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성동구 응봉동엔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었을까?”
- 2025년 6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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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5월 12일
응봉동에 연못이 있었다.그리고 그 옆에 이씨의 논이 있었다.
1912년 성동구 응봉동 — 263필지, 246,893㎡. 연못·사사지·분묘지·임야가 공존하던 마을. 이씨 72필지가 이끌던 그 시절의 이야기
목차
1.응봉동, 그 시절의 풍경
2.100년 전 응봉동의 집 이야기
3.밭에서 시작된 삶의 터전 — 116필지의 이야기
4.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한 공간 — 분묘지 9필지
5.사사지·연못·임야 — 응봉동의 특별한 세 공간
6.응봉동 땅의 주인은 누구였을까
7.국유지와 동양척식주식회사 — 시대의 흔적들
8.문화재 지표조사 — 연못과 사사지를 찾아서
9.마무리 — 과거에서 현재로
1. 응봉동, 그 시절의 풍경

도시의 흔적을 따라가는 일은 마치 숨겨진 보물을 찾는 설렘을 준다. 성동구 응봉동. 지금은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에 아파트들이 빼곡히 들어선 이곳이 113년 전에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1912년, 응봉동은 총 263필지, 약 246,893㎡의 땅으로 이루어진 조용한 마을이었다.
총 필지 수
263필지
다양한 토지 유형이 공존
총 면적
246,893㎡
축구장 약 35개 규모
밭 (면적 1위)
172,023㎡
116필지, 전체의 약 70%
대지
60,820㎡
87필지, 두 번째 규모
응봉동은 이 시리즈에서 살펴본 동네들 중 가장 다양한 토지 유형을 가진 곳이다. 밭, 대지, 분묘지, 사사지, 임야, 연못. 이 여섯 가지가 263필지 안에 공존했다. 마치 응봉동이 하나의 작은 우주처럼, 사람의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2. 100년 전 응봉동의 집 이야기
밭
116필지
172,023㎡ · 70%
대지
87필지
60,820㎡ · 25%
임야
3필지
32,373㎡ · 13%
분묘지
9필지
1,338㎡

응봉동에는 87필지, 60,820㎡의 대지가 있었다. 전체의 25%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는 다른 동네들보다 높은 수치다. 밭이 70%였음에도 대지가 25%를 차지했다는 건, 응봉동이 단순한 농경지가 아니라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생활 공동체였다는 뜻이다.
그 87필지 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만들어갔다. 나무 대문을 열고 나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이웃집과 담장 너머로 나누는 대화, 아궁이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지금은 사라진 그 집들 사이의 골목이 한강을 등지고 언덕을 오르내리던 응봉동 사람들의 일상을 담고 있었다.
3. 밭에서 시작된 삶의 터전 — 116필지의 이야기
응봉동의 주요 삶의 터전은 밭이었다. 116필지, 172,023㎡. 전체의 70%가 밭이었다. 이씨, 김씨, 백씨가 경작하던 이 밭에서 채소와 곡식이 자라나고, 그 수확이 응봉동 사람들의 식탁을 채웠다. 밭은 단순한 농경지가 아니었다. 이씨 집안의 밭과 김씨 집안의 밭 사이에서 두레와 품앗이가 이루어졌고, 계절마다 마을 전체가 함께 움직이는 공동체의 리듬이 있었다.
116필지라는 숫자가 말해주는 건 응봉동이 여러 가구에 의해 세밀하게 경작되던 공동체였다는 사실이다. 한두 가문이 독점하지 않고, 이씨·김씨·백씨·안씨·최씨 등 다양한 성씨들이 각자의 밭을 갖고 이 마을을 이루었다. 그 밭들 아래 지층에 당시 농경 문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을 수 있다.
4.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한 공간 — 분묘지 9필지

응봉동에는 9필지, 1,338㎡의 분묘지가 존재했다. 이 시리즈에서 분묘지 9필지는 꽤 많은 편이다. 하왕십리(37필지)나 상수동(43,798㎡)에는 못 미치지만, 응봉동의 263필지라는 전체 규모를 감안하면 작지 않은 비율이다. 산 자와 죽은 자가 어우러진 마을, 조상들의 흔적이 묻어있던 그곳.
무덤은 단지 삶의 끝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다.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 가문의 역사, 당시 장례 문화를 담고 있는 고고학적 기록이다. 응봉동의 9필지 분묘지가 언덕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 그 자리가 어떤 건물이나 도로로 덮여 있는지, 지표조사를 통해 위치를 특정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5. 사사지·연못·임야 — 응봉동의 특별한 세 공간
사사지
1필지
158㎡ — 기도의 공간
연못
1필지
95㎡ — 마을의 수자원
임야
3필지
32,373㎡ — 울창한 숲
이 시리즈 최초 등장 — 연못 (池)
단 1필지, 95㎡. 크기는 아파트 방 하나보다 작지만, 마을 사람들에게는 귀한 수자원이었다. 연못가에서 개구리 울음이 들리고, 여름이면 아이들이 물가를 맴돌던 그곳. 이 시리즈 전체에서 연못이 기록된 유일한 동네가 응봉동이다.
응봉동을 특별하게 만드는 세 공간이 있다. 사사지 158㎡는 누군가의 기도와 제사가 이루어지던 신앙의 공간이었다. 단 한 필지지만, 그 작은 땅 위에서 응봉동 사람들의 정신세계가 표현되었다. 임야 3필지, 32,373㎡는 마을 뒤편의 울창한 숲이었다. 응봉산 자락의 그 숲에서 땔감을 구하고, 봄이면 산나물을 뜯으며 자연과 공존했다.
그리고 연못. 이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연못이 기록된 동네는 응봉동이 유일하다. 95㎡, 약 29평. 마을 어딘가에 고요하게 자리 잡은 이 작은 연못이 응봉동의 가장 독특한 얼굴이다. 가뭄에는 논밭의 물을 보충했을 것이고, 여름이면 아이들이 개구리를 잡던 놀이터였을 것이다. 이 연못의 자리를 지금 찾을 수 있다면, 그건 응봉동 역사 복원의 작은 기적이 될 것이다.
6. 응봉동 땅의 주인은 누구였을까
이씨
72필지
김씨
60필지
백씨
23필지
안씨
15필지
최씨
14필지
응봉동 토지 기록에서 이씨가 72필지로 압도적 1위였다. 김씨 60필지가 바짝 뒤를 쫓았다. 이 두 성씨만 합치면 132필지로, 전체 263필지의 50%가 넘는다. 그 뒤를 백씨 23필지, 안씨 15필지, 최씨 14필지가 이었다.
이씨와 김씨 두 가문이 응봉동의 절반을 나눠 갖고 있었다는 건, 이 두 가문이 마을의 중심이었다는 뜻이다. 아마 이씨 집안의 어른과 김씨 집안의 어른이 마을 대소사를 함께 결정했을 것이다. 백씨·안씨·최씨는 그 사이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켜가던 이웃들이었다. 이들의 밭 경계가 어디였는지, 집터가 어느 골목에 있었는지를 추적하는 것이 문화재 조사의 흥미로운 출발점이 된다.
7. 국유지와 동양척식주식회사 — 시대의 흔적들
동양척식
10필지
식민지 수탈의 손길
국유지
4필지
총독부 관할 토지
합계
14필지 · 5.3%
역사적 맥락
응봉동의 동척 10필지와 국유지 4필지는 전체 263필지의 5.3%에 해당한다. 다른 동네들(오금동 38필지, 신천동 23필지, 증산동 28필지)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적지만, 이씨 72필지와 김씨 60필지의 밭 사이에 동척의 땅이 끼어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응봉동 사람들의 삶에 불편한 현실이었을 것이다.
응봉동에는 동양척식주식회사가 10필지를, 국유지가 4필지를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 땅이었지만 우리가 온전히 가질 수 없었던 역사. 이씨 어른의 논과 김씨 집안의 밭 사이에 동척의 땅이 조용히 자리 잡고 있었다. 그 경계를 넘나들며 살았던 응봉동 사람들의 복잡한 감정이, 지금도 이 땅 아래 새겨져 있을 것이다.
8. 문화재 지표조사 — 연못과 사사지를 찾아서

응봉동은 문화재 지표조사 관점에서 이 시리즈의 어느 동네와도 다른 독특한 과제를 안고 있다. 연못 95㎡의 위치를 특정하는 것이 그것이다. 연못은 지층에 독특한 퇴적 흔적을 남긴다. 수생 유기물과 그 주변의 생활 쓰레기, 우물 관련 유물들이 연못 주변에 집중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사사지 158㎡도 마찬가지다. 신앙 공간은 종종 그 시대의 도자기, 제기, 목조 구조물 잔해 등 중요한 유물의 출토지가 된다. 분묘지 9필지의 위치를 추적하면 응봉동 주요 성씨들의 가족묘를 특정할 수 있고, 그를 통해 이씨·김씨 가문의 계보와 생활 방식을 복원할 수 있다. 임야 3필지 역시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응봉산 지역으로, 삼국시대 봉수대 관련 유적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표조사 → 표본조사(2% 이내) → 시굴조사(10% 이내) → 정밀 발굴조사. 연못·사사지·분묘지 9필지 위치 특정 조사 권장. 응봉산 임야는 봉수대 유적 가능성 검토 필요. seoulheritage.org 또는 e-minwon.go.kr에서 의뢰 가능.
9. 마무리 —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는 과거의 터 위에 지어진다. 응봉동의 263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이씨 72필지의 밭, 김씨 60필지의 집터, 연못 95㎡의 개구리 소리, 사사지에서의 기도, 분묘지 9필지에 잠든 조상들. 이 모든 것이 지금의 응봉동 지층 어딘가에 남아 있다.
우리가 걷는 이 길 위에서 역사와 미래를 연결하며 오늘 하루를 살아가야 한다. 오래된 기록 속 작은 땅덩어리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오늘의 우리가 내딛는 걸음 역시 새로운 역사가 된다는 것. 응봉공원에 올라 한강을 바라볼 때, 그 발밑에 이씨 어른의 밭과 작은 연못이 있었다는 사실을 한 번쯤 기억해주길 바란다.
문화재 지표조사 · 시굴조사 · 발굴조사 의뢰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 seoulheritage.org
국가유산청 협업포털 → e-minwon.go.kr
소규모 국비 지원 발굴 → 한국문화재재단 연계
성동구 관할 문화재 문의 → 성동구청 문화관광과
"1912년 응봉동, 연못가에서 개구리가 울었다.이씨 어른의 밭 옆에 김씨 집안의 집이 있었다.그 모든 기억이 지금도 이 땅 아래 숨 쉬고 있다."
출처: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seoulheritage.org | 국가유산청 kh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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