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모퉁이, 1912년의 회기동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
- 서울 HI
- 7일 전
- 3분 분량
목차
잊혀진 땅, 1912년 회기동을 걷다
회기동의 들녘: 논과 밭 이야기
삶이 피어난 곳, 집터의 기록
고요한 흔적, 회기동의 무덤들
역사의 숨결이 깃든 사사지(寺社地)
숲과 언덕이 머물던 자리, 임야의 흔적
성씨로 읽는 회기동의 옛이야기
땅의 주인, 국유지와 동척의 흔적
창덕궁이 머물렀던 회기동의 특별한 땅
과거와 현재를 이어 미래로 걷다
“서울의 한 모퉁이, 1912년의 회기동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

오늘 내가 발을 디딘 곳은 우리가 매일 오가는 평범한 거리다.
하지만 조금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바로 이 땅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1912년의 회기동을 떠올려 본 적이 있는가?
지금의 동대문구 회기동은 경희대학교, 경희의료원 등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활기찬 곳이다.
하지만 오늘 나와 함께 떠날 시간 여행 속 회기동은 조용하고, 한적하며, 흙냄새 가득한 농촌 풍경이 펼쳐져 있다.
잠깐 숨을 고르고, 나와 함께 이 역사의 시간을 걸어보자.
1912년 회기동, 그 잊혀진 이야기가 이제 시작된다.
먼저, 들판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당시 회기동은 총 112필지, 197,928㎡의 면적이었다.
그중 논이 14필지로 약 64,889㎡를 차지했고, 밭은 무려 56필지에 걸쳐 97,960㎡나 되었다.
당시의 사람들에게 농경지는 삶 그 자체였다.
특히 논은 여름이면 초록빛으로 넘실거리고, 가을이면 황금빛으로 물드는 풍경을 연출했을 것이다.
밭에는 다양한 채소와 곡물이 자라나면서 마을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채웠다.
한발 더 안으로 들어가 보면, 사람들의 생활터전인 집터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1912년 회기동엔 35필지, 24,641㎡의 대지가 있었다.
지금과 달리, 그때의 집들은 아담하면서도 서로 이웃하며 마을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을 것이다.
이 집터들 사이로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아이들의 뛰어노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리고 마을의 또 다른 중요한 공간, 바로 무덤이 있다.
당시 회기동의 무덤은 3필지에 2,403㎡의 공간을 차지했다.
무덤은 단지 죽음을 기리는 공간만은 아니었다.
조상들과 연결되는 장소로서, 과거와 현재를 잇는 중요한 매개체였다.
회기동 주민들은 이곳에서 조상에게 예를 표하며 삶의 지혜를 얻었을 것이다.
특별히 역사적인 가치를 지닌 사사지(寺社地)는 2필지, 6,466㎡였다.
사사지라는 이름은 절이나 신사가 있던 자리라는 뜻이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마음의 위로를 얻고, 마을의 안녕을 기원했다.
지금은 그 흔적을 찾기 어렵지만, 당시에는 마을의 정신적 지주였을 것이다.
회기동은 산과 숲이 많지는 않았지만, 2필지, 1,566㎡의 작은 임야도 있었다.
이 임야는 마을 주민들의 휴식처이자 자연의 품이었을 것이다.
작지만 풍성한 생태계를 이루며, 사람들이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는 공간으로 충분했다.
그렇다면 회기동의 주인들은 누구였을까?
당시 토지대장에는 김씨가 12필지로 가장 많았고, 이씨가 3필지, 박씨·정씨·임씨·최씨가 각각 1필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성씨로 마을을 들여다보면 그 시대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더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회기동에는 개인 외에도 국가가 소유한 국유지가 54필지나 있었다.
이 땅은 국가가 직접 관리하며 개발하거나 주민에게 임대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뿐만 아니라 동양척식주식회사(동척)의 땅이 31필지 있었다는 사실은 당시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동척이란 이름만 들어도 가슴 한구석이 무거워진다.
또 하나의 흥미로운 사실은 창덕궁 소유의 땅이 회기동에 5필지나 있었다는 점이다.
조선 왕실의 소유였던 이 땅은 회기동이 단지 평범한 시골이 아닌, 역사적 가치를 품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 땅들은 왕실에서 직접 관리하며 특별한 용도로 사용했을 것이다.
이렇게 1912년의 회기동은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오늘날 이 땅 위를 걷는 우리는 그저 일상을 살아갈 뿐이지만, 우리가 서 있는 땅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논과 밭이 있었고, 집과 무덤이 있었으며, 사사지와 임야가 있었다.
성씨들이 땅을 소유했고, 국가와 동척, 왕실이 소유한 땅이 공존했다.
그렇기에 우리가 이 땅을 그냥 스쳐 지나가지 않고, 잠시나마 멈추어 역사의 숨결을 느껴보는 것이 의미 있다.
한때는 들판이었고, 또 한때는 왕실의 특별한 공간이었던 이곳 회기동에서, 나는 다시 한번 이 땅을 바라본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가, 다시금 미래를 향한 의미 있는 장소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하며 말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은 단지 오늘만의 땅이 아니라, 어제와 내일을 이어주는 소중한 터전이다.
오늘, 회기동에서의 시간 여행을 마무리하며 나는 이렇게 다짐한다.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충실히 살아내며, 미래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이 땅을 걷겠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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