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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순명황후 유릉이 조성된 지 8년 만에 기록된 이 땅 광진구 능동, 대한제국 황실 능원을 둘러싼 밭·논·임야·잡종지의 놀라운 이야기

  • 3일 전
  • 6분 분량

문화재 지표조사 · 발굴조사 · 대한제국 마지막 황실의 땅

어린이들이 뛰노는 그 땅 아래엔


대한제국 황후의 능이 잠들어 있었다

272필지 1,089,274㎡ — 1904년 순명황후 유릉이 조성된 지 8년 만에 기록된 이 땅, 대한제국 황실 능원을 둘러싼 밭·논·임야·잡종지의 놀라운 이야기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 seoulheritage.org2026문화재 지표조사 · 발굴 기초분석

272필지

능동 국유지


총 필지 수 (1912)

1,089,274㎡

전체 면적


(약 329,506평)

35.0%

잡종지 3필지


면적 비율

160필지

밭 (최다 필지)


381,654㎡

101필지


290,328㎡

4필지

임야


67,778㎡


목 차

1.능동(陵洞) — 이 이름은 황후의 무덤에서 왔다

2.1912년 능동 국유지 4종 토지 완전 통계 해설

3.잡종지 3필지 340,484㎡의 충격 — 황실 능원의 진짜 규모

4.밭 160필지·논 101필지 — 황릉을 먹여 살린 땅

5.임야 4필지 67,778㎡ — 능원 풍수의 숲

6.문화재 지표조사·시굴·표본·발굴조사, 능동에서 어떻게 하나

7.능동 발굴 성공 사례 — 이미 증명된 황실의 흔적들

8.어린이대공원 아래 잠든 이야기를 꺼내야 하는 이유



지금 어린이들이 뛰어노는 서울어린이대공원 그 땅은, 120년 전 대한제국 마지막 황후가 잠든 자리였다.

진짜야. 그냥 하는 말이 아니야. 1904년, 대한제국 황태자비 민씨(나중에 순명효황후로 추존)가 33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어. 3개월간의 국가 장례를 치르고, 양주 용마산 기슭에 황실 능원인 '유강원(裕康園)'이 조성됐어. 그게 지금의 어린이대공원 자리야. 그리고 '능동(陵洞)'이라는 이 동네 이름도 바로 거기서 왔어. 능이 있는 마을.

그로부터 8년 후인 1912년.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이 이 땅을 기록했어. 272필지, 1,089,274㎡. 황후의 능원과 그 주변 땅 전체가 촘촘하게 국유지로 등록되는 순간이야. 논 101필지, 임야 4필지, 잡종지 3필지, 밭 160필지 — 이 숫자들은 대한제국 황실이 마지막으로 관리하던 능원 주변 토지의 실제 모습이야.

그리고 1926년, 순종 황제가 승하하면서 황후의 능은 남양주로 옮겨졌어. 비워진 능터엔 1929년 일제가 골프장을 만들었어. 그리고 1973년, 그 골프장 위에 어린이대공원이 들어섰어. 황후의 능 → 골프장 → 어린이대공원. 이 놀라운 변천사가 바로 능동의 이야기야. 끝까지 읽으면 어린이대공원 입구를 지날 때 절대 예전과 같은 눈으로 볼 수 없을 거야.


1능동(陵洞) — 이 이름은 황후의 무덤에서 왔다

능동이라는 이름의 역사를 따라가면, 대한제국의 마지막 이야기와 만나게 돼.

1904년 1월 · 대한제국

황태자비 민씨(순명효황후)가 33살로 경운궁에서 승하. 3개월 장례 후 1905년 1월 용마산 기슭 능동에 황실 능원 '유강원(裕康園)' 조성. 마을 이름이 '능골', '능리'로 불리기 시작해.

1907년 · 순종 즉위

순종이 황제로 즉위하면서 민씨에게 '순명효황후' 시호를 추증. 유강원이 '유릉(裕陵)'으로 격상됨. 이 유릉 때문에 능동이라는 이름이 확립됐어.

1912년 · 토지조사사업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이 능동 국유지를 272필지 1,089,274㎡로 정밀 기록. 황실 능원 주변 논·밭·임야·잡종지 전체가 기록에 올랐어. 이 기록이 지금 우리가 분석하는 바로 그 데이터야.

1926년 · 순종 승하

순종 황제 승하. 순명효황후의 유릉은 남양주 금곡으로 이장, 순종과 합장. 능동의 유릉터엔 문인석·무인석·말·양·호랑이 능의 석물만 남겨졌어.

1929년 → 1973년 · 골프장 → 어린이대공원

일제가 비워진 능터에 경성 골프구락부 조성. 이후 서울컨트리클럽으로 운영. 1970년 박정희 대통령 지시로 골프장 → 어린이대공원으로 변경. 1973년 5월 5일 개원.

이 타임라인이 말해주는 게 뭔지 알아? 1912년 기록은 황후의 능이 조성된 지 7~8년밖에 안 된 시점의 기록이야. 즉, 272필지 1,089,274㎡의 국유지는 단순한 논밭이 아니야. 대한제국 황실이 황후의 능원을 보호하고 유지하기 위해 관리하던 땅의 실체야.


21912년 능동 국유지 4종 토지 완전 통계 해설

토지 종류

필지 수

면적

전체 비율

필지당 평균

160필지

381,654㎡

35.0%

2,385㎡

잡종지

3필지

340,484㎡

31.3%

113,495㎡

101필지

290,328㎡

26.7%

2,875㎡

임야

4필지

67,778㎡

6.2%

16,945㎡

합계

268필지

1,080,244㎡

~99%

35.0% · 381,654㎡ · 160필지

잡종지

31.3% · 340,484㎡ · 단 3필지

26.7% · 290,328㎡ · 101필지

임야

6.2% · 67,778㎡

이 통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잡종지 3필지의 비율이야. 단 3개 필지가 전체 면적의 31.3%를 차지해. 필지당 평균이 무려 113,495㎡, 약 34,333평이야. 이건 황실 능원 본체 구역이 잡종지로 등록됐다는 강력한 증거야. 능원 자체, 재실(齋室), 능참봉 청사, 제향 공간 등 황실 관련 시설 전체가 이 잡종지 안에 포함됐을 거야.



3잡종지 3필지 340,484㎡의 충격 — 황실 능원의 진짜 규모

잡종지 3필지 340,484㎡. 이 숫자가 이번 통계에서 가장 극적인 포인트야.

잡종지 3필지의 충격적 규모

340,484㎡

단 3개 필지. 여의도 면적(290만㎡)의 약 11.7%에 해당하는 규모야. 황실 능원 구역 전체가 단 세 덩어리로 기록됐다는 건, 이 세 필지가 각각 대규모 황실 시설 구역이었다는 의미야.

잡종지라는 분류는 당시 논·밭·임야·대지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 특수 목적 토지에 붙는 이름이야. 황실 능원의 경우, 능침 봉분 구역, 정자각(丁字閣)과 제사 공간, 능참봉이 상주하는 재실(齋室) 구역, 능원을 둘러싼 금표(禁標) 내 보호 구역 등이 이 잡종지에 해당했을 거야.

이 3필지가 문화재 발굴조사에서 왜 핵심인지는 분명해. 황실 능원 본체 구역에서는 능 조성 당시 사용된 석재, 도자기·제기류, 건물 기초, 배수 시설 등 황실 공사 관련 유물이 나올 수 있어. 특히 유강원이 1926년에 이장되면서 능 조성 당시의 유구들이 원래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을 가능성이 있어. 현재 어린이대공원 안에 남아있는 문인석·무인석 등 석물은 그 증거야.

능동 잡종지 구역에서 기대되는 문화재 발굴 가능성

유강원·유릉 조성 관련 기초 유구 — 정자각·비각·수복방 건물터, 배수로, 석축 등

황실 제기·청자·백자류 — 황실 제향에 사용된 고급 도자기 파편

능원 공사 관련 철기·석재 공구 — 1904~1905년 능 조성 당시 사용된 공구류

능참봉 관련 생활 유물 — 유강원을 지키던 관리들의 일상 유물

금표석·표석 관련 유구 — 능원 경계를 표시하던 석재 시설물


4밭 160필지·논 101필지 — 황릉을 먹여 살린 땅

밭 160필지 381,654㎡, 논 101필지 290,328㎡. 이 두 농경지 유형이 전체의 61.7%를 차지해. 황실 능원 주변에 이렇게 많은 논밭이 있었던 이유가 뭘까?

조선 시대와 대한제국 시기에 왕릉·능원을 관리하는 시스템은 꽤 복잡했어. 능을 지키는 능참봉과 수복(守僕), 제향을 집행하는 인원들의 생계를 위한 토지가 반드시 있어야 했어. 이걸 '위토(位土)'라고 불렀어. 능원 주변의 논밭이 바로 그 위토야. 이 논밭에서 나오는 수확물로 제향 비용을 충당하고, 능원 관리인들의 급료를 지급했어.

밭 160필지 필지당 평균 2,385㎡, 약 721평. 논 101필지 필지당 평균 2,875㎡, 약 870평. 이 크기의 농경지가 261개나 됐다는 건, 능동 전체가 황실 능원을 중심으로 짜인 하나의 통합 관리 시스템이었다는 걸 보여줘.

1912년 능동 국유지 272필지 1,089,274㎡는 단순한 토지 기록이 아니야. 대한제국이 무너지고 일제강점이 시작된 지 2년 만에, 황실의 마지막 능원과 그 주변 모든 땅이 국유지로 접수되는 순간의 기록이야. 그 슬픔이 이 숫자들 속에 조용히 담겨있어.



5임야 4필지 67,778㎡ — 능원 풍수의 숲

임야 4필지 67,778㎡. 필지당 평균 16,945㎡, 약 5,126평짜리 숲이 네 곳이야.

황실 능원의 임야는 일반 산림과 근본적으로 다른 의미를 가져. 조선 시대와 대한제국에서 왕릉·능원의 풍수는 최고의 전문가들이 선정하는 국가적 사안이었어. 유강원을 용마산 기슭에 조성한 것도 풍수적으로 가장 좋은 위치를 선택한 결과야. 그리고 그 풍수를 지키는 숲이 바로 임야야.

능원 주변 임야는 '금산(禁山)'이라고 불렸어. 함부로 나무를 벌채하거나 인가를 짓는 것이 금지된 특별 보호 산림이야. 이 임야에서는 능원 조성 당시 심은 소나무와 향나무가 지금도 자라고 있을 수 있어. 수령 100년이 넘은 나무들이 능원의 역사를 살아있는 증거로 지키고 있는 거야. 어린이대공원에서 수령 500년이 넘은 향나무를 모시는 치성당에서 매년 제사를 지낸다는 사실이, 이 임야의 역사적 중요성을 직접 보여줘.


6문화재 지표조사·시굴·표본·발굴조사, 능동에서 어떻게 하나



능동은 대한제국 황실 능원이라는 특수한 역사적 맥락을 가진 땅이기 때문에, 발굴조사 접근이 다른 지역과 달라야 해.

지표조사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1904~1905년 유강원 조성 당시의 자료를 수집하는 거야. 대한제국 시기 황실 기록물, 능 조성 관련 문헌, 일제강점기 초기 지형도 등을 통해 유강원의 원래 범위와 각 시설의 위치를 특정해. 특히 1912년 지적도에서 잡종지 3필지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면, 황실 시설의 배치가 어떻게 됐는지 추정할 수 있어.

시굴조사는 잡종지 구역을 최우선으로 진행해야 해. 이미 어린이대공원 안에 유강원 석물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그 주변 지하에 건물 기초 유구, 배수 시설, 제향 관련 매납 유물 등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 또한 1926년 이장 당시 황후의 유해가 옮겨갔더라도, 능침 봉분 구역의 토양 성분과 부장품 관련 흔적은 여전히 남아있을 수 있어.

표본조사는 272필지라는 방대한 규모의 토지를 효율적으로 다루기 위해 논·밭·임야·잡종지 유형별로 대표 구역을 선정해서 진행해. 특히 밭 160필지 중 원래 위토였던 구역을 중심으로, 능원 관리와 관련된 유물이 집중 분포하는 구역을 찾아내는 게 중요해.

발굴조사는 무엇보다 황실 문화재라는 특수성에 맞게 진행돼. 일반 발굴보다 훨씬 정밀한 층위 분석과 유물 기록이 요구되고, 황실 관련 유물이 나올 경우 문화재 지정 절차가 병행될 수 있어.


7능동 발굴 성공 사례 — 이미 증명된 황실의 흔적들



성공 사례 ①

유강원 석물 보존 — 이미 발굴된 황실의 흔적

현재 서울어린이대공원 안에는 유강원 조성 당시의 석물이 그대로 보존돼 있어. 문인석·무인석·석마(石馬)·석양(石羊)·석호(石虎)·장명등 등 황실 능원의 석조물이 현재도 관람할 수 있어. 이 석물들이 원래 자리 근처에 있다는 건, 그 주변 지하에 건물 기초 등 추가 유구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야. 이미 지상에 증거가 남아있는 곳에서 지하 유구가 나온다면, 발굴의 의미는 배가 돼.

성공 사례 ②

홍릉·유릉 주변 발굴 — 황실 능원 유구의 전형

남양주 금곡에 있는 홍릉(고종·명성황후)과 유릉(순종·순명효황후·순정효황후) 주변에서는 황실 능원 관련 유구 조사가 이루어져 있어. 정자각 기초, 재실 건물터, 능원 경계 관련 유구 등이 확인됐어. 능동의 원래 유강원 터도 이와 동일한 유형의 황실 능원 유구가 분포했을 가능성이 높아.

성공 사례 ③

치성당 500년 향나무 — 살아있는 역사 증거

능동 치성당에는 수령 500년이 넘은 향나무가 있어. 매년 음력 2월과 10월에 제사를 지내는 이 나무는 능원이 조성되기 이전부터 이 마을에 있었던 거야. 이 나무 주변 토양에서는 조선 시대와 대한제국 시기에 걸친 제의(祭儀) 관련 유물이 나올 수 있어. 마을이 기억하는 역사가 땅속에도 새겨져 있는 거야.


8어린이대공원 아래 잠든 이야기를 꺼내야 하는 이유

어린이대공원에서 개발이나 시설 공사를 계획하는 입장에서 이건 가장 직접적인 정보야. 이 땅은 대한제국 황실 능원이 조성된 역사 문화 유적지야. 현재도 어린이대공원 안에 황실 석물이 보존돼 있고, 인근 치성당 향나무는 서울시 보호수로 지정돼 있어. 이 지역에서 공사나 개발을 진행할 땐 반드시 문화재 지표조사가 선행돼야 하고, 특히 잡종지 3필지 구역이 겹치는 곳에선 시굴조사가 필수야.

역사와 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이 이야기는 단순한 발굴조사 이상의 의미가 있어. 대한제국이라는 나라가 이 땅에 존재했다는 것, 황후가 33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이 땅에 잠들었다는 것, 그리고 나라가 무너지면서 황후의 잠자리마저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다는 것 — 그 슬픈 역사가 지금도 이 땅 아래 켜켜이 쌓여 있어.

발굴조사는 그 역사를 꺼내는 일이야. 어린이들이 뛰어노는 그 땅 아래에서, 120년 전 대한제국의 이야기를 찾아내는 작업이야. 그 이야기를 꺼냄으로써, 우리가 딛고 있는 이 땅이 얼마나 깊은 역사 위에 서있는지를 다시 확인할 수 있어.

능동의 황실 유산, 이제 함께 찾아봐

272필지 1,089,274㎡의 국유지에 잠든 대한제국의 마지막 이야기.


서울 전 지역 문화유산 발굴조사 기초 자료가 궁금하다면 아래를 확인해봐.

👑

여기까지 읽어줘서 진심으로 고마워.



어린이대공원. 아이들이 웃으며 뛰어노는 그 공간.



120년 전, 그 땅엔 33살에 세상을 떠난 황후가 잠들어 있었어. 나라의 마지막 황태자비로, 황후로 추존되었지만 정작 나라가 무너지는 것도, 남편이 황제가 되는 것도 보지 못하고 떠난 사람이야.



1912년 토지조사사업은 그녀가 잠들었던 땅을 272필지 숫자로 차갑게 기록했어. 하지만 그 숫자 뒤엔 여전히 이야기가 남아있어.



발굴조사는 그 이야기를 찾는 일이야. 차가운 숫자를 다시 따뜻한 역사로 되돌려놓는 작업이야.



어린이대공원 입구를 지날 때, 잠깐 멈춰봐. 그 땅이 기억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봐.

—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기초 자료 분석 · seoulheritage.org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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