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성북구 상월곡동, 흙 속에서 되살아난 삶의 숨결
- 2025년 4월 5일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5월 17일
이 흙 한 줌에 백년 전 사람들의 숨소리가 담겨 있다 — 성북구 상월곡동 1912년의 진짜 이야기
논 21필지, 밭 38필지, 이씨 12필지 박씨 11필지가 만들어낸 작지만 완전한 공동체 · seoulheritage.org 데이터 기반 · 문화재 지표조사 · 발굴조사 가이드
목차
1장상월곡동, 월곡역 그 이름 뒤에 숨은 100년 전 풍경
2장1912년 상월곡동 토지 데이터 전체 해부 — 96필지 안에 담긴 완결된 농촌
3장논 21필지 100,007㎡ — 상월곡동이 품었던 자연스러운 물의 흐름
4장밭 38필지 72,172㎡ — 이씨와 박씨가 일구었던 대지의 기억
5장대지 35필지 14,786㎡ — 집터에서 나오는 것들의 이야기
6장하월곡동과 비교하면 보이는 상월곡동만의 조용한 정체성
7장성북구 상월곡동에서 공사를 앞두고 있다면 알아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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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월곡동, 월곡역 그 이름 뒤에 숨은 100년 전 풍경

상월곡동. 지하철 6호선 월곡역 근처, 성북구 동쪽에 자리한 조용한 주거 동네입니다. 1912년 상월곡동은 총 96필지, 193,659㎡의 땅이었습니다. 이 시리즈에서 다룬 동네들과 비교하면 꽤 작은 규모예요. 하지만 이 작은 동네가 오히려 더 선명하게 당시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 경우가 있어요.
seoulheritage.org에서 분석한 성북구 하월곡동 자료를 보면 "숨겨진 이야기, 1912년 성북구 하월곡동으로의 시간여행"이라는 제목으로 분석이 공개되어 있어요. 하월곡동과 상월곡동은 원래 월곡동이라는 하나의 마을에서 나뉜 곳이에요. 이씨 12필지, 박씨 11필지. 두 성씨가 이 마을의 절반 가까이를 나눠 가지며 함께 살았습니다.
이 글을 끝까지 읽으면, 월곡역을 지나칠 때 그 평범한 골목이 전혀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사실이 느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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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상월곡동 토지 데이터 전체 해부 — 96필지 안에 담긴 완결된 농촌

전체
96필지
193,659㎡
논
100,007㎡
21필지 · 52%
밭
72,172㎡
38필지 · 37%
대지
14,786㎡
35필지 · 8%
임야
6,694㎡
1필지 · 3%
1912년 상월곡동 토지 구성 비율
논 52%
밭 37%
대지 8%
임야 3%
이 시리즈의 차별점
가장 단순하고 완결된 토지 구성
논·밭·대지·임야 단 4가지 지목. 묘지도, 잡종지도, 연못도 없어요. 이것이 오히려 가장 전형적인 조선 후기 농촌 마을의 순수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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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 21필지 100,007㎡ — 상월곡동이 품었던 자연스러운 물의 흐름

논 21필지, 100,007㎡. 전체 193,659㎡의 절반이 넘는 면적이 논이었다는 뜻이에요. 상월곡동은 성북구 동쪽에 위치한 지역으로, 주변에 작은 구릉들이 이어지고 그 사이 사이로 물이 흘러내려오는 지형이에요. 이런 지형에서는 자연스럽게 계곡과 구릉 사이의 평탄지에 논이 형성됩니다. 외부에서 인위적으로 물을 끌어오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고이는 물을 이용해 논을 만드는 방식이에요.
seoulheritage.org에서 분석한 하월곡동 기록에서도 월곡동 일대가 성북구 동쪽 구릉 지형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지역이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구릉 사이 계곡 지형에 형성된 논은 평야 지역의 논과 토층 구조가 달라요. 물의 흐름을 따라 형성된 독특한 퇴적 구조 안에 농기구 파편, 수리 시설 흔적, 식물 유체 같은 유물이 보존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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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 38필지 72,172㎡ — 이씨와 박씨가 일구었던 대지의 기억

밭 38필지, 72,172㎡. 38개의 밭. 상월곡동은 논보다 밭 필지 수가 더 많은 동네였어요. 논이 21필지인데 밭이 38필지라는 건, 이 동네 사람들이 벼농사와 함께 다양한 채소와 곡물을 재배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씨 12필지, 박씨 11필지가 이 밭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을 거예요.
이씨 12필지
상월곡동 최대 토지 소유 성씨
박씨 11필지
단 1필지 차이의 공존
이씨 12필지와 박씨 11필지의 차이가 단 1필지라는 점이 인상적이에요. 이 마을에서 두 가문은 거의 동등한 규모로 공존했습니다. 큰 불균형 없이 비슷한 힘을 가진 두 가문이 나란히 살아가는 구조. 그 균형이 상월곡동 공동체의 바탕이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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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 35필지 14,786㎡ — 집터에서 나오는 것들의 이야기
대지 35필지, 14,786㎡. 35개의 집터. 96필지 전체 중 35필지가 집터라는 건 상월곡동이 결코 작은 마을이 아니었음을 보여줍니다. 35가구 이상이 이 마을에 모여 살았다면, 가구당 4~5명으로 계산해도 150명 이상이 이 작은 동네에서 함께 살았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집터에서는 온돌 구조 흔적, 우물터, 기와편과 담장 기초석, 생활 토기가 나올 가능성이 높아요. 우물터는 특히 중요합니다. 상월곡동 같은 구릉 지역의 마을에서는 우물이 마을 사람들의 공동 생활 중심 공간이 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이씨 집안 아주머니와 박씨 집안 할머니가 물을 길으며 이야기를 나누었을 그 우물터가 지금도 상월곡동 어딘가의 지하에 남아 있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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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월곡동과 비교하면 보이는 상월곡동만의 조용한 정체성

상월곡동과 하월곡동은 이름이 보여주듯 원래 하나의 마을에서 갈라진 동네예요. seoulheritage.org에서 분석한 하월곡동 기록을 보면 성북구 동쪽 구릉 지형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지역이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두 동네 모두 비슷한 지형적 맥락 위에 있어요. 그런데 상월곡동은 하월곡동보다 더 작은 규모였어요. 96필지, 193,659㎡.
이 작은 규모가 오히려 상월곡동의 특성을 만들어요. 이씨 12필지, 박씨 11필지처럼 소수의 가문이 촘촘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구조가 형성됩니다. 하월곡동에서 발굴조사가 이루어진다면 더 다양한 성씨의 유물이 넓게 분포할 가능성이 있는 반면, 상월곡동에서는 이씨와 박씨 두 가문의 생활 흔적이 더 집중적이고 긴밀하게 뒤섞인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요. 작은 마을, 두 가문, 그리고 논과 밭. 이것이 상월곡동의 가장 단순하고 완전한 정체성입니다.
문화재 지표조사
→
시굴조사
→
발굴조사
→
보존 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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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 상월곡동에서 공사를 앞두고 있다면 알아야 할 것

성북구 상월곡동이나 인근 지역에서 공사를 계획하고 있다면 아래 내용을 먼저 확인하세요. 상월곡동은 96필지라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동네지만, 논 52%, 밭 37%, 대지 8%라는 명확한 토지 구성이 있었어요. 특히 구릉 사이 계곡을 따라 형성된 논 지역에서는 수분이 많아 유기물 보존 상태가 양호한 경우가 있습니다. 이씨와 박씨 두 가문이 주요 토지 소유자였던 상월곡동에서는 두 가문의 집터와 농경지가 촘촘하게 뒤섞여 있었을 가능성이 높아요. 어느 부지가 집터였고 어느 부지가 밭이었는지를 먼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공사 중 매장문화재를 발견하고도 신고하지 않으면 최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받을 수 있어요. 작은 동네라고 해서 리스크가 작은 건 아닙니다. seoulheritage.org에서 발굴조사 비용 및 예산 FAQ, 법적 및 행정 FAQ, 공사 일정 FAQ를 먼저 확인하세요.
1912년 상월곡동, 이씨 집안 논에서 벼 이삭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을 때 박씨 집안 밭에서는 배추가 한창 자라고 있었을 거예요.이씨 아저씨가 수로를 손보고 돌아오는 길에 박씨 할머니와 마주쳐서 인사를 나누었을 거예요. 그 길 끝에는 함께 쓰는 우물이 있었고, 저녁이 되면 두 집 굴뚝에서 나란히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올랐을 거예요.96필지라는 작은 마을. 하지만 그 작은 마을 안에서 두 가문의 이야기는 수십 년, 어쩌면 수백 년 동안 이어져왔을 거예요.크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이씨와 박씨가 나란히 살았다는 그 흔적, 그것이 상월곡동의 가장 진실한 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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