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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마포구 염리동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다

  • 2025년 8월 15일
  • 6분 분량

최종 수정일: 5월 8일

문화재 지표조사 · 발굴조사 · 서울 역사

113년 전 염리동,

땅속에 묻힌 마을의 비밀을 꺼내다


— 1912년 마포구 염리동 토지 기록과 문화재 지표조사 이야기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 seoulheritage.org

지금 당신이 걷는 그 골목 아래에,


113년 전 누군가의 밭이 있었다면?



고층 아파트 공사 삽이 땅을 파는 순간, 흙 속에서 조선시대 기와 조각이 쏟아진다면 — 그게 바로 지금 서울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는 마포구 염리동, 그 땅의 113년 전 진짜 얼굴을 지금부터 꺼내 보겠습니다.

180

1912년 염리동


총 필지 수

238,569㎡

전체 토지


면적 합계

70필지

이씨·김씨


소유 토지


목 차

1.1912년, 염리동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다

2.땅의 얼굴 – 논, 밭, 산, 그리고 연못

3.집과 무덤이 들려주는 마을 이야기

4.성씨와 토지 – 이씨, 김씨, 그리고 땅의 주인들

5.국유지, 동양척식주식회사, 그리고 공동소유 땅의 비밀

6.염리동에서 읽는 일제강점기의 그림자

7.문화재 지표조사로 복원하는 100년 전 염리동

8.성공 사례 – 발굴이 바꾼 도시의 기억

9.오늘날 우리가 배워야 할 이야기


01

1912년, 염리동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다


만약 타임머신이 있다면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조선 궁궐? 일제강점기 경성 거리? 사실 그 시절의 공기를 가장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은 거창한 유적지가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입니다.

마포구 염리동. 지금은 홍대 앞 카페 골목과 연결되고 깔끔한 신축 아파트가 줄지어 선 이 동네가, 1912년에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흙길 위로 소달구지가 지나가고, 밭 사이사이로 아낙들이 고개를 내밀며 인사를 나누던 그 동네. 지붕 위로는 이른 아침 안개가 피어오르고, 저녁이면 가마솥 밥 짓는 냄새가 골목을 메우던 그 마을의 이야기가 지금부터 시작됩니다.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기관이 분석한 1912년 염리동 토지 기록에 따르면, 당시 이 마을은 총 180필지, 238,569㎡의 땅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이 숫자들이 단순한 통계처럼 보이지만,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그 속에 사람들의 일상과 관계, 그리고 시대의 흔적이 가득합니다.



02

땅의 얼굴 – 논, 밭, 산, 그리고 연못

1912년 염리동의 토지 구성을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게 있습니다. 논이 단 1필지, 6,991㎡에 불과하다는 점입니다. 쌀농사가 절대적이던 시절에 논이 이렇게 적다는 건, 이곳이 벼농사 중심지가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대신 밭이 68필지, 156,089㎡로 전체 토지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습니다.

지목 구분

필지 수

면적(㎡)

특징

1

6,991

마을 유일의 논

68

156,089

전체 면적의 65.4%

대지

82

49,061

주거지 집중

1

15,927

땔감·생활 기반

연못(지소)

2

4,343

농업·생활용수

분묘지

6

6,155

마을 근처 조상묘

이 마을에 밭이 이렇게 많았다는 건, 당시 염리동 사람들이 채소와 잡곡을 기르며 생계를 이어갔다는 뜻입니다. 쌀밥은 명절에나 먹는 귀한 음식이었고, 평소엔 보리죽이나 콩죽을 끓여 먹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연못이 2필지나 있었다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정원 연못이 아닙니다. 당시 연못은 농업용수와 식수를 공급하는 핵심 자원지였습니다. 가뭄이 들면 마을 사람들이 두레박을 들고 몰려오고, 아이들이 물장구를 치며 여름을 나던 그 연못. 그 터 위에 지금 무엇이 세워져 있는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03

집과 무덤이 들려주는 마을 이야기

대지가 82필지, 49,061㎡라는 수치를 보면 당시 염리동의 주거 밀도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필지당 평균 약 598㎡, 약 180평 남짓입니다. 오늘날 기준으로는 꽤 넓은 편이지만, 실제로는 여러 가구가 한 필지를 나눠 쓰는 경우도 많았을 겁니다. 작은 흙벽집들이 골목을 따라 오밀조밀 모여 있는 풍경, 상상이 가시나요?

무덤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분묘지가 6필지, 6,155㎡. 지금은 도심 한복판이지만 그 시절엔 마을 언저리에 조상의 묘가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음력 한식이나 추석이 되면 가족들이 삼삼오오 산길을 오르고, 조상 앞에 음식을 차리며 살아온 이야기를 나눴겠죠. 지금 그 자리가 어디인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조사를 통해 그 위치를 다시 찾아낼 수도 있습니다.

"무덤은 죽은 자의 공간이 아니라, 살아있는 자들의 기억을 담은 장소입니다. 그 기억을 찾는 것이 바로 문화재 발굴조사의 시작입니다."


04

성씨와 토지 – 이씨, 김씨, 그리고 땅의 주인들

1912년 염리동 토지 기록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성씨는 이씨(49필지)와 김씨(21필지)였습니다. 단순한 숫자 같지만, 이 안에는 수십 년, 어쩌면 수백 년에 걸친 가문의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이씨 가문이 마을 토지의 약 27%를 소유했다는 건, 그들이 오랫동안 이 땅에 뿌리를 내렸음을 뜻합니다. 아버지에서 아들로, 또 그 아들로 이어지며 땅을 지켜왔겠죠.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수확하는 과정을 대를 이어 반복하면서 이 마을의 풍경 자체가 된 사람들입니다.

그 외에도 박씨, 최씨, 정씨 등 다양한 성씨가 소규모 필지를 나눠 갖고 있었습니다. 이는 당시 염리동이 특정 집성촌이 아니라, 여러 가문이 섞여 사는 혼합형 마을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서로 다른 성씨를 가진 이웃들이 함께 두레를 조직하고, 공동우물을 쓰며, 마을 행사를 함께 치렀겠죠.

지금의 염리동 주민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출신은 달라도, 같은 골목에서 살아가는 이웃이라는 점에서.



05

국유지, 동양척식주식회사, 그리고 공동소유 땅의 비밀

여기서부터 이야기가 무거워집니다. 1912년 염리동의 토지 소유 현황을 보면, 개인 소유 외에 세 가지가 더 눈에 띕니다. 국유지 16필지, 동양척식주식회사 소유 21필지, 그리고 마을 공동소유 3필지.

동양척식주식회사. 이 이름을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역사 교과서에서 배웠을 겁니다. 일본이 조선 땅을 조직적으로 수탈하기 위해 1908년 설립한 국책 회사입니다. 그들이 이미 염리동에 21필지나 소유하고 있었다는 건, 일본 자본이 이 작은 마을에까지 손을 뻗쳤음을 보여줍니다.

동양척식주식회사의 땅이 늘어나는 과정은 단순했습니다. 빚을 진 농민, 세금을 내지 못한 소작농의 땅이 차례로 넘어갔습니다. 처음엔 한두 필지, 그다음엔 이웃의 땅, 그다음엔 마을 전체가 그들의 장부에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반면 마을 공동소유 3필지는 그 어두운 시대 속에서도 공동체가 지켜낸 땅이었습니다. 공동 방앗간이나 마을 회관, 공동 장터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세 필지는 아마도 마을 사람들이 서로 몸을 기대며 버텨낸 작은 공간이었을 겁니다.



06

염리동에서 읽는 일제강점기의 그림자

1912년은 한일병합 2년 차였습니다. 조선총독부가 전국 토지를 측량하고 등록하는 '토지조사사업'을 한창 진행 중이던 시기입니다. 이 측량 작업의 목적 중 하나는 조선 땅을 식민지 행정 체계 안으로 편입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생겼을까요? 문서가 없거나, 경계가 애매하거나, 세금을 못 낸 땅은 '주인 없는 땅'으로 처리되어 국유지나 동양척식주식회사 소유로 넘어갔습니다. 평생 그 땅에서 농사를 지어온 사람이 하루아침에 소작농이 되는 일이 전국 곳곳에서 벌어졌습니다. 염리동도 그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토지 소유 구조가 바뀌면 삶이 바뀝니다. 소작료를 내야 하니 먹을 것이 줄어듭니다. 줄어든 먹을 것은 아이들의 영양을 앗아가고, 아이들의 영양 부족은 공부할 기력을 빼앗습니다. 하나의 필지 변경이 세대를 관통하는 가난의 사슬로 이어지는 겁니다. 우리가 1912년 염리동의 토지 기록을 보며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07

문화재 지표조사로 복원하는 100년 전 염리동

그렇다면 이런 역사를 어떻게 복원하고 확인할 수 있을까요? 바로 문화재 지표조사, 시굴조사, 발굴조사의 힘입니다.

문화재 지표조사란, 땅을 파기 전에 먼저 지표면에 남겨진 흔적을 살피는 과정입니다. 논·밭·대지·임야 등 토지의 용도와 분포를 기록하고, 지형 변화나 조성 시기를 분석해 발굴 대상 가능성을 판단합니다. 가령 염리동의 옛 밭터에서 조선시대 기와 조각이 흩어져 있다면, 그 아래에 더 큰 유구가 있을 가능성을 살피는 것입니다.

지표조사에서 유적이 확인되면 표본조사(면적의 2% 이내)나 시굴조사(10% 이내)로 넘어갑니다. 그리고 여기서 의미 있는 유물이 나오면 정밀 발굴조사를 진행합니다. 이 과정을 거쳐 1912년 기록에 등장했던 바로 그 집터, 그 무덤 자리, 그 연못 터를 실제로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08

성공 사례 – 발굴이 바꾼 도시의 기억

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조사가 실제로 역사를 되살린 사례는 서울 곳곳에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마포구 신수동 일대의 조사 사례입니다.

🏺

마포구 신수동 발굴 사례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과정에서 신수동 일대 농경지 터를 조사하던 중, 조선시대 기와 조각과 함께 농기구 잔해, 그리고 사당터로 추정되는 유구가 발굴되었습니다. 단순한 농지로만 알려져 있던 땅이 조선시대 생활문화의 중요한 기록지였음이 확인된 것입니다.

🗺️

종로구 훈정동·효제동 사례

1912년 토지 기록과 문화재 기초조사를 교차 분석한 결과, 사사지(社寺地)의 위치와 주거 구조가 상세히 복원되었습니다. 이 자료는 현재 도시 재개발 시 문화재 보존 기준을 수립하는 데 실제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런 발굴 성과들이 쌓이면서, 도시 개발이 단순히 땅을 파는 행위가 아니라 역사를 확인하고 기록하는 과정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아파트 한 동이 올라가기 전에, 그 땅이 품고 있던 이야기를 먼저 듣는 것. 그것이 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조사의 진짜 가치입니다.



09

오늘날 우리가 배워야 할 이야기

113년 전 염리동의 180필지를 들여다본 이 여정이 왜 중요할까요? 단순히 "옛날엔 이랬구나" 하는 향수 때문이 아닙니다.

토지 소유 구조의 변화는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대기업이 도심 땅을 사들이고, 개발 이익이 특정 집단에 집중되는 현상은 1912년 동양척식주식회사의 토지 수탈과 구조적으로 닮아 있습니다. 역사는 반복되고, 반복의 패턴을 아는 사람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문화재 발굴조사의 결과는 도시 개발에 직접 영향을 미칩니다. 서울 곳곳에서 진행 중인 재개발·재건축 사업 전에는 반드시 문화재 지표조사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당신의 동네가 개발 대상이 된다면, 그 땅 아래에 어떤 역사가 잠들어 있는지 먼저 확인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권리이자 의무입니다.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기관(seoulheritage.org)은 지표조사 의뢰, 시굴조사, 정밀 발굴조사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내 땅이나 개발 예정지의 문화재 조사가 필요하다면, 전문 기관에 문의해 정확한 절차와 비용을 확인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역사를 알면 현재가 보이고, 현재를 이해하면 미래를 설계할 수 있습니다. 113년 전 염리동 사람들이 일군 그 땅 위에 지금 우리가 서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내 토지에 문화재가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재개발·재건축·신축 공사 전, 문화재 지표조사는 법적 의무이자 역사 보존의 첫걸음입니다.궁금한 점은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기관으로 문의해 보세요.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바로가기 →

🌱

땅은 기억합니다.우리가 잊어도, 땅은 절대 잊지 않습니다.

113년 전, 아침마다 밭을 갈며 하루를 시작하던 그 사람들.그들의 이름은 기억되지 않지만, 그들의 손길이 닿았던 땅은 아직 여기 있습니다.오늘 당신이 이 글을 읽은 것처럼, 100년 뒤 누군가도 지금 우리의 흔적을 찾아 이 땅을 들여다보겠죠.그때 그들이 마주할 기록을 지금 우리가 만들어가고 있습니다.역사를 기억하는 것, 그것이 가장 강한 뿌리를 가진 사람이 되는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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