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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송파구 가락동의 비밀을 파헤쳐라! 발굴 조사, 그 숨 막히는 현장 속으로!

  • 2025년 4월 5일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5월 17일

가락시장 그 자리에 100년 전 논 20만 평이 있었다는 사실, 믿으시겠습니까

송파구 가락동 1912년 완전 해부 · 이씨 144필지, 노씨 42필지, 전씨 42필지가 품은 역사 · seoulheritage.org 데이터 기반 · 문화재 지표조사 · 발굴조사 가이드


목차

1장가락동, 지금 농수산물시장 그 자리에 100년 전 벼 이삭이 출렁였다

2장1912년 가락동 토지 데이터 전체 해부 — 2백만 ㎡ 안에 담긴 이야기

3장논 201필지 885,997㎡ — 이 시리즈에서 가장 넓은 논의 기록

4장임야 12필지 109,193㎡ — 가락동이 품었던 숲의 흔적

5장이씨 144필지, 노씨 42필지, 전씨 42필지 — 가락동을 이룬 사람들

6장송파구 풍납동, 장지동과 비교하면 보이는 것

7장송파구 가락동에서 공사를 앞두고 있다면 반드시 알아야 할 것


1

가락동, 지금 농수산물시장 그 자리에 100년 전 벼 이삭이 출렁였다



가락동. 지금 이 이름을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가락농수산물시장. 새벽 네 시부터 불이 켜지고 전국에서 올라온 농산물과 수산물이 거래되는 서울 최대의 도매 시장. 그런데 1912년 이 가락동 땅의 대부분이 논이었다는 사실을 알면 어떤 기분이 드시나요?

seoulheritage.org에서 분석한 같은 송파구의 풍납동 자료에서 한강변 농촌의 기록이, 장지동 자료에서 "논밭이 끝없이 펼쳐졌던 고요한 농촌"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가락동도 그 맥락 안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논의 규모로 따지면 가락동이 이 시리즈 전체에서 가장 큰 수준이에요.

이 글을 끝까지 읽고 나면, 가락시장역 앞을 지나칠 때 그 넓은 주차장 아래에 100년 전 논두렁이 잠들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거예요.


2

1912년 가락동 토지 데이터 전체 해부 — 2백만 ㎡ 안에 담긴 이야기



1,985,615㎡

1912년 가락동 전체 면적 · 축구장 약 276개 · 이 시리즈 최대 규모

885,997㎡

201필지 · 전체 45%

84,747㎡

250필지 · 전체 4%

임야

109,193㎡

12필지 · 전체 5%

대지

32,000㎡

34필지 · 전체 2%

묘지

7,044㎡

6필지

1912년 가락동 토지 구성 비율

논 45%

임야 5%

밭 4%

대지·기타 46%

이 시리즈 최고 기록

총 면적 1,985,615㎡ · 논 885,997㎡

이 시리즈에서 가장 큰 총 면적, 가장 넓은 논 면적. 대지는 고작 2%로 집터보다 임야가 세 배 이상 큰 전문 농업 지역이었습니다.


3

논 201필지 885,997㎡ — 이 시리즈에서 가장 넓은 논의 기록



논 201필지, 885,997㎡. 이 숫자를 이 시리즈의 다른 동네들과 비교해보면 가락동의 독보성이 드러납니다. 가락동은 한강 지류인 성내천이 인근에 흐르는 저지대 지형이에요. 물이 풍부하고 토양이 비옥한 이 환경에서 논농사가 수백 년 동안 이루어졌습니다. 201필지의 논에서 봄에는 모내기, 여름에는 벼 관리, 가을에는 수확이 이루어지던 풍경은 지금 상상하기도 어려운 장관이었을 거예요.

논 885,997㎡의 물기를 머금은 토층은 유기물을 보존하는 특성이 있어요. 나무 농기구, 볍씨, 식물 유체, 동물 뼈 같은 것들이 이런 토층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락동의 885,997㎡ 논 지역은 그런 가능성이 광범위하게 분포한다는 뜻이에요.


4

임야 12필지 109,193㎡ — 가락동이 품었던 숲의 흔적



임야 12필지, 109,193㎡. 대지(집터)가 32,000㎡인데 임야가 109,193㎡예요. 집 짓는 땅의 세 배가 넘는 면적이 숲이었다는 뜻이에요. 가락동의 경우 묘지 6필지 7,044㎡와 임야 12필지 109,193㎡가 함께 존재하는데, 이 두 지목이 지형적으로 인접해 있었을 가능성이 높아요. 선산을 지키는 소나무 숲, 그 아래 묘역. 이런 지역에서는 조선시대 무덤과 관련된 석물, 비석 편, 부장품이 나올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5

이씨 144필지, 노씨 42필지, 전씨 42필지 — 가락동을 이룬 사람들

1912년 가락동의 토지 소유 기록에는 정말 다양한 성씨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씨 144필지

노씨 42필지 — 최초 등장

전씨 42필지 — 최초 등장

김씨

신씨

정씨

홍씨

문씨

한씨

강씨

양씨

조씨

염씨

노씨와 전씨는 이 시리즈를 통틀어 처음 주요 토지 소유 성씨로 등장하는 성씨들입니다. 전국적으로 많지 않은 성씨인데, 가락동에서 각각 42필지라는 동일한 규모로 등장한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두 가문이 비슷한 규모의 토지를 나눠 가지며 가락동 공동체에서 비슷한 비중을 가졌던 셈이에요. 이렇게 다양한 성씨들이 201개의 논을 나눠 경작하며 살아가던 가락동. 그 복합 공동체의 흔적이 지금도 어딘가에 잠들어 있을 수 있습니다.


6

송파구 풍납동, 장지동과 비교하면 보이는 것



풍납동

특징: 백제 풍납토성

역사: 삼국시대~

유물: 고대~조선

장지동

특징: 논밭 농촌

규모: 가락동보다 소규모

유물: 조선 농경

가락동

특징: 논 885,997㎡

규모: 시리즈 최대

유물: 농경+유기물

가락동은 풍납동처럼 백제 유적지라는 특수성은 없고, 장지동보다 더 규모가 크며, 논 885,997㎡라는 압도적인 농경지가 특징입니다. 지표조사 단계에서 가락동의 경우 특히 논 지역의 수리 시설 흔적과 유기물 보존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문화재 지표조사

시굴조사

발굴조사

보존 처리


7

송파구 가락동에서 공사를 앞두고 있다면 반드시 알아야 할 것



송파구 가락동이나 인근 지역에서 건물 신축이나 대규모 개발을 계획하고 있다면, 이 동네의 특수성을 반드시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가락동은 1912년 기준으로 전체 면적 1,985,615㎡ 중 논만 885,997㎡에 달하는 대규모 논농사 지역이었어요. 논 지역의 물기를 머금은 토층에서는 나무로 만든 농기구처럼 다른 지역에서는 잘 보존되지 않는 유물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임야와 묘지가 인접한 지역에서는 선산 관련 유물이 나올 수 있어 더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해요.

공사 중 매장문화재를 발견하고도 신고하지 않으면 최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받을 수 있어요. 풍납토성이 있는 송파구는 삼국시대부터의 역사와 연관된 지역으로, 가락동에서도 예상치 못한 시기의 유물이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seoulheritage.org에서 발굴조사 비용 및 예산 FAQ, 법적 및 행정 FAQ, 공사 일정 FAQ를 먼저 확인하세요.

새벽 네 시, 지금 가락농수산물시장에는 불빛이 켜지고 전국의 농산물이 쏟아져 들어옵니다.그런데 1912년 이 자리에서는 다른 의미의 새벽이 시작되고 있었어요. 이씨 집안 사람들이 논두렁을 걸어 논으로 나가고 있었을 거예요. 노씨 아저씨는 옆 논에서 수로를 확인하고, 전씨 집 아주머니는 모내기 준비를 하고. 봄 안개가 걷히면서 201개의 논에서 동시에 모내기 소리가 들려오던 그 새벽.가락동은 100년 전에도 새벽부터 분주했습니다. 다만 그때는 논에서, 지금은 시장에서.이씨, 노씨, 전씨, 염씨, 문씨... 그 이름들이 살았다는 증거. 그것이 가락동의 가장 오래된, 그리고 가장 진실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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