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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송파구 오금동, 알고 보면 흥미진진한 역사 이야기!

  • 2025년 6월 26일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5월 12일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오금동엔 벼가 자라고 있었다.

1912년 송파구 오금동 — 614필지, 171만㎡. 논과 밭이 뒤덮인 광활한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


목차

1.1912년 송파구 오금동의 전체적인 모습

2.오금동의 논 이야기 — 270필지가 벼로 가득했던 그 시절

3.오금동을 차지한 밭의 비밀

4.집과 마을, 사람들의 삶은

5.자연의 보고, 산과 임야 이야기

6.오금동 땅의 진짜 주인들 — 성씨로 읽는 마을 구성

7.역사의 그림자, 동양척식주식회사

8.문화재 지표조사 — 오금동의 숨겨진 시간을 꺼내는 법

9.과거에서 현재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


1. 1912년 송파구 오금동의 전체적인 모습



지금의 송파구 오금동. 지하철 5호선 오금역 주변으로 대형 아파트 단지와 상가가 빽빽하게 들어선 이곳이, 113년 전에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 한 번만 상상해 보자. 고층 건물 대신 황금빛 벼이삭이 바람에 출렁이고, 아스팔트 대신 흙길이 마을을 가로지르던 풍경을.

총 필지 수

614필지

서울에서 손꼽히는 대규모 농촌 마을

총 면적

1,710,000㎡

여의도 면적의 약 59%

논 (면적 1위)

863,233㎡

270필지, 전체의 약 50%

밭 (필지 1위)

671,503㎡

281필지, 논보다 필지 많아

1912년 오금동의 전체 면적은 약 171만 제곱미터, 614필지. 여의도 면적의 60%에 육박하는 광활한 땅이다. 그 위에 논이 펼쳐지고, 밭이 이어지고, 산이 마을을 감쌌다. 집이라고 부를 만한 대지는 33필지에 불과했다. 나머지 581필지는 모두 땅을 일구며 사는 농사의 공간이었다. 지금 오금동에 사는 누군가의 아파트 베란다 아래 어딘가에, 100년 전 농부의 손때가 묻은 흙이 아직 남아 있을 수 있다.


2. 오금동의 논 이야기 — 270필지가 벼로 가득했던 그 시절



오금동에서 가장 넓은 땅은 논이었다. 270필지, 863,233㎡. 전체 면적의 절반이 논으로 채워져 있었다. 봄이 되면 모내기 소리가 마을을 가득 채우고, 여름이면 물 위에 비친 하늘이 논마다 담겼다. 가을이면 벼이삭이 고개를 숙이며 황금빛 물결을 이루었다. 지금은 아파트 숲이 된 그 자리에서.

이 논들은 단순히 식량을 생산하는 공간이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의 경제권을 결정했고, 누가 얼마나 많은 논을 가지고 있는지가 마을 내 지위를 좌우했다. 김씨 집안이 가장 많은 87필지를 소유했다는 사실은, 그 가문이 이 논의 상당 부분을 경작했을 것임을 시사한다. 그 논 아래 지금도 당시의 토층이 남아 있다면, 농경 문화의 구체적인 증거를 발굴해낼 수 있다.


3. 오금동을 차지한 밭의 비밀

필지 수로만 따지면 밭이 오금동을 지배했다. 281필지로, 논의 270필지보다 많다. 면적은 671,503㎡로 논보다 작지만, 밭의 종류와 쓰임새는 훨씬 다양했다. 보리와 콩, 채소류, 아마도 약초까지. 계절마다 다른 작물이 자라나며 마을 사람들의 끼니와 의약을 함께 책임졌다.

밭을 가진 사람들의 삶을 상상해보자. 이른 새벽 이슬이 맺힌 밭에 나가 호미를 들고, 해가 뜨기 전부터 해가 질 때까지 흙과 씨름했다. 그 손길이 닿은 땅 위에서 마을이 먹고 살았다. 지금 그 밭 자리가 어디인지 지도 위에서 정확히 찾아내는 것, 그게 바로 문화재 지표조사의 힘이다.


4. 집과 마을, 사람들의 삶은



614필지의 땅 위에서, 실제 집이 지어진 대지는 33필지, 51,696㎡에 불과했다. 전체의 3%에도 못 미친다. 그 작은 공간 안에 오금동 마을 전체의 생활이 압축되어 있었다. 좁은 골목을 따라 이어진 초가집, 마당에서 피어오르는 아궁이 연기, 저녁이면 온 가족이 한 상에 모여 앉아 하루를 마무리하던 풍경.

집이 33필지밖에 없다는 건, 오금동이 외지에서 유입된 사람보다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가문 중심의 마을이었음을 뜻한다. 김씨, 이씨, 한씨, 구씨, 민씨 등 성씨별 집안이 골목마다 뿌리를 내리고, 서로의 경조사를 함께 챙기며 공동체를 이루었을 것이다. 그 공동체의 물리적 흔적이 지금도 지층에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


5. 자연의 보고, 산과 임야 이야기

논밭 뒤로 산이 있었다. 임야는 30필지, 127,481㎡. 마을 사람들에게 산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었다. 땔감을 구하러 오르고, 산나물을 뜯어 반찬을 만들고, 제사상에 올릴 약초를 찾아다니던 생활의 공간이었다. 그리고 마을 뒷산 어딘가에는 조상들의 묘가 자리했을 것이다.

지금 오금동 주변 공원이나 녹지 지역을 걸을 때, 그 산자락이 한때 마을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함께 품었던 공간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자. 그 산기슭 어딘가에 아직 발굴되지 않은 묘역이나 유적이 잠들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6. 오금동 땅의 진짜 주인들 — 성씨로 읽는 마을 구성

김씨

87필지

이씨

82필지

한씨

54필지

구씨

49필지

민씨

29필지

고씨

28필지

오금동의 토지 소유 분포는 흥미롭다. 김씨가 87필지로 가장 많았지만, 이씨가 82필지로 거의 비슷하게 뒤를 쫓았다. 한씨 54필지, 구씨 49필지, 민씨 29필지, 고씨 28필지까지. 다른 동네들에 비해 상위 성씨 간 필지 수 차이가 크지 않다는 건, 오금동이 특정 가문의 독점보다 여러 성씨가 비교적 고르게 공존하던 열린 공동체였음을 시사한다.

이 여섯 성씨가 어떻게 관계망을 이루었는지, 혼인 관계가 있었는지, 마을 제사나 두레는 어떻게 운영되었는지. 그 사회적 구조의 흔적이 유물이나 문서 형태로 땅속 어딘가에 남아 있을 수 있다. 지표조사는 그 실마리를 찾는 시작점이다.


7. 역사의 그림자, 동양척식주식회사



오금동 토지 기록에도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이름이 등장한다. 38필지. 전체 614필지 중 약 6%다. 증산동의 28필지, 서계동의 일본인 19필지와 함께 이 숫자들은 일제강점기 조선 전역을 휩쓴 토지 수탈의 한 장면이다.

역사적 맥락

동양척식주식회사는 1908년 설립되어 조선의 토지와 자원을 일본 자본에 넘기는 역할을 했다. 오금동의 38필지는 논과 밭이 주를 이루었을 것이며, 이 땅에서 일하던 조선 농민들은 소작농으로 전락하거나 삶의 터전을 잃었다. 이 역사는 기억하고 성찰해야 할 우리의 과거다.

동척이 차지한 38필지가 어느 자리였는지, 그 땅에서 어떤 작물이 자랐는지, 그 위에 지금 무엇이 서 있는지. 지표조사와 문헌 연구를 통해 역사의 지형도를 다시 그릴 수 있다. 아픈 역사도 지워서는 안 된다. 기억해야 반복하지 않는다.


8. 문화재 지표조사 — 오금동의 숨겨진 시간을 꺼내는 법



오금동처럼 논과 밭이 전체 면적의 90% 이상을 차지했던 농경 지대일수록, 그 땅 아래에 농경 문화의 층위가 두텁게 쌓여 있다. 벼농사를 짓던 논 아래에는 수백 년간의 퇴적층이 형성되고, 그 안에 당시의 생활 도구, 농기구, 심지어 주거지 흔적까지 남아 있을 수 있다.

문화재 지표조사는 개발이 시작되기 전에 이런 가능성을 사전에 확인하는 절차다. 오금동 일대에서 재개발이나 대규모 공사가 계획된다면, 반드시 지표조사가 선행되어야 한다. 송파구는 백제 한성 시대의 핵심 영역이었던 만큼, 오금동 역시 삼국시대 이전 유적이 잠들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지표조사 → 표본조사(2% 이내) → 시굴조사(10% 이내) → 정밀 발굴조사. 송파구는 풍납토성, 몽촌토성 등 백제 유적 인접 지역으로 문화재 매장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다.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seoulheritage.org) 및 국가유산청 협업포털(e-minwon.go.kr)을 통해 의뢰 가능.


9. 과거에서 현재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



100년이 흐르는 동안 오금동의 논은 사라졌다. 밭도 사라졌고, 임야도 대부분 녹아들었다. 하지만 사라진 건 눈에 보이는 풍경뿐이다. 지층은 기억을 지우지 않는다. 김씨 집안이 모내기하던 논, 한씨 어른이 가꾸던 밭, 동척에 빼앗긴 38필지의 아픔, 이 모두가 지금도 오금동 땅 아래 켜켜이 남아 있다.

가끔씩은 발 아래를 상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걷는 이 길이 한때 물이 고인 논이었다는 것, 아파트 지하주차장 아래 어딘가에 고려시대의 토기 조각이 잠들어 있을 수도 있다는 것. 그 상상이 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조사를 이어주는 다리가 된다.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 현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방법이고, 그게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화재 지표조사 · 시굴조사 · 발굴조사 의뢰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 seoulheritage.org


국가유산청 협업포털 → e-minwon.go.kr


소규모 국비 지원 발굴 → 한국문화재재단 연계


송파구 관할 문화재 문의 → 송파구청 문화관광과

"1912년 오금동, 270필지 논에서벼이삭이 바람에 고개를 숙이던 그 가을.지금 당신이 밟는 그 땅이 바로 그 논이었다."

출처: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seoulheritage.org | 국가유산청 kh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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