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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구 신공덕동의 1912년을 상상해 본 적 있나요?』

  • 5일 전
  • 3분 분량

목차:


  1. 뜻밖의 시간여행, 1912년의 서대문구 신공덕동

  2. 신공덕동의 집들, 100여 년 전 그 곳의 풍경

  3. 거대한 무덤, 신공덕동을 지배하다

  4. 잡종지와 밭이 말하는 신공덕동의 생활상

  5. 성씨별 땅 소유 현황과 그 숨겨진 이야기

  6. 국유지와 일본인 땅의 숨은 의미

  7. 오늘날의 신공덕동, 과거와의 연결점



『서대문구 신공덕동의 1912년을 상상해 본 적 있나요?』


이곳이 서울의 번화한 중심지가 되기 훨씬 전, 100년을 훌쩍 넘긴 시간의 창을 열어보면 놀랍게도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어요.


여러분이 지금 밟고 있는 신공덕동 거리가 한때 거대한 분묘지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이 블로그를 통해 우리가 알지 못했던 신공덕동의 진짜 역사를 함께 살펴보는 건 어떨까요?


뜻밖의 시간여행, 1912년의 서대문구 신공덕동


서울에서 신공덕동을 떠올리면 현대적이고 분주한 도시의 풍경이 가장 먼저 떠오를 거예요.


높은 건물들과 빠르게 달리는 차들 사이에서 누구도 이곳이 한 세기 전 어떻게 생겼을지 쉽게 상상하지 못하죠.


1912년, 서대문구 신공덕동은 150필지로 나뉘어져 있었고, 전체 면적은 153,329㎡였습니다.


지금은 도심지의 화려한 조명 아래 가려진 그 옛날의 모습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낯선 풍경과 이야기에 깜짝 놀라게 될 거예요.


신공덕동의 집들, 100여 년 전 그 곳의 풍경


1912년 신공덕동에는 총 104필지, 면적은 40,271㎡ 규모의 집들이 있었어요.


이 집들은 오늘날과 달리 초가지붕과 한옥이 주를 이루었죠.


당시 서울에서 조금은 한적한 시골 마을 같은 모습이었을 신공덕동에서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지금처럼 아파트 단지가 아니라 각자 소박한 마당을 가진 집들 사이에 작은 오솔길들이 있었습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은 없었지만, 마을 사람들은 서로 왕래하며 끈끈한 이웃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갔겠죠.


거대한 무덤, 신공덕동을 지배하다


이곳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면적 51,259㎡의 거대한 분묘지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무덤이 전체 면적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당시 신공덕동 사람들의 생활이나 환경에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에요.


무덤이 마을 중심에 위치하고 있었던 점을 생각하면, 마을 사람들에게는 이곳이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특별한 장소였을 것입니다.


지금은 전혀 흔적조차 찾기 힘든 거대한 무덤의 존재는 과거 신공덕동 사람들에게는 일상 속 아주 특별한 공간이었겠죠.


잡종지와 밭이 말하는 신공덕동의 생활상


1912년 신공덕동에는 작은 규모의 잡종지가 하나 있었어요.


면적은 971㎡로 마을 한구석에 위치한 잡종지는 아마 주민들의 소소한 일상과 함께하는 공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밭이 44필지나 되는 106,499㎡로 상당한 규모였는데요.


신공덕동 주민들은 넓은 밭에서 농사를 지으며 생활을 영위했습니다.


지금의 신공덕동에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당시엔 농촌 지역과 같은 분위기가 확연히 존재했을 거예요.


성씨별 땅 소유 현황과 그 숨겨진 이야기


1912년의 신공덕동을 분석하면 성씨별로 땅을 소유한 규모를 통해 당시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김씨가 21필지로 가장 많은 땅을 소유하고 있었고, 박씨와 조씨가 각각 14필지, 최씨가 12필지, 이씨가 11필지를 소유하고 있었어요.


이것은 당시의 사회적 지위를 짐작할 수 있는 흥미로운 데이터죠.


성씨별 소유 현황은 당대 신공덕동 사람들의 계층이나 사회적 역할을 간접적으로 나타내는 좋은 단서입니다.


국유지와 일본인 땅의 숨은 의미


신공덕동엔 8필지의 국유지와 20필지의 일본인 소유지가 있었습니다.


당시 일본인의 토지 소유가 서울 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이곳의 일본인 소유 토지는 일제 강점기의 시작과 함께 나타난 일본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는 시대의 변화를 명확히 보여주는 증거죠.


국유지가 존재했던 것도 당시 정부나 행정기관이 신공덕동 지역에서 수행한 정책적 결정과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신공덕동, 과거와의 연결점


10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서대문구 신공덕동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높은 건물들이 들어서고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현대적 공간으로 탈바꿈했지만, 과거 이 지역의 역사는 땅 아래 깊숙한 곳에서 우리에게 계속 말을 걸어옵니다.


옛 집터, 분묘지, 일본인 소유의 토지와 같은 흔적들은 문화재 발굴과 시굴조사를 통해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혹시 여러분도 서울의 역사를 발굴하는 과정에 관심이 있다면 문화유적 발굴조사에 참여하거나 의뢰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지금의 신공덕동을 걸으며 눈을 감아보면, 시간의 베일 너머로 그 당시 마을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았을지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의 이야기는 이렇게 과거와 연결된 채 계속 쓰여지고 있습니다.


과거의 숨결을 느끼며 걷는 신공덕동, 이 도시의 또 다른 매력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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