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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강동구 명일동이 완전 다른 모습 있었다고?

  • 2025년 4월 3일
  • 6분 분량

최종 수정일: 5월 18일

그 아파트 단지 아래, 110년 전엔 벼 이삭이 출렁이고 있었다.

강동구 명일동. 지하철 5호선이 지나고, 대단지 아파트가 줄지어 서 있는 이 동네를 걸으면서 혹시 이런 생각을 해본 적 있는가. 이 땅이 원래부터 이런 모습이었을까, 하고. 1912년의 기록이 전혀 다른 명일동을 증언하고 있다. 논과 밭이 전체의 80퍼센트를 훌쩍 넘기고, 이씨 가문이 112필지를 쥐고 있던 그 동네. 지금부터 그 이야기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읽다 보면 명일역 출구가 전혀 다르게 보일 것이다.

목 차

1. 1912년 명일동, 숫자가 품은 땅의 기억

2. 밭의 동네 — 354,051㎡가 말하는 것

3. 논이 펼쳐지던 풍경 — 쌀 한 톨의 무게

4. 임야와 대지, 사람이 산다는 것의 흔적

5. 명일동 땅을 쥔 성씨들 — 이씨 왕국의 실체

6. 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조사란 무엇인가

7. 성공 사례 — 강동에서 역사가 걸어 나온 순간

8. 이 땅의 이야기를 지우지 않는 방법



1.1912년 명일동, 숫자가 품은 땅의 기억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숫자만으로는 다 전달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1912년 강동구 명일동의 토지 기록을 들여다보면 처음에는 그냥 수치들이 나열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 수치들 사이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이른 아침 안개 속에 허리를 굽히고 씨앗을 심는 어떤 사람의 뒷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기관이 분석한 1912년 명일동의 기록에 따르면, 당시 이 동네는 351필지, 총 면적 867,970㎡ 규모였다. 축구장 약 121개를 이어붙인 광대한 땅이다. 오늘날 지하철역과 대형 아파트 단지로 촘촘히 채워진 명일동의 면적과 비교하면, 그 시절 이 땅이 얼마나 다른 숨결을 품고 있었는지가 조금씩 실감되기 시작한다.

총 필지 수 351필지

총 면적

867,970㎡ (축구장 121개)

밭 면적

354,051㎡ · 165필지

논 면적

290,901㎡ · 138필지

임야 면적

195,832㎡ · 21필지

대지 면적

27,186㎡ · 27필지

이 데이터가 특히 흥미로운 이유는 명일동이 강남이나 서초처럼 논 중심이 아니라, 밭이 논보다 훨씬 넓은 전형적인 화전 농경 마을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임야가 무려 21필지, 195,832㎡나 있었다는 사실은 이 동네가 단순한 평지 농경지가 아니라 산자락을 끼고 형성된 마을이었음을 말해준다.



2.밭의 동네 — 354,051㎡가 말하는 것

1912년 명일동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던 것은 논이 아니라 밭이었다. 165필지, 354,051㎡. 전체 면적의 40.8퍼센트가 밭이었다는 이 사실이 명일동의 성격을 가장 잘 설명해준다. 물을 대야 하는 논과 달리, 밭은 지형이 조금 높거나 물 빠짐이 좋은 곳에서 자란다. 즉, 명일동 일대에는 논을 짓기 어려운 구릉지나 경사진 땅이 상당 부분 있었다는 뜻이다.

165필지의 밭에서는 무엇이 자랐을까. 고구마, 감자, 배추, 무, 콩, 팥. 당시 한반도 농촌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작물들이 명일동의 흙과 햇빛 속에서 계절을 따라 자라났을 것이다. 봄이면 씨앗을 심고, 여름이면 잡초를 뽑으며 땀을 흘리고, 가을이면 온 가족이 나서서 수확물을 쌓아 올리던 그 밭들이, 지금의 명일동 아파트 지하 주차장 몇 미터 아래 흙 속에 그 기억을 아직도 품고 있을 수 있다.

문화재 지표조사 과정에서는 바로 이런 밭 경작의 흔적, 즉 경작층의 유기물 성분, 씨앗 잔재, 농기구 파편 등이 중요한 분석 대상이 된다. 흙 한 삽이 그 시절 식탁의 기억을 되살릴 수 있는 것이다.

밭 40.8%

논 33.5%

임야 22.6%

대지 3.1%


3.논이 펼쳐지던 풍경 — 쌀 한 톨의 무게

밭 다음으로 넓은 것은 논이었다. 138필지, 290,901㎡. 전체의 33.5퍼센트가 논이라는 것은, 명일동 사람들이 쌀도 직접 길러 먹는 자급자족 농경 공동체였음을 뜻한다. 오늘날 우리가 마트에서 쌀 한 포대를 집어 드는 행위와, 1912년 명일동 사람들이 논에서 허리를 굽혀 벼를 한 이삭씩 거두어 들이던 행위는 같은 쌀이지만 전혀 다른 무게를 가지고 있었다.

논은 단순한 경작지가 아니다. 물을 관리하는 수로가 있어야 하고, 이웃 논과의 물꼬 배분을 조율해야 하며, 모내기 철이면 온 마을이 품앗이로 한데 모여야 한다. 138필지의 논이 있었다는 것은, 그 논들을 둘러싸고 형성된 물길과 두렁과 공동체의 약속이 명일동 전역에 촘촘히 깔려 있었다는 뜻이다. 그 수로의 흔적 중 일부는 지금도 지층 속 어딘가에 남아 있을 수 있다.

시굴조사나 발굴조사에서는 이런 논 경작의 흔적이 중요한 고고학적 데이터가 된다. 수로의 단면 구조, 논 두렁의 흙 층위, 벼 껍데기의 탄화 흔적 등이 당시 농경 방식과 마을 구조를 재구성하는 핵심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4.임야와 대지, 사람이 산다는 것의 흔적

명일동이 다른 서울 동네들의 1912년 기록과 차별화되는 지점이 있다면, 그것은 임야의 비중이다. 21필지, 195,832㎡의 임야가 전체의 22.6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었다. 논이나 밭도 아닌, 산과 숲이 동네 면적의 다섯 분의 일 이상을 덮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명일동이 한강 변의 평지에만 있던 마을이 아니라, 산자락을 등지고 형성된 배산임수의 마을이었음을 시사한다.

그 숲에서 주민들은 겨울을 버틸 땔감을 해왔을 것이다. 아이들은 뒷산 소나무 사이를 뛰어다니며 놀았을 것이고, 어른들은 나물을 뜯고 버섯을 따며 숲과 살아있는 관계를 맺었을 것이다. 그리고 27필지, 27,186㎡의 대지. 전체의 3.1퍼센트에 불과해 보이지만, 그 좁은 땅 위에 수십 가구가 집을 짓고 살았다. 초가집 처마 아래에서 비를 피하고, 마당에서 명절을 쇠고, 사랑채에서 마을 어른들이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그 대지의 기억이, 지금의 명일동 어딘가에 아직 묻혀 있다.



5.명일동 땅을 쥔 성씨들 — 이씨 왕국의 실체

토지 기록에서 누가 무엇을 소유했는지를 보면, 그 동네의 사회적 지형이 드러난다. 1912년 명일동의 성씨별 토지 소유 현황을 살펴보면 한 가지 사실이 선명하게 부각된다. 이씨가 무려 112필지를 소유하며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전체 351필지 중 31.9퍼센트, 거의 세 필지 중 하나가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의 땅이었다.

이씨 112필지 1위김씨 76필지 2위최씨 21필지한씨 18필지조씨 18필지정씨 16필지신씨 16필지윤씨 15필지기타 성씨

2위 김씨가 76필지로 뒤를 잇고 있지만, 이씨와는 36필지의 차이가 난다. 이씨 가문이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깊이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수치다. 수대에 걸쳐 이 땅에 정착한 토박이 집안, 혹은 조선 시대 어느 시점에 이 지역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사족 가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한씨와 조씨가 나란히 18필지씩, 정씨와 신씨가 각각 16필지씩 보유하고 있었다는 점도 흥미롭다. 하나의 성씨가 독식하지 않고 여러 가문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 이 구조는, 명일동이 단일 가문의 세거지가 아니라 비교적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어우러진 복합 공동체였음을 암시한다. 이씨 집안 어른과 김씨 집안 어른이 마을 회의를 주재하고, 윤씨 총각과 한씨 아가씨가 모내기 논두렁에서 처음 눈을 맞추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성씨 분포 데이터는 문화재 발굴조사에서 실질적인 참고 자료가 된다. 특정 가문의 거주 구역이 집중된 곳에서 건물지나 생활 유구가 발견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조사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6.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조사란 무엇인가

건물을 짓거나 개발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그 땅 안에 무엇이 있는지 먼저 확인하는 과정을 문화재 지표조사라고 한다. 단순히 땅 위를 걸어다니며 눈으로 확인하는 것에서 시작해, 역사 문헌·고지도·항공사진·토지 기록 등 다양한 자료를 교차 분석하여 매장 문화재가 존재할 가능성을 판단한다. 이 판단이 나오면 시굴조사로 이어진다.

시굴조사는 실제로 땅을 좁고 길게 파서 지층의 구조와 유물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는 단계다. 여러 곳을 동시에 파서 층위 패턴을 비교하고, 유물이나 유구가 확인되면 본격적인 발굴조사가 시작된다. 발굴조사는 전문 고고학자들이 투입되어 층위별 기록, 유물 수습, 유구 실측 등을 정밀하게 진행하는 고도의 전문 작업이다.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일정 규모 이상의 건설 공사 전에는 문화재 지표조사가 법적으로 의무화되어 있다. 이 절차 없이 공사를 진행하다 유물이 나오면 공사는 전면 중단되고, 법적 제재와 함께 추가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처음부터 제대로 확인하는 것이 훨씬 빠르고 안전하다.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기관(seoulheritage.org)은 강동구 명일동을 포함한 서울 전역 25개 구의 역사 토지 기록을 분석하고, 지표조사·시굴조사·발굴조사 의뢰 연계와 상담을 제공하는 전문 기관이다. 강동구에서는 천호동, 암사동 등 여러 동의 조사 기록이 이미 구축되어 있으며, 명일동 관련 기초 자료도 제공받을 수 있다.


7.성공 사례 — 강동에서 역사가 걸어 나온 순간

사례 1. 강동구 암사동 신석기 주거지 — 땅이 7000년을 돌려준 날

강동구 암사동은 서울에서 발굴조사의 성공이 가장 극적으로 증명된 사례다. 1925년 한강 홍수로 우연히 유물이 노출된 이후, 본격적인 발굴조사를 거쳐 신석기 시대 빗살무늬 토기와 집터가 대거 확인됐다. 현재 암사동 유적은 사적으로 지정되어 서울 선사시대의 삶을 보여주는 핵심 유적지로 보존되고 있다. 강동구 땅 아래에 7000년의 시간이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사례 2. 강동구 재개발 구역 조선 시대 농경 유구 확인

강동구 일대 재개발 구역에서 사전 문화재 지표조사를 실시한 결과, 조선 시대 경작층과 수로 흔적이 확인됐다. 발굴조사에서 수습된 조선 후기 백자 파편과 농기구 잔재는 이 지역이 수백 년간 지속적으로 경작되어 온 농경 마을이었음을 입증했다. 이 자료들은 강동구 향토 역사 기록의 중요한 기초 자료로 보관되고 있다.

사례 3. 서울 동부 지하철 공사 구간 고려 시대 유물 출토

서울 동부 권역 지하철 공사 구간에서 시행된 사전 지표조사가 고려 시대 유구 존재 가능성을 포착했다. 시굴조사를 거쳐 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고려 시대의 청자 파편과 기와 건물지 흔적이 확인됐다. 이는 한강 동쪽 지역이 고려 시대에도 중요한 생활권이었음을 보여주는 자료로, 서울 동부 역사 연구에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다.

이 사례들이 공통으로 말해주는 것은 단순하다. 땅은 스스로 이야기하지 못한다. 하지만 제대로 물어보면, 반드시 대답한다. 지표조사와 발굴조사는 그 물음을 던지는 방법이다. 명일동 땅 아래에도 아직 대답을 기다리는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8.이 땅의 이야기를 지우지 않는 방법

서울은 600년 도시다. 그리고 강동구 명일동처럼, 그 세월의 대부분을 농경 마을로 보낸 동네들이 서울 곳곳에 아직도 남아 있다. 논과 밭과 숲과 집이 어우러지던 그 땅 위에, 지금은 아파트와 도로와 상가가 들어서 있다. 그 변화는 불가피하고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그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변하기 전의 이야기가 기록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

그래서 문화재 지표조사가 있다. 개발이 시작되기 전에, 이 땅이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 먼저 확인하는 것이다. 그 이야기가 기록으로 남으면, 땅 위의 풍경이 바뀌어도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1912년 명일동의 이씨 집안 어른이 새벽에 논두렁을 걷던 발소리가, 문서 한 장으로라도 남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개발이나 건축을 앞두고 있다면, 지금 바로 문화재 지표조사를 알아보길 권한다.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기관(seoulheritage.org)과 네이버 블로그(blog.naver.com/seoulheritage)에서 강동구 명일동을 포함한 서울 전역 지역별 기초 조사 자료와 상담 안내를 확인할 수 있다. 당신이 딛고 있는 그 땅의 이야기, 지금 들어볼 수 있다.

"이름도 남기지 않은 채 이 땅을 갈았던 사람들.


그들이 땀으로 적신 흙이, 지금 우리 발 아래 있다.


그것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그들의 이야기를 살려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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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기관에서 강동구 명일동을 포함한 서울 25개 구 문화재 지표조사·시굴조사·발굴조사 정보와 상담을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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