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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깊은 땅. 청동기 고인돌·삼국시대 토성·조선 초기 묘역이 공존하는 구로구 고척동에서, 1912년 국유 밭이 말해주는 것들

  • 5월 28일
  • 7분 분량

문화재 지표조사 · 발굴조사 · 서울 4개 고인돌 중 하나의 땅

서울에 고인돌이 있다.


그것도 바로 고척동, 이 밭 옆에.

2필지 10,165㎡ — 작지만 깊은 땅. 청동기 고인돌·삼국시대 토성·조선 초기 묘역이 공존하는 고척동에서, 1912년 국유 밭이 말해주는 것들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 seoulheritage.org2026문화재 지표조사 · 발굴 기초분석

2필지

고척동 국유지


총 필지 수 (1912)

10,165㎡

전체 면적


(약 3,075평)

100%

전체가 밭


논·임야 없음

5,083㎡

필지당 평균 면적


(약 1,537평)

1963년

서울 편입


(경기도 부평군→서울)

4개

서울시 전체


고인돌 수


목 차

1.고척(高尺) — 안양천 옆 장터에서 긴 자로 재던 마을

2.1912년 고척동 국유지 완전 통계 해설

3.2필지 10,165㎡의 밭 — 이 땅이 얼마나 특별한가

4.서울에 고인돌이 4개뿐이다 — 그 중 하나가 고척동에

5.삼국시대 토성·조선 초기 묘역 — 고척동 역사층의 깊이

6.문화재 지표조사·시굴·표본·발굴조사, 고척동에서 어떻게 하나

7.구로구 발굴 성공 사례 — 이미 확인된 고대의 흔적

8.작은 땅, 깊은 이야기 — 지금 이 조사가 필요한 이유



서울 전체에 고인돌이 딱 4개뿐이다. 그 중 하나가, 지금 고척스카이돔 옆 야산에 있다.

진짜야. 한반도에 3만 개가 넘는 고인돌이 있지만, 서울 시내에서 살아남은 건 딱 4개뿐이야. 도시 개발 과정에서 거의 다 사라졌거든. 그 4개 중 하나가 바로 구로구 고척동에 있어. 오류중학교 뒷산, 야구팬들이 몰려드는 고척스카이돔에서 불과 몇 백 미터 떨어진 그 야산에, 청동기 시대 무덤이 지금도 남아있어.

그런데 더 놀라운 게 있어. 그 고인돌이 있는 야산은 삼국시대 토성(신정리 토성) 경내에 포함돼. 토성 위에 고인돌. 청동기 시대부터 삼국 시대까지 이어지는 역사층이 이 작은 야산에 겹겹이 쌓여있는 거야. 거기다 조선 초기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함양여씨 묘역도 바로 고척2동에 있어.

그리고 1912년 기록에는 이 모든 유산의 옆, 국유 밭 2필지 10,165㎡가 기록돼 있어. 숫자로만 보면 작아 보이지만, 이 작은 땅이 얼마나 두꺼운 역사 위에 놓여있는지를 알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져. 고척동 발굴조사가 왜 특별한지, 지금부터 제대로 풀어줄게.


1 고척(高尺) — 안양천 옆 장터에서 긴 자로 재던 마을

고척동의 이름부터 해체해볼게. '고척(高尺)'은 높을 고(高)에 자 척(尺), 즉 '높은 자'라는 뜻이야.

왜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 두 가지 설이 있어. 하나는 이 동네 자연마을 이름인 '고좌리', 즉 '높은 곳에서 생긴 마을'에서 왔다는 설이야. 다른 하나가 훨씬 생생한데, 경기도 부천·안양·강화 사람들과 서울 사람들이 안양천 옆에서 생필품과 농산물을 서로 교환할 때, 당시 계량기가 없어서 측정이 어렵자 긴 자로 재서 교환하던 관습에서 고척이라는 이름이 생겼다는 설이야.

생각해봐. 지금으로부터 수백 년 전, 안양천 고척교 자리 근처에서 강화 사람과 서울 사람이 쌀과 면포를 맞바꾸며 긴 자를 들고 서있던 모습. 그 생생한 장터 풍경이 이 동네 이름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는 거야.

고척리


경기 부평군 수곡면

고척리


1914년 부천군 편입

고척리


1941년 소사읍

고척동


1963년 서울 편입

1912년 기록 시점에서 고척동은 서울이 아니었어. 경기도 부평군 수곡면 고척리였어. 서울에 편입된 건 1963년이야. 즉 1912년 국유 밭 2필지는 '경기도 한 농촌 마을의 국유지'였던 거야. 당시 안양천을 경계로 서울과 경기도가 나뉘었고, 고척리는 그 경계 너머 경기 땅이었어.


2 1912년 고척동 국유지 완전 통계 해설

토지 종류

필지 수

면적

전체 비율

필지당 평균

2필지

10,165㎡

100%

5,083㎡

0%

임야

0%

합계

2필지

10,165㎡

100%

10,165㎡ — 이게 어느 정도 규모인가

10,165㎡

고척동 국유지 전체. 약 3,075평이야.

5,083㎡

필지당 평균 면적. 약 1,537평. 하나의 밭으로는 꽤 넓은 규모야.

100%

전체가 밭. 논도, 임야도, 대지도 없어. 고척동 국유지는 오직 밭으로만 이루어져 있어.

이번 시리즈에서 소개한 지역들 중 규모만 보면 가장 작은 편이야. 272필지 1,089,274㎡의 능동이나 437필지 1,875,892㎡의 면목동에 비하면, 고척동 2필지 10,165㎡는 아주 작아 보여. 하지만 규모가 작다고 역사가 얕은 건 아니야. 오히려 이 작은 두 필지가 얼마나 특별한 역사 위에 서 있는지가 이 동네의 진짜 이야기야.

전체가 밭으로만 구성됐다는 것도 특징이야. 인근 안양천변에 논이 있었을 텐데, 굳이 국유지는 밭만 등록됐어. 이건 두 필지가 논보다 고도가 높고 물이 덜 고이는 완사면(완만한 경사면)에 위치했다는 걸 시사해. 안양천과 가까우면서도 약간 높은 언덕 기슭의 밭이었을 가능성이 높아.



3 2필지 10,165㎡의 밭 — 이 땅이 얼마나 특별한가

밭 2필지 10,165㎡. 이 땅이 어떤 역사 위에 놓여 있는지를 알면, 숫자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해.

고척동은 조선 시대 경기도 부평도호부에 속했어. 부평도호부는 지금의 인천, 부천, 구로구 일대를 아우르는 광역 행정단위였어. 안양천을 끼고 농업이 발달했고, 서울과의 교역 거점 역할을 했어. 국유 밭 2필지는 이 교역 거점 농촌 마을에서 국가가 직접 관리하던 위토(位土)나 역토(驛土)였을 가능성이 있어.

그런데 더 중요한 건 이 밭이 어떤 유적들 사이에 끼어있느냐야. 같은 고척동 안에 청동기 시대 고인돌이 있고, 삼국시대 토성이 있고, 조선 초기 유형문화재 묘역이 있어. 이 유적들이 분포한 동네의 밭에서 발굴조사를 진행하면, 청동기·삼국·조선의 생활 흔적이 연속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있는 거야.

고척동 밭 구역에서 기대되는 문화재 발굴 가능성

청동기 시대 생활 유물 — 고인돌 인접 지역이라 동시대 생활 유적 가능성

삼국시대 토기·철기 — 신정리 토성 관련 생활 유구와 연결 가능성

백제 계열 토기 파편 — 신정산 일대에서 양면 타날문 회백색 연질토기 다량 발견됐어

조선 시대 농업 관련 유물 — 부평도호부 역토·위토 관련 농기구·생활 도구

안양천 수운 관련 유물 — 교역 거점으로 사용된 장터 관련 동전·도량형 유물


4 서울에 고인돌이 4개뿐이다 — 그 중 하나가 고척동에

이걸 제대로 실감해봐. 우리나라 전체에 고인돌이 약 30,000개가 있어. 세계 고인돌의 절반 이상이 한반도에 있어. 그런데 서울에는 딱 4개뿐이야. 왜? 도시 개발 과정에서 거의 다 파괴됐거든.

그 귀한 4개 중 하나가 구로구 고척동에 있어. 오류중학교 뒷산, 고척근린공원 야산 위. 1998년 서울대 조사단이 처음 발견했고, 2003년 전문 발굴조사에서 고인돌임이 공식 확인됐어. 규모는 190×105×28cm. 크지 않지만, 덮개돌에 '성혈(星穴)'이라고 불리는 일부러 판 구멍이 있고, 돌방(무덤방)의 구조가 확인됐어. 청동기 시대 사람이 이 땅에 묻혀있다는 거야.

더 놀라운 건, 이 고인돌이 있는 야산이 삼국시대 토성인 신정리 토성 경내에 포함된다는 거야. 고인돌 위에 삼국시대 토성이 쌓인 거야. 수천 년의 역사가 수직으로 쌓인 이 장소가 바로 고척동 국유 밭 2필지와 가까운 거리에 있어.

서울시 내 4개밖에 없는 고인돌 중 하나가 고척동에 있다는 사실은, 이 지역이 청동기 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하기 좋은 땅이었다는 직접적인 증거야. 고인돌은 그냥 무덤이 아니야. 공동체가 있고, 그 공동체가 특별한 지위의 인물을 묻을 만큼 사회 조직이 발달했다는 뜻이야. 1912년 국유 밭은 그 수천 년 거주 역사의 최근 층위야.



5 삼국시대 토성·조선 초기 묘역 — 고척동 역사층의 깊이

고척동과 인접한 야산인 신정산(해발 113m)은 삼국시대 토성이 있는 군사적 요충지였어. 이 토성은 고척동·궁동·신정동을 연결하는 산줄기 위에 자리 잡아, 경인 국도와 남쪽의 광명시, 북쪽 양천 방향을 모두 감시할 수 있는 위치야.

청동기 시대

고척동 고인돌

190×105×28cm 규모 덮개돌. 성혈과 돌방 확인. 서울 4개 고인돌 중 하나. 구로구 유일의 고인돌. 고인돌 인근 유물산포지도 확인됐어.

삼국 시대

신정리 토성

고척동~신정동 경계 신정산 위의 삼국시대 토성. 백제 양면 타날문 회백색 연질토기 다량 발견. 봉수대 흔적도 남아있어.

조선 초기

함양여씨 묘역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80호. 고척2동 산6-3 소재. 묘 2기·묘비·상석·문관석 4개. 조선 초기 묘지 양식 연구 자료.

현대

고척스카이돔

2015년 준공 대한민국 최초 돔 야구장. 수천 년 역사 위에 세워진 현대 랜드마크. 고인돌에서 돔까지, 고척동의 시간.

신정산 토성 조사에서는 전형적인 백제 시대 토기인 양면 타날문 회백색 연질 토기 파편이 다량 발견됐어. 이는 이 지역이 백제의 영향권 안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야. 청동기 고인돌과 백제 토기가 같은 야산 위에 공존한다는 건, 고척동 일대가 수천 년에 걸쳐 연속적으로 사람이 거주했다는 뜻이야.

조선 초기 함양여씨 묘역은 이 연속 거주 역사의 조선 시대 챕터야.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될 만큼 보존 상태가 좋고 역사적 가치가 높아. 고척동이 단순한 경기도 농촌 마을이 아니라, 조선 시대에도 사족(士族)이 자리 잡을 만큼 풍수적으로 좋은 땅이었다는 증거야.


6 문화재 지표조사·시굴·표본·발굴조사, 고척동에서 어떻게 하나



고척동처럼 다양한 시대의 유적이 집중된 지역에서 발굴조사는 어떻게 진행될까?

지표조사에서 핵심은 고인돌과 국유 밭 2필지의 공간적 관계를 파악하는 거야. 1912년 지적도에서 두 필지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고, 고인돌 위치, 신정리 토성 범위, 함양여씨 묘역 위치를 지형도 위에 겹쳐서 분석해. 이 유적들의 밀집 패턴을 보면 국유 밭이 어떤 역사적 맥락 위에 있는지가 드러나.

시굴조사는 특히 안양천 방향 사면과 신정산 방향 사면을 집중 점검해야 해. 안양천변 완사면에서는 조선 시대 농업 관련 생활 유물이, 산 방향 사면에서는 삼국시대·청동기 시대 유물이 나올 가능성이 각각 있어. 지층 분석에서 백제 토기가 확인된 신정리 토성 경내의 문화층과 국유 밭 구역의 연결 여부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야.

표본조사는 2필지라는 적은 수이지만, 각 필지의 위치가 안양천 방향인지 산 방향인지에 따라 기대되는 유물 유형이 달라지기 때문에 두 필지를 각각 독립적으로 샘플링하는 방식이 적합해.

발굴조사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건 청동기 유물과 삼국시대 유물의 층위 구분이야. 같은 야산 위에 두 시대 유물이 공존하는 이 지역에서, 층위별 유물 분포를 정밀하게 기록하면 고척동의 거주 역사 전체를 시간 순서대로 재구성하는 게 가능해질 수 있어.


7 구로구 발굴 성공 사례 — 이미 확인된 고대의 흔적

성공 사례 ①

고척동 고인돌 공식 확인 — 1998·2003년 발굴의 성과

1998년 서울대 조사단의 최초 발견, 2003년 전문조사단의 정밀 발굴을 통해 고척동 고인돌의 존재가 공식 확인됐어. 덮개돌·성혈·돌방이 확인되면서 서울에서 몇 안 되는 청동기 시대 무덤 유적으로 등재됐어. 현재 안내판과 보호 펜스가 설치돼 있어. 발굴조사가 없었다면 그냥 돌무더기로 방치됐을 거야. 이 사례는 지표조사와 발굴조사의 중요성을 직접 보여주는 증거야.

성공 사례 ②

신정산 토성 백제 토기 발굴 — 삼국사의 증거

신정산 토성 조사에서 전형적인 백제 토기인 양면 타날문 회백색 연질 토기 파편이 다량 발견됐어. 청동기 시대 토기편도 소량 발굴됐어. 이 발굴을 통해 신정산이 청동기 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 지속적으로 사람이 거주하고 군사 활동이 이루어진 요충지였음이 확인됐어. 고척동 국유 밭은 이 역사층과 연결된 인접 구역이야.

성공 사례 ③

함양여씨 묘역 보존 지정 — 조선 초기 유산의 보호

고척2동 산6-3에 위치한 함양여씨 묘역이 1991년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80호로 지정됐어. 묘비, 상석, 문관석이 조선 초기 묘지 양식을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어. 이 묘역 보존은 고척동이 조선 시대에 이미 문화적으로 중요한 땅이었음을 증명하고, 인근 국유 밭 발굴에서도 동시대 유물이 나올 가능성을 높여줘.


8 작은 땅, 깊은 이야기 — 지금 이 조사가 필요한 이유

2필지 10,165㎡. 이번 시리즈에서 소개한 지역 중 가장 작은 규모야. 하지만 이 글을 끝까지 읽은 지금, 이 작은 땅이 얼마나 두꺼운 역사 위에 서 있는지 느꼈을 거야.

고척동 일대에서 건설이나 개발을 계획하는 사람에게 이건 직접적인 정보야. 서울에 4개뿐인 고인돌 중 하나가 있고, 삼국시대 토성이 있고, 서울시 유형문화재 묘역이 있는 이 지역은 문화재 지표조사에서 가장 높은 경계 등급이 필요한 구역이야. 고척동처럼 청동기·삼국·조선 시대 유적이 복합적으로 확인된 지역에서는 어떤 공사든 지표조사가 선행돼야 해.

그리고 역사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 고척스카이돔에서 야구를 보러 갈 때, 잠깐 고개를 돌려봐. 돔 바로 옆 야산에, 수천 년 전 누군가가 잠들어있어. 청동기 시대 그 사람은 누구였을까? 어떤 사람이어서 이렇게 공들인 무덤에 묻혔을까? 그리고 그 주변 밭에서 살았던 1912년의 농부는 그 고인돌이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 알고 있었을까?

발굴조사는 그 물음에 답하는 작업이야. 작은 밭 두 필지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수천 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탐정 여행으로 이어질 수 있어.

고척동의 수천 년 이야기, 이제 함께 찾아봐

2필지 10,165㎡의 작은 밭이 품은 청동기·삼국·조선의 이야기.


구로구 및 서울 전 지역 문화유산 발굴조사 기초 자료가 궁금하다면 아래를 확인해봐.

🪨

여기까지 읽어줘서 진심으로 고마워.



고척동 고인돌. 190×105×28cm의 작은 돌덩어리.



수천 년 전, 누군가가 공들여 이 돌을 얹었어. 사랑하는 사람을 기리기 위해, 또는 두려움을 달래기 위해, 아니면 다음 세상을 바라며. 그 마음이 이 돌에 담겨 지금도 여기 있어.



고척스카이돔의 함성이 그 돌에까지 울려퍼질 때, 수천 년의 시간이 잠깐 겹쳐지는 기분이 들지 않아?



발굴조사는 그 겹침을 더 선명하게 만드는 일이야. 그 돌 옆 밭에서, 그 시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 층 한 층 꺼내는 작업이야.



작은 땅에서, 깊은 역사를 만나는 일.


그게 바로 발굴이야.

—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기초 자료 분석 · seoulheritage.org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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