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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대문구 문화재 지표조사·시굴조사·발굴조사를 위한 기초 분석 — 1912년 토지조사부 기반, 3,053필지 635만㎡의 충격
문화재 발굴조사지표조사시굴조사서울 동대문구1912년 토지조사창덕궁 27필지척식회사 452필지분묘지 158필지 척식회사 452필지 vs 창덕궁 27필지 —1912년 동대문구, 수탈과 왕실이 맞붙은 땅 서울 동대문구 문화재 지표조사·시굴조사·발굴조사를 위한 기초 분석 — 1912년 토지조사부 기반, 3,053필지 635만㎡의 충격 ▲ 1912년 동대문구에는 158필지 305,429㎡의 분묘지가 있었다. 이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많은 분묘 필지 수다. 구릉마다 선조들의 묘가 자리하고 있었다 동양척식주식회사가 452필지를 손에 쥐고, 창덕궁이 27필지를 지키고 있었다. 수탈 기관과 왕실이 같은 동네에서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동대문구. 지금은 동대문 디자인플라자(DDP)와 청량리 역세권, 경희대·한국외대가 자리한 서울 동북쪽 도시 지역이다. 하지만 113년 전 이 땅의 기록에는 이 시리즈 전체에서 가장 강렬한 대립 구도가 새겨져 있다. 동양척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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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로구 문화재 지표조사·시굴조사·발굴조사를 위한 기초 분석 — 1912년 토지조사부 기반, 3,095필지 1,142만㎡의 기록
문화재 발굴조사지표조사시굴조사서울 구로구1912년 토지조사연못 22필지배씨·문씨 집성촌경인선 철도용지 연못이 22개 흩어진 땅,배씨와 문씨가 지킨 1912년 구로구의 숨겨진 얼굴 서울 구로구 문화재 지표조사·시굴조사·발굴조사를 위한 기초 분석 — 1912년 토지조사부 기반, 3,095필지 1,142만㎡의 기록 ▲ 1912년 구로구에는 22필지 49,044㎡의 연못이 흩어져 있었다. 이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많은 연못 필지 수다. 논과 연못이 공존하는 특별한 수경 농촌 지대였다 구로구에 연못이 22개 있었다. 이 시리즈 10편을 통틀어 가장 많은 연못이 한 곳에 모여 있었다. 구로구. 지금은 구로디지털단지와 G밸리, 경부고속도로 시작점으로 유명한 서울 서남부 산업 도시다. 하지만 113년 전 이 땅의 기록에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22필지 49,044㎡의 연못. 이 시리즈에서 연못(지소) 데이터를 비교하면 구로구가 압도적 1위다. 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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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구 문화재 지표조사·시굴조사·발굴조사를 위한 기초 분석 — 1912년 토지조사부 기반, 3,023필지의 충격적 기록
문화재 발굴조사지표조사시굴조사서울 성북구1912년 토지조사창덕궁 소유지손씨 집성촌프랑스 선교 창덕궁이 성북구 땅을 직접 소유했다 —1912년 성북구, 왕실과 민중과 이방인의 땅 서울 성북구 문화재 지표조사·시굴조사·발굴조사를 위한 기초 분석 — 1912년 토지조사부 기반, 3,023필지의 충격적 기록 ▲ 창덕궁은 성북구 95필지를 직접 소유하고 있었다. 왕실의 손길이 궁궐 담장 너머 성북 땅까지 뻗어 있었던 것이다 1912년 성북구 땅의 일부는 '창덕궁' 명의였다. 왕조가 무너진 지 2년이 지난 뒤에도. 이 시리즈 일곱 편을 통틀어 가장 충격적인 한 줄이 여기 있다. 1912년 성북구에 창덕궁 소유의 토지가 95필지. 1910년 경술국치로 조선왕조가 공식적으로 끝나고, 고종과 순종이 '이왕가(李王家)'로 격하된 지 2년이 지났는데도 창덕궁 명의의 토지가 성북구 한 복판에 여전히 살아있었다. 그것도 95필지나. 그리고 손씨(孫氏)가 4위 성씨로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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