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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구로구 개봉동 국유지 기초조사 — 문화재 지표조사·시굴조사·발굴조사의 모든 것

  • 11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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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필지, 6만 2천 평방미터 — 그리고 그 절반 이상이 논이었다

서울시 구로구 개봉동 국유지 기초조사 — 문화재 지표조사·시굴조사·발굴조사의 모든 것

지난 편 금천구 시흥동에서 우리는 20필지, 51,702㎡라는 이 시리즈 최대 기록을 목격했습니다. 그 기록은 단 한 편 만에 깨집니다.



구로구 개봉동. 26필지, 62,770㎡.



하지만 숫자보다 더 놀라운 것이 있습니다. 이 62,770㎡의 땅에서 논(論)이 차지하는 면적이 무려 42,271㎡입니다. 전체의 67.3%가 논입니다. 세 필지 중 두 필지가 넘는 면적이 물을 대야 하는 수전(水田)이었다는 것입니다.



1912년 개봉동 일대가 광활한 논 지대였다는 이 기록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지금은 아파트와 공장이 빼곡한 이 서울 서남부의 동네가, 불과 100여 년 전에는 물이 철철 넘치는 거대한 수전 지대였다는 놀라운 사실. 그 물길이 지금 어디로 흘러갔는지, 그 땅 아래 무엇이 잠들어 있는지를 지금부터 추적합니다.

26필지

1912년 개봉동


국유지 총 필지 수

62,770㎡

국유지 전체 면적


(약 18,988평)

11필지

논 (수전, 水田)


42,271㎡

14필지

밭 (전, 田)


18,267㎡

1필지

대지 (집터)


2,231㎡


목 차

1. 개봉동, 열린 봉우리 아래 펼쳐진 물의 평원

2. 26필지 기초조사 — 논·밭·대지가 그리는 수전 지형도

3. 논 67.3% — 이 시리즈 최대 비중 수전이 말하는 것

4. 수전(水田) 발굴의 세계 — 물이 지킨 역사의 기록들

5. 밭 14필지 — 논과 공존한 경작지의 발굴 가능성

6. 대지 단 1필지 — 62,770㎡ 안에 홀로 선 집터의 의미

7. 문화재 지표조사 — 광활한 수전 지대를 어떻게 읽나

8. 시굴조사·표본조사·발굴조사 — 대규모 논 지역에 적용하면

9. 이 시리즈 전체와의 비교 — 개봉동이 새로 세운 기록들

10. 문화재 발굴 기관 — 수전 발굴 전문 조사 체계

11. 성공 사례 — 논에서 잠든 역사가 깨어난 순간들

12. 마치며 — 물이 기억하는 것, 흙이 간직한 것


1. 개봉동, 열린 봉우리 아래 펼쳐진 물의 평원



개봉동(開峯洞). 봉우리가 열린다는 이름입니다. 서쪽으로는 개봉산(開峯山)이 자리하고, 동쪽과 남쪽으로는 안양천(安養川) 지류가 흘러내려 만들어진 너른 충적 평야가 펼쳐지는 지형입니다. 이 지형이 개봉동 역사의 모든 것을 설명합니다.

산이 있고 물이 있고 평지가 있는 땅. 이것은 한반도 농경 문명이 수천 년 동안 가장 선호해온 입지 조건입니다.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평지를 적시고, 그 물 덕분에 논을 갈 수 있으며, 주변 구릉에는 사람이 살 집을 짓고 밭을 일굽니다. 개봉동은 이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땅이었습니다.

조선 시대 이 지역은 경기도 금천현(衿川縣) 또는 시흥현(始興縣)의 관할 아래 있었습니다. 한양 도성에서 서남쪽으로 이어지는 길목이자, 안양천과 목감천이 만들어낸 충적 평야의 중심부였습니다. 이 평야에서 생산된 곡식은 한양의 식량 공급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지금은 개봉역을 중심으로 아파트 단지와 주택가가 빼곡한 이 동네가 불과 100여 년 전 서울 최대 규모의 국유 수전 지대 중 하나였다는 사실이, 오늘 이 기초조사의 출발점입니다.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seoulheritage.org)의 구로구 기초조사에서 개봉동은 이 시리즈를 통틀어 새로운 두 가지 기록을 세웁니다. 가장 많은 필지 수(26필지)와 가장 넓은 총면적(62,770㎡)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그 광대한 면적의 67.3%가 논이라는 사실은, 개봉동을 이 시리즈에서 가장 독특한 '물의 동네'로 만들어줍니다.


2. 26필지 기초조사 — 논·밭·대지가 그리는 수전 지형도


데이터를 펼칩니다. 이번 숫자들은 이전 어떤 편보다도 극적인 불균형을 보여줍니다.

구분

필지 수

면적

전체 비율

논 (수전, 水田)

11필지

42,271㎡

약 67.3%

밭 (전, 田)

14필지

18,267㎡

약 29.1%

대지 (집터)

1필지

2,231㎡

약 3.6%

합계

26필지

62,770㎡

100%

논 (水田)

67.3%

밭 (田)

29.1%

대지

3.6%

논이 11필지, 42,271㎡로 전체의 67.3%를 차지합니다. 지금까지 이 시리즈에서 논이 가장 많았던 지역은 대방동(1필지·1,884㎡)과 신설동(1필지·717㎡), 그리고 시흥동(2필지·1,980㎡)이었습니다. 모두 1~2필지의 소규모였습니다. 그런데 개봉동에서는 무려 11필지, 42,271㎡의 국유 논이 한꺼번에 등장합니다. 이 차이는 양적인 것이 아니라 질적인 차이입니다. 소규모 수전과 대규모 수전 지대는 역사적 기능과 발굴 가능성에서 근본적으로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밭이 14필지, 18,267㎡로 전체의 29.1%를 차지합니다. 필지 수로는 논보다 많지만 면적은 논의 절반도 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각 밭 필지의 평균 면적이 논보다 훨씬 작다는 뜻입니다. 논은 필지당 평균 3,843㎡인 반면, 밭은 필지당 평균 1,305㎡입니다. 넓은 논과 좁은 밭이 공존하는 이 구도는, 개봉동이 수전 농업 중심의 동네였음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대지는 단 1필지, 2,231㎡로 전체의 3.6%에 불과합니다. 62,770㎡라는 광대한 국유지 안에 대지가 단 하나뿐이라는 것은, 이 지역이 거주와 행정보다는 순수한 농경 기능을 담당하는 구역이었음을 강하게 시사합니다. 그렇다면 이 유일한 대지는 어떤 건물이 들어섰던 곳일까요. 이 질문 하나가 이 기초조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화두 중 하나입니다.

"100년 전 서울의 지도와 기록을 통해 잊혀진 역사를 되짚고, 그 속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풀어갑니다." —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seoulheritage.org)


3. 논 67.3% — 이 시리즈 최대 비중 수전이 말하는 것



이 시리즈에서 지금까지 가장 높은 논 비중은 쌍계동의 임야 100%(모든 지목이 산림)와 다른 의미에서, 개봉동의 논 67.3%는 '수전 중심 농업 경관'이라는 측면에서 압도적입니다. 이 비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해하려면, 조선 시대 수전(水田) 농업의 특성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논 농업, 즉 벼농사는 밭농사와 근본적으로 다른 인프라를 필요로 합니다. 물을 대고(灌漑), 수위를 조절하고(排水), 논두렁으로 물을 가두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보(洑), 수로(水路), 방죽, 수문(水門) 등의 수리 시설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42,271㎡에 달하는 국유 수전을 유지하려면 이에 걸맞은 규모의 수리 인프라가 조성되어 있었을 것이고, 그 인프라의 흔적이 지금도 지하에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한 이 넓은 수전이 국유지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조선 시대 국유 수전은 주로 두 가지 성격을 가집니다. 첫째는 궁방전(宮房田), 즉 왕실 궁방(宮房)이 직접 관리하는 농지입니다. 둘째는 둔전(屯田), 즉 군대나 관아가 운영 재원 확보를 위해 경작하는 농지입니다. 개봉동의 11필지 논이 이 중 어느 성격인지를 밝히는 것이 기초조사와 지표조사의 핵심 과제입니다.

개봉동 국유 수전 42,271㎡의 가능한 역사적 성격

가설 1 — 궁방전(宮房田): 조선 후기 왕실 궁방이 경제적 기반으로 삼았던 농지. 안양천 유역의 비옥한 충적 평야는 왕실 직속 농장으로 지정될 만한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음. 궁방전은 별도의 관리인이 파견되었고, 그 관리 시설이 이 지역 유일한 대지(1필지·2,231㎡)와 연결될 가능성이 있음.



가설 2 — 둔전(屯田): 금천현 지역 군사 조직이 운영하던 군용 농지. 조선 시대 지방 군현마다 둔전을 두었고, 개봉동 수전이 금천 관아의 둔전이었을 가능성이 있음.



가설 3 — 역둔토(驛屯土): 인근 역참 운영을 위한 농지. 안양천을 따라 이어지는 도로변에 위치한 이 지역이 역참과 연결된 역둔토였을 가능성도 검토 대상.


4. 수전(水田) 발굴의 세계 — 물이 지킨 역사의 기록들



수전(水田) 발굴은 일반 발굴과 다른 특별한 매력과 도전을 동시에 가집니다. 물이 담겨 있는 환경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유기물 보존 조건 때문입니다.

논은 매년 물을 대고 빼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이 과정에서 산소가 차단된 혐기성(嫌氣性) 환경이 형성되고, 이 환경에서는 보통 토양이라면 수백 년 안에 완전히 분해될 유기물이 고스란히 보존됩니다. 나무 농기구, 볍씨, 꽃가루, 동물 뼈, 씨앗, 직물 섬유 등이 수전층에서 원형에 가깝게 출토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42,271㎡에 달하는 개봉동 수전이라면, 이런 유기 유물의 보존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수전 발굴에서 빠지지 않고 확인하는 것은 수리 시설(水利施設)의 흔적입니다. 논에 물을 대기 위한 수로(水路), 물을 막는 보(洑), 수위를 조절하는 수문(水門), 논과 논 사이의 논두렁(畦畔) 등이 지하에 남아 있습니다. 이 수리 시설들은 당시의 농업 기술 수준과 토지 경영 방식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유구입니다. 특히 조선 시대 목제 수문이나 석축 보가 발굴되면, 그것은 당시 수전 관리 기술의 생생한 증거가 됩니다.

또한 논두렁(논과 논 사이의 경계 둑)의 배치 패턴이 지하에 남아 있다면, 이를 통해 1912년 당시 11필지의 논이 실제로 어떤 형태로 구획되어 있었는지를 복원할 수 있습니다. 조선 시대 수전 구획 방식은 현재의 필지 경계와 다를 수 있으며, 이 차이를 분석하면 토지 소유 구조의 변화 과정도 추적할 수 있습니다.

수전 발굴의 또 다른 장점은 자연과학적 분석 자료를 풍부하게 제공한다는 점입니다. 꽃가루(화분) 분석을 통해 당시 주변 식생과 기후를 복원할 수 있고, 볍씨 분석을 통해 어떤 품종의 벼가 재배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규조류(硅藻類, 수중 미세조류) 분석은 과거 수계의 연결 상태를 알려줍니다. 개봉동 수전 42,271㎡는 이 모든 분석의 황금 광산이 될 수 있습니다.


5. 밭 14필지 — 논과 공존한 경작지의 발굴 가능성


논의 압도적 면적에 가려 덜 주목받지만, 밭 14필지, 18,267㎡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시흥동의 최대 규모 밭(28,552㎡)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이 시리즈에서 두 번째로 큰 밭 구역입니다.

필지 수(14필지)가 논(11필지)보다 많지만 면적은 절반 이하라는 것은, 밭 필지들이 논 필지보다 훨씬 작은 규모로 분산되어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이 분산된 소필지 밭들은 대규모 수전 사이사이의 구릉지나 경사면에 조성된 소규모 경작지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이 닿지 않는 약간 높은 지형에 밭을 두고, 물이 고이는 저지에는 논을 배치하는 것이 전통 농촌의 일반적인 토지 이용 패턴이기 때문입니다.

밭 14필지의 발굴 관점에서 주목할 것은 이 밭들이 국유 수전과 인접해 있었다는 점입니다. 수전 관리를 위한 관리인이 사용했을 농기구나 생활용품이 인접 밭 지층에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밭과 논의 경계 지점은 수리 시설(소규모 보나 수로 분기점)이 설치되었을 가능성이 있어, 그 경계 구역에 대한 집중적인 지표조사가 필요합니다.


6. 대지 단 1필지 — 62,770㎡ 안에 홀로 선 집터의 의미


62,770㎡의 광대한 국유지 안에 대지가 단 1필지, 2,231㎡뿐입니다. 이 홀로 선 집터의 존재감이 작을수록, 역설적으로 그 의미는 더 커집니다.

수십 정보에 달하는 수전과 밭 한가운데에 유일하게 세워진 건물. 이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가장 유력한 해석은 수전 관리소 또는 농장 감독관의 거주지입니다. 왕실 궁방전이나 둔전을 관리하기 위해 파견된 관원이 현장에서 숙박하며 농사를 감독하던 건물, 혹은 농기구와 수확물을 보관하던 창고 겸 관리소. 이 유일한 대지 2,231㎡가 바로 그런 기능의 건물 터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대지 1필지(2,231㎡)의 발굴 기대 유물

관리소 혹은 감독관 거주지라면 — 조선 시대 백자 생활용기, 문서 보관 관련 유물, 인장, 온돌 및 아궁이 구조 흔적, 우물. 농기구 창고라면 — 철제 농기구(낫·보습·따비), 목제 농기구 탄화 흔적, 저장 용기류. 수리 시설 관련이라면 — 수문 제어 도구, 측수 도구, 수로 관련 석재 및 목재 구조물 잔편. 이 단 하나의 대지가 이 광대한 수전 지대의 역사를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핵심 발굴 지점이 될 수 있습니다.

발굴 관점에서 이 대지는 최우선 조사 구역입니다. 대지는 건물 기초 흔적이 비교적 명확하게 남는 지목이고, 단 하나뿐인 만큼 이곳에서 어떤 유구가 확인되느냐가 개봉동 국유지 전체의 역사적 성격을 규명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7. 문화재 지표조사 — 광활한 수전 지대를 어떻게 읽나



62,770㎡의 지표조사는 이 시리즈에서 가장 큰 규모입니다. 시흥동(51,702㎡)보다도 넓습니다. 그런데 개봉동의 지표조사는 수전이라는 지목의 특성 때문에 방법론 면에서 다른 지역과 근본적으로 다르게 접근해야 합니다.

수전 지역의 지표조사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현재 지형과 1912년 기록의 비교입니다. 수전은 물을 관리하기 위해 독특한 지형 조성이 이루어집니다. 현재 지표면에서 확인되는 낮은 두렁 흔적, 수로 패턴, 물이 고이는 저지의 분포를 1912년 지적원도와 비교하면, 국유 수전 11필지의 원래 위치와 형태를 상당 부분 복원할 수 있습니다.

드론 항공 촬영이 특히 효과적입니다. 논 지대의 항공 촬영에서는 건기(乾期)와 우기(雨期)의 색조 차이, 식생 패턴, 지형의 미세한 고저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과거 수로가 있었던 자리는 토양 수분 함량이 달라 식생 색조가 주변과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 드론 다중스펙트럼 카메라를 활용하면 지하 수리 시설 흔적을 비파괴로 탐지할 수 있습니다.

대지 1필지는 가장 먼저 집중 지표조사를 실시합니다. 지표면에 기와 조각, 초석 잔편, 도자기 파편 등이 분포한다면 건물지의 존재를 강하게 시사합니다. 밭 14필지는 드론 촬영 결과를 바탕으로 이상 징후 구역을 선별해 현장 답사를 실시합니다. 논 11필지는 현재 개발 현황을 확인하고,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은 원형 수전 구역이 남아 있다면 그 구역을 최우선 보존·조사 대상으로 지정합니다.

수전 지표조사 핵심 참고 자료: 1912년 지적원도, 안양천·목감천 유역 수리 기록, 조선 시대 금천현·시흥현 읍지(邑誌), 일제강점기 수리조합 자료(1920~30년대 농업용 수로 정비 기록), 1950~70년대 항공사진(수전 형태 확인). 수전 발굴에 앞선 수리지리(水利地理) 분석도 필수입니다.


8. 시굴조사·표본조사·발굴조사 — 대규모 논 지역에 적용하면


수전 지역의 시굴조사(試掘調査)는 독특한 방법이 필요합니다. 일반 트렌치 굴착과 함께, 수전층의 특성상 물이 고여 있거나 지반이 연약한 구역에서는 안전을 위한 특별한 굴착 기법이 요구됩니다.

시굴 설계의 첫 단계는 11필지를 군집별로 분류하는 것입니다. 인접한 필지끼리 묶어 몇 개의 조사 블록으로 나누고, 각 블록에서 대표적인 트렌치를 굴착합니다. 트렌치는 수전층의 두께와 분포를 파악하기 위해 최소 2m 깊이 이상으로 굴착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수전 문화층은 지표 아래 30~80cm 구간에 형성되는 경우가 많지만, 퇴적 환경에 따라 더 깊은 곳에 있을 수 있습니다.

표본조사(標本調査)는 62,770㎡의 광대한 면적에서 특히 중요합니다. 논 11필지 전체를 시굴하는 것은 비용과 시간 면에서 비효율적입니다. 지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문화층 밀도가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3~4개 필지를 선정하고, 각 필지에서 격자형 소형 트렌치로 표본조사를 실시합니다. 결과를 비교해 가장 우수한 보존 상태를 가진 구역에 집중 발굴 역량을 투입합니다.

발굴조사(發掘調査)는 수전 문화층이 확인된 구역에서 체계적으로 진행됩니다. 수전 발굴의 특수성은 층위별로 물 관리 흔적을 추적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여러 시기에 걸쳐 수전이 이용된 경우, 각 시기의 수전층이 겹쳐 쌓여 있어 이를 층위별로 분리하며 조사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런 복층 수전 발굴이 성공하면, 조선 시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수백 년간의 농업 변화 역사를 한 단면에서 읽어낼 수 있습니다.


9. 이 시리즈 전체와의 비교 — 개봉동이 새로 세운 기록들


이 시리즈를 통해 살펴본 서울 각 지역의 국유지를 개봉동과 비교합니다.

개봉동 (구로)

62,770㎡

시흥동 (금천)

51,702㎡

노고산동 (마포)

20,512㎡

신설동 (동대문)

19,451㎡

쌍계동 (노원)

17,649㎡

대방동 (동작)

8,211㎡

쌍문동 (도봉)

1,246㎡

개봉동은 이 시리즈에서 세 가지 새로운 기록을 세웁니다. 가장 많은 필지 수(26필지), 가장 넓은 총면적(62,770㎡), 그리고 가장 높은 논 비중(67.3%)이 그것입니다. 이 세 가지 기록이 한 동네에서 동시에 나타난다는 것은 개봉동이 조선 시대 서울 인근에서 가장 중요한 국유 수전 지대 중 하나였음을 강력하게 시사합니다.

한편 대지 비중은 이 시리즈에서 가장 낮습니다(3.6%). 이 대비가 개봉동의 성격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주거나 행정보다는 순수한 농업 생산에 특화된 공간. 왕실이나 관아가 식량 생산 기지로 관리했던 광활한 수전 지대. 개봉동은 그런 땅이었습니다.


10. 문화재 발굴 기관 — 수전 발굴 전문 조사 체계


62,770㎡ 수전 중심 부지의 발굴조사는 일반 도심 발굴과 다른 전문성이 필요합니다. 수전 발굴 경험, 유기물 보존 처리 능력, 자연과학 분석 역량이 갖춰진 기관을 선택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국가유산청(khs.go.kr)이 발굴 허가 및 감독을 담당하고, 국립문화유산연구원(nrich.go.kr)의 자연유산연구실이 수전층 꽃가루 분석, 탄화 볍씨 분석, 목재 연대측정 등 자연과학 분석을 지원합니다. 이 규모의 수전 발굴은 일반 도심 발굴 기관과 함께 농업 고고학 전문성을 가진 연구자들이 공동 참여하는 학제간 조사 체계가 이상적입니다.

한국문화유산협회(kaah.kr) 등록 발굴기관 중에서는 경기 남부·안양천 유역 수전 발굴 경험이 있는 기관을 우선 검토합니다. 수전 발굴은 일반 굴착 장비 외에 배수 펌프, 수중 채토기(採土器), 유기물 보존 처리 장비 등이 필요합니다.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seoulheritage.org)의 기초조사 데이터는 이 모든 조사 설계의 출발점이 됩니다.


11. 성공 사례 — 논에서 잠든 역사가 깨어난 순간들



성공 사례 01 — 경기 화성 수전 대규모 발굴

경기도 화성 지역 대규모 수전 구역 발굴에서 조선 전기 목제 수문과 석축 보(洑) 유구가 완벽히 보존된 채 발굴되었습니다. 혐기성 수전층이 7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목재를 부패 없이 보존한 것입니다. 함께 출토된 탄화 볍씨 분석을 통해 조선 전기에 재배된 벼 품종이 최초로 규명되었으며, 당시 수전 농업 기술 수준이 생각보다 훨씬 정교했음이 밝혀졌습니다. 개봉동 수전도 이와 유사한 발견 가능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습니다.

성공 사례 02 — 서울 강서구 마곡동 수전 발굴

서울 마곡 개발 지역 내 수전 구역 발굴에서 조선 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이어지는 다층 수전 문화층이 확인되었습니다. 각 시기의 논두렁 패턴이 겹쳐 있어 수백 년에 걸친 경지 정리의 역사를 한 단면에서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궁방전으로 추정되는 관리 기록 관련 유물도 일부 출토되어, 이 수전이 조선 왕실 경제와 연결되어 있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개봉동 유일한 대지와 수전의 관계가 이런 방식으로 밝혀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성공 사례 03 — 안양천 유역 수리 시설 발굴

안양천 유역 재개발 구역에서 조선 시대 수리 인프라(보·수로·논두렁) 체계가 집중 발굴된 사례입니다. 발굴된 수로 체계를 분석한 결과 조선 시대 이 지역이 매우 정교한 집단 수리 경영 체계를 갖추고 있었음이 밝혀졌습니다. 개봉동은 이 안양천 유역 수리 체계와 직접 연결되어 있어, 유사한 발굴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세 사례 모두 공통점이 있습니다. 논은 물 덕분에, 물은 혐기성 조건 덕분에, 혐기성 조건은 유기물을 덕분에 — 수백 년의 역사를 지켜냈습니다. 물이 역사의 보존자가 되는 역설, 개봉동 42,271㎡의 수전이 바로 그 역설의 무대입니다.


12. 마치며 — 물이 기억하는 것, 흙이 간직한 것



물은 기억한다

봄이면 물을 대고, 여름이면 모를 심고, 가을이면 황금빛 벼를 거두던 사람들. 그들의 발이 디딘 논두렁이, 그들의 손이 열었던 수문이, 그들이 뿌린 씨앗이 — 지금도 그 흙 속 어딘가에 잠들어 있습니다.



42,271㎡의 논. 11필지의 국유 수전. 그 물이 흘렀던 자리를 지금은 아파트 단지가 채우고 있지만, 땅의 기억은 콘크리트보다 깊은 곳에 있습니다.



물이 잠재운 것을 우리가 깨워야 합니다. 그 잠든 이야기를 들어줘야 할 사람들이 바로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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