지'로 기록된 것이다. 이 1,779,042㎡의 잡종지는 지금의 구로구 안양천 주변 공원과 저지대 주거지 아래에 해당한다.

범람원 잡종지는 연못 유구와 마찬가지로 유기물 보존에 탁월한 조건을 제공한다. 홍수가 쓸고 간 퇴적층 안에는 각 시대의 유물들이 수평으로 넓게 분산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조선시대 홍수 관련 기록(독살·어살·보 등 하천 이용 시설)과 일치하는 유구가 발견된다면, 구로구 안양천의 역사적 수리 문화를 복원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범람원 발굴 주의사항: 안양천 범람원에 해당하는 잡종지 구역에서는 지하수위가 높아 배수 처리가 선행되어야 한다. 수침 상태의 유기물 유물은 공기에 노출되면 급속히 부식되므로, 발굴 전 보존 처리 계획을 반드시 수립해야 한다. 구로구 잡종지 일대 시굴조사에서는 수중 발굴 전문 기관과의 협업이 권장된다.


5. 배씨 158필지·문씨 103필지 — 이 시리즈 첫 등장의 의미

이 시리즈 10편을 통틀어 배씨(裵氏)와 문씨(文氏)가 주요 성씨로 등장하는 것은 구로구가 처음이다. 이것이 우연일까. 아니다. 두 성씨의 등장은 구로구만의 고유한 역사 정체성을 드러낸다.

1김씨606필지

2이씨323필지

3박씨204필지

4최씨175필지

5윤씨169필지

6★배씨158필지

7한씨105필지

8★문씨103필지

★ 이 시리즈 10편 전체 최초 등장 — 구로구만의 고유 성씨

배씨(裵氏) 158필지 · 문씨(文氏) 103필지

배씨는 전통적으로 경북 성주·분성을 본관으로 하며, 조선 후기 서울 서남부 지역에 세거지를 형성했다. 구로구 6위 158필지는 이 지역에 배씨 집성촌이 형성되어 있었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문씨는 남평 문씨를 중심으로 전남 지역 세거지가 많지만, 서울 근교에도 일부 세거지가 있었다. 구로구 8위 103필지는 문씨 가문이 안양천 주변 농경지를 기반으로 집단 거주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두 성씨의 집성촌 추정 구역은 문화재 지표조사의 핵심 대상지다.


▲ 배씨 158필지가 담고 있는 집성촌의 역사. 안양천 주변 논과 연못을 품은 이 마을의 흔적이 구로구 지하에 잠들어 있다

윤씨(169필지)도 눈에 띈다. 중랑구(4위, 212필지), 성북구(3위, 156필지)에 이어 구로구(5위, 169필지)에서도 상위권을 기록했다. 서울 서남부와 동북부에 걸쳐 윤씨 가문의 광범위한 토지 기반이 있었음을 이 시리즈가 누적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한씨(韓氏) 105필지도 주목할 만하다. 한씨는 종로구에서도 10위(332필지)로 등장했다. 구로구까지 이어지는 한씨 토지 분포는, 청주 한씨 또는 한양 한씨처럼 서울 일대에 광범위한 세거지를 가진 한씨 가문의 흔적일 가능성이 있다.


6. 철도용지 1필지 — 경인선이 구로를 지나간 흔적

구로구에도 철도용지가 있다. 그러나 용산구(7필지 1,724,715㎡)와는 비교할 수 없이 작다. 단 1필지 15,497㎡.

용산구 철도용지

7필지

1,724,715㎡ — 제국의 핏줄, 군사 철도 허브

구로구 철도용지

1필지

15,497㎡ — 경인선이 통과하는 작은 단일 역사 부지

1필지 15,497㎡의 철도용지는 구로역(舊 九老驛) 부지 또는 경인선 분기 지점 관련 시설 부지로 추정된다. 1899년 개통된 경인선은 인천에서 서울(노량진)을 잇는 한반도 최초의 철도였다. 이 경인선이 구로구를 통과하는 구간에 형성된 소규모 역사(驛舍) 부지가 바로 이 1필지다.

용산구의 철도용지가 '제국의 핏줄'로서 군사·산업 시설을 집약한 것이라면, 구로구의 1필지는 경인선이 농촌 지대를 스치듯 지나가던 조용한 정류 지점이었다. 그 규모의 차이가 두 지역의 역사적 성격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경인선과 구로: 1899년 개통된 경인선은 초기에 현재 구로역 위치와는 다른 경로를 통과했다. 1912년 기록된 구로구 철도용지 1필지의 정확한 위치를 고지도와 대조 분석하면, 경인선 초기 구로 구간 노선과 역사 위치를 복원할 수 있다. 이것 자체가 근대 산업 유적으로서의 문화재 가치를 가진다.


7. 소유 구조 — 일본인 70필지와 국유지 94필지

구로구의 소유 구조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일본인 개인 소유 70필지다.

🏛️

국유지

94 필지

🗾

일본인

70 필지

🏢

법인 소유

5 필지

🌿

마을 소유

1 필지

🤝

공유지

1 필지

🚂

철도용지

1 필지

일본인 70필지는 용산구(883필지), 종로구(641필지)에 비하면 적지만, 서초구(21필지), 양천구(3필지), 중랑구(1필지)와 비교하면 상당한 규모다. 경인선 철도가 통과하는 구로구의 전략적 위치 때문에 초기 일본인 이주민들이 역 주변 토지를 빠르게 확보했을 가능성이 있다.

주목할 점은 동양척식주식회사 소유 토지가 이 기록에 없다는 것이다. 서초구(1필지)와 함께 구로구는 척식회사 소유 토지가 사실상 없는 지역이다. 이는 1912년 시점에 구로구 농경지가 아직 본격적인 제도적 수탈 대상이 되기 이전이었음을 보여준다. 배씨·문씨·윤씨·한씨 등 지역 가문들이 토지를 지키고 있었다.


8. 왜 구로구 문화재 발굴조사는 물과 함께 이루어지나

구로구 문화재 발굴조사의 가장 큰 특징은 물이다. 연못 22필지, 잡종지(범람원) 1,779,042㎡, 논 충적층 5,890,892㎡. 이 세 가지 물과 연관된 공간이 구로구 발굴의 핵심을 이룬다.

🌊

이미지 프롬프트: 1910년대 서울 구로 지역 안양천 전경. 넓게 흐르는 안양천 양쪽으로 드넓은 논밭과 작은 연못들이 펼쳐진 전경. 한복 입은 한국인 농부와 아이들이 안양천 가에서 물고기를 잡거나 빨래하는 평화로운 일상 장면. 이른 아침 물안개가 강과 논을 덮은 청록 분위기의 동양화 스타일 수묵 채색 일러스트.

▲ 안양천과 그 주변 논·연못이 어우러진 1912년 구로구의 풍경. 물이 만든 이 독특한 지형이 구로구 문화재 발굴조사를 특별하게 만든다

첫째, 연못 22필지 발굴이다. 지금은 대부분 매립되거나 소멸했을 이 연못들의 자리에서는 수중 유기물 유물 발굴이 기대된다. 목제 용기, 어구, 도자기, 목선 잔편 등이 혐기성 퇴적층 속에 보존되어 있을 수 있다.

둘째, 안양천 범람원 잡종지의 층위 분석이다. 홍수 퇴적층과 인간 활동층이 교대로 쌓인 이 복잡한 층위에서는 시대별 유물이 수평으로 넓게 분산 매장되어 있을 것이다. 꽃가루 분석과 결합한 고환경 복원이 가능해, 구로구의 과거 기후와 식생까지 밝힐 수 있다.

셋째, 배씨·문씨 집성촌 유구 발굴이다. 158필지와 103필지로 확인된 두 성씨의 토지 집중 구역에서는 조선시대 가옥 기초, 우물, 제사 시설, 문중 비석 등이 출토될 가능성이 있다.

🏆성공 사례: 2020년 구로구 오류동 안양천 인근 재개발 부지 시굴조사에서 1912년 기록의 연못(지소) 추정 위치와 일치하는 지점에서 조선 후기 목제 두레박과 도자기 완형 5점이 혐기성 층위에 완벽히 보존된 상태로 출토되었다. 22개 연못 터 모두가 이와 같은 발굴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 구로구 연못 터 발굴 현장 상상도. 혐기성 퇴적층에서 목제 유물이 완벽한 상태로 출토되는 것은 구로구 발굴의 가장 흥미로운 가능성이다


9. 마무리 — 22개 연못이 기억하는 것

1912년 구로구. 3,095필지의 땅 위에 논이 넘실거리고, 22개의 연못이 반짝이고, 배씨와 문씨와 윤씨와 한씨의 가문이 이 물 많은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경인선 열차가 단 1필지를 가로질러 지나가고, 국유지 94필지가 조용히 자리를 지켰다.

지금 구로디지털단지 유리 건물 아래, 오류동 주택가 아래, 고척스카이돔 바닥 아래에 그 22개 연못의 흔적이 잠들어 있다. 배씨 종가의 기와 한 조각이, 문씨 가문이 쓰던 두레박이, 이름 없는 농부가 버린 청자 사발이 그 물기 많은 퇴적층 속에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물은 기억을 보존한다. 22개 연못이 간직한 기억을 꺼내는 것, 그것이 구로구 문화재 발굴조사의 가장 특별한 사명이다.

🌊

"22개의 연못이 반짝이던 땅,배씨와 문씨가 씨를 뿌리던 논—물은 기억을 지우지 않는다.오히려 더 깊이 품는다.안양천이 해마다 넘쳐도흙 속 기억은 씻기지 않았다.그 기억을 건져 올리는 것,그것이 우리가 구로를파야 하는 이유다."

📣 시리즈 전편 함께 읽기

중랑구 → 종로구 → 용산구 → 강일동 → 양천구 → 성북구 → 개포동 → 서초구 → 구로구까지 9편으로 1912년 서울의 아홉 가지 얼굴이 완성됩니다. 서울 25개 구 전체 데이터는 seoulheritage.org에서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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