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뿌리를 걷다 – 1912년 종로구 소격동, 땅이 들려주는 이야기
- 서울 HI
- 2025년 11월 5일
- 3분 분량
목차
오래된 거리, 새로운 시선 – 소격동의 시작
1912년, 서울의 중심에서 펼쳐진 토지의 기록
성씨별 토지 분포가 보여주는 삶의 흔적
일본인 소유지의 등장과 그 시대의 그림자
오늘의 소격동,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풍경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로 다시 깨어나는 기억
마무리하며 – 땅이 기억하는 도시, 우리가 이어갈 이야기
“서울 한복판의 고요한 골목, 그 아래에는 천 년의 이야기가 흐르고 있다.”
눈을 감고 북촌의 좁은 골목을 걸어본 적이 있는가.
한옥의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햇살 사이로, 문득 발밑에서 들려오는 듯한 소리.
그건 단순한 상상일지 몰라도, 사실 그곳엔 진짜로 ‘이야기’가 묻혀 있다.
서울 종로구 소격동. 지금은 예술의 거리로 불리지만, 1912년 이곳은 땅과 사람, 권력과 삶이 얽혀 있던 ‘기록의 현장’이었다.
1. 오래된 거리, 새로운 시선 – 소격동의 시작
소격동(昭格洞). 이름부터가 신성하다. ‘밝게 빛나는 신령한 곳’이라는 뜻을 품은 이곳은 조선시대 도성 한복판에 위치하며 관청과 상류층의 저택이 모여 있던 지역이었다.
하지만 1912년, 조선이 식민지로 전락하던 시기, 이 땅은 ‘조사’라는 이름으로 세밀히 기록되었다.
그 기록은 오늘날 우리가 서울의 역사적 층위를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단서가 되었다.

2. 1912년, 서울의 중심에서 펼쳐진 토지의 기록
1912년 소격동의 전체 면적은 52,803㎡, 총 165필지였다.
당시 이 지역은 대부분 대지(집터)로 사용되었다.
논도 밭도 거의 없었다. 대신 관청, 상류층 가옥, 그리고 일부 외국인의 건물이 섞여 있었다.
도시 한복판의 토지가 이미 조선 후기부터 근대적 주거지로 자리 잡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처럼 문화재발굴조사를 통해 드러난 ‘토지 구조’는 단순한 면적의 합이 아니라, 시대의 구조와 권력의 흔적을 증언한다.

3. 성씨별 토지 분포가 보여주는 삶의 흔적
당시 김씨가 30필지, 이씨가 22필지, 오씨가 10필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종로 일대에서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이던 김씨와 이씨 가문이 중심을 이루었다는 것.
이는 조선 후기부터 이어진 권문세가의 주거 패턴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소격동의 문화재 지표조사에서 확인된 일부 가옥 터는 실제로 18세기 고지도에도 등장한다.
이처럼 토지의 분포는 곧 사회 구조의 단면이었다.

4. 일본인 소유지의 등장과 그 시대의 그림자
그러나 그 평온한 구조 속에도 균열이 있었다.
1912년 소격동에는 6필지의 일본인 소유 토지가 있었다.
이는 한일병합 이후, 일본 상인과 관리가 서울 도심의 주요 부지를 점차 매입하던 시기의 흔적이다.
그들은 고급 주택, 상점, 또는 관공서를 세우며 서울의 도시 구조를 일본식으로 바꾸어 나갔다.
문화재발굴조사에서 확인된 근대기 벽돌 건축 잔해들은 이 시기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5. 오늘의 소격동,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풍경
오늘날 소격동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과 갤러리, 카페들이 즐비한 문화예술의 거리다.
그러나 이 화려한 현재의 모습 아래에는 1912년의 흔적이 겹겹이 쌓여 있다.
서울문화유산 시굴조사팀은 이 일대의 도로 구조와 옛 담장선, 하수구 흔적까지 복원하며 도시의 ‘지하 역사’를 재현하고 있다.
그들의 손끝에서, 보이지 않는 과거가 서서히 형태를 드러낸다.

6.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로 다시 깨어나는 기억
서울의 문화재 발굴조사는 단순히 ‘땅을 파는 일’이 아니다.
그건 도시의 기억을 복원하는 작업이다.
문화재 지표조사와 시굴조사는 개발 전 필수 단계로, 이 과정에서 발견되는 유물발굴과 유적발굴은 과거의 생활상을 생생히 복원한다.
실제로 소격동 인근에서는 조선시대 도자기 조각, 청동 장신구, 생활용 기물 등이 다수 출토되었다.
이러한 문화재발굴과정은 서울이라는 도시가 단순한 현대의 수도가 아니라,
수백 년의 유물발굴작업을 통해 쌓인 역사 그 자체임을 증명한다.
현장에서 일하는 발굴조사원과 유적발굴단은 도시의 심장부에서 잊힌 시간을 되살리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사용하는 문화재발굴조사장비 하나하나에는, ‘서울을 기억하게 하는 힘’이 담겨 있다.

7. 마무리하며 – 땅이 기억하는 도시, 우리가 이어갈 이야기
소격동의 165필지.
그 하나하나의 토지 위에 지금은 현대식 건물이 서 있지만,
그 밑에는 여전히 조선의 발자국이 살아 있다.
문화재 발굴은 과거의 이야기를 현재로 불러오는 일이며,
그 기억을 잇는 건 바로 ‘우리’다.
서울의 땅은 결코 침묵하지 않는다.
그곳에는 사람이 살았고, 나라가 있었고,
이제는 우리가 그 역사를 다시 이어가야 한다.
서울의 발굴조사는, 결국 ‘미래를 위한 기억의 복원’이다.
해시태그
출처: 서울 문화유산 발굴 조사 https://www.seoulheritage.org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