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뿌리를 걷다 – 1912년 종로구 소격동, 땅이 들려주는 이야기
- 2025년 11월 5일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5월 6일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 종로구 지역조사 · 문화재 지표조사
밝게 빛나는 신령한 곳, 소격동 — 1912년 165필지가 품은 조선 상류층의 터와 근대의 균열
눈을 감고 북촌의 좁은 골목을 걸어본 적 있어? 한옥의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햇살 사이로 문득 발밑에서 들려오는 듯한 소리. 그건 상상이 아니야. 그 아래엔 진짜로 이야기가 묻혀 있어. 소격동(昭格洞). 밝게 빛나는 신령한 곳이라는 뜻의 이 이름은 지금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일대야. 1912년 이 땅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끝까지 읽으면 북촌 골목이 완전히 다르게 보일 거야.
목차
오래된 거리, 새로운 시선 — 소격동의 시작
1912년 서울의 중심에서 펼쳐진 토지의 기록
성씨별 토지 분포가 보여주는 삶의 흔적
일본인 소유지의 등장과 그 시대의 그림자
오늘의 소격동,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풍경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로 다시 깨어나는 기억
땅이 기억하는 도시, 우리가 이어갈 이야기 — 에필로그
프롤로그오래된 거리, 새로운 시선 — 소격동의 시작

소격동(昭格洞). 이름부터가 신성해. 밝게 빛나는 신령한 곳이라는 뜻을 품은 이곳은 조선시대 도성 한복판에 위치하며 관청과 상류층의 저택이 모여 있던 지역이었어. 지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과 갤러리, 카페들이 즐비한 문화예술의 거리지만, 그 화려한 현재 아래에 1912년의 기록이 겹겹이 쌓여 있어.
서울 한복판의 고요한 골목, 그 아래에는 천 년의 이야기가 흐르고 있어. 1912년, 조선이 식민지로 전락하던 시기, 이 땅은 조사라는 이름으로 세밀히 기록되었어. 그 기록이 오늘날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www.seoulheritage.org)를 통해 우리에게 되돌아오고 있어.
11912년 서울의 중심에서 펼쳐진 토지의 기록

1912년 소격동의 전체 면적은 52,803제곱미터, 총 165필지였어. 당시 이 지역은 대부분 대지, 즉 집터로 사용되었어. 논도 밭도 거의 없었어. 대신 관청, 상류층 가옥, 그리고 일부 외국인의 건물이 섞여 있었어. 도시 한복판의 토지가 이미 조선 후기부터 근대적 주거지로 자리 잡았다는 걸 보여주는 거야.
165
총 필지 수
52,803
총 면적(제곱미터)
100%
대지 구성 비율
6필지
일본인 소유
소격동의 이름이 말해주는 것
소격동이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이 자리에 있었던 소격서(昭格署)에서 유래했어. 소격서는 도교 의례를 담당하던 관청으로, 하늘과 땅의 신령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야. 나라의 안녕을 비는 제사가 치러지던 땅. 그 신령한 자리가 1912년 토지 대장에 필지 번호로 기록됐어. 조선의 가장 성스러운 공간이 식민지 시대의 행정 숫자로 전락한 그 순간이 이 기록 안에 담겨 있어.
문화재 발굴조사를 통해 드러난 토지 구조는 단순한 면적의 합이 아니야. 시대의 구조와 권력의 흔적을 증언해. 소격동이 논밭이 전혀 없는 순수 대지 구성이었다는 건, 이 지역이 오래전부터 도성 내 핵심 생활 공간이었다는 증거야.
2성씨별 토지 분포가 보여주는 삶의 흔적

당시 김씨가 30필지, 이씨가 22필지, 오씨가 10필지를 소유하고 있었어. 종로 일대에서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이던 김씨와 이씨 가문이 이 지역에서도 중심을 이루고 있었어.
김씨
30필지
이씨
22필지
오씨
10필지
이건 조선 후기부터 이어진 권문세가의 주거 패턴이 여전히 살아 있었다는 거야. 소격동의 문화재 지표조사에서 확인된 일부 가옥 터는 실제로 18세기 고지도에도 등장해. 즉, 김씨·이씨 집안이 소격동에 자리 잡은 건 1912년 훨씬 이전부터의 이야기야. 그들이 대를 이어 살아온 터전이 1912년 토지 대장 한 장에 필지 번호로 새겨진 거야.
18세기 고지도와 1912년 토지 대장의 연결
문화재 발굴조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순간은 고지도의 기록과 실제 발굴 유구가 일치할 때야. 소격동에서 확인된 일부 가옥 터는 18세기 한양 고지도에도 동일한 위치에 기록되어 있어. 100년 이상의 시간 동안 같은 자리에서 같은 집안이 살아온 거야. 그 연속성이 지층 속에, 그리고 기록 속에 동시에 남아 있어. 이게 서울 문화재 지표조사가 발굴하는 진짜 가치야.
3일본인 소유지의 등장과 그 시대의 그림자
그 평온한 구조 속에도 균열이 있었어. 1912년 소격동에는 6필지의 일본인 소유 토지가 있었어. 한일병합 이후 일본 상인과 관리가 서울 도심의 주요 부지를 점차 매입하던 시기의 흔적이야.
소격동 일본인 6필지 — 신령한 땅에 내린 그림자
조선에서 가장 신성한 제사를 지내던 소격서 자리 인근에 일본인 소유 토지가 들어서기 시작했어. 6필지라는 숫자가 전체 165필지에서 작아 보일 수도 있어. 하지만 소격동의 특수성을 생각해봐. 이곳은 조선 상류층이 수백 년 동안 지켜온 공간이야. 그 공간에 일본인 소유지가 발생했다는 건 단순한 부동산 거래가 아니야. 도성의 권력 지형 자체가 바뀌기 시작했다는 신호야. 문화재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근대기 벽돌 건축 잔해들이 이 시기의 변화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어.
그들은 고급 주택, 상점, 또는 관공서를 세우며 서울의 도시 구조를 일본식으로 바꾸어 나갔어. 그 변화의 흔적이 지금도 소격동 지하층에 잠들어 있고, 발굴조사원들이 하나씩 꺼내고 있어.
4오늘의 소격동,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풍경
오늘날 소격동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과 갤러리, 카페들이 즐비한 문화예술의 거리야. 하지만 이 화려한 현재의 모습 아래에 1912년의 흔적이 겹겹이 쌓여 있어. 서울문화유산 시굴조사팀은 이 일대의 도로 구조와 옛 담장선, 하수구 흔적까지 복원하며 도시의 지하 역사를 재현하고 있어.
조선시대
소격서 설치 — 하늘과 신령에게 제사 지내는 도교 의례 관청
조선 후기
김씨·이씨 권문세가의 저택 집중 — 18세기 고지도에 기록
1912년
총 165필지 기록 — 일본인 6필지 등장, 식민지 도시화 시작
일제강점기
근대식 벽돌 건물 등장, 일본식 도시 구조로 재편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갤러리·카페 밀집 — 문화예술 거리로 변모
그들의 손끝에서 보이지 않는 과거가 서서히 형태를 드러내. 소격동 골목을 걸을 때마다 발밑 어딘가에서 김씨 집안의 사랑채가, 이씨 집안의 사당이 조용히 숨을 쉬고 있다는 걸 기억해. 국립현대미술관의 화이트 큐브 바로 아래에 조선의 기와가 잠들어 있는 거야.
5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로 다시 깨어나는 기억

서울의 문화재 발굴조사는 단순히 땅을 파는 일이 아니야. 도시의 기억을 복원하는 작업이야. 문화재 지표조사와 시굴조사는 개발 전 필수 단계로, 이 과정에서 발견되는 유물발굴과 유적발굴은 과거의 생활상을 생생히 복원해.
소격동 인근 실제 발굴 성과
소격동 인근에서는 조선시대 도자기 조각, 청동 장신구, 생활용 기물 등이 다수 출토됐어. 특히 소격서 터로 추정되는 구역에서 제기류의 파편이 발견된 건 이 지역의 특수한 역사적 성격을 잘 보여줘. 신령에게 제사를 올리던 그릇이 수백 년 후 흙 속에서 다시 나타난 거야. 발굴조사원들이 그 파편을 처음 손에 쥐었을 때 어떤 감정이었을지 상상이 가?
현장에서 일하는 발굴조사원과 유적발굴단은 도시의 심장부에서 잊힌 시간을 되살리는 사람들이야. 그들이 사용하는 문화재 발굴조사 장비 하나하나에는 서울을 기억하게 하는 힘이 담겨 있어. 소격동에서 발견되는 조선시대 제기 파편과 근대기 벽돌 잔해가 같은 지층에서 나온다면, 그건 수백 년의 시간이 한 점에서 만나는 순간이야.
에필로그땅이 기억하는 도시, 우리가 이어갈 이야기

소격동의 165필지. 그 하나하나의 토지 위에 지금은 현대식 건물이 서 있지만, 그 밑에는 여전히 조선의 발자국이 살아 있어. 문화재 발굴은 과거의 이야기를 현재로 불러오는 일이며, 그 기억을 잇는 건 바로 우리야.

서울의 땅은 결코 침묵하지 않아. 그곳에는 사람이 살았고, 나라가 있었고, 이제는 우리가 그 역사를 다시 이어가야 해. 신령한 제사를 올리던 소격서의 땅, 김씨와 이씨가 대를 이어 살던 저택의 터, 그리고 그 위로 들어선 일본인 소유지의 균열. 이 모든 층위가 소격동이라는 이름 아래 잠들어 있어.
서울의 발굴조사는 미래를 위한 기억의 복원이야
소격(昭格). 밝게 빛나는 신령한 곳.그 신성한 이름을 가진 땅이1912년 토지 대장 165번째 필지로 기록됐어.하지만 땅은 기억을 잃지 않아.김씨 집안의 사랑채도,소격서의 제기도,이름 모를 조상의 발자국도아직 그 아래에 있어.발굴조사원의 붓끝이 닿는 순간소격동은 다시 빛나기 시작해.그 빛을 이어받는 건지금 이걸 읽고 있는 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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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 www.seoulheritag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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