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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성북구 돈암동 시간 여행: 이씨, 김씨, 박씨가 살던 그곳을 상상하다!

  • 2025년 4월 5일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5월 17일

이씨 122필지, 김씨 88필지, 박씨 45필지 — 1912년 성북구 돈암동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847,722㎡가 품은 100년 전 풍경 · 밭과 논과 잡종지가 공존했던 농촌의 진짜 기억 · seoulheritage.org 데이터 기반 · 문화재 지표조사 · 발굴조사 가이드


목차

1장돈암동, 지하철 4호선 그 역 이름 뒤에 숨은 100년 전 이야기

2장1912년 돈암동 토지 데이터 전체 해부 — 다섯 가지 지목이 만든 복합적인 공간

3장밭 248필지, 논 26필지 — 돈암동 사람들이 일구었던 690,508㎡의 농경지

4장잡종지 7필지 110,631㎡ — 이 시리즈에서 가장 큰 잡종지의 비밀

5장이씨 122필지, 김씨 88필지, 박씨 45필지 — 돈암동을 채운 사람들의 지형도

6장성북구 종암동, 하월곡동과 비교하면 보이는 것

7장성북구 돈암동에서 공사를 앞두고 있다면 지금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


1

돈암동, 지하철 4호선 그 역 이름 뒤에 숨은 100년 전 이야기



돈암동. 지하철 4호선 돈암역, 성신여대입구역 사이에 자리한 성북구의 이 동네를 지금 걷는 분들은 대부분 아파트 단지와 편의점, 대학가 카페만을 기억할 거예요. 그런데 1912년 돈암동에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총 847,722㎡. 그 중 690,508㎡가 논과 밭이었어요. 전체 면적의 약 81%가 농경지였다는 뜻입니다.

seoulheritage.org는 서울 25개 구 전체의 1912년 토지 기록을 분석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같은 성북구의 종암동과 하월곡동 기록을 보면 성북구 일대는 서울 북쪽 외곽을 따라 농촌과 도시의 경계가 중첩되던 독특한 지역이었어요. 돈암동은 그 중에서도 규모가 컸고, 이씨·김씨·박씨를 비롯한 열 개가 넘는 성씨가 공존한 복합적인 공동체였어요.

이 글을 끝까지 읽고 나면, 돈암역을 지나칠 때 그 일상적인 역 이름이 전혀 다르게 느껴질 거예요. 성북구에서 공사를 준비하고 있는 분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실질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2

1912년 돈암동 토지 데이터 전체 해부 — 다섯 가지 지목이 만든 복합적인 공간



609,520㎡

248필지 · 72%

잡종지

110,631㎡

7필지 · 13%

80,988㎡

26필지 · 9%

대지

54,314㎡

226필지 · 6%

임야

15,490㎡

5필지

묘지

11,689㎡

12필지

1912년 돈암동 토지 구성 비율

밭 72%

잡종지 13%

논 9%

기타 6%

이 시리즈 최고 기록

가장 다양한 지목 구성 + 잡종지 110,631㎡

농경지 81%에 잡종지 13%까지 — 돈암동은 이 시리즈에서 지목 구성이 가장 복합적인 동네입니다

다섯 가지 이상의 지목이 한 동네 안에 공존하는 구성이에요. 이 시리즈에서 다룬 동네들 중에서도 지목 구성이 가장 다양한 편입니다. 문화재 발굴 관점에서 이 다섯 가지 지목이 공존한다는 것은, 발굴조사 결과가 부지별로 매우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는 뜻이에요. 같은 돈암동 주소라도 어느 필지였는지에 따라 발굴 결과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3

밭 248필지, 논 26필지 — 돈암동 사람들이 일구었던 690,508㎡의 농경지



밭 248필지 609,520㎡, 논 26필지 80,988㎡. 두 숫자를 더하면 274필지 690,508㎡로 축구장 약 96개를 이어붙인 면적이에요. 밭 248필지라는 숫자에 주목해보세요. 248개의 밭은 각각의 경작자가 있었다는 뜻이에요. 이씨, 김씨, 박씨를 비롯한 열 개가 넘는 성씨들이 각자의 밭을 가지고 직접 경작하는 자급자족 공동체가 이 숫자 안에 담겨 있습니다.

성북구의 구릉 지형에서 논을 만들기에 적합한 평탄지가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논 26필지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입니다. 돈암동이 논농사보다 밭농사 중심의 동네였다는 뜻이기도 해요. 밭 지역에서는 농기구와 토기 파편이, 논 지역에서는 수리 시설과 유기물 유체가 집중적으로 나올 수 있어요.


4

잡종지 7필지 110,631㎡ — 이 시리즈에서 가장 큰 잡종지의 비밀



잡종지 7필지 110,631㎡. 필지 수 7개인데 면적이 110,631㎡라는 것은 필지 하나당 평균 약 15,800㎡에 달하는 거대한 단위의 잡종지였다는 뜻이에요. 대지(집터) 54,314㎡보다 두 배 이상 큰 면적입니다. 집 짓는 땅보다 이런 다용도 공간이 더 넓었다는 것은, 돈암동 사람들의 공동체 생활에서 이 공간들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뜻입니다.

옹기나 기와를 굽는 가마터, 마을 공동 작업장, 관개용 저수지, 계절에 따라 용도가 바뀌는 다목적 공간 등이 잡종지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문화재 발굴 관점에서 잡종지는 가장 예측하기 어려운 지역이에요. 다양한 시기에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출토 유물의 종류와 시기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어요. 이 지역에서는 특히 꼼꼼한 문화재 지표조사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5

이씨 122필지, 김씨 88필지, 박씨 45필지 — 돈암동을 채운 사람들의 지형도



1912년 돈암동의 토지 소유 기록에는 정말 많은 이름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씨 122필지

김씨 88필지

박씨 45필지

송씨

곽씨 — 최초 등장

강씨

최씨

정씨

장씨

유씨

안씨

오씨

이씨 122필지라는 수치는 이 시리즈 전체에서도 손꼽히게 많은 수준이에요. 그리고 곽씨가 이 시리즈에서 처음 등장합니다. 곽씨는 전국적으로 많지 않은 성씨인데, 성북구 돈암동에서 주요 토지 소유 성씨로 등장한다는 것은 이 지역에 곽씨 가문이 오래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는 증거예요. 이렇게 다양한 성씨가 공존하는 마을에서의 발굴조사는 특별한 결과를 낳을 수 있어요. 서로 다른 가문의 생활 방식이 한 공간에 겹쳐 쌓이기 때문에 단일 가문이 독점한 마을보다 훨씬 풍부한 역사의 단면이 드러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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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 종암동, 하월곡동과 비교하면 보이는 것

같은 성북구 안에 있는 종암동, 하월곡동과 돈암동을 비교해보면 성북구 일대의 역사적 다양성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seoulheritage.org에서 분석한 종암동과 하월곡동 기록을 보면, 성북구 동쪽 지역은 구릉 지형을 따라 논과 밭이 배치된 전형적인 서울 북쪽 외곽 농촌 구조였습니다.

돈암동은 이들과 비교해 세 가지 뚜렷한 차이점이 있어요. 첫째, 농경지 비율이 81%로 압도적으로 높아요. 둘째, 열 개 이상의 성씨가 공존하는 높은 다양성입니다. 이씨 122필지라는 규모와 곽씨 같은 희귀 성씨의 공존이 이를 잘 보여줘요. 셋째, 잡종지 110,631㎡라는 대규모 다용도 공간의 존재가 돈암동만의 특성이에요. 문화재 지표조사는 바로 이 차이를 사전에 파악하는 작업입니다.

문화재 지표조사

시굴조사

발굴조사

보존 처리


7

성북구 돈암동에서 공사를 앞두고 있다면 지금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



성북구 돈암동이나 인근 지역에서 공사를 계획하고 있다면 이 동네의 특수성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농경지 81%에 더해 잡종지 110,631㎡라는 예측하기 어려운 다용도 공간이 공존했던 돈암동에서는 부지별로 발굴 결과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어요. 특히 잡종지 지역은 출토 유물의 다양성이 높아 문화재청과의 사전 협의가 중요할 수 있습니다.

공사 중 매장문화재를 발견하고도 신고하지 않으면 최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받을 수 있어요. 성북구는 조선시대 한양 도성과의 연결 통로 지역으로 다양한 시기의 유물이 나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seoulheritage.org에서 발굴조사 비용 및 예산 FAQ, 법적 및 행정 FAQ, 공사 일정 FAQ를 먼저 확인하세요.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해당 부지의 1912년 지목 확인이에요. 밭이었던 곳, 논이었던 곳, 잡종지였던 곳은 예상되는 유물 종류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1912년 돈암동, 이씨 집안 할머니가 아침 일찍 밭으로 나가고 있었을 거예요.곽씨 집 쪽에서는 가마에서 옹기 굽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김씨 집 논에서는 모내기 소리가 들려오고, 송씨 아저씨는 잡종지 쪽 공동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오고 있었을 거예요. 박씨 집 아이들은 임야 언저리에서 뛰어놀고, 안씨 할아버지는 묘지가 있는 언덕 쪽을 바라보며 조상님을 생각하고.열 개가 넘는 성씨들이 이 847,722㎡ 안에서 각자의 밭을 갈고, 각자의 집에서 저녁연기를 피우며 살아가던 그 공동체.이씨, 김씨, 박씨, 곽씨, 송씨... 그들이 살았다는 흔적이 돈암동의 가장 진실한 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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